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된 게으름뱅이
공주의 도척바위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과응보의 법칙이 얼마나 준엄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좋은 본보기다.
몽둥이를 쳐들고 무엇인가 내리치려는 모습을 하고 서 있는 그 바위는 눈비와 온갖 세파를 견뎌야 하는, 그래서 애처롭기까지한 바위다. 옛날 백제의 수도 공주 땅에 게으름뱅이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척이었다.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마음 씀씀이를 보고 이웃사람들이 별명으로 붙여 준 것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게으르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오죽했으면 ‘아랫목에서 밥 먹고 웃목에서 똥싼다’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는 너무나 게을러 밥숟가락 들기를 꺼려했다. 숟가락 드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든가 다른 식구들이 떠 먹여 주어야만 겨우 먹곤 했다. 게다가 성질이 난폭해 어떠한 일도 참 아 내지 못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집에는 갈수록 가난만 찾아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밥 먹기도 귀찮은데 며칠 굶어? 까짓 거 굶어 보지 뭐.’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흘째 접어드리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거리로 나갔다. 깡통도 들기가 귀찮아 빈 손으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얻어먹었다.
하루는 밤새 잠을 자지 않은 탓으로 늦잠을 잤다. 오랜만에 걸식을 하러 다니다 보니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밤에 누가 밥을 줄 리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겨우 찬밥 몇 덩이 얻어 온 것이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전날 밤 얻어 온 찬밥을 먹고 있는데 노스님 한 분이 찾아왔다. “지나가는 객승입니다. 아침밥을 아직 먹지 못하여 몹시 시장합니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겠소이까?” 도척은 노스님의 말을 듣자 심술이 났다. 먹던 밥숟가락을 소반에 쨍그렁 소리가 나도록 내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뭐하는 중이 아침부터 밥을 달라는 거야. 당장 꺼지지 못하겠어? 에이 썅.” 도척이 갑자기 강하게 나오자 노스님은 합자을 하고는 뭐라 중얼거렸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니미럴, 남의 아미타불이고 제 아미타불이고 간에 빨리 꺼져 버려. 당신 줄 밥이 있으면 놔 두었다가 내가 점심으로 먹겠다.”
노스님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염불을 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사라졌다. 바로 그 순간 도척은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노스님이 외는 주문을 생각하면서 이는 필시 그 용망한 늙은 중이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라고 원망을 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아이고오! 나 죽네. 그 요망한 땡초가 가면 곱게나 가지.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어 놓을게 뭐냔 말이냐? 아이고오! 배야.” 노스님은 이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유유히 사라졌다.
때마침 마을의 박씨 노인이 그 집 앞을 지나가다 고통스러워 하는 도척을 목격했다. 원체 지독하게 게으르고 성질이 난폭하기로 소문이 난 터여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도척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의원이었다. “여보게 도척 무슨 일인가?” “아, 보면 몰라서 묻소? 나 지금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오. 어서 좀 고쳐 주시오.” 박 의원은 침을 놓고 뜸을 뜨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했다. 얼마 후 도척의 통증이 가라앉는지 제 얼굴색을 하고 조용히 눕자, 박 의원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는가?” “아, 글쎄. 어젯밤에 내가 고생고생해 가며 얻어 온 밥을 아침에 먹고 있는데 웬 늙은 중이 오더니 자기에게 조금 나눠 달라 하지 않겠소?” “으음, 그래서?”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밥인데 그 중에게 주겠소? 그래 내가 욕을 하고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쳤소.”
“허!” “그런데 그 늙은 중이 돌아가면서 뭐라고 주문을 외웁디다. 그 뒤로 갑자기 배가 아팠소이다.” “그래 그것뿐인가. 도척?” “그 늙은 중이 합장을 하며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하기에 내가 ‘니미멀 남의 아미타불이고 제 아미타불이고 간에 빨리 꺼지라’고 소리를 쳤소. 그뿐이오.” 박 의원이 비로소 차분하게 얘기했다.
“인과응볼세. 선한 일을 한 자는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일을 한 자는 악한 과보를 받는 것이네. 자네가 삼보 가운데 부처님과 보살님을 욕되게 했으니 그 죄가 하나요,
또한 삼보 가운데 스님네를 욕하고 꾸짖었으니 그 죄가 둘일세. 그리고 배고픈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내쫓았으니 그 죄가 셋이구려. 그러니 그 죄의 대가를 받은 것이네.” 도척은 의원 박씨의 말을 듣자 슬그머니 자존심이 상하고 심사가 뒤틀렸다.
그는 의원을 골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척이 갑자기 앉더니 박 의원의 멱살을 잡으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이놈의 영감태기, 당장 내 돈 내놓지 못해? 내가 아프다니까 그깟 병을 치료해 준답시고 그 동안 내가 모은 금화 만 냥을 훔쳐?” 박 의원은 기가 막혔다.
죽을 목숨 살려 놓으니 이젠 돈까지 훔쳐 갔다고 뒤집어씌우는 게 아닌가. “뭐라고? 내가 네 돈을 훔쳤다고?” “그렇소. 만일 내 돈 금화 만 냥을 내놓지 않으면 관가에 고발하겠소.
그러니 좋은 말할 때 순순히 내놓으시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 원 이렇게 고약한 놈을 봤나. 생명의 은인을 도둑으로 몰아? 데끼놈!” 며칠 후 의원 박씨는 고을의 원님이 부른다기에 동헌으로 나갔다. 도척이 먼저 거기에 와 있었다.
박씨는 사태를 대강 짐작했다. ‘결국 저 녀석이 나를 예까지 끌어냈구나. 참으로 몹쓸 녀석이네그려.’ 그때 도척이 원님 앞에서 말했다. “저는 비록 가난하고 게으르며 구걸을 해서 먹을지언정 양심 하나는 바르게 갖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알뜰히 돈을 모아 만 냥을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한데 이 사실을 안 우리 동네의 의원 박씨 영감이 제가 아픈 틈을 타 침과 뜸을 놓고 약을 주면서 온갖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제 돈 만냥을 훔쳤습니다.” 도척은 약 봉지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원님은 박씨 영감을 불러 물었다.
“의원 박씨는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가?” 의원 박씨는 얼울하다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소인은 평생 동안을 오직 의술을 인술로 알고 실천해 왔습니다. 저는 사람을 돕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남의 돈을 훔치겠습니까? 정말 억울하옵니다.”
의원의 말을 듣고 원님이 말했다. “그러면 이 약 봉지는 무엇인가? 그대가 도척이를 치료해 준 것은 사실이렷다.” “그렇습니다. 제가 도척이의 죽을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를 배반으로 갚을 수 있습니까?” “어쨌든 증거는 성립이 된다.
그대가 도척이의 집에 갔던 것을 부인하지 않고, 또 약봉지가 그 증거물이 되는 이상 나는 고을 원의 직권으로서 그대에게 만 냥을 고스란히 배상할 것을 선고한다.” 의원 박씨는 아무리 배심, 삼심을 청구했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반면 젊은이는 부자가 되었다. 만 냥은 적은 게 아니었다. 도척은 좋은 집을 사서 거들먹거리며 살았다. 어려운 이웃에게 선심을 쓰는 체 돈을 빌려 주기도 했다.
그러나 만일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어김없이 가산을 몰수하는 등 그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도척은 좋은 집에서 잘먹고 잘입고 떵떵거리며 살게 되자, 장가가 가고 싶었다. 그러나 성질이 고약하고 게으르기로 소문난 집에 선뜻 딸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같은 마을 이생원의 딸이 곱게 자랐다는 얘기를 듣고 도척은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을까? 고리대금으로 낚아채 버릴까. 히히, 그러면 꼼짝없이 당하겠지?’ 도척은 득달같이 이생원 집으로 달려갔다. “이리 오너라.”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이생원이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도척이었다. 이생원이 말했다.
“어떻게 오셨는가?” “사람을 밖에 세워 놓고 얘기할 참입니까? 어험.” “안으로 드시게나.” 도척이 말했다. “제가 가진 것은 비록 많습니다만, 아직까지 좋은 일 한 번 못 해 보고 살았습니다. 앞으로는 남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허!” “제가 알기로는 생원댁 살림이 요즈음 매우 곤궁하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 드릴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아, 물론 당장 갚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을에 농사를 거두어 천천히 갚으시면 됩니다. 부담은 안 가지셔도 됩니다.” 이생원은 도척의 말을 들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이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생전 찾아오지도 않던 사람이 불쑥 찾아와서 돈을 빌려 주겠다니 그도 그럴 만했다.
더욱이 도척은 악락하기로 소문난 자가 아닌가. 이생원의 표정을 읽은 젊은이가 안심을 시키듯 말했다. “제가 그냥 드린다면 생원 어른께서 받지 않으실 것이고, 그러니 이자는 그만 두시고 가을 수확이 끝난 뒤에 상황만 하십시오.” 처음에는 사양하던 이생원도 워낙 살림이 곤궁하다 보니 할 수 없었다. 그는 도척에게서 쌀 한 섬을 가져 왔다.
그러나 그해 농사는 흉년이었다. 삼복 때 이상저온현상으로 초가을 날씨같았고 게다가 걸핏하면 장마가 지곤 했다. 일조량이 부족한 농작물은 자연 거둘 것이 별로 없게 되었다. 이생원은 젊은이를 불러 사정을 얘기하며 다음해로 연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군요. 대신 제가 빚 상환을 하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생원님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이생원은 기가 막혔다. 도척은 계획대로 생떼를 썼다. 남에게 빚을 지고 있는 입장이라 뭐라고 할 말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딸을 내놓으라니 이건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척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옛날 그 노스님이었다.
도척은 이생원과 얘기하던 것을 중단하고 한걸음에 뛰어나갔다. “이 놈의 땡초, 잘 만났다. 지난 번에도 나를 골탕먹이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속으로 찾아왔느냐, 엉.” 노스님이 합장을 하며 말했다.
“소승, 몹시 시장하여 공양 한 끼를 부탁할까 하네. 전에는 젊은이가 가난해서 베풀 게 없었겠지만, 이젠 이 고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으니 이 늙은 산승에게도 밥 한 술 나누어주게.” 도척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고함을 쳤다. “웃기고 있네. 당장 꺼지지 못해.” 도척은 성큼성큼 광으로 달려가더니 몽둥이 하나를 집어들고 나왔다. 그는 몽둥이를 높이 쳐들어 노스님을 내리쳤다.
노스님은 피할 생각도 않고 태연하게 염불만 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청년의 높이 쳐든 팔이 그대로 정지되더니 서서히 굳으면서 바위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를 처음부터 지켜 본 이생원은 너무나도 희한한 일에 자신도 모르게 노스님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다. 스님이 도척을 향해 말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개, 돼지나 다름이 없는 법이다. 게으르고도 악독한 마음으로 남을 괴롭혀 온 너는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까지 너는 바위로 서 있거라.” 스님을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도척바위’라 부르며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