부처님이 기원정사(祈園精舍)에 계실 때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세 가지 그릇된 견해를 가진 외도(外道)가 있는데, 슬기로운 사람들은 그것을 밝게 가려내어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 가지 그릇된 견해란 어떤 것인가? 첫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람이 이 세상에 경험하는 것은 괴롭든 즐겁든 모두 전생의 업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둘째,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은 자재천(自在天)의 뜻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한다. 셋째, 혹은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 고 말한다.
나는 언제나 무엇이나 전생의 업에 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의견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음행하고 거짓말하고 탐욕과 성냄과 삿된 소견을 갖는 것도 모두 전생에 지은 업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또 모든 것은 자재천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약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도 자재천의 뜻이고, 도둑질이나 음행이나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도 자재천의 뜻에 의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그리고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고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에 인연이 없다고 한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비구들, 이것이 그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주장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비판이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되고 마침내는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그릇된 의견을 잘 가려내어 버림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이치로써 차근차근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릇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셨다.
사리풋타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제자의 바른 견해이며, 진리에 대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통달할 수 있는 길이겠습니까? 불제자는 먼저 어떤 것이 불선법(不善法)인지, 불선법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이 선법(善法)인지, 선법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제자의 바른 견해로 그 보는 바가 올바르고 절대적인 신념으로 진리에 통달할 수 있는 길입니다.
불선법이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일, 사음(邪淫), 거짓말, 악담, 이간질, 꾸미는 말, 탐욕, 성냄, 그릇된 소견 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불선법의 근본은 또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선법이란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으며, 사음을 하지 않고, 거짓말과 악담과 이간질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버린 것을 말하며, 이러한 선법의 근본은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음에 있습니다.
부처님 제자들이 이와 같은 불선법과 그 근본을 알고 또 선법과 그 근본을 알면, 그는 탐욕과 성냄의 번뇌를 없애어 〈나〉를 내세우려는 아만을 버리고 무명(無明)을 끊고, 지혜의 등불을 밝혀 현실의 괴로움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제자의 바른 견해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올바른 진리를 통달하게 되는 길입니다”
비구들은 사리풋타의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