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옷은 입고 가셔야지요

스님! 옷은 입고 가셔야지요

바람결에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실려왔다. 분명 먼 데서 나는 것은 아니었다. 노승은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닐까? 노승은 귀를 기울였다. 또 한번 까르르 하는 울음이 얼음촉이 되어 노승의 귀를 찔렀다. 그는 중얼거렸다.

“거참 이상도 하군. 도대체 사람이 살지 않는 이곳에 웬 아기 울음소리지? 여기는 우리 천엄사말고는 다른 인가는 없는데…” 또 한 차례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노승의 귓전을 때렸다. 얼얼했다. 잘못하다간 얼어 죽기 십상이었다. 주위에서는 이번 추위가 86년 만에 처음 있는 추위라고들 했다. 노승은 주장자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천엄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천왕문 가까이 이른 노승은 천왕문의 굳게 닫힌 대문을 열였다.

그가 막 문고리에 손을 얹는 순간, 탈진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문고리에서 손을 놓고 주위를 살펴보니 눈밭 위에 뭔가 시커먼 물체가 눈에 띄었다. 노승은 가까이 다가갔다. 방금 해산을 한 여인이 아기의 탯줄을 쥐고 있었고, 아기는 아기대로 눈밭에 뒹굴고 있었다. “스님! 스니이임…” 노승을 알아본 여인이 꺼져 가는 소리로 불렀다. 노승은 대답 대신 눈밭에 엎드려 송곳니로 아기의 탯줄을 끊었다.

그는 정수스님이었다. 신라 서라벌 내에서 효자로 소문이 난 바로 그 정수스님이었다. 그는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한을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살았다. 가끔씩 마음이 울적하고 쓸쓸해지면 시조를 읊조리기도 하고 향가를 부르기도 했다. 정수스님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왜 울적해 하시는지, 무슨 한을 그리도 많이 간직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었다. 남편과의 사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 시집을 왔을 때 신랑의 집안은 그런대로 살만 했다. 남편의 따스한 사랑도 있었다. 시부모도 그녀를 잘 보살펴 주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요, 며느리였기에 집안에서는 더없는 사랑을 받았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시련이 왔다. 신랑이 밖으로 나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도 아기 소식이 전혀 없자 신랑은 대를 잇기 위해서라도 씨받이를 구해야 했다. 시부모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몇 년이 흐르고, 남편은 시앗을 아주 내당으로 들여 앉혔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지만, 몰래, 그것도 정실인 그녀 몰래 남편은 호적을 바꿔치기해 버렸다. 어느 날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러 놓고 말했다. “당신이 이 집을 나가 줘야겠소. 당신은 우리 집안의 대를 이어 주지 못했소. 나도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소.” 그녀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짐작을 전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전개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날 밤이었다. 벌써 7년 넘게 독수공방을 하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리에 누웠지만 흐르는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다. 일어나 앉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날이 새면 그녀는 떠나야 한다. 그때 방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어느 정도 자책감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계면쩍은 모습으로 쭈뼛쭈뼛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켰소. 미안하오. 당신도 아다시피 내 본 마음과는 달리 일이 엉뚱하게 처리되고 있소. 우리 이별의 전주곡을 울립시다.” “이별의 전주곡이라구요?” “그렇소. 이별의 전주곡이오.” 그는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미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또한 그가 측은했다.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그녀는 신랑을 받아들였다. 둘은 이별의 전주곡을 노래했다. 밤은 너무나 짧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미리 당겨 쓸 수만 있다면 이런 때 쓰고 싶었다. 날이 밝고, 내당에 들어갔던 남편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앗은 두 사람이 이별의 전주곡을 켜던 날 우연히 밖에 나왔다가 뜻하지 않았던 일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본부인 방에서 전주곡을 켜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유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당신을 알고부터 행복했어요. 당신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직 나만을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내가 당신의 전부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음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는 배신감을 주체할 길 없어 이렇게 갑니다. 부디 내게 쏟던 사랑을 당신의 본부인을 위해 쏟아 주십시오. 당신의 행복을 빌어드리리다. 그럼…”” 거기에 충격을 받은 남편은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몸져누워 버렸다.

그것이 마침내 남편의 목숨까지 앗아가게 된 동기가 되었다. 홀로 남은 그녀는 그날 밤 이별의 전주곡이 영영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별의 전주곡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선물 하나를 주고 갔다. 정수스님이었다. 정수스님은 홀어머니 밑에서 곱게 자랐다. 어머니의 사랑은 극진했고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넘자 어머니는 아들을 혼인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서 또 시작되었다. 초야를 치르게 된 두 신혼부부는 행복했고, 급기야 신랑의 삶을 바꿔 놓는 결정적인 시각이 다가왔다. 신랑은 신부를 안았다. 신랑의 행동은 격렬했고 매우 저돌적이었다. 신부는 신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생전 처음 대하는 이성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은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다음날 신랑은 신부의 시신을 메고 선산에 가서 고이고이 묻었다. 신랑은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도 소용이 없었다.

신랑은 점차 인생의 허무를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이 싫어졌다. 어느 날 그는 집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정처없이 방황하던 그는 황룡사에 이르렀다. 참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가람이었다. 법당 앞에 우뚝 선 구층탑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250여 척을 넘는 목탑은 인간의 솜씨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저녁 예불시간인지 범종이 온 경내를 고요하게 만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범종소리는 모든 잡다한 소리들을 둘둘 말아 감추어 버렸다. 우람한 범종소리가 경내를 뒤흔들건만 거기서 오히려 고요를 느낀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생각했다. ‘시끄러움은 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적인 문제다. 내 마음에 온갖 갈등과 번민이 자리하고 있을 때 세상은 시끄러웠다. 이제 범종소리에 내 마음의 번뇌가 녹아들고 나니 세상은 온통 평화와 고요일 뿐이구나.’ 그랬다. 세상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 상관없었다. 다만 보는 이의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복잡하게도 단순하게도 보이는 것이었다. 기쁨과 슬픔도 바로 마음의 세계를 떠나 따로 바깥의 사물이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모두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 있었다. 15만 관이 넘는 거대한 범종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는 출가를 결심했다.

그가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나자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없어졌다. 정수스님은 자신의 출가로 인해 혼자된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를 천엄사로 모셔왔다. 아기의 탯줄을 끊은 정수스님은 추위에 온몸이 얼음덩어리가 된 아기를 품속에 안고 천왕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가 지르는 소리는 추위에 얼어 문에 무딪혔다가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정수스님은 여인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그는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뿐 몸은 이미 굳어가고 있었다. 여인은 속옷만을 입고 있었다.

그 고통의 순간에도 그녀는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위해 겉옷을 벗어 아기를 덮었던 것이다. 정수스님은 자신의 누비 두루마기를 벗어 여인을 감싸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도공이 흙을 주무르듯 그의 주무르는 태도는 자연스러웠다. 그는 이미 성욕을 초월한 대도인이었기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여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고귀한 생명이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노승의 입에서는 염불을 외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의 손놀림도 거기에 맞춰 중몰이에서 중중몰이로 들어갔고, 다시 자진몰이로 휘몰이로 속도가 빨라졌다.

“끙.” 여인이 실눈을 뜨고 노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노승의 염불도 그의 손놀림도 이젠 진양조로 바뀌었다. 휘몰이로 지은 매듭을 진양으로 서서히 풀어내었다. 어디선가 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먼 허공을 깨트리며 날아왔다. 노승은 피로를 느꼈다. 여인의 모습이 하나로 보이다 둘로 보이고, 둘로 보이다 하나로 보였다. 그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 여인을 주시하며 물었다.

“부인은 어인 일로 이곳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소? 이 추운데서 행여 얼어 죽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 여인이 누운 채로 입을 열었다. “천엄사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기를 느끼며 진통이 오는 바람에…” “저런, 쯧쯧! 그래 부인은 어디에 사시오? 집이 어디요?” “집은 없습니다. 얘기를 하자면 긴데요…” “됐소. 지금은 얘기를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몸을 녹여 아기를 돌봐야 하오.” 정수스님이 아기를 돌아봤다.

그 엄청난 추위에도 누비 적삼을 입혀 놓으니 아기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정수스님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인에게 말했다. “하여간 빨리 기력을 차리시오.”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스님에게 여인이 말했다. “스님! 옷은 입고 가셔야지요.” 정수스님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누비 두루마기는 여인을 주었고 누비 적삼은 아기를 주었으므로 그는 바지와 속옷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여인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여인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는 몇 발자국 걷던 정수스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여인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와 속옷까지 모두 벗었다. 스님의 행동을 보던 여인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여인에게 순간, 지나온 자신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원성왕(785–798 재위)대의 궁녀였다. 남부럽지 않은 가문에서 자란 그녀가 궁녀로 들어가게 된 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던 그녀는 열댓 살이 되자 이웃집에 살고 있는 알량이라는 총각을 알게 되었다. 담을 중간에 두고 있는 총각과 그녀는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것이 사랑하는 사이로 번져갔다. 하지만 행복의 여신을 그들 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총각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한없이 순수한 데 비해 총각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가 무남독녀 외동딸인데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총각의 야심을 알고는 있었으면서도 여인은 그냥 그 알량이 좋았다. 어떠한 조건도 필요없었다. 그녀는 알량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그녀의 생각일 뿐, 그녀의 부모도 알량의 부모도 둘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총각은 어느 날 느닷없이 청혼을 해왔다.

아직 그녀의 아버지나 어머니는 모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총각으로부터 구혼을 받자 그녀는 고민했다. 어떻게 부모에게 알릴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총각 알량은 그녀의 부모를 찾아왔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알량은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그녀의 부모에게 떼를 썼다. 그런데 거기에는 엄청난 모함이 깃들여 있었다. “내 딸을 달라고? 우리는 아직 자네 부모님과 아무런 얘기도 한 적이 없네.” 알량은 강경하게 나왔다. “댁의 따님은 이미 저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녀는 제 아이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저말고는 아무도 댁의 따님을 데려갈 사람은 없습니다.” 건넌방에서 이 말을 들은 그녀는 기가 막혔다. 자기의 아이를 가졌다니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을 미워하면서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서라벌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뛰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지고도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알량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 몰래 그를 만난 자신에게 더욱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방황을 계속하던 그녀는 천엄사에 들어가 후원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름도 감추고 천엄사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시간이 나면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곤 했다. 그녀가 천엄사에 머물기 시작한 지 1년, 그녀의 소문은 궐내에까지 이르렀다. 원성왕은 천엄사에 보기 드문 미모의 여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관을 보내 그녀를 불러들여 궁녀로 삼고 총애했다.

그녀는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꿈 같은 세월을 보냈다. 원성왕이 물러나고 소성왕(799-799재위)이 즉위했다. 소성왕은 젊었고 게다가 색욕이 남달리 강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원성왕의 궁녀들 중에서 나이 든 궁녀들은 모두 내보내고 젊은 궁녀들만을 남겨 두었다. 여인을 본 소성왕은 깜짝 놀랐다. “저토록 아름다운 궁녀가 있었느냐?”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네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 “저는 성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천애고아였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부모를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쨌든 그녀는 소성왕의 마음에 들었고 몇 번에 걸쳐 왕은을 입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소성왕이 너무나 주지육림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음을 간곡히 직언했고, 소성왕은 그러한 바른말 하는 신하들을 배척했다. 결국 소성왕은 한 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이듬해에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 다음에 왕위에 나아간 분이 애장왕(800-808 재위)이었다. 그는 새시대 새정치를 표방하며 소성왕 때의 궁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하지만 구세대 인물 중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던 올바른 신하들은 대거 등용하였다. 그녀는 궁녀로 있으면서 임신을 했다.

하지만 궁에서 쫓겨났을 때 특별히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시집도 안 간 여자가 부른 배를 부여안고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만삭이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얻어 먹기도 했고 춥지 않은 때라 날품팔이를 할 수도 있었지만 막상 날씨가 추워지고 산달이 가까워 오자 갈 곳이 막막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천엄사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회귀본능일 것이었다.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 그녀의 걸음은 자꾸만 처졌다. 물 먹은 솜처럼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천엄사 일주문을 들어서서 천왕문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진통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비로소 뭇 남자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고통의 씨앗을 안겨 준 남자가 미워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그것은 남자에 대한 미움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여자임이 미웠다. 왜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가. 그 고통을 남자도 함께 겪으면 안 되는가. 그녀는 그 아픈 와중에도 수많은 여인들이 자신과 같은 산고를 겪으면서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인간들을 낳았음을 생각하고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녀는 제일 먼저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 역시 산고를 겪었을 것을 생각했다. 그 다음 그녀는 소성왕을 떠올렸다. 야차같이 덤벼들던 소성왕이 보고 싶었다. 순하디 순한 남자가 아니라 야차같이 달려드는 소성왕이 더없이 그리웠다. 그녀는 순종하는 남자가 아니라 군림하는 남자가 좋았었다.

그녀는 정수스님의 알몸을 보는 순간 그에게서 소성왕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알몸을 드러낸 정수스님이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스님을 불렀다. “스님! 옷을 입고 가세요. 겉옷은 두고 갈 망정 속옷이라도 입고 가세요.” 스님은 다시 한번 돌아보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여인은 스님의 모습에서 퍼뜩 뭔가를 느꼈다. 그랬다. 스님을 보면서 지장보살을 생각했다. ‘저 스님은 지장보살님이야! 지장보살님은 추위에 떠는 여인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기의 옷을 벗어 여인에게 주었다지! 그리고 지장보살은 남들이 자기를 바라보자 알몸이 부끄러워 땅 속에 몸을 숨겼다던군. 그래서 ‘땅 속에 숨은 보살’이라하여 ‘지장보살’이라 한다고 했어. 맞아. 저 스님은 이 시대에 살아 있는 지장보살이야.’ 정수스님은 황룡사로 향했다.

천엄사는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룡사 역시 삼경이 되면 모든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다시 천엄사로 돌아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스님의 몸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점점 굳어만 갔다. 회랑 바깥쪽 담 아래 정수스님은 지친 몸을 눕혔다. 정말 한 발짝도 옮길 수 없었다. 고양이가 따라와 스님의 품안으로 파고 들었다.

고양이의 체온이 스님에게 전달되었다. 오경을 넘기면서 날씨도 서서히 풀려갔다. 이튿날 발가벗은 스님을 발견한 황룡사 대중은 지극한 보호로 정수스님을 살려 냈고 그 소문은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갔다. 애장왕은 겨우 열세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주위에 훌륭한 신하들이 있어 정수스님의 장한 보살행을 보고하자 스님을 국사로 모시게 했다.

훗날 사람들은 정수국사를 지장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높이 받들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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