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것은 깃발인가 바람인가
스승의 곁을 떠난 혜능은 그 후 15년간의 은둔생활을 하며 선의 마음을 더욱 영롱하게 갈고 닦는다.
은둔생활을 하며 때를 기다리던 혜능이 산에서 나와 광주 法性寺에 도착하자 마침 인종(印宗)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때 두 학인이 뜰에 서서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깃발이 움직인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움직인다.’
두 사람은 바람과 깃발에 대하여 끝없는 토론을 하고 있었다.
혜능은 그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혜능의 이와 같은 지적에 법성사의 대중들은 놀라게 된다.
인종법사는 혜능을 윗자리에 모시고 물었다.
‘행자님은 참으로 비상인(非常人)이십니다.
내 듣건대 황매산의 법이 남방으로 내려왔다고 하더니 행자님이 바로 그 분이 아니십니까?’
여기서 혜능은 정식의 출가절차를 받아 혜능선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펴게 된다.
그 후 혜능은 주석지를 조계 보림사(寶林寺)로 옮겨 압도적인 인간신뢰에 바탕을 둔 선의 세계를 폈다.
수많은 영재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 들었다.
젊은 날 광동의 한 거리에서 우연히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듣고 선종의 조사가 된 혜능은 713년 8월 3일, ‘잎사귀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다시 올 때의 일은 말할 수 없는 것 [落葉歸根 來時無口]’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한다.
나이 76세. 제자들은 조계에 그의 전신을 모신 탑을 세우고 법어를 모은 『육조단경』을 세상에 전했다.
당의 대시인, 왕유(王維)는 혜능을 기리는 지극한 마음으로『육조능선사비명(六祖能禪師碑銘)』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