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에 맞는 말

때와 장소에 맞는 말

옛날 사위성 안에 재물이 많은 장자가 있었다.

이 장자는 차례대로 사문을 집으로 청해서 공양을 올리곤

했다. 사리불과 마히라의 차례가 되었다. 그들이 장자의 집에

갔을 때에 장자에게는 매우 큰 경사가 겹쳤다. 장자의 아들들

이 멀리 장사를 나갔다가 많은 돈과 보물을 벌어서 집으로 돌

아왔고, 또 국왕은 장자에게 영토를 봉해 주었으며, 장자의 부

인은 마침 아들을 순산했다. 이런 경사 속에 사리불과 마하라

는 장자의 공양을 후하게 받았다. 공양이 끝나자 사리불과 장

자 집안을 위해 축원을 해 주었다.

“오늘 좋은 과보를 받아 재물과 돈이 많이 모이게 되어 마

음이 매우 기쁘고 즐겁다.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 가운데 늘 신

심을 내어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오늘처럼 훗날에도 이러한 과

보를 받을 것이다.”

이 축원을 들은 장자는 마음이 너무도 기뻐서 아주 희귀한

천 두필을 사리불에게 보시했다. 그러나 마하라에게는 아무것

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하라는 절에 돌아와서도 섭섭한 마

음이 풀리지 않아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사리불이 보시를 받은 것은 그 축원이 장자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다. 나도 그 축원을 외워애겠다.’

그래서 즉시 사리불에게 가서 간청을 했다.

” 그 축원은 항상 쓰는 것이 아닙니다. 쓸 때가 있고 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리불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마하라의 끈질긴 간청을 계

속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리불은 그 축원을 마하라에

게 일러주었다. 마하라는 그 축원을 달달 외웠다. 그리고 언젠

가 자기 차례가 와서 축원을 외게 되면 아주 멋들어지게 외리

라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의 세월이 지나 마침 마하라가 웃어른이 되어 그 장자

의 집에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장자의 아들들이 멀리 장사하

러 나갔다가 손해를 보고 많은 보물을 잃어버렸다. 장자의 부

인 또한 관가의 일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으면 또 태어난

아이도 죽고 없었다.

그러나 마하라는 공양이 끝나자 사리불에게 배운 축원 그대

로 멋들어지게 외웠다.

“오늘같이 훗날에도 이러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

이 축원문을 듣고 있던 장자는 노발대발하여 마하라 사문을

두들겨 패고는 문밖으로 내동댕이치다시피 하여 쫓아내었다.

갑자기 두들겨 맞고 쫓겨나온 마하라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

서 여기를 빠져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아픈 몸을 끌고 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왕을 위해 심어 놓은 깨밭을 가로질러 갔

던 것이다. 심어 놓은 모종이 다 부러졌다. 이때 그 깨밭지기

에게 걸려 또다시 심한 채찍질을 당했다. 마하라는 거의 신음

소리에 가깝게 깨밭지기에게 물었다.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처럼 때리는가?”

깨밭지기는 그 이유를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마하라는 다시 터벅터벅 걸어 몇 리쯤 가다가 어떤 사람이

보리를 베어 쌓아 둔 보릿단 무더기를 만났다. 당시의 풍속에

는 처음 그 보릿단을 본 사람은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 오른

쪽으로 돌면 풍년을 비는 것이지만 왼쪽으로 돌면 불길하다는

징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하라는 그 보릿단을 왼

쪽으로 돌아나갔다. 주인은 화를 내며 몽둥이로 마하라를 내리

쳤다. 마하라가 다시 무슨 이유로 때리는가를 묻자 주인이 말

했다.

“너는 왜 보릿단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많이 들어오라’고 축

원하지 않는가. 우리의 풍속을 어겼기 때문에 너를 때리는 것

이다.”

마하라가 그곳을 떠나 얼마를 가다가 장사지내는 무리를 만

났다. 마하라는 보릿단 생각이 나서 무덤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많이 들어오라. 많이 들어오라” 하며 축원을 했다. 이 소리를

들은 상주가 그를 붙잡아 마구 패면서 말했다.

“너는 죽은 사람을 보았으면 불쌍하게 생각하여 다시는 이

런 곳에 오지 말라고 해야 하거늘 무슨 이유로 많이 ‘들어오

라’ ‘많이 들어오라’ 하는가?”

실컷 맞은 마하라는 백배 사죄하고 지금부터는 당신 말대로

하겠다고 하고 그곳을 떠났다. 또 얼마 후 어느 마을을 지나다

가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집을 만났다. 그는 상주의 말

대로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라”고 하였다가 거기 모인 사

람들에게 두들겨 맞아 머리까지 깨졌다.

그는 그곳을 겨우 빠져나와 미친 듯이 달려가다가 비둘기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걸려서 넘어졌다. 그래서 그물 가까

이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놀라서 모두 달아나 버렸다. 머리

끝까지 화가 오른 사냥꾼은 막대기로 마구 두들겨 팼다. 마하

라는 이제 지칠 대로 지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사

냥꾼에게 용서를 빌었다.

“나는 곧은 길로 간다고 갔는데 정신이 없어 그만 그물에

걸렸습니다. 너그러이 생각하여 용서해 주십이오.”

사냥꾼이 말했다.

“당신은 침착하지 못하고 허둥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다. 왜 침착하게 걷지 못하는가.”

마하라는 다시 그곳을 떠나 도중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을 만

났다. 그는 빨래터 근처에 으르자 사냥꾼의 말이 생각나서 마

치 고양이 걸음처럼 조심조심 걸으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빨래

하던 사람들은 옷을 훔치러 온줄 알고 그를 잡아 또 두들겨

팼다. 마하라는 그물에 걸렸다가 매맞은 이야기를 한 뒤 또 실

수를 할까봐 조심조심 걷는 중이라고 해명을 하고 풀려 났다.

마하라는 겨우 제타 절에 이르러 여러 비국들에게 말했다.

“나는 전날에 사리불이 했던 축원을 외다가 큰 봉면을 당했

다. 매를 맞아 거의 죽을 목숨을 겨우 건졌다.”

이 말을 들은 비구들은 마하라를 데리고 부처님 앞에 나아

가 마하라의 이야기를 자세히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지금부터는 설법을 하거나 축원을 할 때에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한다. 그리고 보시와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도, 그리고 근심하거나 슬퍼하거

나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것도 모두 때와 장소를 따라 해야

하느니라.”

<<잡보장경>>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이며 시인인 에머슨은 “모방은 자살이

다.”라고 말했다. 자연을 묘사할 따름이 자는 결코 위대한 작

품을 탄생시킬 수 없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은 세계에서 하

나밖에 없다. 후세에 아무리 그와 똑같은 탑을 만들었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모방과 모조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사

고나 행동은 남을 모방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이

나 사정 그리고 감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똑같은 행

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 빛깔은 다를 수밖에 없다.

위의 설화를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요즘 일부

출가 수행자들 중에 깨달음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옛 선사

나 조사들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 도인인 체하며 스스로의 최

면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마하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처님은 바로 그들을 향해 지금도 각성의 주장자

를 수없이 내리치고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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