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현신하신 고개

부처님이 현신하신 고개

고려 목종(997–1009)때, 강원도 철원군 보개면 심원사에서 범종불사가 있었다. 덕문대사를 비롯하여 심원사 스님들은 화주승이 되어 경향각지로 시주를 하러 다녔다. 본디 종불사는 대웅전이나 불상조성불사와 마찬가지로 시주금이 잘 걷히는 불사였지만 생활고에 허덕이는 당시로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쌀을 시주했고 어떤 사람은 돈을 시주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양재기라든가 놋그릇 등을 공양하였다. 보개산 자락 끄트머리에 이덕기라는 사람과 박춘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둘은 죽마고우였다. 덕기는 어려서 마마를 앓다가 열이 심해 마침내 눈이 멀었다. 앞을 못 보는 처지였지만 덕기는 남달리 착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크나 작으나 항상 베풀어 주기를 좋아했고 부처님의 이름듣기를 즐겨하였다. 춘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춘식 또한 젊은날에 뜻하지 않은 병으로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었기에 부인들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여러 가지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항상 자탄으로 끝을 맺곤 했다. “우리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몸을 받았을까? 자네는 다리를 쓰지 못하고 나는 사물을 보지 못하니…” “전생에 많은 죄를 지었던가 보이. 부처님 말씀에도 왜 그런 말이 있다지 않던가.” 춘식은 눈을 지그시 감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송을 읊었다.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받은 것이 바로 그것이요,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짓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 춘식의 읊조리는 인과송을 들으며 덕기는 눈물을 흘렸다. 춘식도 울었다. 덕기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전생에 많은 죄를 지었을 걸세. 부처님 말씀은 하나도 그른 게 없거든. 그러니 우리 이제 앞으로는 복 짓는 일이나 많이 하도록 하세.” 어디선가 산새소리가 들려왔다. 수퀑이 울었다. 잠시 후 남루한 차림의 스님 한 분이 석장을 짚고 바랑을 진 채로 다가왔다. 춘식은 앉은 채로 스님에게 합장을 했다.

덕기가 인기척을 느끼고 물었다. “누가 오셨는가 보이.” “요, 윗절 심원사의 화주승이올시다. 지금 우리 절에서 범종불사를 진행중이라 화주를 하러 다니고 있소이다. 시주님께서도 가능하시다면 우리 절 범종불사에 동참하시지요.” 덕기가 물었다. “우리 같은 미천한 중생도 시주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렴, 당연하지요. 죄 많은 중생일수록 부처님께 시주를 하고 덕을 베풀어 전생의 죄과를 녹이셔야 합니다.

부처님은 일체 덕을 베풀어 전생의 죄과를 녹이셔야 합니다. 부처님은 일체 덕을 다 지니신 분으로서 누구나 그분께 공양을 하면 수 백 배 수천 배의 공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현생에서는 복을 누리고 수명장수하며 내생에서는 더욱 좋은 몸을 받아 나게 됩니다.” 춘식은 부인의 말이 생각났다. 하루는 부인이 절에 갔다 오더니 말했다. “여보, 부처님은 일체 중생을 친자식처럼 대하신답니다.

부모가 많은 자식 중에서도 병든 자식을 더 애처롭게 여기는 것처럼 부처님도 죄 많은 중생들에게 더욱 마음을 쓰신다고 합디다.” 그때 아내는 눈물을 훔쳤다. 춘식은 아내가 가여웠다. 가난도 가난이려니와 걷지도 못하는 자기에게 시집와서 제대로 사랑 한 번 나눠 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는 게 마음아팠다. 둘은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울었다. 춘식이 덕기를 보고 말했다.

“스님의 말씀대로 우리도 공덕을 한 번 지어 보세.” “말이야 쉽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가?” “안 될 일도 없지. 자네는 앞을 못 보는 대신 걸을 수가 있고, 나는 걷지 못하는 대신 볼 수가 있잖은가. 그러니 우리 서로 하나가 되세.” 둘은 마음이 맞았다. 스님을 떠나 보내고 둘은 시주를 하러 다녔다. 덕기의 등에 업힌 춘식은 덕기의 눈이 되었고 덕기는 춘식의 발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시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러 곳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소경이 집안에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소금을 뿌렸으며 심지어는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3년, 마침내 거금을 장만했고 덕기와 춘식은 그 돈을 심원사 범종불사에 바쳤다. 범종은 주조되었다. 심원사에서는 범종불사와 아울러 대웅전, 요사채까지 새롭게 증축하였다. 이를 중수불사라고 했다.

쓰르라미가 처절하게 울어대는 한여름 오후, 그들은 범종불사 회향과 대웅전불사 회향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들이 살고 있는 대광리의 오두막 사립을 나섰다. 춘식을 업고 가는 덕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춘식은 콧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장엄하게 울려라 온누리에 퍼져라. 너와 나 우리 모두 하나이게 하여라. 번뇌와 갈등을 쉬고 이 세상 온갖 생명 화합하게 하여라. 화합의 종을 울려라 깨달음의 종을 울려라. 무명의 업장이여 그 이름마저 사라져라. 붉게 물든 태양이 서산마루에 턱걸이를 할 즈음 그들은 대치령에 올랐다.

연천으로 돌아가면 길은 평평하고 좋았으나 앞을 못 보는 덕기가 내를 건널 수 없었기에 대치령을 넘기로 한 것이었다. 이때쯤 춘식을 등에 업은 덕기는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계곡을 지나고 산등성을 오르며 풀벌레에 온몸이 쏘이고 물려 덕기나 춘식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유난히 밝았다. 덕기의 입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염불소리가 함께 묻어 나왔다. 춘식이 말했다. “이제 대치령 고갯마루에 올랐으니, 여기서 한숨 돌리고 가세.” “시간이 바쁜데 그래도 될까?” “될 걸세. 이제 이 산을 내려가서 몇 마장만 더 걸으면 보개산일 테니, 오늘밤 내처 걸으면 새벽녘이면 닿을 수 있을 걸세.” 춘식을 내려놓고 덕기는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멸시를 받아 왔던가.

앞 못 보는 병신이라고 동네 꼬마들은 또 얼마나 놀려 댔던가. 그러나 이제 아무래도 좋다. 이 범종불사에 시주한 공덕으로 내생에 좋은 몸 받아 여보란 듯이 살리라. 그때였다. 옆에 앉았던 춘식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앗, 부처님이다. 저기 부처님이 보인다. 저기 저 노을 위에서 계시는 분이.” 춘식은 부처님을 보고 뛰어가려는 듯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토록 염원해 왔던 다리가 펴진 것이다.

“앗, 이보게 덕기. 내 다리가 펴졌어. 난 지금 일어서 있다구. 이것 좀 봐. 내 이 서 있는 모습을.” 덕기는 직감으로 알았다. 춘식의 말소리가 같은 높이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덕기는 춘식의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허우적대며 말했다. “그래? 다리가 펴졌다고? 걸을 수 있다고? 어디 보세.” 덕기가 춘식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덕기의 눈에 번쩍하는 섬광이 있었다. 덕기가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며 소리 질렀다. “아니, 웬 번개인가?” 춘식이 바라보며 말했다.

“번개가 아니라, 자네가 눈을 뜬 거라구. 어디 보세. 어디봐.” 덕기는 눈을 떴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세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둘은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앉은뱅이가 일어섰고 소경이 눈을 떴으니 이보다 더 경사스런 일이 또 있겠는가. 세계가 온통 그들의 것이었다. 그때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그들은 행동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노을 위로 부처님이 서 계셨다.

그 부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무명의 업장은 녹아 버렸으며 시기와 질투와 근심 걱정 온갖 번뇌도 없어졌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과거는 과거로 흘려 보내라. 현실에 충실하고 미래를 대비하라. 여래의 말씀은 헛되지 않다. 둘은 부처님의 모습을 뵙고 밤새도록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리고 밤새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얘기가 나라에 전해지자 고려 제7대 목종은 그 대치령을 불견령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 ‘부처님의 현신하신 재’, ‘부처님을 뵈온 재’라는 뜻이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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