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색록 이야기

구색록 이야기

『옛날 옛적 아홉 가지 색을 가진 사슴(九色鹿)이 있었다.

털은 곱고 빛나고 뿐은 희여서 눈(雪)과 같았는데 언제나 항하 언덕에서 수초(水草)를 먹고 살았다.

그런데 그는 한 마리의 까마귀와 매우 친밀해 있었다.

어떤 날 한 남자가 물에 빠져 떴다 잠겼다 하면서 항하 가운데를 흘러 내려오면서,

「산신이여 나무 신이여, 하늘 신이여, 물신이여, 저를 도와 구원해 주소서.」하고 울부짖었다.

사슴은 가엾이 생각하고 헤엄쳐 가서,

「안심하십시오. 걱정 없습니다. 내 뿔을 잡으십시오. 업어다 드릴테니.」

하고 가까스로 그 물에 빠진 남자를 업어다 언덕 위에 올려놓았다.

사람은 물론 사슴도 지쳤다.

사람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그 사슴의 주위를 세 번 돌고 절하고 나서,

「사슴님, 사슴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 덕택에 나는 위태로운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 은혜의 보답으로 당신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매일 맛있는 물풀을 베어 당신의 공양을 맡겠사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사슴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고맙게 생각한다면 내가 여기 산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큰 부탁입니다. 만일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의 털과 껍질, 뿐을 탐내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를 죽이러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재삼 부탁했다.

사람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그 고마운 사슴에게 감사를 드리고 절대로 사슴이 여기 산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떠났다.

그런데 마침 그 때 그 나라의 왕비가 꿈에 무지개처럼 빛나는 털을 가지고 눈꽃(雪花)처럼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이 궁정 뜰을 거닐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잡아 껍데기를 벗겨 깔 자리를 만들고 뿔을 베어 불자(拂子)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꿈을 깨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튿날부터 몸이 무겁고 머리가 휘둘렀다. 대왕이 물었다.

「어디 아프시오.」

「몸이 좀 고단합니다.」

하고 간방의 꿈 이야기를 하였다. 왕은 듣고 있다가,

「나도 그 전설처럼 아름다운 사슴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대왕님, 정말로 그런 사슴이 있을까요?」

「눈 속에 죽순도 있고 얼음 위의 고기도 있는데 어찌 깊고 넓은 이 세계 가운데 그런 물건인들 없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왕님, 진실로 저는 그 것을 갖고 싶습니다. 그 아름다운 털 그 멋있는 뿔

아- 얼마나 신기합니까? 저는 그것을 생각만 해도 병이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진실로 그것을 깔고 그것으로 만든 불자를 내두르며 대왕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소원한다면 내 이 나라의 반을 나누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구해 보겠습니다.」하고 왕은 곧 포고를 내렸다.

「누구고 아홉 가지 색을 갖고 눈빛처럼 흰 뿔을 가진 사슴을 구해오는 자에겐 국토의 반을 주고 그 위에 은을 담은 금발(金鉢)과 금을 담은 은발(銀鉢)을 상으로 주리라.」

세상에 소문이 쫘-악 퍼지자,

「허어 사슴 한마리만 잡으면 신세 고치겠는 걸-」

「이 사람아. 그런 복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이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그렇게 큰 상금을 건 포고령이 내리겠는가?」

이렇게 주고받는 소리를 들은 그 남자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 사슴을 의지해 몸이 구조되긴 하였으나 내가 그를 의지해 살길이 생긴다면 이 또한 하늘이 준 복이 아니겠는가? 무얼 그까짓 사슴 한 마리 살리고 죽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그는 곧 정청(政廳)에 나아가,

「나는 아홉 가지 색을 가진 사승의 집을 알고 있습니다.」하고 관리에게 고했다.

관리는 곧 그 남자를 데리고 왕궁에 참여시켰다.

「대왕이여, 이 남자가 그 사승이 있는 곳을 안다 합니다.」왕은 기뻤다.

「그래 경이 정말로 아는가?」

「예,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의심하는 것은 대왕이 약속하신 상금입니다.」

「남자야, 의심하지 말라. 네가 그것만 잡아오면 내 틀림없이 내 나라의 반을 주리라.」

남자는 기뻤다.

어쩔 줄을 모르고 대왕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일어서는 남자가

「아, 이상도 하다.」

하고 금방 자기 얼굴에 난 창상(瘡傷)을 어루만졌다.

대왕은 보고 깜짝 놀라며,

「그대 얼굴이 왜 갑자기 그러한가?」물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하늘의 벌을 받는구나 하면서도,

「예, 아마 그 사승의 신통력인 듯합니다.」하고 대답했다.

「뭐, 그 사슴의 신통력이라고, 그 사슴이 그렇게 신통을 부릴 줄 아는가?」

「예, 감히 한 두 사람의 힘으로서는 그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 많은 군대를 주리라.」하고

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하여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그가 가리켜 준 사슴이 있는 곳을 이중 삼중으로 포위하였다.

그 때 사슴의 친구 검정 까마귀가 사슴에게 달려와 말했다.

「사슴님 큰일 났습니다.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당신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사슴은 체념한 듯,

「걱정 말라. 내 대왕을 만나 고하리라.」

하고 그는 서서히 그의 평화로운 동산을 벗어나 대왕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야, 사슴이다.」

군대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고 궁수들은 살을 겨누었다.

「잠깐 참아 주시오. 대왕님께 할 말이 있습니다.」

대왕은 명령했다.

「저 사슴은 살을 쏘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을 것이니 활을 쓰지 말라.」하고

「무슨 말인가?」

물었다.

사슴은 그 아름다운 뿔을 조아려 인사하고,

「내 대왕님의 땅에 은거하여 신세를 지고는 있으나 나라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한번도 당신의 백성들이 짓는 논과 밭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으며 오직 물, 풀만을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저의 거처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내 거처를 알려 주었습니까?」

왕은 그 창병난 남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다.」

하자,

사슴은 그를 향해,

「아, 은혜를 배반한 자, 나는 그대를 구한 은인이 아닌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거처를 알리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하고 꾸짖었다.

그 남자는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말을 못했다.

사슴은 말했다.

「왕이여, 이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내가 건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별일이 있어도 나의 거처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런 사람을 부하고 거느리고 다니십니까?

차라리 흘러가는 나무토막을 건져 주었더라면 이런 괴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로 인간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이군요.」하고 그는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사슴의 이 같은 말을 듣고 사슴을 해친다면 그 왕도 또한 그 남자와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여봐라, 저 놈을 잡아 옥에 가두고 이제부턴 어떠한 사람도 사슴은 일체 잡지 말라.」

영을 내렸다.

그리고 사슴에게,

「나라의 은인이여, 인간의 스승이여, 길이 수명을 연장하여 이 나라에 병고액난은 물론 천재지변을 막아 주소서.」

하고 놓아 주었다.

사슴은 고개를 조아려

「감사합니다. 대왕님, 내 이로부턴 어떠한 사슴도 인간의 전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의 병고재난을 소멸하겠습니다.」

맹세 하였다.

그로부터 그 나라에는 우순풍조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국조만민이 다같이 즐거움을 누렸다.

부처님은 이 설화를 설해 마치고,

「그 때의 아홉 가지 색을 가진 사슴은 나고 까마귀는 아난이며, 국왕은 열두단(悅頭壇)이고 부인은 선타리(先陀利)며, 그 남자는 데에바닷다였다.」하고,

「그러므로 데에바닷다의 나쁜 마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였다.』

<九色鹿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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