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눈으로 이승을 바라보라

송광사에 취봉 스님이라는 어른이 계셨습니다.

송광사 주지를 네 번이나 맡으신 스님이신데 공과 사가 아주 분명하셨던 분이십니다.

절일로 나들이하시면 남은 차비는 반드시 절에 되돌려 주셨고 몸이 노쇠해 대중과 함께 공양을 못 드실 때도 대중 스님들의 상에 오르지 않은 음식은 잡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든이 넘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앞서 지장전에서 몸소 당신의 사십구재를 지내셨습니다.

절에서는 이런 의식을 예수재(預修齋) 또는 역수재(逆修齋)라 하는데, 저승의 내가 이승의 나를 지켜 보고 생각하고 참회하는 의식이지요.

대원사에서도 오는 사월 공달에 예수재를 열어 저승과 이승의 내가 서로 만나는 값진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스님께서는 보시던 책은 도서관에 기증하시고 입으시던 낡은 옷가지들은 다 태우셨습니다. 몇 점 안 되는, 쓰시던 물건들도 모두 다른 이들에게 주셨습니다.

사십구재의 끝날인 단칠일(斷七日)을 마치시고는 절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모두 불러 모아 봉투를 돌렸습니다.

일하는 이들이 받지 않으려고 하자 노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사람들아, 내가 죽으면 자네들이 고생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스님께서는 열반하시기 앞서 제자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방안에 모인 제자들을 둘러보신 스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문을 여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제자로 삼아만 놓고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

세상을 떠나기 앞서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구나” 하시고는 첫번째 제자를 불러 앞으로 나와 앉게 했습니다.

물끄러미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시던 스님께서는 빈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철썩! 하고 사랑하는 제자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명초(名草)라는 풀이 있습니다.

무덤에서 나오는 풀인데 이 풀을 먹으면 스스로의 이름뿐만 아니라 온갖 기억들이 다 사라지고 만다고 하지요.

우리가 죽어 저승에 태어나도 이와 같을 것이니, 모든 기억이 말끔히 사라졌을 때 누군가 “너는 누구인가?”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바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죽고 또 죽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죽음에 깨어 있지 못할 때마다 취봉 노스님의 자비의 손길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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