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달마
보리달마는 중국에 선불교를 전하고 우수한 직계 그룹을 육성했다.
그러나 당시 치우치고 옹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보리달마를 해치기 위해 앞을 다투어 비방하고 음식 속에 독약을 넣었다.
보리달마는 여섯 번의 독살 위험을 견뎌낸 후 인연을 따르기로 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한다.
그로부터 3년 후 위(魏)나라의 외교관 송운(宋雲)이 인도에 사신으로 갔다오는 도중, 파미르 고원에서 보리달마를 만난다.
보리달마는 한쪽 신발만을 주장자에 걸어맨채 인도를 향해 표표히 걷고 있었다. 송운은 물었다.
“대사님, 어디를 가십니까?”
“나는 인도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대의 군주가 이미 세상을 떠났구나.”
송운이 귀국하여 보니 과연 명제(明帝)가 세상을 뜨고 효장제(孝莊帝)가 즉위해 있었다.
송운이 이 사실을 말하자 곧 보리달마의 무덤을 열어보게 하였다.
빈 관 속에는 신 한짝만 남아 있었다.
송대의 선승 오조법연(五祖法演)은 이 사실을 기념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기고 있다.
조사께서 남기신 신 한쪽이여
천고만고 사람들의 귀를 울리도다
허공을 어깨에 메고 맨발로 떠나심이여
어느날 고향 땅을 밟으실 것인지
이와 같이 선종에서 전승되고 있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보리달마는 527년 경 중국 남부의 광주(廣州)에 도착하여,당시 공덕의 불교에 집착하고 있던 양무제의 불교이해를 송두리채 흔들어 버리고 양자강을 건너 하북성 소림사에서 9년의 면벽을 하고 뛰어난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중국선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간다.
그 후 달마는 공전의 불교왕국이었던 북위(北魏)의 불교학자들에게 질시를 받아서 독살당하고 한 쪽 신발만을 무덤에 남겨놓은 채파미르 공원을 넘어서 인도로 돌아갔다는 神人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편, 보리달마는 그가 뿌려놓은 불가사의한 일화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정리되 신비화 되면서 선의 상징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