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제07권
31.대겁빈녕품(大劫賓寧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 왕의 이름은 파사닉이었다. 남방에 금지(金地)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왕의 이름은 겁빈녕(劫賓寧)이었다. 왕에게는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마하겁빈녕(摩訶劫賓寧)이었다.
그 부왕이 죽고 태자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성질이 총명하고 힘이 세어 용맹스러웠으며, 다스리는 나라는 3만 6천이요, 군사는 많아 대적할 이가 없었다. 그래서 위풍이 멀리 떨쳐 항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중토(中土)와는 서로 국교가 없었다.
그 뒤에 중토의 어떤 상인은 금지국으로 가서 고운 모직 네 필을 그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것을 받고 상인에게 물었다.
“이 천은 아주 좋다. 어디서 나는 것인가?”
상인은 대답하였다.
“중토에서 나는 것입니다.” “그 중토란 이름이 무엇인가?” “나열기(羅悅祇)라 하고, 또 사위(舍衛)라고도 하며 그 수는 너무 많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중토의 여러 왕들은 왜 내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가?”
상인은 대답하였다.
“제각기 국토를 차지하고서 위엄과 이름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와서 받들지 않는 것입니다.”
왕은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 내 세력은 모든 천하를 거두어 잡을 수 있거늘, 어찌하여 저 왕들은 와서 조공을 바치지 않는가? 이제 위력을 가하여 저들을 항복하게 하리라.’
다시 상인에게 물었다.
“중토의 여러 왕 중에는 어느 왕이 제일 큰가?”
상인은 대답하였다.
“사위국의 왕이 제일 큽니다.”
금지왕은 곧 사자에게 글을 주어 사위국으로 보내되, 이유를 낱낱이 들어 파사닉왕에게 말하였다.
“내 위풍은 이 염부제를 휩쓸거늘 그대는 무엇을 믿고 할 일을 이행하지 않는가? 이제 일부러 사자를 보내어 그대에게 고하노라. 그대가 누웠을 때 내 말을 들었으면 곧 일어나 앉아야 하고, 앉았을 때 들었으면 곧 일어서야 하며, 밥먹을 때 들었으면 곧 밥을 뱉어야 하고, 목욕할 때 들었으면 머리를 움켜 쥐어야 하며, 만일 섰을 때 들었으면 곧 달려와야 한다. 앞으로 이레 뒤에는 나와 만나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군사를 일으켜 그대의 나라를 쳐부수리라.”
파사닉왕은 이 글을 보고 몹시 놀라, 곧 부처님께 나아가 이 사실을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왕은 돌아가 그 사자에게 말하기를, ‘나는 크지 않다. 나보다 더 큰 왕이 있다’고 말하시오.”
왕은 부처님 분부를 듣고 그 사자에게 말하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거룩한 왕이 이 근처에 계신다. 너는 거기 가서 너의 왕의 명령을 전하여라.”
사자는 곧 기원(祇洹)으로 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몸을 변화시켜 전륜성왕으로 차리고 목련을 대장으로 만들고 일곱 가지 보배와 그 시종들을 낱낱이 갖추었다.
또 기원을 변화시켜 보배 성이 되게 하였고, 성을 둘러 사방에는 일곱 겹 해자[塹]를 만들었다. 그 사이에는 일곱 가지 보배 나무를 줄을 지어 세웠고, 헤아릴 수 없는 잡색 연꽃이 있어 광명이 찬란하게 비추었다. 안의 궁전도 온갖 보배로 되었고, 왕은 그 궁전 위에 앉아 있었는데, 존엄하기 무시무시하였다.
그 때 사자는 화성(化城)으로 들어가 한번 대왕을 바라보자, 곧 놀라고 두려워하여 가만히 생각하기를, ‘우리 왕은 공연히 화(禍)를 불렀다. 그러나 할 수 없다’ 하고 글을 내어 내보였다.
화왕(化王)은 글을 받아 다리 밑에 집어 넣고 그 사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왕으로서 온 천하를 통솔하거늘, 너의 왕은 완고하고 미욱하여 감히 나를 거역한다. 너는 빨리 돌아가 내 명령을 전하라. 이 글이 닿는 날로 곧 달려와 뵈어야 한다. 누웠을 때에 명령을 들었으면 일어나 앉아야 하고, 앉았을 때 들었으면 서야 하며, 섰을 때 들었으면 곧 달려오라. 기일을 이레로 정하노니 조금도 지체하지 못한다. 만일 감히 이 기약을 어기면 벌이 언제 갈지 모르리라.”
그 사자는 분부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 보고 들은 것을 자세히 금지의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이 명령을 받고 스스로 잘못을 뉘우쳤다. 여러 작은 왕들을 모아 거느리고 수레와 말을 준비해 대왕을 조회하려 하였다. 그러나 다소 미심쩍은 일이 있어 곧 떠나지 못하고, 먼저 사자를 보내어 대왕에게 아뢰었다.
“신(臣)이 거느린 작은 왕은 3만 6천 명인데, 모두 데리고 갈까요, 반만 데리고 갈까요?”
대왕은 회답하였다.
“반은 거기 머물러 있기를 허락한다. 반만 데리고 오너라.”
그 때 금지 왕은 작은 왕 1만 8천을 거느리고 한꺼번에 도착하였다.
그는 화왕을 뵙고 예배한 뒤에 가만히 생각하였다.
‘이 대왕의 형상은 나보다 훌륭하지만 힘은 나보다 못하리라.’
그 때 화왕은 곧 대장에게 명령하여 활을 가져다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금지 왕은 그것을 들지 못하였다. 화왕은 도로 받아 손가락으로 활을 벌리고, 다시 그에게 주면서 활시위를 당기라 하였다. 금지국 왕은 더구나 당길 수 없었다. 화왕이 다시 그것을 잡아 튀기니, 3천 세계가 모두 그 소리에 진동하였다.
다시 화살을 가져다 활시위를 잡아당겨 쏘니, 화살은 손을 떠나자 모두 다섯으로 변하였는데, 그 화살 끝마다 무수한 광명이 났으며, 그 광명 끝에는 모두 연꽃이 있었는데, 크기는 수레바퀴 같았고, 그 낱낱 꽃 위에는 각각 한 전륜왕이 있었다. 일곱 가지 보배를 완전히 갖추어 광명을 쏟아 놓으매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그래서 다섯 갈래 길 중생들이 모두 그 힘을 입었다.
저 하늘 세계에서는, 그 광명을 보거나 설법을 듣고는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져 도과(道果)를 얻되, 둘째·셋째의 도를 얻는 이도 있었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는 이도 있었으며, 또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머무르는 이도 있었다.
인간계의 중생들은 부처님 광명을 보고 그 설법을 듣고는 첫째·둘째·셋째의 도를 얻는 이와, 집을 떠나 그 도에 들어가 아라한이 되는 이도 있었으며,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고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머무르는 이도 있었는데, 그 수는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또 아귀로 있는 중생들은, 부처님 광명을 보고 설법을 듣고는 모두 배가 부르고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져 고뇌도 없어지고 모두 사랑하는 마음을 내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공경하고는 곧 해탈을 얻어 인간이나 천상에 났다.
또 축생으로 있는 중생들은, 부처님 광명을 보고는 탐욕과 성냄의 독이 모두 소멸되고,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에서 이내 깨어나 모두 기뻐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고는 해탈을 얻어 인간이나 천상에 났다.
또 지옥에 있는 중생들은, 부처님 광명을 보고는 추위에 있던 자는 곧 따뜻해지고, 더위에 있던 자는 시원해져서 받던 고통이 이내 멈추어 몸과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부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는 곧 해탈을 얻어 인간이나 천상에 났다.
그 때 마하겁빈녕왕과 금지국의 여러 작은 왕들은 이 신변을 보고는 마음으로 믿고 항복하고 번뇌를 멀리 여의어 법안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1만 8천 왕들도 모두 그러하였다.
잠깐 동안에 부처님께서는 신력을 거두고 본래 형상대로 돌아오니 여러 비구들은 앞뒤로 둘러쌌다. 금지왕 무리들이 집 떠나기를 구하여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셨다. 그들의 수염과 머리는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는 몸에 입혀졌다. 그들은 묘한 법을 생각하고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금지왕은 전생에 어떤 덕을 닦았기에 부귀한 집에 태어나 그 공덕이 높고 크며, 또 부처님 세상을 만나 빨리 번뇌가 없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중생은 그 행을 따라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옛날에 가섭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어떤 장자는 그를 위해 탑을 세우고 절을 짓고 네 가지로 공양하였다.
세월이 지나자 그 탑은 무너지고 좌구와 의복과 음식도 끊어졌다. 그 장자의 아들은 비구가 되어 사람들에게 시주를 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쓰임새를 절약하여 탑을 수리하게 하고, 또 음식과 좌구 따위를 마련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마음을 모아 모두 공양하여 받들고 이내 서원을 세웠다.
‘미래 세상에서 부귀하고 장수하며 부처님 세상을 만나 법을 듣고 도를 깨달으리라.’
그리하여 행의 과보가 없어지지 않아 모두 과(果)를 성취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장자 아들 비구는 지금 금지국의 왕 마하겁빈녕이요, 인민들로서 교화를 받은 이들은 지금의 이 1만 8천의 여러 작은 왕들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 거기 모인 대중들은 법을 듣고, 도를 깨달아 얻고 마음을 내어 물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극한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2.이기미칠자품(梨耆彌七子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파사닉왕에게 한 대신이 있었는데, 이름이 이기미(梨耆彌)였다. 그는 큰 부자였다. 아들 일곱을 두어 여섯까지는 모두 장가를 들이고 남은 일곱째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구하였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늙었고 오직 아들 하나가 남았다. 꼭 훌륭한 며느리를 맞이하리라.’
그 장자에게는 친한 바라문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찾아와 의논하던 차에 말하였다.
“나는 지금 막내 아이를 위해 혼처를 구하지마는 좋은 곳을 알 수 없네. 자네는 옛날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니 잘 알 줄 믿네. 지금 자네의 수고를 빌리고 싶네. 나를 위해 구해 봐 주게. 얼굴이 단정하고 어질고 지혜로우며 성질이 착하여, 내 아들 뜻에 들 만한 처녀를 보거든 혼인을 청해 주게.”
바라문은 ‘좋다’ 하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구하였다. 그는 특차시리국(特叉尸利國)에 이르러 5백 처녀들이 떼지어 유희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꺾어 장식품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뒤를 따라가 보았다. 얼마를 가다가 조그만 물을 건너게 되었다. 여러 처녀들은 모두 가죽신을 벗는데 그 중의 한 처녀만은 가죽신을 벗지 않고 물에 들어갔다.
또 얼마를 가다가 강이 있었다. 다른 처녀들은 옷을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가는데 아까 그 처녀만은 옷을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또 얼마를 가다가 숲 사이에 이르자, 다른 처녀들은 모두 나무에 올라가 꽃을 따는데 그 처녀만은 나무에 올라가지 않고 따로 꽃을 찾아 많이 얻었다.
바라문은 그 처녀에게 물었다.
“내게 조금 의문이 있는데 물어도 좋은가?”
그 처녀는 대답하였다.
“의문이 있으면 물으십시오.” “아까 물에 들어갈 때에 다른 처녀들은 모두 가죽신을 벗는데 너만은 벗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당신은 왜 그리 어리석으십니까? 신을 신는 까닭은 바로 발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육지에서는 눈으로 보기 때문에 가시나 기왓장이나 조약돌을 피할 수 있지마는 물 밑은 으슥하여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혹 가시나 독충들이 발을 해칠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벗지 않은 것입니다.”
바라문은 다시 물었다.
“아까는 왜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갔는가?”
처녀는 대답하였다.
“여자 몸은 좋고 나쁜 모양이 있습니다. 옷을 걷고 물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보아서 모양이 좋으면 좋겠지마는, 모양이 나쁘면 남이 흉볼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또 무슨 이유로 혼자만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는가?” “나무에 올라가면 나무 가지의 날카로운 끝이 사람 몸을 해칠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 처녀는 바로 파사닉왕의 아우 담마하선(曇摩訶羨)의 딸이었다. 담마하선은 일찍이 죄를 짓고 그 나라로 도망가 거기서 집을 정하고 장가들어 이 딸을 낳았던 것인데, 처녀 이름은 비사리(毘舍利)였다.
바라문은 그 처녀의 말을 듣고, 그의 슬기로움을 알았다. 그래서 처녀에게 물었다.
“네 양친은 계시는가?”
처녀는 대답하였다.
“계십니다.”
처녀를 따라 그 집 문전에 이르러 부모 뵙기를 청하였다. 처녀는 들어가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밖에서 어떤 바라문이 아버님을 뵙고자 합니다.”
담마하선은 곧 나왔다. 바라문은 그와 인사를 마치고 물었다.
“아까 그 처녀는 바로 당신 딸입니까?” “그렇습니다.” “주인이 있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사위국에 있는 이기미라는 대신을 당신은 아십니까?” “옛 친구입니다.” “그 이기미의 막내 아들은 단정하고 총명합니다. 당신 딸과 혼인하고자 하는데 될 수 있겠습니까?”
담마하선은 말하였다.
“그는 세력 있는 성바지라, 근본은 짝이 맞습니다. 꼭 하고자 한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바라문은 이미 허락을 받고 곧 의논하여 날을 정하였다.
그 때 사위국으로 가는 바라문의 벗이 있었다. 바라문은 그 편에 편지를 써서 이기미에게 보내면서 그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장자는 이 소식을 듣고 곧 예물(禮物)을 갖추어 수레에 싣고는 말을 타고 특차시리로 떠났다. 그 집에 가까이 와서 먼저 하인을 보내어 알렸다.
그 때 담마하선은 더욱 공경히 대우한 뒤에 곧 잔치를 베풀고 딸을 그 아내로 주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사위국으로 돌아갈 때에 그 신부 어머니는 여러 사람 앞에서 그 딸에게 부탁하며 말하였다.
“지금부터는 항상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날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기를 끊이지 말라.”
딸은 꿇어앉아 그 훈계를 받들었다.
이기미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한탄하였다.
‘사람 한평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정하지 않은 것인데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늘 얻을 수 있겠으며, 항상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본다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비록 이런 생각은 있었으나 차마 묻지는 못하였다. 손님과 주인은 서로 인사한 뒤, 하직하고 어른과 아이들은 길을 따라 본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도중에 한 객사(客舍)가 있었다. 사면에 추녀 끝이 드리워져서 매우 시원하였다. 며느리는 뒤에 이르러 시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여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빨리 밖으로 나가십시오.”
시아버지는 그 말을 거스르지 않고 바깥 한데로 나갔다. 그러나 좌우의 여러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 때 코끼리와 말이 몸이 가려워 기둥에다 대고 몸을 문질렀다. 집이 갑자기 무너져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은 깔려 죽었다. 그 때 이기미는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죽음에서 벗어난 것은 이 며느리 때문이다.’
공경히 대우할 마음이 더욱 두터워졌다. 다시 수레를 타고 길을 따라 돌아오다가 어느 큰 시내에 이르렀다. 풀은 우거지고 물은 맑았다. 사람들은 수레를 멈추고 시냇가에 머물렀다. 며느리는 뒤에 와서 말하였다.
“여기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빨리 언덕 위로 가셔야 합니다.”
그는 며느리 말대로 시내를 멀리 떠나 쉬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구름이 일고 뇌성이 치면서 비가 마구 쏟아져 큰 물이 시내를 넘쳐 흘러 내려왔다. 그 때 이기미는 다시 생각하였다.
‘우리는 오늘 두 번째로 죽음에서 벗어났다. 이 며느리 때문에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다시 수레를 타고 길을 따라 나아가 본국에 이르렀다. 안팎 친척들은 모두 와서 경사를 축하하였다. 장자는 기뻐하여 곧 잔치를 베풀고 서로 즐겼다. 하루 해를 마치고 손님들은 모두 돌아갔다.
그 때 장자는 여러 며느리를 불러모으고 말하였다.
“나는 지금 나이 많아 온갖 집안 일이 싫어졌다. 우리 집 살림살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싶다. 그대들 중에서 누가 창고를 맡고 열쇠를 가지고 있겠는가?”
큰 며느리 여섯은 감당할 수 없다고 모두 사양하고, 일곱째 며느리가 스스로 맡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장자는 모든 창고 열쇠를 죄다 맡겼다.그는 일을 맡은 뒤로는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게으르지 않았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집안을 깨끗이 쓸고 밥이 다 되면 먼저 시부모와 여러 남녀가 밥을 들고, 다음에는 종들과 하인들을 먹여 각기 일자리로 보내어 일하게 한 뒤에야 제가 먹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시아버지는 그의 진실하고 정성스러움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보았다. 그러나 전날 그 친정 어머니의 훈계대로 하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겨 곧 물어 보았다.
“너는 전날 집을 떠날 때, 친정 어머니의 분부를 받았다.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과 날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라’는 그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말해 보라.”
며느리는 꿇어앉아 그 사실 내용을 자세히 아뢰었다.
“어머니가 당부하신 ‘좋은 옷을 입어라’는 것은 큰 옷을 아껴 입고 항상 깨끗하게 하면 갑자기 손님이 모일 때에도 산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이란 달고 기름진 것을 말한 것이 아니요, 늦게 먹으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플 때에 밥을 먹으면 좋고, 나쁜 것이 모두 맛날 것입니다. 또 그 거울이란 구리나 쇠로 만든 거울이 아니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안팎에 물을 뿌려 쓸고 자리를 정돈하여 깨끗이 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어머님이 부탁하신 일은 이와 같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그의 묘한 재주를 알게 되자, 그 전보다 더욱 미더운 생각이 들어 집안의 온갖 물건을 모두 그녀에게 맡겼다. 그러자 마음이 기쁘고 편안하여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 때 기러기 떼가 바닷가에 모여들어 벼를 먹었다. 배가 부르게 되자 이삭을 물고 날아가다가 왕궁 위에 이르러 대궐 앞에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삭을 집어다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고 좋아하여 틀림없이 약이 되리라 하고, 그것을 버리지 말고 간수해 두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다시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각각 심게 하였다.
그 때 이기미도 그것을 조금 얻어 집으로 돌아와 심으라 하였다. 며느리는 그것을 받아 종들을 시켜 밭을 고루고, 거기다 종자를 뿌렸다. 그것은 나고 자라 차츰 무성하게 되어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심은것은 온도를 맞추지 못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 때 왕의 부인은 갑자기 모진 병을 얻어 여러 의사를 불러 그 병의 치유법을 물었다. 그 가운데 어떤 의사는 말하였다.
“바닷가의 벼로 밥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나을 것입니다.”
왕은 전날에 그 종자를 얻어 사람들에게 주어 정성스럽게 심으라 하였는데, 이제 그것이 있나 없나 조사해 보리라 하고,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 물어 보았다.
“전에 심으라고 한 그 벼는 익었는가? 지금 곧 위중한 병을 고치는 데 그것을 쓰겠다.”
여러 신하들은 제각기 그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혹은 “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였고, 혹은 “쥐가 먹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에 이기미는 집에 돌아가 물어 보았다.
“전에 심은 벼는 열매를 거두었느냐? 그것을 왕에게 드려 그 부인의 병을 고치려 한다.”
며느리는 대답하였다.
“우리 집에는 풍족하게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약에 쓰려면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다 써도 넉넉할 것입니다.”
이기미는 그것을 왕에게 보냈다. 왕은 밥을 지어 부인에게 먹였다. 부인은 그것을 먹고 병이 낫게 되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크게 상을 주었다.
그 때 특차시리와 사위의 두 나라는 서로 틈이 생겨 언제나 화목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특차시리왕은 사위국에 뛰어난 지혜가 있나 시험하려고, 한 사자를 시켜 암말 두 마리를 보내 왔다. 그것은 어미 말과 새끼 말로서 형상이나 털빛이 똑 같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이것을 능히 분별해 알면 참으로 훌륭하다 할 것이다.”
왕과 신하들은 그것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이기미가 왕궁에서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에게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것들의 머리를 나란히 해 두고 맛있는 풀을 가져다 주어 보십시오. 그 어미는 풀을 밀어 새끼에게 줄 것이요, 그 새끼는 끌어당겨 먹을 것입니다.”
이기미는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왕은 그 말대로 풀로써 시험하였더니, 과연 그 꾀와 같아서 어미와 새끼가 구별되었다. 왕은 그 사자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어미요, 저것은 망아지다.”
그 사자는 말하였다.
“진실로 그 말씀과 같습니다.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이기미에게 더욱 상을 주었다.
그 때 그 사자는 본국으로 돌아가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아뢰었다. 그러자 특차시리왕은 다시 사자를 시켜 두 마리의 뱀을 보내었다. 그것은 굵고 가늘기와 길고 짧기가 똑 같았다. 그리고 말하였다.
“만일 수컷과 암컷을 능히 분별하면 참으로 훌륭하다 할 것이다.”
파사닉왕과 여러 신하들은 그것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기미는 집에 돌아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또 이것은 어떤가?”
며느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고운 천 한 끝을 땅에 펴고 그 뱀 두 마리를 그 위에 놓아 보십시오. 만일 그것이 암컷이라면 꼼짝도 않고 있을 것이요, 수컷이라면 부시대면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하면, 여자의 성질은, 곱고 보드라운 것을 사랑하고 집착하여 보드라운 것을 만나면 탐내는 마음을 내어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요, 남자의 성질은 강해서 뒤치락거리면서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왕은 그 방법을 따라 시험해 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이 분명히 식별되었다. 왕은 그 사자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수컷이요, 저것은 암컷이다.”
그 사자는 말하였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많은 재보를 이기미에게 주었다.
그 때 특차시리왕은 나무 토막 한 개를 보내었다. 길이는 꼭 한 발이요,
밑동과 끝이 꼭 같으며 또 마디도 없고 칼이나 도끼 자국도 없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만일 이 나무 토막의 위아래를 식별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매우 훌륭하다 할 것이다.”
왕과 신하들은 아무도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기미는 또 그 며느리에게 물었다. 며느리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습니다. 그 나무 토막을 물에 넣으면 밑동은 밑으로 잠기고, 머리는 위로 뜰 것입니다.”
이기미는 이 말을 듣고 또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왕은 그 말대로 곧 시험해 보았다. 과연 그 꾀와 같이 잠기고 뜨는 것이 각기 달랐다. 왕은 그 사자에게 말하였다.
“뜨는 쪽이 머리요, 잠기는 쪽이 밑동이다.”
사자는 말하였다.
“진실로 그 말과 같습니다.”
왕은 더욱 기뻐하여 이기미에게 거듭 상을 주었다.
그 사자는 본국으로 돌아가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탄복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자를 보내어 보배를 바치고 이어 말하였다.
“대왕의 나라에는 참으로 현명하고 통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의리와 호의를 지키겠습니다.”
파사닉왕은 마음이 더욱 기뻐 이기미를 불러 물었다.
“요즘의 여러 가지 일을 그대는 어떻게 알았는가?”
이기미는 아뢰었다.
“그것은 신(臣)이 안 것이 아닙니다. 신의 며느리의 지혜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고 공경하여 그 며느리를 왕의 누이로 삼았다. 조금 지나 그 며느리는 아기를 배었는데, 달이 차자 서른두 개의 알을 낳았다. 한 알 속에서 각각 한 사내씩 나왔는데 몸과 얼굴이 단정하고 엄숙하며 빼어나고 특별하였다. 그들은 장성해지자 건강하고 용맹스럽기 짝이 없어 혼자 힘으로 천 명의 사내를 당해 내었다. 부모는 사랑하고 온 나라는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그 뒤에 그들을 모두 장가들여 혼사를 마쳤는데, 신부들은 모두 그 나라에서 세력 있는 집 딸들이었다.
그 때 비사리는 믿는 마음이 열려 부처님과 스님을 집으로 청하여 공양하였고,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셨다. 온 집안 권속이 모두 수다원을 얻었는데 오직 끝의 아들만이 도를 얻지 못하였다.
어느 때 그는 흰 코끼리를 타고 놀러 나갔다. 문 밖에는 깊고 넓은 구렁이 있었고, 그 구렁 위에는 큰 나무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가 막 나무 다리 중간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정승 아들이 수레를 타고 밖에서 오다가 다리 중간에서 서로 만났다. 그들은 각기 세도를 믿고 길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비사리 아들은 곧 성을 내어 코끼리의 등 위에서 몸을 밑으로 굽혀 정승 아들을 붙잡아 수레와 함께 구렁 속에 던져 버렸다.
정승의 아들은 몸이 부서지고 뼈마디가 모두 아파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 그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비사리의 아들이 까닭 없이 행패를 부려 이처럼 아픕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분해하면서 아들을 가엾이 여겨 말하였다.
“그는 힘이 세고 또 나라의 친척이니 다투기 어렵다. 은밀한 꾀를 생각해 내어 이 원한을 갚자.”
일곱 가지 보배를 합해 서른두 개 말채찍을 만들고, 좋고 순수한 강철로 칼을 만들어 채찍 속에 숨겨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서른두 아들에게 각각 보내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한창 젊고 또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이 채찍을 만들어 주는 것이니, 다행히 이것을 받아 항상 들고 다니면 여러 사람들이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곧 그것을 받았다. 그런데 그 때에 그 나라 법에는 왕을 뵈올 때에는 예로서 칼을 가져서는 안 되게 되어 있었다.
그 때 그 정승은 그들이 채찍을 받아 늘 잡고 있는 것을 보고 왕에게 참소하였다.
“비사리의 서른 두 아들은 나이 젊고 힘이 세어 혼자서 천 사람을 당합니다. 그들은 지금 딴 생각을 품고 왕을 해치려 합니다.”
왕은 그 말을 들었으나 마음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정승은 다시 아뢰었다.
“이 일은 진실하여 거짓이 아닙니다. 현재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각기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 말채찍 속에 감추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도 그 일은 분명한 것입니다.”
왕이 곧 조사해 보았더니 과연 그 말대로였다. 왕은 진심으로 믿고 말하였다.
“틀림없이 그렇구나.”
그래서 역사를 뽑아 궁중에 두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러 그 안에서 죽였다. 그리고 서른두 사람의 머리를 한 함에 담고 묶어서 봉해 비사리에게 보내었다. 그 날 비사리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집에서 공양하다가 왕이 보낸 함을 보고 공양을 돕기 위해 마련해 보낸 것이라 생각하고는 그 함을 열어 보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잠깐 있으라. 그것을 열지 말고 공양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라.”
공양을 마치고 그를 앉게 한 뒤에 그를 위하여 설법하셨다.
“이 몸뚱이는 덧없어 괴로우며, 공하여 나[我]가 없고 언제나 위태롭고 두려움이 많아 오래 살지 못하면서 온갖 번뇌에 얽매여 그 고생은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여 서로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한갖 마음과 몸을 괴롭힐 뿐으로 도(道)에 있어서는 아무 이익도 없다. 이 이치는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비사리는 갑자기 마음이 열려 아나함의 도를 얻고 기뻐하면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가엾이 여겨 저에게 네 가지 원을 가지게 하소서. 첫째는 앓는 비구에게 그 병에 따라 약과 음식을 대어 주고, 둘째는 간병하는 비구에게도 음식을 대어 주며, 셋째는 멀리서 오는 비구에게 먼저 공양하고, 넷째는 멀리 가는 비구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여러 앓는 비구들은 좋은 약과 좋은 음식이 없기 때문에 그 병을 고치기 어려워 죽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간병하는 비구가 먹을것이 없으면 걸식하여야 하는데, 그가 걸식하러 나가면 항상 병자를 보살필 수가 없어 혹 거기에 실수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병자의 생각을 어기게 되어 병자가 성을 내게 되면 그 병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먹을 것을 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먼 지방에 있는 비구가 처음으로 낯선 지방에 오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걸식하러 다니다가는 사나운 개를 만나거나 부랑배를 만나면 폭행이나 욕설에 성을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먼 길을 떠나는 비구는 길동무가 필요한데, 양식이 없기 때문에 길동무를 얻지 못하면 길은 멀고 험하며 온갖 독한 짐승이 많으므로, 혼자 가다가는 위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먹을 것을 대어 주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의 네 가지 원을 구하는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네 원대로 하면, 그 공덕은 넓고 커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스님들과 함께 제타 동산으로 돌아오셨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뒤에 비사리는 함을 열어 보았다. 서른두 개의 머리가 모두 그 함 안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애욕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다지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다만 말하였다.
“원통하고 가여워라. 사람이 나면 죽음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하는데, 어찌 이처럼 다섯 갈래 길을 분주히 달리는가?”
서른두 아이의 처가 친척들은 이 사정을 듣고 몹시 화를 내어 모두 외쳤다.
“대왕은 무도하여 억울하게도 착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는 원수를 갚으려고 무기와 군사를 모아 왕궁을 에워쌌다.
이 때 왕은 무섭고 두려워 뒷길로 빠져 부처님께로 갔다. 군사들은 그 말을 듣고 곧 군마를 끌고 가서 기원을 에워쌌다.
그 때 아난은, 파사닉왕이 비사리의 서른두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그 처가 척들이 원수를 갚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인연으로 그 서른두 아이는 왕에게 죽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사리의 서른두 아들은 금생에만 왕에게 한꺼번에 죽은 것이 아니다. 너는 이제 잘 듣고 기억해 두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먼 옛날에 그들 서른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서로 의논하고 남의 소 한 마리를 훔쳤었다. 그 때에 그 나라의 어떤 할머니는 자식이 없어 혼자서 곤궁하게 살았다. 그래서 도둑들은 그 집에 가서 소를 잡으려 하였다. 할머니는 기뻐하여 나무와 물 따위의 삶을 기구를 준비해 주었다.
그들이 칼을 들어 치려 할 때에 소는 꿇어앉아 살려 달라고 빌었다. 도둑들은 더욱 탐욕이 일어나 기어코 소를 죽이려 하였다. 소는 곧 맹세하였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죽이면 나는 후세에 너희들을 그냥 두지 않고, 또 내가 도를 얻더라도 그냥 두지 않으리라.’
이렇게 맹세하고 이내 잡혀 죽었다.
도둑들은 소를 삶아 서로 다투어 먹었다. 다음에는 할머니도 배 불리 먹고 기뻐하면서 ‘지금까지 손님을 접대해 보았지만 오늘이 최상이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소는 바로 지금의 파사닉왕이요, 소 도둑들은 지금의 저 비사리의 서른두 아들이며, 할머니는 지금의 비사리이니라.
그들은 그 과보로 5백 세상 동안 늘 죽음을 당하면서 지금에 이르렀고, 그 할머니는 그 때에 돕고 기뻐하였기 때문에 5백 세상 동안 늘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항상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지금 나를 만나 비로소 도를 얻게 되었느니라.”
아난은 합장하고 거듭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들은 또 어떤 복을 닦았기에 부하고 귀하며 용맹스러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어떤 할머니가 있었다. 그는 삼보를 믿고 공경하며 집은 부자로 온갖 향을 모아 기름을 섞어 탑에 바르려고 갔다. 그 도중에 서른두 사람을 만나 이내 권하였다.
‘나는 지금 향유를 탑에 바르려고 간다. 나를 도와 주면 복덕을 얻어 태어나는 세상마다 얼굴이 단정하고 힘이 세게 될 것이다.’
그러자 그들 서른두 사람은 기뻐하면서 함께 가서 기름을 탑에 바르고 제각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모두 할머니 덕분에 복업을 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세상마다 영화롭고 부귀하며, 할머니는 항상 우리 어머니가 되고 우리는 그 아들이 되어 서로 떠나지 말고,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어 빨리 도를 얻기를 원합니다.’
할머니는 기뻐하며 그렇게 되는 것이 좋다고 허락하였다. 그들은 그 때부터 5백 세상 동안 항상 부귀한 집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 때의 할머니는 지금의 저 비사리요, 서른두 사람은 지금의 서른두 아들이니라.”
그 때 많은 군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분이 곧 풀려 말하였다.
“대왕이 까닭 없이 형법을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업을 짓고 지금 그 과보를 받은 것이다. 한 마리 소를 죽이고도 그렇게 되었구나. 파사닉왕은 우리들의 주인인데 어떻게 미워하여 해치겠는가?”
곧 무기를 버리고 왕 앞에 엎드려 용서를 청하였다. 왕도 또한 화를 풀고 그 죄를 묻지 않았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네 무리를 위하여 온갖 법을 널리 설명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좋은 업은 닦아야 하고, 나쁜 행은 떠나야 한다.”
다시 네 가지 묘법을 자세히 해설하시니, 대중들은 그 설법을 듣고 모두 도를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3.설두라건녕품(設頭羅健寧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의 죽원(竹園)에 계셨다.
그 때 현자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르게 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무리 다섯 사람은 전생에 어떤 경사가 있었고 어떤 인연을 의지하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와 법고(法鼓)를 처음 울리시자 맨 먼저 들었고, 감로(甘露)의 법맛을 남보다 먼저 보았습니까?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다섯 사람은 전생에 내 살을 먼저 먹고 안온하게 되었기 때문에 금생에 법의 밥[法食]을 먼저 먹고 해탈을 이루었느니라.”
그 때 아난은 거듭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들은 어떤 인연으로 전생에 부처님 살을 먹었습니까? 자세히 가르쳐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에 설두라건녕(設頭羅健寧)이라는 큰 나라 왕이 있었다.
그는 염부제의 8만 4천 나라와 6만 산천과 80억 촌락과 2만 부인과 궁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자비심이 있어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인민들은 모두 그 힘을 입었다.
그 때 그 나라에 화성(火星)이 나타났다. 점성사(占星師)는 그것을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만일 화성이 나타나면 12년 동안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습니다. 지금 이런 변이 있으니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걱정하면서 말하였다.
‘만일 그런 재앙이 있으면 나라의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백성들의 목숨을 건질 수도 없고, 또 나라도 없어질 것이다.’
곧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였다. 신하들은 모두 말하였다.
‘여러 나라에 영을 내려 인구를 조사하고, 또 창고에 있는 현재의 곡식을 계산하여 그 수량을 알아 12년 동안에 한 사람 몫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왕은 그 의논을 좇아 곧 영을 내려 빨리 계산하라 하였다. 그리하여 모두 계산하니 백성들의 몫은 하루에 한 되 꼴도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백성들은 굶주려 죽은 사람이 많았다. 왕은 가만히 무슨 계책을 세워야 백성들을 구제할 것인가를 생각하던 끝에 부인과 궁녀들을 데리고 동산으로 나가 거닐다가 각기 쉬었다. 왕은 여럿이 잠든 틈을 엿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향해 예배하고 이내 서원을 세웠다.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럽다. 나는 이 몸을 버리고 큰 고기가 되어 내 몸의 살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리라.’
그리고는 나무 위에 올라가 땅에 떨어졌다.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강의 큰 고기로 화해 났는데, 몸 길이는 5백 유순이었다.
그 때 그 나라에 목공(木工) 다섯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끼를 가지고 강가로 나가 나무를 베었다. 그 고기는 그들을 보고 사람 말로 말하였다.
‘만일 너희들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이 필요하거든 내 살을 먼저 먹고 배가 부르거든 가지고 가라. 너희들이 지금 내 살을 배불리 먹으면 나는 뒤에 부처가 되어 법의 밥으로써 구제해 주리라. 그리고 너희들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알려라, 만일 먹을 것이 필요하거든 모두 와서 가져 가라고.’
그들은 기뻐하여 각기 도끼로 쪼개어 배불리 먹고 또 가지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온 나라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렸다. 이에 백성들은 서로 전해 온 염부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와서 그 고기를 먹었다.
한쪽 옆구리 살이 없어지면 곧 스스로 몸을 뒤쳐 다른 쪽 옆구리 살을 먹이고, 그 살이 없어지면 먼저 먹은 곳의 살이 돋아나고, 살이 돋아나면 또 몸을 뒤쳐 그것을 먹였다. 이렇게 되풀이하여 12년 동안 계속하여 그 몸의 살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였다. 그리고 그 살을 먹은 중생들은 모두 자비심을 내었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나게 되었느니라.
아난이여, 알고 싶으냐? 그 때의 설두라건녕왕은 바로 이 내 몸이요, 다섯 목공으로서 내 살을 먼저 먹은 사람들은 지금의 저 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이며, 뒤에 그 살을 먹은 여러 사람들은 지금의 8만 하늘과 여러 제자들로서 구제를 얻은 사람들이니라.
나는 그 때에 몸의 살을 먼저 주어 그 다섯 사람을 배부르게 먹여 살렸기 때문에 금생에 최초로 설법하여 그 다섯 사람을 제도한 것이니, 내 법신(法身)의 조그만 살로 저 3독(毒)의 굶주리는 괴로움을 덜어 준 것이니라.”
현자 아난과 여러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