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암 아자방(亞字房)

칠불암 아자방(亞字房)

조선 중엽, 지리산 칠불암에는 수많은 선승들이 오가며 수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전라감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칠불암 스님들이 도가 높다지. 어디 내가 한 번 직접 가서 그들을 시험해보리라.”

전라감사는 그 길로 칠불암을 향해 떠났다.

칠불암에는 전라감사가 행차한다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칠불암에서 수행 중인 60여명의 스님들은 못들은 체 하고 참선에만 열중했다.

전라감사 일행이 풍악을 울리며 칠불암에 도착했으나 누구하나 마중 나오는 스님이 없었다. 다만 작은 체구에 쥐가 파먹다 만 것 같은 머리털을 가진 어린 동자가 감사일행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감사는 동자에게 소리쳤다.

“여기 스님들은 다 어디 갔느냐?”

어린 동자는 태연히 말했다.

“모두들 부처되는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왠 황당한 소리인가?’라고 중얼거리면서 선방문을 열어 젖혔다.

선방 안을 들여다 본 감사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방 안에는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은 스님들이 가득하니 제멋대로 자고 있었다.

코를 골고 자는 스님, 머리를 천장으로 치켜들고 자는 스님, 방귀를 뀌며 자는스님, 얼굴을 쳐박고 자는스님, 그야말로 천태만상으로 자고 있었다.

감사는 화가 나서 고개를 쳐들고 입을 해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자는 스님을 가르키며 물었다.

“저것은 무슨 참선인가?”

동자는 빙글거리며 말했다.

“예, 저 참선은 별을 관하는 앙천성숙(仰天星宿) 참선이라고 합니다.”

감사는 고개를 방바닥에 쳐박고 ‘푸푸’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스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무엇하는 참선인가?”

“예. 그것은 지장보살을 보는 참선이죠.”

이번에는 방귀를 뀌면서 자고 있는 스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저건 번뇌의 어리석음을 깨는 타파칠통(打破漆桶) 참선입죠.”

동자의 대답을 들은 전라감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사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자고 있는 스님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저건 무엇하는 참선인가?”

“예. 저건 바람 앞에 흔들리는 버들가지 같은 풍전세류(風前細柳) 참선이죠.”

마침내 감사는 잠자고 있는 스님들을 모두 깨우고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여러 스님들의 공부를 시험해 보겠소.

만일 내가 시키는 일을 못해낼 때에는 스님들의 목숨은 부지 하기 어려울 것이오.”

감사는 미리 만들어 온 나무말을 칠불암 마당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스님들 중 아무나 이 나무말을 타고 마당을 일곱 바퀴 돌도록 하시오.

그것도 내가 마흔을 셀 때까지 다 돌아야 합니다.”

선방의 스님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서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불같은 감사의 호령이 다시 떨어졌다.

“무엇들 하는가. 어서 명령대로 이 말을 타고 일곱 바퀴 돌으렸다.”

그때 쥐가 파 먹은 머리털을 가진 동자가 나서서 말했다.

“스님들은 모든 것을 제게 맡기시고 그냥 구경이나 하십시오.

아무 염려 마십시오.”

동자는 나무말에 올랐다.

“이랴!”

동자가 회초리를 휘두르는 순간 나무말은 감사가 마흔을 세기도 전에 쏜살같이 칠불암 마당을 일곱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지리산의 푸른 하늘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감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스님들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도가 높은 스님들을 몰라뵙고 그만 경거망동을 했습니다.

부디 자비로서 용서해 주십시오.”

그 길로 산을 내려온 감사는 전주감영으로 돌아와 제일 좋은 장판지를 떠서 칠불암 아자방 선방에 붙이도록 했다. 그리고 장판과 장판의 이음새를 은으로 붙이도록 했다.

그 장판지는 6.25이전까지 전해져 내려왔으나 6.25와 함께 불타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원래 칠불암 아자방은 아(亞)자 모양으로 된 선방으로 한번 불을 때면 보름 동안이나 방이 따뜻했다고 한다.

최근 칠불암은 통광(通光)스님의 노력으로 복원 되었으며 예전처럼 많은 스님들이 오가며 수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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