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겸양지덕

‘겸손’이라던가, ‘겸양지덕’이라는 말은 아마도 고암 스님을 위해 생긴 말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암 스님은 겸손과 겸양지덕 그 자체였다.

스님의 세수 88세 되던 해, 고암 스님께서는 손주 상좌를 데리고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고 계셨다.

세속나이 88세면 평지를 걸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연세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정상을 등정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날 스님께서는 승복을 입으시고 등산을 하셨는데 백록담 바로 근처에서 잠시 쉬면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때 뒤따라 산길을 올라오던 한 무리의 젊은 이교도(異敎徒)들 가운데서 한 젊은이가 고암 스님께 일부러 말을 걸었다.

“영감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든 여덟이십니다.”

모시고 가던 손상좌가 대신 대답했다. 고암스님도 손상좌도 승복을 입고 있었으니 스님인지 뻔히 알면서도 그 이교도 젊은이는 시치미를 떼고 한마디 던지고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다.

“영감님, 하나님 은덕으로 오래오래 사세요. 할렐루야!”

그 젊은이가 그렇게 놀리듯 한마디 하고 지나가는데, 고암 스님께서는 그 젊은이의 등을 향해 합장하며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올렸다.

“아니 스님, 저런 괘씸한 녀석에게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손상좌가 분함을 못 이겨 씩씩거리자 고암 스님께서는 한 말씀 하셨다.

“뭘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시는가?

하나님을 부처님으로만 바꿔들으면 되지 않은가?”

고암 스님께서 부산의 어느 암자에 잠시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큰스님이 어디 와 계신다고 하면 신심 지극한 노보살님들이 큰스님 건강을 걱정하고 염려한 나머지 큰스님 잡수시라고 이런 저런 음식을 해오는 일이 있었다.

그날도 고암 큰스님이 와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한 노보살님이 지극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어 왔는데, 그것이 그만 전복죽이었다.

귀하고, 비싸고, 몸에 좋다는 것만을 생각했지 스님께서는 육식이나 해물이나 똑같이 드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오직 큰스님을 위한다는 지극정성 일념으로 전복죽을 끓여온 것이었다.

“큰스님요, 귀한 것이라 큰스님 드시라고 전복죽을 쑤어 왔심더. 자셔보이소.”

큰스님 뒤에 앉아있던 제자도, 그 방에 앉아있던 다른 보살들도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큰스님께서 문제의 저 전복죽을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고암 스님께서는 천진스럽게 웃으시며 그 노보살이 내미는 전복죽을 반갑게 두 손으로 받으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귀한 전복죽을 쑤어 오셨으니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죽 그릇을 조심스럽게 스님 곁에 놓으셨다.

전복죽을 쑤어온 그 노보살은 스님의 법담을 들은 뒤 흡족한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전복죽을 쑤어온 그 노보살이 흐뭇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 뒤, 고암 스님은 그제서야 그 전복죽 그릇을 공양간으로 내보냈다.

공양간에서 고생하시는 보살님들 나누어 드시라는 말씀과 함께.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