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을 아홉 번 고쳐 걸다
어느날 비단장사를 하는 한 청년이 대관령 고개를 넘고 있었다.
청년은 누더기를 입은 한 노승이 오랫동안 길가에 꼼짝않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물었다.
“스님, 아까부터 무얼하고 계십니까?”
“잠시 중생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네.”
“가만히 서 계시면서 중생들에게 공양을 올리다니요~.”
“음, 옷 속에 있는 이나 벼룩들에게 피를 먹이고 있네.
내가 움직이면 이나 벼룩이 피를 빨아 먹는데 불편하지 않겠나?”
말을 마친 노승은 다시 휘적휘적 길을 떠났다.
한참동안이나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청년은 비단등짐을 벗어놓고 스님을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오대산의 관음암에 도착하자 노승은 뒤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나를 따라 왔는가.”
청년은 말했다.
“저는 비단을 팔아 살아가는 비단장수입니다.
오늘 스님의 자비행과 인자하신 모습을 뵙고 저도 수도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 이렇게 스님을 뒤쫓아 왔습니다.
부디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중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대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예,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튿날. 스님은 청년을 불렀다.
“오늘 안으로 부엌에 저 큰 가마솥을 옮겨서 새로 걸도록 하여라.”
청년은 흙을 파다가 짚을 섞어 이기고 솥을 새로 걸었다.
그러나 스님은 새로 걸린 솥을 보고 말했다.
“걸긴 잘 걸었다만, 이 아궁에는 솥이 너무 크구나.
저쪽 아궁이로 옮겨 걸도록 해라.”
다음날도 청년은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옆 아궁이에 솥을 옮겨 걸었다.
그리고 스님의 분부에 따라 솥을 이리저리 다시 옮겨서 아홉 번이나 새로 걸었다.
스님은 청년의 구도심을 인정하고 드디어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말했다.
“음. 장하구나. 네가 솥을 아홉 번이나 옮겨 걸면서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네 법명을 구정(九鼎)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그 후 청년은 불도의 심오한 경지에 이르러 구정선사라고 불리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