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제05권

현우경(賢愚經) 제05권

23.사미수계자살품(沙彌守戒自殺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안타국(安國)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간곡하게, 계율 가지는 사람을 찬탄하면서 말씀하셨다.

“계율을 잘 지키라.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범하지 말라. 왜냐 하면, 계율은 도에 들어가는 기초요, 번뇌를 없애는 묘한 길이며, 열반의 안락한 곳에 이르는 평탄한 길이다. 그러므로 청정한 계율을 가지면 그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는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계율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마치 큰 바다에는 아수라·자라·거북·마갈 따위의 많은 생물들이 사는 것처럼, 계율 바다도 그러하여 3승(乘)을 닦는 대중이 산다. 또 큰 바다에는 금·은·유리 따위의 보배가 많이 있는 것처럼, 계율 바다도 그러하여 선한 법을 많이 내며, 네 가지 덧없음[四非常)과 37도품(道品)과 여러 선정[禪] 등의 보배가 있느니라.

또 큰 바다는 금강이 바닥이 되고 금강산으로 둘러싸였으며 네 개의 큰 강이 흘러 들어가되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것처럼, 계율의 바다도 그와 같아서 비니(毘尼)가 바닥이 되고 아비담산(阿毘曇山)으로 둘러싸였으며 4아함(阿含)의 강이 거기에 흘러 들어가되, 언제나 맑아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다.

무엇 때문에 바닷물은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가. 바다 밑에 있는 아비지옥의 불길이 위로 큰 바다를 끓여 물이 졸아들기 때문에 불어나지 않고, 또 항상 강물이 흘러 들기 때문에 줄지 않는다. 불법에 있어서 계율의 바다는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불어나지 않고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줄지 않는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계율을 잘 가지는 사람은 그 덕이 매우 많으니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였다. 그 때에 안타국에는 어떤 걸식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혼자 고요히 있기를 즐기고 위의를 갖추었었다. 대중 속에 살지 않고 혼자 걸식하는 비구를 부처님께서는 칭찬하신다. 왜냐 하면, 걸식하는 비구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아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차례로 걸식하면서 자리를 펴고 한[露] 데 앉으며, 하루에 한 끼 먹고 세 가지 옷밖에 가지지 않나니, 이런 일은 존경할 만하고 숭상할 만하기 때문이다.

대중과 같이 사는 비구는 욕심이 많아 만족할 줄 모르므로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서도 탐하여 구하고 아끼며 질투하고 애착한다. 그러므로 큰 이름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걸식하는 비구는 덕행을 완전히 갖추고 사문의 결과를 성취하여 6통(通) 3명(明)을 얻고 8해탈(解脫)에 머무르며 위의가 조용하여 명성이 널리 퍼지느니라.

그 때 안타국에 어떤 우바새가 있어 3보(寶)를 믿어 공경하며, 5계(戒)를 받들어 지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술 마시지 않으며, 보시를 행하고 덕을 닦아 이름이 온 나라에 두루하였다.

그는 그 걸식하는 비구를 청하여 몸을 마칠 때까지 공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공양하는 복은 그 인(因)을 따라 과보를 받는다. 만일 스님네를 집에까지 청해 공양하면 수도에 방해될 뿐 아니라 오가는 도중에 추위와 더위를 겪는 괴로움이 있을 것이니, 뒷날 과보를 받을 때에는 반드시 생각을 괴롭히면서 밖으로 나가 돌아다녀야 비로소 얻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스님네들에게 나아가 공양을 올리면 뒷날 과보를 받을 때에는 편안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받게 될 것이다.’

그 우바새는 신심이 순수하고 독실하여 빛깔과 냄새와 맛이 좋은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사람을 시켜 보내되, 날마다 계속하였다.

사문에게는 좋고 나쁜 것을 밝히기 어려운 네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菴羅) 열매가 설었는지, 익었는지를 알기 어려운 것과 같다.

어떤 비구는 위의가 조용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히 보지마는, 속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계율을 부수는 비법이 가득 찼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겉은 익었으되 속은 선 것과 같으니라.

어떤 비구는 바깥 행은 추하고 서툴러 의식을 따르지 않지마는, 속에는 사문의 덕행인 선정과 지혜를 갖추었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속은 익었으나 겉은 선 것과 같으니라.

어떤 비구는 위의도 추하고 거칠며 계율을 부수어 악을 지으며, 속에도 탐욕·성냄·어리석음과 간탐과 질투가 가득 찼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속과 겉이 모두 설익은 것과 같으니라.

어떤 비구는 위의도 조용하고 자세하며 계율을 가져 스스로 지키며, 속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을 갖추었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속과 겉이 함께 익은 것과 같으니라. 저 걸식 비구는 안팎을 완전히 갖추었고, 또한 그와 같이 덕행이 원만하기 때문에 사람의 숭배를 받느니라.

그 때 그 나라에 어떤 장자가 3보(寶)를 믿고 공경하였다. 그에게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저 아이를 출가시키되, 좋은 스승을 구해 맡기고 싶다. 왜냐 하면, 좋은 스승을 가까이하면 좋은 법이 더욱 자라고 나쁜 스승을 가까이하면 나쁜 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람 성질은 비록 공(空)하나 전단림(栴檀林)이나 첨복림(瞻蔔林)을 거쳐 향을 날리면 그 바람에는 묘한 향냄새가 있고, 더러운 똥이나 썩은 시체를 거쳐 오면 그 바람에는 악취가 나는 것과 같다. 또 깨끗한 옷을 향기로운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내어 입으면 옷에서 향냄새가 나고, 더러운 냄새 나는 곳에 두면 옷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착한 벗을 친하면 착함이 날로 높아가고 악한 벗을 친하면 악이더욱 자라간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아이를 저 존자에게 주어 출가를 시키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그 비구에게 가서 아뢰었다.

“내 외동아들을 이제 출가시키고자 하오니, 원컨대 대덕께서는 가엾이 여겨 받아들여 제도하여 주소서. 만일 받아 주실 수 없으시다면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비구는 도의 눈으로, 그가 중이 되면 깨끗한 계율을 잘 가져 불법을 더욱 자라게 할 수 있으리라 보고 곧 받아 제도하여 사미(沙彌)를 만들었다.

그 때 그 우바새에게는 어떤 친한 거사가 있었다. 그는 우바새와 그 처자와 온 집안 종들까지 그 이튿날 모임에 청하였다. 우바새는 이른 아침에 생각하였다.

‘지금 우리가 모두 그 모임에 가고 나면 누가 남아서 이 집을 지킬 것인가. 내가 만일 힘이 세다고 하여 억지로 한 사람을 붙들어 두고 그 몫을 받아 가진다면 나는 그를 배반하는 것이다. 혹 누가 제 스스로 마음을 내어 집에 머무르면 나는 그 모임에서 돌아와 따로 보수를 주리라.’

우바새의 딸이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부모님께서는 여러 하인들을 데리고 가서 그 청을 받으소서. 제가 남아 집을 지키겠습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착하고 착하다. 이제 너는 집을 지켜라. 나와 네 어머니는 똑 같이 우리 집의 손해와 이익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온 집안 사람이 모두 가서 청을 받았다. 딸은 문을 굳게 닫고 혼자 집에 있었다.

그 때 그 우바새는 그 날 바쁜 중에 그만 비구에게 공양 보낼 것을 잊고 있었다. 그 때 그 존자는 가만히 생각하기를, ‘해가 저물어 온다. 그러나 속인이 일이 바빠 그만 잊어버리고 밥을 보내지 않고 있다. 내가 이제 사람을 보내어 밥을 가져 오게 하리라’ 하고, 곧 사미에게 말하였다.

“네가 가서 밥을 가져 오너라. 그런데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는 위의를 잘 단속하여,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마치 꿀벌이 꽃에 앉을 때에 그 맛만 취하고 빛깔과 향기는 다치지 않는 것처럼 이제 너도 그렇게 하되, 집에 이르러 밥을 얻을 때에는 감관의 문을 잘 단속하여 색(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觸]을 탐하지 말라. 만일 계율을 가지면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다.

저 제바달다(提婆達多) 같은 이는 경을 많이 외웠다지만 악을 행하여 계율을 부수었기 때문에 아비지옥에 떨어졌고, 구가리(瞿迦利) 같은 이는 부처님 제자를 비방하여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으며, 주리반특(周利槃特)은 게송 하나밖에 외우지 못하였으나 계율을 가졌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또 계율은 열반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고 즐거움을 받는 종자가 된다. 비유하면 바라문법에서, 석 달이나 넉 달 동안의 긴 재(齋)를 베풀어서 이름이 높고 지혜 있으며 계율을 가지고 범행을 닦는 여러 바라문을 청하되, 두루 청하지 않고 가려서 청하였기 때문에, 구류(仇留)에게는 봉인(封印)된 청을 하여 청하는 사람을 원망하였다.

어떤 바라문은 경전에는 밝았으나 그 성질이 청렴하지 못하여 벌꿀의 단맛을 탐하였기 때문에, 봉인된 꿀을 핥다가 봉인이 다 없어졌었다. 이튿날 그 모임에 봉인을 바치고 들어갈 때에 그 바라문은 봉인이 없으면서 들어가려 하였다. 일맡은 이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봉인을 가졌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가졌었지만 그것이 달기 때문에 핥다가 다 없어졌다.’

일 맡은 이는 ‘당신은 지금 그와 같이 이미 만족하였으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조그만 단맛을 탐하여 넉 달 동안의 그 달고 향기롭고 맛난 음식과 또 갖가지 보배 보시를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그와 같이 조그만 일을 탐하여 깨끗한 계율의 인(印)을 깨뜨림으로써 인간과 천상의 다섯 가지 맛난 즐거움과 번뇌를 없애는 37도품(道品)과 한량없이 안락한 열반법의 보배를 잃지 말라. 너는 삼세(三世) 부처님의 계율을 훼손하거나 3보(寶)와 부모·스승을 더럽히지 말라.”

사미는 이 분부를 받고 스승 발에 예배하고 떠났다. 그는 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처녀는 물었다.

“누구십니까?”

사미는 대답하였다.

“사미가 스승님을 위해 공양을 가지러 왔습니다.”

처녀는 못내 기뻐하여 ‘내 소원이 이루어졌군’ 하고, 곧 문을 열어 주었다. 처녀는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나이는 막 열여섯, 음욕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처녀는 사미 앞에서 어깨를 흔들고 그림자를 돌아보기도 하며 갖은 아양을 떨면서 몹시 음란한 몸짓을 하였다.

사미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여자는 풍병이나 미친 병이나 또는 간질병이 있는가, 혹은 아무 번뇌가 없는 깨끗한 내 행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위의를 더욱 굳게 단속하였고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

처녀는 땅에 엎드려 사미에게 하소연하였다.

“내가 늘 원하던 것이 이제 때가 왔습니다. 나는 항상 사미님께 할 이야기가 있었으나 조용한 틈을 타지 못했습니다. 아마 사미님도 내게 늘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미님은 내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집에는 많은 보배와 금·은의 창고가 있어 저 비사문 천궁의 보배창고 같지만 주인이 없습니다. 사미님이 뜻을 굽히시기만 한다면, 곧 이 집 주인이 될 것이요, 나는 사미님의 아내가 되어서 시키는 일은 아무도 어기지 않을 것이니, 우리 소원은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무슨 죄가 있어 이런 나쁜 인연을 만났는가. 나는 지금 차라리 이 신명(身命)을 버릴지언정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은 훼손하지 않으리라.

옛날의 어떤 비구는 음녀 집에 이르러 차라리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지언정 음행은 범하지 않았고, 또 어떤 비구는 도적을 만나 풀에 묶였을 때,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이며 온갖 벌레에 물렸지마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풀을 끊고 떠나지 않았다. 혹은 거위가 구슬을 먹었을 때에 어떤 비구는 그것을 보았지마는 그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지루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또 바다에서 배가 부서졌을 때 아랫자리 비구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널빤자를 윗자리 비구에게 주고 자기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처님 제자로서 계율을 잘 지켰거늘 나는 부처님 제자가 아닌가. 왜 지키지 못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그들만의 스승님이요, 내 스승님은 아니라는 말인가.

마치 첨복꽃을 깨에 섞어 기름을 짜면 첨복꽃 향내가 나지마는, 악취가 나는 꽃을 섞으면 기름도 그에 따라 악취가 나는 것처럼, 나는 지금 좋은 스승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나쁜 일을 저지르겠는가.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계율을 깨뜨림으로써 불·법·승과 부모와 스승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그는 또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도망쳐 달아나면 저 여자는 왕성한 음욕 때문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밖으로 달려나와 나를 붙들고 모함해 비방하리니, 거리 사람들은 내가 더러운 욕을 벗어나지 못했다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목숨을 버리고 말리라.’

그리고는 방편으로 말하였다.

“지게문을 굳게 닫으시오. 내가 방에 들어가 할 일을 준비할 것이니, 당신은 그 때에 들어오시오.”

그 여자는 곧 지게문을 닫았다. 사미는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마침 머리 깎는 칼을 발견했다. 그는 몹시 기뻐하면서 법복을 벗어 시렁 위에 걸고 합장하고 꿇어앉아 구시나성(拘尸那城)의 부처님 열반하신 곳을 향하여 스스로 서원을 세웠다.

‘나는 지금 불·법·승을 버리지 않고 화상(和上)·아사리(阿闍梨)를 버리지 않고 또 계율을 버리지 않으며, 올바로 계율을 가지기 위하여 이 신명을 버립니다. 원컨대 태어나는 곳에서 집을 떠나 도를 배우고 범행을 깨끗이 닦아 번뇌를 없애고 도를 이루게 하소서.’

곧 목을 찔러 죽자, 피는 쏟아져 흘러 온몸을 적셨다.

처녀는 사미의 더딘 것을 이상히 여겨 지게문 가까이 가 보았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불러 보았으나 대답도 없었다. 지게문을 박차고 열자 그가 이미 죽어 본래의 안색이 없는 것을 보았다.

처녀는 음심이 이내 사라지고 부끄럽고 뉘우치고 고민하면서, 제 손으로 머리를 잡아 뽑고 손톱으로 얼굴을 찢으며 진흙땅에 뒹굴면서 눈물을 흘리고 슬피 부르짖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까무러쳐 버렸다.

그 아버지가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딸을 불렀다. 그러나 딸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조용한 것을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대문을 넘고 들어가 문을 열고 살피다가 딸의 그런 꼴을 보고는 흔들어 깨웠다.

“너는 왜 그렇게 되었느냐. 어떤 사람이 들어와 너를 능욕하였느냐?”

딸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 내가 사실대로 대답하기는 너무 창피하다. 그렇다고 사미가 나를 능욕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것이니, 장차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죄를 받을 것이다. 속이지 말고 사실대로 대답하자.’

처녀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 사미가 와서 그 스승의 공양을 청했습니다. 저는 정욕이 발동하여 사미를 졸라 내 마음에 따라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율을 지키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방편으로 방에 들어가 스스로 제 목숨을 버렸습니다. 저의 이 더러운 몸으로 그 깨끗한 그릇을 부수려 하였습니다. 그 죄가 이러하기 때문에 저는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번뇌의 법은 으레 그런 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 딸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은 다 덧없는 것이니, 너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곧 사미 방에 들어가 보았다. 사미 몸은 피에 붉게 물들어 마치 전단(栴檀)으로 만든 책상과 같았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찬탄하였다.

“장하여라. 부처님 계율을 보호해 가지기 위하여 능히 목숨까지 버렸구나.”

이 때에 그 나라 법에는 사문이 속인 집에서 죽으면, 그 집에서 금 일천 냥을 나라에 들여놓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우바새는 돈 일천 냥을 구리소반에 담아 싣고 왕궁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신이 죄를 범한 벌금을 대왕께 바칩니다. 원컨대 받아 주소서.”

왕은 물었다.

“우리 나라에서 삼보를 믿어 공경하고 충성하고 정직하여 도를 지키며 말과 행실이 어긋남이 없기는 오직 그대 한 사람뿐이어늘, 지금 어떤 허물이 있기에 벌금을 싣고 왔는가.”

우바새는 위의 사실을 자세히 아뢰어 자기 딸을 나무라고 사미가 계율 지킨 공덕을 찬탄하였다.

왕은 그 사정을 듣고 마음으로 놀라고 송구스러워하면서 불법을 믿는 마음이 더욱 독실해졌다.

“사미가 계율을 지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요, 그대에게는 허물이 없거늘 어떻게 벌이 있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나도 지금 몸소 그대 집에 가서 그 사미에게 공양하리라.”

곧 금북을 울려 나라에 영을 내려 앞뒤로 백성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그 집으로 갔다. 왕은 몸소 안에 들어가 사미의 몸이 붉은 전단 같은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그 공덕을 찬탄하였다. 갖가지 보배로 장엄한 높은 수레에 사미의 시체를 싣고 평탄한 곳으로 가서 온갖 향나무를 쌓아 화장하고 공양하였다.

또 그 여자를 갖가지로 장식하니, 절세 미인이 되었다. 그를 높은 곳에 세우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 보게 하고는 대중에게 말하였다.

“이 여자는 뛰어나게 아름다워 얼굴은 저처럼 빛난다. 탐욕을 아직 여의지 못한 이로서 그 누가 탐내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 사미는 아직 도를 얻지 못하여 나고 죽는 몸이지마는 계율을 받들어 목숨을 버렸으니 참으로 놀랍고 드문 일이다.”

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어 그 스승 비구를 청해 널리 대중을 위하여 묘법을 연설하게 하였다.

거기 모인 대중으로서 이 일을 보고 들은 이는 집을 떠나 깨끗한 계율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4.장자무이목설품(長者無耳目舌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타정사(祇精舍)에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 큰 장자가 있었다. 그는 재물이 한량이 없어 금·은 등 일곱 가지 보배가 창고에 가득하였고, 코끼리·말·소·양과 노비와 인민들이 수없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 있었는데 단정하고 총명하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중이었는데 그는 목숨을 마쳤다.

그 때 그 나라법에 가장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가 가졌던 재산은 모두 나라에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왕은 대신을 보내어 그 집 재산을 모두 챙겨 기록하였다.

재산이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그 딸들은 생각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임신 중인데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 만일 딸이라면 우리 집 재물은 으레 나라에 들어가겠지마는 만일 사내라면 그는 우리 집 재산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저희 아버지는 아들이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재산은 마땅히 대왕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 어머님은 임신 중이므로 그 해산을 기다려, 만일 딸이라면 그 때에 가서 재산을 바치더라도 늦지 않겠으며, 아들이라면 그가 마땅히 우리 집 재산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파사닉왕은 법을 공정하게 쓰기 때문에 그 청을 옳게 여겨 허락하였다.

그 뒤 오래지 않아 달이 차서 그 어머니는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 몸은 혼돈(渾沌)되어 있어 귀도 눈도 없고 입은 있으나 혀가 없으며 또 손발도 없었다. 그러나 남근(男根)은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만자비리(曼慈毘梨)라고 지었다.

그 때에 딸들은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 이치를 생각하였다.

‘눈·귀·코·혀·손·발로써 재산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내라야 그 재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아이는 남근이 있으니, 마땅히 아버지의 재산을 이어받아야 한다.’

왕은 그 딸들에게 말하였다.

“재산은 너희들 동생에게 속한다. 나는 가지지 않으리라.”

얼마 뒤 큰 딸은 다른 집으로 시집 갔다. 그녀는 남편을 받들어 섬기되 겸손하고 정성스러워, 침구를 깨끗이 떨고 닦거나, 음식을 차리거나, 맞고 배웅하거나, 일어나 절하고 문안하는 것이, 마치 종이 상전을 섬기는 것과 같았다.

그 이웃집 어떤 장자는 이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부부의 도는 집집이 다 있겠지마는 당신만은 어찌하여 그처럼 유다릅니까.”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재산은 한량없는데, 딸이 다섯이 있었지만 재산은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어머니가 몸을 풀어 우리 동생을 낳았는데, 눈·귀·코·혀와 손발은 없었으나 남근이 있었으므로 우리 재산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치로 볼 때, 아무리 여러 딸이 있으나 한 사내만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받드는 것입니다.”

장자는 그 말을 듣고 괴상히 여겨 그 여자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장자 아들은 어떠한 인연으로 귀·코·혀와 손발이 없으면서도 부잣집에 태어나 그 재산의 주인이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물었다. 너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를 위해 말하리라.” “예, 기꺼이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에 큰 장자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단야세질(檀若世質)이요, 아우 이름은 시라세질(尸羅世質)이었다. 그 형은 젊을 때부터 정직하고 진실하며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가난한 이를 구제하였다.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의 신용과 착함을 칭찬하였다. 왕은 그를 뽑아 나라의 평사(平事)를 삼아 송사의 시비와 곡직을 그로 하여금 판결하게 하였다.

그 때에 그 나라 법에는 빌려 주고 받는 데 있어서 아무 증서도 없이 모두 평사 단야세질에게 가서 증인으로 서게 하였다.

그 때 어떤 상인(商人)은 보배를 구해 바다에 들어가려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평사의 아우 시라세질에게 많은 돈을 꾸게 되었다. 아우 장자는 아직 어린 외아들이 있었다. 그는 그 아들과 한 자리에서 돈을 내어 주고 그 형 평사에게 가서 아뢰었다.

‘형님, 이 상인은 제게 돈을 꾸었는데 바다에 갔다 돌아오면 갚을 것입니다. 형님은 저를 위해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래서 만일 제가 죽거든 내 아들이 그 돈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평사 장자는 손가락으로 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그렇게 하리라.’

그 아우 장자는 오래지 않아 목숨을 마쳤다.

그 때 그 상인은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는 부서져 없어졌다. 그는 널빤지를 붙들고 겨우 살아나 본국으로 돌아왔다.

장자 아들은 배가 부서져 빈손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저 이는 내게 빚을 졌지만 지금 저처럼 곤궁하니 무엇으로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

그 상인은 다른 상인과 함께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 많은 보배를 얻어 무사히 돌아와서 조용히 생각하였다.

‘저 장자 아들은 전날 나를 보았어도 내게 빚을 독촉하지 않았다. 내가 돈을 빌 때 저 사람은 어렸으니 혹 기억하지 못해서인가, 혹은 전날에는 내가 곤궁하였기 때문에 독촉하지 않았던 것인가, 나는 이제 시험해 보리라.’

그리고는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말을 온갖 보배로 꾸며 타고 저자로 들어갔다. 장자 아들은 그처럼 아름다운 옷과 말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저 사람은 재물을 가지고 돌아온 것 같다. 시험해 빚을 독촉해 보리라.’

곧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당신은 내게 빚을 졌으니 이제 갚아야 합니다.’

그는 대답하였다.

‘잘 생각해서 갚도록 하리다.’

상인은 생각하였다.

‘빚이 훨씬 커졌다. 이자에 이자를 겹치면 갚을 도리가 없다. 이제 꾀를 써서 청산하리라.’

그는 보배 구슬 하나를 가지고 평사 부인에게 가서 아뢰었다.

‘형수씨, 제가 전날 시라세질에게 돈을 조금 꾸었더니 그 아들이 내게 와서 빚을 독촉합니다. 이 구슬은 10만 냥의 가치가 있는데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그가 만일 내게 빚을 독촉하거든 평사 형님께 부탁하여 증인이 되지 말아 달라고 말해 주십시오.’

그 부인은 말하였다.

‘장자는 정직하고 진실한데 반드시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삼아 말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그 구슬을 받았다.

저물어서 평사는 돌아왔다. 부인은 곧 갖추어 말했다.

장자는 말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내가 정직하고 진실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왕은 나를 세워 이 나라 평사를 삼았는데,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소’

이튿날 상인이 왔다. 부인은 그 사정을 이야기하고 곧 그 구슬을 돌려 주었다. 상인은 다시 20만 냥의 가치가 있는 구슬 하나를 주면서 아뢰었다.

부탁이 꼭 되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조그만 일입니다. 말 한 마디에 20만 냥을 얻는 것입니다. 만일 저쪽이 이긴다면 그가 비록 조카이지만 형수씨에겐 한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치는 통하는 것입니다.’

그 때 부인은 그 보배 구슬에 탐을 내어 그것을 받았다.

저녁이 되어 다시 남편에게 말했다.

‘어제 드린 말씀은 될 수 있는 일입니다.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장자는 말하였다.

‘절대 그럴 수 없소. 나는 진실한 것으로 평사가 되었소. 만일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현세에서는 세상의 신용을 받지 못할 것이요, 후세에서는한량없는 겁의 고통을 받을 것이오.’

그 때 장자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걷지 못하였다. 그 부인은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당신과 부부로서 비록 죽는 일이 있더라도 서로 어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탁은 조그만 일입니다. 말 한 번이면 될 일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만일 내 뜻을 따라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먼저 이 아기를 죽이고 그 다음에 나도 죽고 말겠습니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마치 목구멍에 무엇이 걸려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가만히 생각하였다.

‘내게는 이 아들 하나뿐이다. 만일 이 애가 죽으면 내 재산을 물려 줄 데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 말대로 하면 지금부터는 남의 신용도 얻지 못하고 저승에서는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던 끝에 말하였다.

‘그리하겠소’

그 아내는 못내 기뻐하여 그 상인에게 말하였다.

‘장자는 허락하였소.’

상인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큰 보배옷을 입고 온갖 보배로 장식한 큰 코끼리를 타고 저자로 들어갔다.

장자의 아들은 그를 보고 기뻐하면서 생각하였다.

‘저 이의 저런 옷과 코끼리를 보면 틀림없이 부자가 되었다. 나는 이제 돈을 받겠구나.’

그에게 말하였다.

‘상주(商主)님, 전날 제게 진 빚을 이제 갚아 주십시오.’

상인은 놀라면서 말하였다.

‘나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너에게 빚을 졌던가, 만일 빚을 졌다면 그 증인은 누군가?’

장자의 아들은 말하였다.

‘어느 달 어느 날, 우리 아버지와 제가 직접 당신에게 돈을 주었고, 평사님이 우리를 위해 증인이 되셨는데 왜 모른다고 하십니까?’

상인은 말했다.

‘나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땅히 갚아야지.’

이내 둘이 함께 평사에게로 갔다. 장자의 아들은 말하였다.

‘이 사람이 전날 우리 아버지에게서 돈 얼마를 빌어 갈 때에 백부께서 증인이 되고 저도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평사는 말하였다.

‘나는 모르겠다.’

조카는 깜짝 놀라면서 말하엿다.

‘백부께서는 분명히 듣고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손과 발로 그 돈을 가리키면서 틀림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그런 일이 없다.’

조카는 분개하여 말하였다.

‘백부께서 충성스럽고 진실하기 때문에 왕이 평사를 시켰고 또 사람들이 신용하는 것입니다. 조카에게까지 그처럼 법답지 않은데, 더구나 다른 사람으로서 원통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실이 옳고 그름은 뒷세상 사람이 저절로 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이어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때의 평사 장자는 바로 지금의 그 귀도 눈도 없이 혼돈되어 있는 만자비리니라. 그는 그 때의 한번 거짓말로 말미암아 큰 지옥에 떨어져 많은 고통을 받았고,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5백 세상 동안 늘 혼돈의 몸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에 장자의 아들은 보시하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항상 부호한 집에 태어나 재물의 주인이 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선악의 갚음은 아무리 오래 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디 부지런히 노력하여 몸과 말과 뜻을 잘 단속하여 함부로 악을 짓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 때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초과(初果)에서 4과(果)까지 얻는 이도 있었고,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5.빈인부부첩시득현보품(貧人夫婦疊施得現報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의 기원정사(祇洹精舍)에서 큰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 부인이 계집애를 낳았다.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워 짝할 이가 드물었다. 그녀는 처음 날 때에 곱고 부드러운 흰 옷을 몸에 감고 태어났다.

부모가 괴상히 여겨 관상쟁이를 불러 상을 보게 하였더니, 관상쟁이는 말하였다.

“매우 길(吉)한 일입니다. 큰 복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숙리(叔離)[진(秦)나라 말로는 희다[白]라는 뜻이다]라 하였다. 숙리가 자라나자 그 옷도 몸을 따라 커갔다. 숙리는 용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나라 안의 멀고 가까운 데서 서로 다투어 혼인을 청해 왔다. 부모는 생각하였다.

‘숙리가 이제 저만큼 자랐으니 시집을 보내야겠다.’

공인(工人)을 불러 영락(瓔珞)을 만들었다. 숙리는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 금과 은으로 두드려 만드는 것은 무엇에 쓰려는 것입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너도 이제 장성했으니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래서 팔찌를 만드는 거란다.” “저는 집을 떠나 도를 배우렵니다. 시집가긴 싫습니다.”

부모는 딸을 귀엽게 여겨 그 뜻을 어기지 않고 곧 천을 꺼내어 다섯 가지 법복을 지으려고 하였다. 숙리는 그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을 만들려 하십니까?” “네 법복을 만든다.” “제가 입은 이 옷으로 넉넉합니다. 따로 지을 건 없습니다. 원컨대 곧 부처님께 가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부모는 그를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잘 왔다” 말씀하시자,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입고 있던 흰 옷은 이내 다섯 가지 법복이 되었다. 그래서 대애도(大愛道)에게 맡겨 비구니를 만들었다. 그녀는 정진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숙리 비구니는 본래 어떤 공덕을 지었기에 장자 집에 태어나되, 날 때부터 옷을 입고 났으며,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설명하리라. 먼 옛날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제자들과 함께 일체 중생을 제도할 때에 국왕과 신민들은 많은 공양을 베풀고 반차우슬(般遮于瑟:5년마다 한 번씩 여는 보시대회)을 지었다.

그 때에 어떤 비구는 항상 다니면서 부처님께 나아가 법을 듣고 보시하기를 권하였다. 그 때 단니가(檀膩伽)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너무 가난하여 옷 한 벌을 가지고 부부 두 사람이 번갈아 입고 지냈다. 남편이 밖에 나갈 때 그것을 입고 가면 아내는 나체로 풀자리에 앉아 있었고, 또 아내가 그것을 입고 나가 구걸할 때에는 남편은 벌거벗은 채 풀자리에 앉아 있었다.

권선하는 비구는 차례로 다니다가 그 집에 이르러 여자를 보고 권하였다.

‘부처님의 세상에 나오는 것은 만나기도 어렵고 경법을 듣기도 어려우며 사람의 몸을 얻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당신은 법을 듣고 보시를 하십시오.’

그러면서 간탐(慳貪)과 보시의 갚음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여자는 아뢰었다.

‘스님, 잠깐 계십시오.’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밖에 어떤 사문이 와서 우리에게,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듣고 보시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생에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빈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엇으로 후생의 밑천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남편은 대답하였다.

‘우리 집이 이처럼 빈곤하데 설령 마음이 있다 한들 무엇으로 보시하겠소.’

부인이 말하였다.

‘전생에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처럼 곤궁한데 금생에 또 심지 않으면 후생에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만 허락하시면 나는 기어코 보시하겠습니다.’

남편은 가만히 생각하였다.

‘아내에게 혹 사사로운 재산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허락하리라.’

그리고는 말하였다.

‘좋소. 보시하고 싶으면 곧 하시오.’

아내는 당장 말하였다.

‘나는 이 옷을 보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옷 한 벌로 드나들면서 구걸하여 살아가는데 지금 이것마저 보시하면 우리는 죽는 길밖에 없는데 어찌하려오?’ ‘사람은 다 죽는 것입니다. 지금 보시하지 않더라도 마지막에는 죽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금 보시하고 죽으면 후생의 보람이라도 있겠으나 지금 보시하지 않고 죽으면 후생에는 반드시 고생이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죽음을 나누어 보시하는 것이오.’

아내는 도로 밖으로 나가 비구에게 아뢰었다.

‘스님 저 담 밖에 나가 기다리십시오. 물건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비구는 말하였다.

‘만일 보시하려면 면전에서 보시하십시오. 당신을 위해 축원하리다.’ ‘내게는 다만 이 입은 옷뿐이요, 이 속에는 다른 옷이 없습니다. 여자 몸은더럽습니다. 면전에서는 벗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입은 옷을 벗어 담 밖으로 넘겨 비구에게 주었다.

비구는 축원하고 그것을 가지고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옷을 이리 가져 오너라.’

비구는 옷을 부처님께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손수 그 때묻은 옷을 받으셨다.

그 때 거기 있던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때묻은 옷을 받으신다’고 하면서 마음으로 꺼렸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모임의 어떤 청정한 큰 보시도 이 옷의 보시보다 나은 것이 없다.’

대중은 이 말씀을 듣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부인들은 기뻐하여 자기가 입고 있던 영락으로 장식한 보배옷을 벗어 단니가에게 보내 주었고, 왕도 기뻐하며 입었던 옷을 벗어 그 남편에게 보내고는 그들에게 이 모임에 나올 것을 전하였다.

비바시부처님께서는 대중을 위해 묘법을 널리 연설하였다. 그 때에 그 대중 가운데는 제도를 받은 이가 많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알고 싶으냐? 그 때의 그 빈궁한 여자 단니가는 지금의 저 숙리 비구니이니라. 그는 그 때에 청정한 마음으로 옷을 보시하였기 때문에 91겁 동안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옷을 입고 나와 모자람이 없었고, 구하는 것은 모두 뜻대로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을 만나 깊고 묘한 법을 듣고 해탈하기를 원하였으므로 지금 나를 만나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법을 듣고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도를 얻은 이가 많았고, 그들은 모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6.가전연교노모매빈품(迦旃延敎老母賣貧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아리제국(阿梨提國)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는 어떤 장자가 있었다. 그는 재물과 보배가 많았으나 간탐하고 포악하여 인자한 마음이 없었다. 그 집에는 한 여종이 있었는데, 이른 새벽에서 밤 늦게까지 일에 쫓기어 조금도 쉴 사이가 없었다.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매를 맞았고, 옷은 몸을 가리지 못하고 먹는 것은 배를 채우지 못하였다. 나이 많고 피곤하여 죽고 싶었으나 죽을 수도 없었다.

어느 날 병을 가지고 강으로 나가 물을 긷다가 그 고생을 생각하고는 목을 놓아 통곡하고 있었다.

그 때 가전연(迦旃延)이 거기 와서 물었다.

“노모(老母)는 어찌하여 그처럼 슬피 울면서 괴로워하십니까?”

그는 아뢰었다.

“스님, 저는 이미 늙었는데 언제나 고역에 시달리고, 게다가 빈궁하여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하지 않아 죽고 싶으나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난하면 왜 그 가난을 팔지 않습니까?” “가난을 어떻게 팔 수 있습니까? 누가 가난을 사겠습니까?” “가난을 파는 길이 있습니다?” “스님, 가난을 어떻게 팝니까?” “참으로 팔고 싶으면 꼭 제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예, 듣겠습니다.” “먼저 목욕을 하십시오.”

그가 목욕을 마치자, 가전연은 말하였다.

“당신은 보시하여야 합니다.” “스님, 저는 하도 빈곤하여 지금 제게는 손바닥만한 성한 옷도 없습니다. 여기 이 병이 있으나 이것은 장자댁 것이니 무엇을 보시해야 합니까?”

가전연은 곧 발우를 주면서 말하였다.

“이 발우에 깨끗한 물을 조금 떠 오십시오.”

노파는 시키는 대로 물을 떠다가 가전연에게 바쳤다. 가전연은 그것을 받고 축원하고는 재계[齋]를 가르치고 또 염불의 갖가지 공덕을 가르쳤다. 그리고 물었다.

“자는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맷돌질할 때에는 맷돌 밑에서 자다가 일어나 밥 짓는 일을 하고는 다시 그 밑에 누워 자고, 맷돌 일이 없을 때에는 쓰레기 무더기 위에 누워 잡니다.” “당신은 마음을 잘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되 꺼리거나 원통한 생각을 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인 집에서 모두 잠든 때를 기다려 가만히 지게문을 열고, 그 지게문 모퉁이에 깨끗한 풀을 깔고 앉아 부처님을 관(觀)하고 생각하면서 부디 나쁜 생각을 내지 마십시오.”

그 때 노파는 분부를 받고 집에 돌아가 그대로 행하였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어 곧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에 났다.

주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종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이 집 안에는 언제나 종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어째서 지난 밤에 여기서 죽었는가.”

그리고는 새끼로 다리를 매어 한림(寒林)에 내다 버렸다.

그 때 저 하늘에 어떤 천자가 5백 명 권속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궁전은 매우 화려하였다. 그 천자는 복이 다해 목숨을 마치고, 이 노모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하늘에 나는 법에, 근기 날카로운 사람은 제가 거기 와서 난 인연을 알지마는 근기가 둔한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향락만 누릴 줄 알았다.

그 때 그 여자도 하늘에 났지만, 5백 천자들과 서로 즐겁게 놀 줄만 알고 즐거움을 받은 인연은 알지 못하였다.

사리불은 도리천에 있다가 그 여자가 하늘에 와서 난 인연을 알고 그 여자에게 물었다.

“노모여, 당신은 어떤 복으로 이 하늘에 났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사리불은 도안(道眼)을 빌려 주어 그녀의 전생 몸이 하늘에 난 인연을 보게 하였다. 그녀가 가전연으로 말미암아 곧 5백 천자를 데리고 한림으로 내려와 꽃을 흩고 향을 사르면서 그 시체를 공양할 때에 여러 하늘들의 광명은 마을과 숲을 비추었다.

장자는 그 변괴를 보고 이상히 여겨 여러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숲으로 나가 살펴보게 하였다가 여러 천자들이 시체를 공양하는 것을 보고 천자들에게 물었다.

“그 종은 더럽습니다. 살았을 때에도 사람들은 보기조차 싫어하였는데, 더구나 지금은 죽은 시체입니다. 어찌하여 천자들은 거기에 공양까지 하십니까?”

천자들은 그가 천상에 나게 된 인연을 자세히 설명하고 곧 가전연에게로 돌아갔다.

그 때 가전연은 여러 천자들을 위해 묘법을 설명하였다. 이른바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 법과, 욕심은 더러워 거기서 벗어 나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천자와 5백 권속들은 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어 천궁으로 돌아갔다.

그 때 거기 모인 대중들은 이 법을 듣고 각각 도를 얻었고, 나아가 4과를 얻었다. 그리고 모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고 경건히 예를 차리고 떠나갔다.

27.금천품(金天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큰 부자로서 재물과 보배가 한량없었고, 아들을 낳았는데 온몸은 금색이었다. 장자는 매우 기뻐하여 곧 잔치를 베풀고, 여러 관상쟁이를 청해 그 길흉을 점치게 하였다.

여러 관상쟁이는 아기를 안고 살펴보다가 기이한 상에 못내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름을 지어 수월나제바(修越那提婆)[진(晉)나라 말로는 금천(金天)이라는 뜻이다]라 하였다.

그 아이는 복덕이 매우 넉넉하였다. 그가 나던 날 집안에 한 우물이 저절로 솟아났다. 세로와 너비는 각각 여덟 자요, 깊이도 그와 같았다. 그 물을 길어 쓰면 사람 뜻에 맞아 옷이 필요하면 옷을 내고, 밥이 필요하면 밥을 내며, 금·은·보배 등의 일체 필요한 것을 원하여 그 물을 길으면 모두 뜻대로 얻을 수 있었다.

아이는 차츰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기예를 두루 통달하였다. 장자는 몹시 사랑하여 감히 그 뜻을 거스르지 못하였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내 아들은 얼굴이 단정하여 짝할 이가 없다. 기어코 이름 난 낭자를 가리되, 얼굴과 빛깔과 자태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금빛 몸이, 내 아들과 같은 인물을 구하리라.’

그리고는 삯꾼을 모집하여 두루 다니면서 구하게 하였다.

그 때에 염바국의 어떤 큰 장자는 딸을 낳아 이름을 수발나바소(修跋那婆蘇)[진(晉)나라 말로는 금강명(金光明)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단정하기 보통이 아니요, 온몸은 금빛으로 빛났으며, 살결은 곱고 부드러웠다.

그녀가 나던 날에도 여덟 자 우물이 저절로 생겼다. 그 우물도 갖가지 보배와 의복과 음식을 내었는데, 모두 사람 뜻에 맞았다. 그래서 장자는 생각하였다.

‘내 딸은 단정하고 사람 중에서도 꽃답고 아름답다. 꼭 어진 선비로서 빛나는 형색이 내 딸과 같은 이를 구해 혼인시키리라.’

그 때 그 여자 이름은 멀리 사위국에까지 퍼졌고, 금천의 이름도 그 여자집에 들렸다. 그래서 두 장자는 제각기 기뻐하여 곧 서로 사람을 보내어 혼인을 구해 결혼을 마쳤다.

사위국 장자는 며느리를 맞이하여 사위국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금천 집에서는 훌륭한 공양을 베풀고 부처님과 스님네를 청해 하루 동안 공양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청을 받고 그 집으로 가시어 공양하셨다.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거두시고는, 장자와 금천의 부부를 위해 묘법을 설명하여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금천 부부와 부모들은 그 자리에서 20억의 쌓인 죄악을 부수고 마음이 열려 수다원과(須洹果)를 얻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절에 돌아오셨다. 금천과 금광명은, 부모에게 그들이 출가할 것을 청하였다. 부모는 곧 허락하고 그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번 돌고는 도에 들어가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어서 오너라, 비구여” 하고 칭찬하시자, 그들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입혀져 곧 사문이 되었다. 그래서 금천은 비구들과 같이 있게 되었고, 금광명 비구니는 대애도(大愛道)에게 맡겨졌다.

그들은 차츰 교화를 받아 모두 아라한이 되어 3명(明)·6통(通)·8해탈(解脫) 등의 일체 공덕을 두루 갖추었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금천 부부는 본래 어떤 업을 지었기에 나면서부터 재보(財寶)가 풍부하고 온몸은 금빛이며 단정하기 제일이요, 모든 것을 내는 그 우물을 얻었습니까? 원컨대 세존께서는 자세히 설명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91겁 전에 비발시(毘鉢尸)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끼치신 법만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

그 뒤에 여러 비구들은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다가 어떤 촌락에 이르렀다. 부자 장자들은 비구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제각기 다투어 의복과 음식을 이바지하여 모자람이 없었다.

그 때 어떤 부부는 매우 빈곤하여 늘 생각하였다.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창고에 넘치는 재물과 보배는 헤아릴 수 없었는데, 지금은 빈곤이 극심하여 풀자리에 앉고 누우며, 옷으로 몸을 가리지 못하고 집에는 한 되 쌀이 없으니 얼마나 고생인가. 그 때에는 부자로 재물과 보배가 한량이 없었지만 이런 성중(聖衆)을 만나지 못하였더니, 지금은 이 분들을 만나게 되었으나 공양할 돈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슬피 울고 괴로워하면서 그 아내 팔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내는 그 남편이 우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이 맞지 않기에 그처럼 괴로워하십니까?’

남편은 대답하였다.

‘그대는 모르오. 지금 스님들이 마침 이 마을을 지나는데 부자 거사들은 모두 공양을 베풀고 있소. 그러나 우리 집은 빈곤하여 한 되 쌀이 없구료. 이 스님들에게 좋은 인연을 맺지 않으면 지금도 빈곤하지마는 후생은 더욱 괴로울 것이오. 그것을 생각하고 나는 우는 것이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아무리 공양하고자 한들 돈이나 보물이 없으니, 속절없는 생각뿐 소원은 풀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이어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옛 창고에 가서 뒤져 보십시오. 거기서 혹 재물을 얻으면 그것으로 공양하십시오.’

남편은 아내 말대로 옛 창고 안을 두루 뒤지다가 돈 한푼을 얻어 가지고 아내에게로 왔다. 그 때 아내에게는 거울 하나가 있었다. 둘은 마음을 모아 그것으로 보시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새 병에 깨끗한 물을 가득 담고, 돈을 그 병 속에 놓고 거울을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스님들에게 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였다. 스님들은 그들을 위해 그것을 받았다. 그 물로 각기 발우를 씻고 또 그 물을 마셨다. 이리하여 그 부부는 기뻐하면서 복을 지은 뒤에 병이 나서 목숨을 마치고는 저 도리천에 났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계속하여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가난한 사람으로 한 병의 물을 가져다 스님들에게 보시한 이들은 바로 지금의 이 금천 부부이니라. 이들은 전생에 한 푼의 돈과 한 병의 물과 거울을 가지고 보시하였으므로, 91겁 동안 세상에 날 때마다 태도는 단정하고 몸은 금빛이며 얼굴은 빛나고 뛰어나게 묘하여 견줄 데가 없었다. 그리고 그 때에 불법을 믿고 공경하였기 때문에 생사를 떠나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이여, 알아야 한다. 어떠한 복덕도 짓지 않아서는 안 된다. 저와 같이 가난한 사람으로써 조그만 보시로 말미암아 이처럼 한량없는 복의 과보를 받은 것이니라.”

아난과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부지런히 보시하여 복업을지을 마음을 내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중성품(重姓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나라에는 어떤 큰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한량없는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없어 늘 근심하면서 천지 신명에게 기도하여 아들을 구하였는데, 그 정성이 지극하고 돈독하였다. 마침 그 아내는 아이를 배어 달이 차서 사내를 낳았다. 아이는 단정하기가 세상에 드물었다. 부모와 친척들은 때를 가려 큰 강가에 나가 잔치를 베풀고, 모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즐거워했다.

그 부모도 아이를 데리고 모임에 나갔다. 아버지는 아이를 사랑하여 자리를 따라 아이를 업고 춤을 추었다. 아버지가 추고 나면 어머니가 받아 업고 추었다. 이렇게 자리를 돌며 춤을 추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차츰 강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정신이 어지러워지면서 아이를 꼭 잡지 못해 그만 놓쳐 물에 떨어뜨렸다. 이내 물에 들어가 두루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 때 그 부모는 아이를 잃고, 비통한 나머지 까무러쳤다가는 깨어나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복과 덕이 있어 마침내 죽지 않았다. 강 복판에 이르러 떴다 잠겼다 할 때에 어떤 고기가 그 아이를 집어 삼켰다. 아이는 고기 뱃속에 있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강 하류에 어떤 작은 마을이 있었고, 거기에는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도 아들이 없어 갖가지로 애써 구하였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다. 그는 항상 종을 시켜 고기를 잡아 팔게 하였고, 종은 그 값을 주인에게 바치기로 하였다. 종은 날마다 나가 고기 잡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그는 마침 그 아이를 삼킨 고기를 잡아 배를 갈랐다가 얼굴이 단정한 아이를 얻었다. 그는 기뻐하여 아이를 안고 가서 자기 주인에게 바쳤다. 주인은 아이를 보고 스스로 경사로이 여기면서 말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오래 전부터 천지 신명에게 기도하여 아이를 구하였다. 그 정성의 과보로 하늘이 내게 아이를 준 것이다.”

그리고는 아이를 거두어 젖을 먹여 길렀다.

그 윗마을의 부모는 아랫마을의 장자가 고기 뱃속에서 아이를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곧 그에게 가서 요구하면서 말하였다.

“이 아기는 우리 아이입니다. 우리는 강에서 아이를 잃었습니다. 돌려주기 바랍니다.”

그 장자는 대답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오래 전부터 아이를 구해 기도하였소. 이제 신명이 그 과보로 이 아이를 내게 준 것이오. 그대들이 잃어버린 아이는 지금 어디 있소?”

이렇게 다투었으나 끝이 나지 않아 왕에게 가서 그 판결을 구하였다.

두 집안에서는 제각기 주장하였다.

아이의 부모는 말하였다.

“이 아기는 우리 아이입니다. 우리는 아무 때 저 강에서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말하였다.

“나는 저 강에서 잡은 고기 뱃속에서 이 아이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내 아이요, 저 사람들이 낳은 아이는 아닙니다.”

왕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두 집안에 판결하였다.

“그대들 두 장자는 제각기 제 아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지금 어느 한 사람에게 준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둘이서 같이 기르다가 아이가 장성하거든, 각기 장가를 보내어 살림을 살게 하되, 두 군데서 따로따로 살도록 하라. 그리고 이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면 이 집에 속할 것이요, 저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면 저 집에 속할 것이다.”

두 장자는 모두 왕의 분부를 따랐다. 그래서 아이가 장성하자 두 며느리를 맞이하여 필요한 것을 모두 대어 주어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그 때에 그 아들은 두 부모에게 아뢰었다.

“저는 세상에 나면서부터 고난을 당하여, 물에 빠져 고기가 삼켰다가 죽음에서 겨우 살아났습니다. 지금 저는 지극한 마음으로 집을 떠나고자 합니다. 원컨대 부모님은 허락하여 주소서.”

두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허락하여 주었다. 그는 부모에게 하직하고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도에 들어가기를 구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잘 왔구나, 비구여” 하고 칭찬하셨다.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곧 사문이 되어, 이름을 중성(重姓)이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셨다. 그는 온갖 고통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중성 비구는 본래 어떤 업을 짓고 어떤 좋은 뿌리를 심었기에, 이 세상에 나서 물에 떨어져 고기가 삼켰지만 그래도 죽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우선 들으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먼 옛날 비바시(毘婆尸)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는 대중을 모아 미묘한 법을 연설하셨다.

그 때 어떤 장자는 그 모임에 와서, 부처님께서 보시하는 복과 계율을 가지는 복의 큰 법을 연설하시는 말씀을 듣고, 못내 기뻐하고 믿는 마음이 불꽃같이 일어났다.

그는 곧 그 부처님께 3귀의(歸依)를 맹세하고 살생하지 않는 계율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그 부처님께 돈 한 푼을 보시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 날 때마다 복을 받아 재물과 보배를 마음대로 쓰되 모자람이 없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계속하여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장자는 바로 지금의 중성 비구니라. 그는 그 때에 부처님께 돈 한 푼을 보시하였으므로 91겁 동안 항상 재물이 많았고, 금세에 와서는 두 집 부모가 필요한 것을 다 이바지하였으며, 살생하지 않는 계율을 받았기 때문에 물에 떨어져 고기가 삼켰어도 죽지 않았고, 3귀의를 맹세하였으므로 지금 나의 세상을 만나 청정한 교화에 목욕하고 아라한의 도를 얻었느니라.”

그 때에 아난과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선행을 닦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존중하였다. 그리고 기뻐하면서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29.산단녕품(散檀寧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1천 2백50인의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그 나라의 5백 명 거지 아이들은 항상 부처님을 의지하고 스님들을 따라 걸식하면서 살아갔다.

여러 해를 지나자 싫증이 나서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스님들의 은혜로 목숨을 이어가긴 하지만 괴로운 일이 아직 많다.”

그리고 모두 생각하기를, ‘차라리 부처님께 청하여 세속을 떠나 부처님께 돌아가자.’ 하고, 그들은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만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저희들은 하천한 집에 태어났사오나 거룩하신 은혜를 입어 목숨을 부지해 왔습니다. 이미 특별한 보호를 받았는데 다시 집을 떠나고자 합니다. 혹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여 주시겠습니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거지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법은 청정하여 귀천이 없느니라. 그것은 마치 깨끗한 물이 온갖 더러운 것을 씻되, 귀하거나 천하거나 곱거나 밉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를 가리지 않으므로 물에 씻기면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또 불이 가는 곳에는 산이나 들이나 석벽이나, 천지에 있는 일체 만물로서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거기에 닿는 것은 타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또 우리 법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남녀 노소와 빈부와 귀천이 마음대로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여러 거지 아이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믿는 마음이 더욱 굳어져 정성을 기울여 부처님을 향하여 도에 들어가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 “잘 왔구나, 비구들이여”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의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는 몸에 입혀져 사문의 형상이 비로소 갖추어졌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들은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리고 온갖 번뇌가 없어져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에 그 나라의 여러 귀족과 장자와 백성들은 부처님께서 거지 아이들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교만한 마음이 생겨 수군거렸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 하천한 거지들을 스님들 자리에 참여시켰을까? 우리가 혹 복업을 닦기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공양할 때에, 어떻게 저 하천한 무리들을 우리 자리에 함께 앉게 하여 우리 밥 그릇을 잡게 할까?’

그 때 기타() 태자는 공양을 베풀고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게 되었다. 그는 사환을 보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리고 곧이어 아뢰었다.

“그 거지 아이들을 제도하여 만든 비구는 청하지 않습니다. 부디 데리고 오시지 마소서.”

부처님께서는 그 청을 받으셨다. 이튿날 공양 때가 되어 부처님과 스님들은 그 집으로 갈 때가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거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청을 받았으나 너희들은 그 차례에 들지 않았다. 너희들은 지금 저 울다라월(鬱多羅越)로 가서 저절로 나서 익은 멥쌀을 가지고 그 집으로 돌아와 차례대로 앉아 그것을 먹으라.”

거지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아라한의 신통으로 그 세계로 갔다. 거기서 제각기 그 멥쌀을 따서 발우에 가득 담아 돌아올 때에 위의를 바로 하고 차례를 따랐다. 마치 기러기가 나는 것처럼 허공을 타고 기타 태자의 집으로 와서 차례대로 앉아 그것을 먹고 있었다.

그 때 태자는 그 비구들의 의젓한 거동과 신통의 복덕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거룩한 큰 스님네들은 위의가 의젓하고온갖 상을 갖추었습니다. 어디서 어디로 왔는지 참으로 공경할 만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이 분들의 전후 내력을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가 알고 싶으면 잘 듣고 생각하라. 나는 그대를 위해 설명하리라. 이 비구들은 바로 그대가 어제 청하지 않은 이들이다. 나와 제자들이 아까 태자의 청을 따라 오려고 할 때에 그대가 이 비구들은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울다라월로 가서 저절로 된 멥쌀을 가지고 와서 먹었느니라.”

태자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꾸짖었다.

“왜 나는 어리석어 밝고 어두움을 분별하지 못하였던가.”

그리고는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 공덕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거지 아이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하천하였는데, 오늘 부처님의 청정한 교화를 받고 가장 넓은 은혜를 입어 현세에서는 안락한 복을 받는 몸이 되었고, 또 영원한 열반의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늘 세상에 나오신 까닭은 다만 이 무리들을 위하심이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알 수 없습니다. 이 무리들은 지나간 세상에 어떤 선행을 닦고, 어떤 공덕을 심었기에 지금 부처님을 만나 유다른 은혜를 입었으며, 또 어떤 허물을 지었기에 나면서부터 거지로 살면서 그처럼 고생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말씀하여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알고자 하거든 잘 들으라. 나는 그대를 위해 그 내력을 자세히 설명하리라.” “예, 잘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한량없고 수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에 바라내(波羅柰)라는 큰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에 이사(利師)[진(晉)나라 말로는 선산(仙山)이라는 뜻이다]라는 산이 있었다.

옛날에 여러 부처님이 모두 그 산에 계셨고, 부처님이 없을 때에는 벽지불이 있었으며, 다시 벽지불이 없을 때에는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지고 신선의 도를 배우는 무리들이 거기 살아 한 번도 빈 때가 없었느니라.

그 때에는 벽지불 2천 명이 늘 그 산에 살고 있었다. 그 때 그 나라에 화성(火星)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나쁜 재앙이 있을 징조였다. 그 별이 나타난 뒤로 12년 동안은 그 나라에는 가뭄이 들고 비가 내리지 않아 곡식을 심을 수가 없어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이 때 그 나라에 산타녕(散寧)이라는 한 장자가 있었다. 그 집은 큰 부자로서 재물과 곡식이 한량없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공양을 베풀어 여러 도사에게 이바지하였다.

그 때 1천 도사들은 그 장자 집으로 가서 공양을 청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저 산에 살고 있습니다. 마침 나라에 가뭄이 들어 걸식하였으나 얻기 어려웠습니다. 만일 장자가 늘 우리를 공양하겠다면 우리는 여기서 살겠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 때 장자는 곧 광지기[藏監]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창고에 있는 곡식으로 이 대사들을 늘 공양할 수 있겠느냐? 있다면 나는 늘 청하리라.’

광지기는 말하였다.

‘곧 청하십시오. 창고에 있는 곡식은 공양하기에 풍족합니다.’

장자는 곧 1천 도사를 청하여 음식으로 공양하였다. 그 남은 1천 도사도 그 장자의 집에 가서 공양을 구하였다. 장자는 또 광지기에게 물었다.

‘내가 맡은 창고 곡식은 얼마나 되느냐? 또 1천 사람을 공양하려 하는데 될 수 있겠느냐?’

광지기는 대답하였다.

‘제가 맡은 곡식으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공양하고 싶으시면 곧 청하십시오.’

장자는 곧 도사를 청하고 5백 명 하인을 시켜 음식을 만들라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음식 일을 맡아 보니 싫증이 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이처럼 고생하는 것은 모두 저 거지들 때문이다’

그 때 장자는 늘 한 사람을 시켜 공양 때가 된 것을 도사들에게 알렸다. 그 하인은 개를 한 마리 길렀는데 날마다 그가 갈 때에는 그 개도 따라갔다. 어느 날 그 하인이 도사들에게 가서 공양 때가 된 것을 알리는 것을 잊자, 그 개는 혼자 늘 가던 곳으로 가서 여러 대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짖었다. 여러 도사들은 그 개 짖는 소리를 듣고는 청하러 온 줄을 알고, 그 집으로 가서 법답게 공양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장자에게 아뢰었다.

‘지금 비가 올 것이니 곡식을 심도록 하시오.’

장자는 그 말을 듣고 곧 일꾼들을 시켜 농구를 가지고 부지런히 밭을 갈고심게 하여 보리와 밀 따위의 온갖 곡식을 모두 심었다. 몇 시간이 지나 심은 곡식은 모두 변하여 표주박이 되었다. 장자는 그것을 보고 괴상히 여겨 대사들에게 물었다.

대사들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걱정마시오. 그저 부지런히 공을 들이고 때때로 물을 대시오.’

장자는 그 말대로 부지런히 물을 대었다. 그 뒤로 표주박들은 더욱 자라고 번성하여 모두 익었다. 장자가 그것을 쪼개니, 심었던 곡식을 따라 깨끗하고 좋은 보리와 밀이 그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장자는 기뻐하여 온 집안에 쌓으니, 그 집에 가득 차고 넘쳤으며, 다시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모두 그 은혜를 입었다.

그 때에 음식을 만들던 5백 사람은 서로 이야기하였다.

‘지금 얻은 이 곡식의 과보는 다 저 대사들의 은혜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에게 나쁜 말을 하였던가.’

그들은 그 길로 대사들에게 가서 참회하고 용서를 청하였다. 그들은 참회를 마치고 다시 서원을 세웠다.

‘원컨대 우리들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성현을 만나 해탈을 얻게 하소서.’

그들은 도사들을 욕한 과보로 5백 세상 동안 언제나 거지가 되었고, 그것을 참회하고 다시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지금 나의 세상을 만나 제도를 받게 되었느니라.

태자여, 알아야 한다. 그 때의 큰 부자 산단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내 몸이요, 그 광지기는 바로 지금의 저 수달 장자이며, 날마다 가서 때를알린 사람은 바로 지금의 우전왕(優塡王)이요, 그 때의 그 개는 짖었기 때문에 태어나는 세상마다 좋은 음성을 얻었으니 저 미음(美音) 장자이며, 그 때에 음식을 만들던 5백 사람은 지금의 이 5백 아라한이니라.’

그 때 기타 태자와 모인 대중들은 그 신변을 보고 부처님 공덕에 감격하였다. 그래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초과(初果)와 나아가서는 4과(果)까지 얻은 이도 있었고, 오로지 도사행을 닦는 이도 있었으며, 마음을 내어 불도를 구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하여 제각기 정진하여 본마음을 구하였다. 그리고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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