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의 입적
노년에도 젊은 날 이상으로 기백에 찬 나날을 보낸 임제는 866년 입적(入寂)한다.
『임제록』은 임제의 입적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세상을 떠날 시간이 다가온 임제선사는 바른 자세로 앉아 말했다.
“내가 떠난 뒤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 ; 佛法의 바른 안목에 관한 가르침)을 없애버리면 안된다.”
제자 삼성(三聖)이 말했다.
“어찌 감히 스승님의 정법안장을 없애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뒷날 사람들이 나의 정법안장에 관해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삼성은 바로 “할” 했다.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당나귀 때문에 없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을 마친 임제선사는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여기서 “내가 떠난 뒤 나의 정법안장을 없애버리면 안된다”라는임제의 걱정은 선어록 특유의 반어적 표현일 뿐,임제는 자신의 정법안장을 없애버릴 제자들에 대한 걱정은 아예처음부터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임제는 자신이 눈을 감자마자 스승의 정법안장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겠다는 제자의 주체적인 답변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말한다면,정법안장이란 물건처럼 남아서 누가 누구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날의 그는 황벽이 전해주는 깨달음의 상징물을 받은 그 자리에서 불태워버리려 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황벽조차도 임제를 바람과 같이머물지 않는 광기를 지닌 ‘풍광한(風狂漢)’이라고 불러야 했다.
굳이 정법안장을 말한다면 임제의 생애, 우리의 생애에서 연출되는 모든 순간이 정법안장인 것이다.
인간의 삶도 죽음도, 미혹도 깨달음도 모두 그 속에 있다.
결국 임제는 제자들의 얼떨떨한 대답과 자신을 흉내내고 있는 “할” 소리를 들으며 자신만의 정법안장을 확인하며 고독 속에 떠나가는 것이다.
역시 임제는 임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강열한 안광(眼光)은 여전히 남아서 인세(人世)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