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왕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 하셨을 때의 일이다.
인도에 금색왕(金色王)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그는 아주 부유한 왕으로 많은 금전과 곡식 외에도 금과 은, 진주나 산호, 흰 루비 같은 보배가 있었고 거기에 코끼리나 말, 소가 축사(畜舍)에 가득차 있었다.
그 서울은 네우곤성(城)이라고 해서 동서가 五00킬로, 남북이 二00킬로가 되는데 그 안에 백성들이 빈틈도 없이 모여서 모두 풍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 그 주위에는 수 백개의 마을이 흩어져 있고 거기에는 많은 백성들이 모두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 밖의 산과 강에는 큰 성이 세워져 성주(城主)를 중심으로 많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또 왕은 一만팔천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궁중에는 二천명의 궁녀가 있었다.
금색왕은 이처럼 부유할 뿐만 아니라 아주 어진 왕이었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것을 널리 발표했다.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고 왕의 덕을 칭송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 나라는 더욱 태평해지고 백성은 날이 갈수록 부유해졌다.
그러나 이처럼 융성한 금색왕의 나라에도 마침내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하루는 하늘의 한모퉁이에 불길한 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흉조(凶兆)를 보고 벌벌 떨었다. 왕은 당장 천문(天文)에 능한 바라문을 불러 그 별을 점치게 했더니 바라문은 이 별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이 별이 나타난 이상은 十二년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금색왕은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고 소리를 내어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이나라 백성들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인가.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을 편안히 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하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총명한 금색왕은 울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눈물을 닦고 조용히 이 난관을 극복할 방법을 생각했다.
(넉넉한 사람은 十二년간 먹고도 남을 곡식을 저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一년간 먹을 곡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전 인도의 곡식을,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관공서의 창고에서도 나라의 창고에서도 모두 내놓아 한군데 모아서 그 양을 재고 또 전 인도의 인구를 잘 조사해서 그 수를 알아 그 곡식을 十二년간 그 인구에 평균하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하자)
왕은 이러한 방책을 세워서 대신들을 불러 전 인도에 있는 곡식의 양을 검사하도록 명령했다. 궁중의 많은 관리들이 사방으로 나가 모든 도시와 시골, 관공서의 창고나 개인의 창고를 가리지 않고 일체의 곡식의 수량을 조사해서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당장 그 곡식을 한군데 모으도록 명령했다.
이래서 큰 창고가 세워지고 전 인도의 곡식은 전부 이 창고에 저장 되었다. 왕은 다음에 전국에서 계수(計數)에 능한 자를 모집해서 전인도의 인구조사를 명령했다. 인구조사가 끝나자 왕은 그 곡식을 자기를 비롯하여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똑같이 분배하였다.
불길한 별이 예언했듯이 十二년간은 비 한방울 오지 않고 곡식은 한톨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十년간은 왕의 어진 시책으로 굶주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十一년째의 일월에 들어서자 이곳 저곳에서 굶주림을 호소하는 자가 나왔다.
곡식은 점점 부족하여 왔던 것이다. 그해 十一월에는 굶주리는 자가 더욱 늘어나고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해 연말에는 전 인도의 창고는 완전히 없어지고 창고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다만 반말쯤의 밥이 왕궁의 부엌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침 그 무렵 인도에 한 선인(仙人)이 있었다. 이 선인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도를 깨우치고 있었다.
하루는 이 선인이 살고 있는 숲속에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들어와서는 서로 음욕(淫慾)을 태우는 것을 보고,
(아아, 이 얼마나 더러운 인간들인가, 그 품에 안기어 젖을 먹은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이런 짓을 하다니 어느 세상에 또 이런 추잡한 일이 있겠는가, 어미, 아들의 분별도 모르고 짐승과 같은 인간에게 도를 깨우쳐 주다니. 이제부터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수업(修業)에만 열중하자.)
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 밑에 앉아 일편단심으로 도를 닦기 시작했다. 그는 그 육체와 육체에 닿아서 일어나는 망념(妄念)을 관찰하고 마침내 육체와 망념을 버리고 맑은 깨우침의 심경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는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에서 괴로움은 생긴다.
그러므로 사랑을 버리고
홀로 즐길지어다.
무소의 뿔이 하나인 것처럼』
그는 수도를 끝내고 생각하였다.
(자기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그러나 한사람도 구원받은 사람은 없다. 이제는 사람을 구원해 주어야겠다. 우선 자기에게 음식을 바치는 공덕(功德)을 누군가에 베풀어 주어야겠다.)
도통을 한 선인이 천리안(千里眼)을 가지고 보니 인도에는 한톨의 곡식도 없고 다만 금색왕의 부엌에 밥이 반말 정도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금색왕에게 이 공덕을 베풀어 주어야겠다.』
하고 그는 도통한 재주로 하늘을 날아 네우곤성에 있는 금색왕에게로 향하였다.
그 때 금색왕은 五백명의 대신과 함께 누각에 올라 그 선인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중의 한 대신이 멀리 선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다른 대신에게 말했다.
『저 쪽을 보십시오. 저 쪽을 보십시오. 빨간 날개를 가진 샤코니새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대신이 그 말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잘 보십시오. 저것은 빨간 날개를 가진 새코니새가 아닙니다. 저것은 나찰(羅刹)의 식력악귀(食力惡鬼)입니다. 우리들을 잡아먹으러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두 대신이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두 손으로 눈을 부비고 잠시 바라보고 있더니 대신들에게 말했다.
『저것은 빨간 날개의 샤코니새도 아니고 우리를 잡아먹으러 오는 나찰도 아니다. 우리를 구하러 선인이 이리로 오고 있다.』
잠시 후에 이 선인은 금색왕의 누각 위에 도착했다. 금색왕은 일어서서 그를 맞아 그의 발에 무릎 꿇어 절하고 훌륭한 좌석을 만들어 그곳으로 안내했다. 선인은 그 자리에 앉았다.
금색왕은 공손하게 선인을 보고 말했다.
『어떠한 일로 이곳에 납시었습니까.』
선인은 대답했다.
『임금이여, 나는 먹을 것을 찾아 이 곳에 왔노라.』
왕은 이 말을 듣자 눈물을 흘리고,
『어찌하여 나는 지금 이렇게 가난뱅이가 되었는가, 옛날에는 전 인도의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든 내가 이제는 이 선인에게 밥 한끼를 대접하지 못하다니.』
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이 때 이 성안에 살고 있는 한 천녀(天女)가 왕에게 다음과 같은 노래를 속삭여 주었다.
『괴로움이란 무엇인고
가난이니라
괴로움의 무게는
가난보다 더한 것이 없네.
그러나 가난과
두 개의 괴로움은 다른 것이 아니네.
비록 죽음의 괴로움을 받을지라도
가난으로 살고지라.』
왕은 이 노래를 듣자 결심을 하고 식량계(食糧係)의 주임을 불러,
『밥이 있는가, 이 선인에게 공양(供養)을 드릴까 하는데.』
하고 물었다.
주임은 이에 대답하여,
『임금님, 알고 계시겠지만 전 인도에서 먹을 것은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다만 임금께서 드실 단 한끼의 밥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 밥을 먹지 않으면 당장 죽어버린다. 내가 그 밥을 먹으면 당분간은 목숨이 유지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먹든 먹지 않든 죽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잠시 동안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서 무엇이 될 것인가, 지금 모든 덕을 갖춘 선인이 나를 찾아와 주었다. 그를 헛되이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
왕은 이렇게 결심하고 많은 대신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이 금색왕의 최후의 보시를 기꺼이 찬성해주기 바란다. 제발 그 공덕으로서 전 인도의 백성이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가난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원을 드리는 왕은 밥을 선인에게 바쳤다.
선인은 오른손으로 이것을 받아들고 다 먹어버리자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하늘을 날아가 버렸다.
금색왕을 비롯한 많은 대신들은 손을 모아 선인이 날아가는 모습에 절을 했다.
선인이 가버리자 금색왕은 많은 대신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각자 집에 돌아가 처자와 함께 굶어죽도록 하게.』
그들은 이 말을 거절하고,
『임금님, 우리들은 임금님과 더불어 즐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임금님을 버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금색왕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이내 눈물을 닦고 여러 신하를 향하여,
『자네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주게. 이 궁중에서 굶어 죽어서는 안되네.』
신하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울었다.
그러나 눈물을 닦고 일제히 왕 앞에 나와 그의 발에 무릎 꿇어 절하고는 일제히 손을 모아 왕에게 말했다.
『제발 이 소원만은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들은 오늘 아침 최후로 임금님을 뵙고 그러고 죽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의 최후의 수라상을 생각지도 않은 선인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임금님과 함께 죽는 것만은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사방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전 인도는 되살아난 듯이 파릇 파릇 해졌다. 그러자 하늘에서 보리와 콩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또 과일과 깨도 비오듯이 쏟아졌다.
이것을 본 금색왕은 춤을 추듯이 기뻐하여 대신들을 돌아다 보고 말했다.
『보라, 보라, 오늘 아침 겨우 한끼의 보시를 했는데 이와 같은 보답이 왔다.』
보시에 대한 보답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七일간이나 콩과 깨, 보리와 밀, 쌀과 강냉이가 비오듯이 하늘에서 쏟아져 왔다. 그러고 그다음 七일간에는 소와 양의 젖으로 만든 젓술의 비가 오고, 그다음 七일간에는 기름의 비가 오고, 그다음 七일간은 돈의 비가 오고 그 다음 칠일간에는 옷감의 비가 오고 그 다음 七일간에는 금과 은, 유리와 수정, 진주와 마노와 샤코 등 칠보(七寶)의 비가 왔다.
목숨을 내 던진 금색왕의 단 한끼의 보시는 전 인도의 백성을 오랜 가난의 괴로움으로부터 구해준 것이다.
그 때의 금색왕은 지금은 석가모니이다.
<金色王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