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생왕(頂生王)의 영화(榮華)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인간의 수명이 끝이 없었던 시대에 난센브주(洲)에 프샤다라는 왕이 있었다. 하루는 왕의 머리꼭지에 부스럼 같은 살덩어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솜과 같이 부드럽고 가는 털실로 짠 천 같이 번들 번들한 것이었다.
그것이 점점 무르익더니 마침내 터져서 그 안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몸은 금색으로 눈부시고 머리에 선문(旋文)이 있고, 넓고 반듯한 이마, 가는 눈썹, 높고 곧은 코 등 윤곽이 단정하고 조화가 잡힌 대장부의 상을 한 사내아이였다.
이것을 본 궁녀들은 젖이 저절로 넘쳐흘러서,
『제가 태자를 길러 모시겠습니다.』
하고 다투어 말했다. 왕의 머리 꼭지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이 아이는 정생(頂生)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성장하여 태자가 되자 세계 만유(漫遊)의 길에 올랐다. 그가 여행을 떠난 후에 부왕인 프샤다라는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왕은 임종이 가까워짐을 알고 신하를 모아 놓고 태자를 불러 즉위(卽位)의 대전(大典)에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신하는 왕명을 받들어 곧 사신을 보내서 태자의 뒤를 쫓게 하여 부왕의 명령을 전하도록 했다. 그 사신이 출발하자 곧 왕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저승으로 떠났다. 이 흉보를 전할 두 번째 사신이 태자에게 파견되었다.
태자는 그들의 소식을 듣고,
『부왕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달려간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고 말하고 다시 세계 만유를 계속하려고 했다.
그래서 중신들이 손수 태자를 찾아야 즉위의 대전을 올리기 위해 빨리 귀국할 것을 아뢰었다. 그러나 태자는,
『왕위는 이어받겠다. 그러나 여기서 즉위식을 올려주기 바란다.』
하고 말하고 귀국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은,
『즉위의 대전을 올리려면 여러 가지 설비가 필요합니다. 사자 가죽의 보좌(寶座)와 왕관 그리고 명주로 만든 포장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제발 궁중으로 돌아가셔서 즉위의 대전을 올리도록 부탁드립니다.』
하고 거듭 귀국할 것을 간청했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이곳에 갖추어질 것이다.』
라고 말하며 대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태자에게는 네브카라는 야차(夜叉)가 그림자 따르듯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어서 이 야차는 태자의 말을 듣자마자 신통력(神通力)을 가지고 왕관과 사자좌와 포장, 그리고 궁성도 시가지도 마을도 모두를 그대로 태자 앞으로 운반해 오고 말았다.
태자는 가만히 있으면서 궁성에 돌아온 셈이다. 이것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은 태자의 이 불가사의한 힘에 놀라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대신들은 명주로 만든 포장을 가지고 태자를 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태자는 이것을 중지시키고,
『나는 사람이 짠 명주 포장을 두르고 싶지 않다. 하늘 나라의 명주를 둘러야 한다.』
태자가 이렇게 말하자 하늘에서 이상하게도 명주 포장이 내려왔다. 그래서 대신들은 그것으로 태자를 둘러주었다. 사람들은 이 불가사의한 대 신적을 보고 더욱 놀랐다.
그러나 정생왕은 보통 왕이 아니라 위대한 혼령의 힘에 의해서 전 세계를 통일하도록 운명지어진 전륜성왕(轉輪聖王)이었다.
그가 왕위에 오르자 일곱 가지 보물이 차례로 갖추어졌다. 왕은 또 옥녀보(玉女寶)라는 보물로 천명의 아들을 얻었다. 이 아들들은 모두 용감하여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륜성왕의 위덕(威德)은 완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하루는 정생왕이 백성의 생활을 시찰하기 위해서 왕성을 나와 시골을 돌아다녔다. 그는 백성들이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신하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임금님, 저 사람들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그리고 곡식을 얻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나는 성왕이다. 사람이 밭을 갈고 오곡이 익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늘의 종자가 있어서 자연히 익는 것이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물일곱가지의 종자가 하늘에서 쏟아졌다. 왕은 백성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힘인가.』
백성들은 대답했다.
『임금님의 힘이올시다. 또 우리들의 힘이기도 합니다.』
또 한동안 가니 농부들이 목화씨를 뿌리고 있었다. 왕은 신하에게 물었다.
『저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임금님, 저 사람은 목화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목화씨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거기에서 솜을 얻어서 옷을 짭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나는 성왕이다. 어찌 인간이 심은 솜을 기다리겠는가, 하늘에는 불가사의한 목화씨가 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상한 목화씨가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졌다. 왕은 농부에게 물었다.
『인간은 누구의 힘인가.』
농부는 대답해서 말했다.
『임금님의 힘이올시다. 또 우리들의 힘이기도 합니다.』
또 한동안 가니 농부가 솜을 틀고 있었다. 이것을 본 왕은 신하에게 물었다.
『저 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임금님, 저 사람은 솜을 틀어 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실로 옷을 짜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나는 성왕이다. 어찌 인간의 조작을 기다리겠는가 하늘에는 이상한 실이 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이러한 실이 쏟아져 내려왔다. 왕은 농부에게 말했다.
『이것은 누구의 힘인가.』
『임금님 힘이올시다. 또 우리들의 힘이기도 합니다.』
또 한참을 가니 농부가 베를 짜고 있었다. 왕은 이것을 보고 신하에게 물었다.
『저 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임금님, 저 사람은 베를 짜고 있습니다. 저렇게 해서 천을 짜는 것입니다.』
왕은 말했다.
『나는 성왕이다. 어찌 사람이 짠 천을 사용하겠는가, 나에게는 이러한 하늘의 옷이 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여러 가지 옷이 쏟아져 왔다. 왕은 농부에게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힘인가.』
왕은 궁성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내 힘을 백성들은 아직도 모른다. 나는 이미 이 난센브주를 다스리고 일곱 개의 보물을 가지고 천명의 아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 힘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겠다. 아무쪼록 칠일간만 이 궁중에만 금화(金貨)의 비가 오도록 해다오.>
왕이 이렇게 소원하자 하늘에서 금화의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궁성 밖에는 한 푼도 오지 않았다. 왕은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이것은 누구의 힘인가.』
그들은 한결 같이 대답했다.
『임금님, 이것은 오로지 임금님의 힘이올시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먼저 너희들의 힘이기도 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왕궁에만 오지 밖에는 한 푼도 오지 않고 있다. 너희들에게는 힘이 없다. 나에게만 힘이 있는 것이다.』
정생왕은 이렇게 하여 오랫동안 이 난센브주를 통치하게 되었다.
하루는 정생왕이 야차 네브카에게 말하기를,
『난센브주의 밖에 다른 주(洲)가 있다면 나는 그것도 통치하고 싶다.』
네브카는 그 말에 대답해서 말했다.
『왕이여, 수미산(須彌山)동쪽의 큰 바다에 쇼신이라는 자는 큰 반달 모양의 주가 있습니다. 인구는 많고 생활은 넉넉하며 국토는 비옥하고 인간들은 아름답습니다. 이 주에 가서 통치하심이 어떻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자기는 이미 이 난센브주를 통치하여 일곱 가지의 보물과 천명의 아이들이 있고 칠일간이나 궁중에 금화(金貨)의 비가 오게 했다. 이 이상 이 주에서 할 일은 없다. 동쪽의 쇼신주에 가서 통치를 하자.)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왕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 일곱 가지 보물과 천명의 아이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十八만의 정병(精兵)이 그 뒤를 따르고 하여 순식간에 쇼신주에 도착했다. 왕은 이 주의 백성들에게 갖가지 선정을 베풀고 오랫동안 통치를 계속했다.
하루는 정생왕은 또 야차 네브카에게 물었다.
『쇼신주 외에 또 내가 모르는 주가 있지 않겠는가?』
네브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수미산의 서쪽 큰 바다에 고카라는 큰 주가 있습니다. 그곳도 풍요하며 아름다운 주입니다. 그곳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은 또 일곱 가지 보배와 천명의 아들들과 팔십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하늘을 날아 서쪽 고카에 이르러 국토를 풍성하게 하고 백성을 구하며 오랫 동안 통치를 계속했다.
또 어느날 왕은 네브카를 불러 물었다.
『고카 외에 또 주가 있지 않겠는가.』
네브카는 대답했다.
『수미산의 북쪽 큰 바다에 쿠루라는 큰 주가 있습니다. 거기는 또한 훌륭한 곳이므로 그것으로 가서 통치하심이 어떨까요.』
왕은 당장에 七가지 보물과 천명의 아들들, 八十만의 군대를 이끌고 공중을 날아 북(단)쿠루주로 향했다. 일행이 수미산 곁을 나르고 있으니 멀리 저쪽 바다 가운데 새하얀 것이 보였다. 왕은 네브카를 불러 그게 무엇인가 물었다.
『저것은 북쿠루주 사람들이 먹는 향기 좋은 볍씨입니다. 빛깔이 새하얗고 향기가 좋습니다. 그것은 밭을 갈고 심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히 생겨난 것입니다. 벼의 길이는 한자 정도입니다. 저 주의 사람들은 그것을 주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임금님도 그곳에 가시면 저 벼를 잡수시게 됩니다.』
왕은 야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잠시 더 가니 수미산 북쪽에 아름다운 꽃이 가득 핀 큰 나무가 보였다.
왕은 또 네브카에게 물었다.
『저것은 북쿠루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카루하에라는 나무입니다. 저 나무에서는 파랑색, 노랑색, 빨간색, 흰색의 이상한 옷이 열립니다. 저 주의 사람들은 누구나 옷이 필요하면 저 나무 밑에 가서 섭니다. 그러면 자연히 가지가 아래로 뻗치면서 옷이 열립니다. 임금님도 저 곳에 가시면 그 옷을 입으시게 됩니다.』
왕은 네브카에게 들은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일행은 이렇게 하여 북쿠루주에 도착했다. 왕은 이곳에서도 또 백성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번성케 하여 오랫 동안 통치를 계속했다.
정생왕은 이와 같이 수미산의 사방에 있는 네 개의 큰 주를 정복해버렸다. 이리하여 인간 세계는 그에 의해서 통일되었다.
어느날 왕은 네브카를 불러 물었다.
『또 내가 가서 통치할 곳이 없겠는가?』
네브카는 대답했다.
『대왕님, 이 지상에서는 왕이 통치하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천계()가 남아 있습니다. 천계는 수명도 길고 쾌락도 많으며 훌륭한 누각과 아름다운 화원이 있습니다. 가서 천계를 정복하십시오.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습니다.』
네브카의 지도에 따라 천계의 정복을 결심한 정생왕은 일곱 가지 보물과 아들들 그리고 八十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수미산의 기슭을 일곱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개의 금산()이었다. 일행은 먼저 제일 바깥쪽에 있는 니민다라산에 날아 올라갔다. 이 산은 순금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산으로 사인의 천왕(天王)과 많은 천인(天人)이 살고 있다. 정생왕은 이곳에 머물러 오랫 동안 이 산을 통치했다.
다음에 왕 일행은 이 산을 떠나 향수의 바다를 뛰어넘고 제 二의 금산인 비나타케산에 갔다. 이곳에도 단 다섯명의 천신과 많은 천인들이 살고 있었다. 왕은 이곳에 머물러 몇만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이 산을 지배했다.
다음에 또 왕 일행은 이 산을 떠나 다시 향수의 바다를 건너서 제 三의 금산인 메니산에 갔다. 이곳에도 단 四인의 천신과 많은 천인이 살고 있었다. 왕은 몇만년이란 오랜 동안 이곳에 머물러 그 산을 통치했다.
다음에 또 왕 일행은 이 산을 떠나 다시 향수의 바다 위를 날아서 제四의 금산인 젠켄산에 갔다. 이곳에도 단 四명의 천신과 많은 천인들이 날고 있었다. 왕은 몇만년이란 오랜 동안 이 산에 머물러 지배했다.
다음에 또 왕 일행은 이 산을 떠나 다시 향수의 바다를 날아서 제 五의 금산인 카데라쿠산에 갔다. 이곳에서 단 四명의 천신과 많은 천인이 살고 있었다. 왕은 수만년이란 오랜 세월을 이 산에 머물러서 지배했다.
다음에 또 왕 일행은 이 산을 떠나 다시 향수의 바다를 건너서 제 六의 금산인 지시루 산에 갔다. 이곳에도 또 四명의 천신과 많은 천인들이 살고 있었다. 왕은 몇만년이란 오랜 세월을 이 산에서 지배했다.
다음에 또 왕 일행은 이 산을 떠나 다시 향수의 바다를 건너서 제 七의 금산인 지소오산에 갔다. 이곳에도 또 四명의 천신과 많은 천인이 살고 있었다. 왕은 이곳에 머물러 몇만년이란 오랜 동안 이 산을 지배했다.
수미산을 둘러싼 일곱 개의 금산은 이 지소오산이 끝이었다. 이 산에 서서 저 쪽을 보니 끝없이 넓고 크며 비길데 없이 아름답고 엄숙한 수미산이 향수의 바다속에 의젓이 솟아 있었다.
물위에 솟아 있는 것이 八만유순(由旬), 물속에 잠긴 것이 八만유수, 사방이 각 八만유순, 주위가 三十二만유순, 황금의 대지(大地)에 네 가지 보물로 되어있는 대 수미산의 모습은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동쪽 면은 수정으로 되어 있고 서쪽 면은 백은(白銀)으로, 북쪽 면은 황금으로, 남쪽 면은 유리로 되어 있다. 이 네 개의 면(面)사이, 곧 산의 사각에 네 개의 봉오리가 있다. 각각 그 폭이 백二十五유순, 높이가 四유순 반, 둘레가 五백유순인데, 동남쪽 봉오리는 유리로 되어 있고 서남쪽 봉오리는 수정, 서북쪽 봉우리는 황금, 동북쪽 봉우리는 백은으로 되어 있다. 네 개의 봉우리에는 각각 한 사람의 금강야차(金剛夜叉)가 살고 있다.
지쌍산(持雙山)을 정복한 정생왕은 이 수미산을 정복하기 위하여 일곱 가지 보물과 천명의 아들들과 八十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향수의 바다를 날아서 수미산의 기슭에 도착했다. 많은 용왕들은 왕의 전위(前衛)를 가로막아 전진을 시키지 않았다.
왕은 주병신(主兵神)을 불러,
『왜 전진하지 않는가.』
하고 묻자 주병신은,
『임금님, 용왕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용왕은 짐승들이다. 우리의 적이 아니다. 모두들 우리들의 안내자가 되라.』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많은 용왕은 왕의 전위를 안내하여 전수천왕이 있는 곳으로 왕의 일행을 안내했다.
전수천왕은 용왕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은 무슨 일로 나에게로 달려왔는가?』
『인간 세계에 정생왕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 정생왕이 지금 천계에 왔기 때문에 안내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전수천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왕의 전진을 가로 막았다.
왕은 주병신을 돌아다 보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전진하지 않는가.』
주병신은,
『임금님, 전수천왕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 전수천왕도 일행의 안내자가 되라.』
이 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수천왕의 태도는 일변하여 일행을 이끌고 지만천왕(持曼天王)에게로 가자 지만천왕은 견수천왕을 보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로 달려 왔는가?』
『인간계에 정생왕이란 왕이 있습니다. 그 왕이 이번 천계를 찾아왔기 때문에 제가 안내하여 왔습니다.』
하고 견수천왕이 대답했다.
그러나 지만천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왕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왕은 주병신을 돌아다 보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전진하지 않는가?』
할 수 없이 주병신은 대답해서 말했다.
『임금님, 지만천왕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지만천왕은 안내자가 되라.』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만천왕은 태도를 일변해서 왕의 일행을 상교천왕(常僑天王)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상교천왕은 지만천왕을 보고 말했다.
『무슨 일로 나에게 달려왔는가?』
『인간계에 정생왕이란 왕이 있습니다. 이 왕이 이번 천계에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 안내하여 모셔왔습니다.』
그러나 상교천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왕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왕은 주병신을 돌아다 보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전지하지 않는가?』
주병신을 그 말에 답하기를,
『상교천왕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상교천왕도 안내자가 되라.』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교천왕의 태도는 일변하여 왕 일행을 사대천왕(四大天王)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사대천왕은 상교천왕을 보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로 달려왔는가?』
『인간계에 정생왕이란 왕이 있습니다. 이 왕이 이번 천계에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 안내하여 모셔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대천왕은 서로 협의한 결과,
『이 인간의 대왕은 위대한 복덕(福德)과 크나큰 명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은 이 왕에 대항 할 수는 없다.』
라고 뜻이 모아져 곧장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뜻을 전했다. 제석천왕도,
『이 위대한 복덕과 크나큰 명성을 갖추고 있는 대왕에게 대항할 수는 없다.』
그 말하고 이상한 보물을 들고 마중을 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수미산의 반을 올라온 정생왕은 멀리 산정에 구름과 같이 밀생(密生)하고 있는 짙푸른 빛깔의 큰 수림(樹林)을 보고 야차 네브카에게 물었다.
『앞에 큰 수림이 있는데 저것의 이름은 무엇인가?』
『임금님, 저 수림은 데이코나무, 쿠비다라 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三十三천의 천인(天人)들은 여름 四개월 동안은 저 나무 밑에서 스스로 즐기면서 노는 것입니다. 임금님도 저 곳으로 가신다면 그 즐거움을 누리시게 됩니다.』
한참 더 올라가니 산정에 흰 구름의 뭉치가 산봉우리처럼 높게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왕은 또 네브카를 불러서 물었다.
『산정에 봉우리 같은 흰 구름의 뭉치가 보이는데 저것은 무엇인가?』
『임금님, 그것은 선법당(善法當)입니다. 三十三천의 천인들과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모여서 세상의 모든 일을 생각하고 관찰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하는 곳입니다. 임금님도 앞으로 저곳으로 나가시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왕의 일행은 수미산의 산정을 향해서 거침없이 전진하였다.
수미산 산정의 중심에는 세석천왕이 살고 있는 희견성(喜見城)이 있다. 가로 세로가 각각 二천五백유순, 둘레가 一만유순으로 일곱 겹의 성벽이 둘러져 있다. 성벽의 높이는 一유순반인데 모두 순금으로 둘러져 있다.
성안의 지면은 101종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기묘한 직물(織物)처럼 부드럽고 푹신푹신하였다. 또 하늘나라의 만주사화(曼珠沙華) 꽃이 그 위에 무릎이 파묻힐 정도의 깊이로 깔려 있는데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와서 시들은 꽃을 지게하고 새로운 꽃을 피게 하였다.
성에는 천한개의 문이 있다.
문의 길이는 二유순반, 넓이는 반유순이나 되는데 향목(香木)으로 만들어져 있고 금과 은, 수정, 유리의 네 가지 보물이 박혀 있다. 문에는 모두 五백명의 푸른 옷을 입은 야차(夜叉)가 갑옷을 입고 지키고 있다.
성안의 길은 길이가 二백五十유순, 넓이가 十二유순인데 땅에는 금 모래가 깔려있고 도처에는 선단이라는 향수가 뿌려져 있다. 길의 좌우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못이 있는데 그 바닥은 금과 은, 유리와 수정의 네 가지 보물이 깔려 있다. 못의 사면에는 네 가지 보물로 장식된 네 개의 계단이 있고 못 가운데는 네 개의 보석의 디딤돌이 있는데 금, 은, 유리, 수정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내서 장식되어 있다.
못에는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갖가지 빛깔의 연꽃이 다투어 피어 있고 그 사이를 물새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놀고 있다. 못 가에는 여러 가지 꽃나무와 과일 나무가 있는데 자랄대로 자란 가지에는 꽃과 열매들이 가득히 열려 있다.
그 나무에는 갖가지 새들이 살고 있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또 성안에는 파랑색, 노랑색, 빨간색, 흰색의 네 가지 빛깔이 가득한 나무가 있어서 새 옷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나무 앞에 가면 자기가 가지고 싶어하는 빛깔의 옷을 얻을수 있다. 또 신기한 음악의 나무가 있어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나무 앞에 가면 음악이 자연히 연주되어 들려온다. 또 파랑, 노랑, 빨강, 흰색 네가지 색의 감로(甘露)맛이 나는 음식이 있어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든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의 음식이 눈 앞에 나타난다.
또 장엄한 전당(殿堂)과 누각이 많이 있어서 많은 천녀들이 그 안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그들 천녀들은 모두 아름다운 수레나 가마를 타고 값비싼 장신구로 단장하고 있다. 이 천년들은 여럿이 모여서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갖가지 이름있는 향을 태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三十三천의 천인들과 이 희견성 안에서 놀고 있다.
이 희견성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의 사방으로 성에서 각각 二十유순이 떨어진 곳에 네 개의 유원(遊園)이 있고 그 유원에서 다시 二十유순이 떨어져서 네 개의 임야가 있다. 유원도 임야도 모두 가로 세로가 二백五십유순, 둘레가 千유순의 넓이이다.
희견성의 동쪽에 있는 유원은 보차(寶車)라고 하는데 그 둘레는 금 울타리로 둘러져 있다.
유원 가운데는 큰 못이 있는 거기에는 역시 네 가지 보물로 장식된 계단과 디딤돌이 있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갖가지 새가 노래하여 미녀가 즐겁게 놀고 있다.
또 코끼리, 말, 수레, 가마의 네 가지 탈 것이 있어서 어디로 가고 싶다고 하면 자기가 타고 싶은 것이 저절로 나타나서 그것을 타고 갈 수가 있다.
이 위원(違園)의 연못도 나무들도, 또 의복, 장신구, 그리고 처녀들도 모두 여러 가지 보물도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보차각(寶車閣)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또 많은 천인(天人)들이 수레를 타고 놀고 즐기므로 보차원(寶車園)이라고 부른다.
희견성의 서남쪽 곧 잡견원(雜堅園)과 녹견원(鹿堅園)의 중간에 선법당(善法當)이 있다. 이 선법당도 많은 금과 은, 그리고 진기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중에 특히 순금으로 만들어진 최승현좌(最勝現坐)가 있는데 그곳에 제석천왕이 앉는다. 기타의 천왕들은 그 밑으로 질서정연하게 자리가 만들어져 있다. 최후에 정생왕의 자리가 깔려 있다. 제석천왕은 이 선법당으로 정생왕을 맞아들인 것이다. 정생왕은 선법당에 들어서서 자기의 자리를 보고 생각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야 할 것인가, 그러나 제석천왕이 자기 자리를 반만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유쾌할 것인가.)
제석천왕은 왕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자기 자리를 나누어서 왕에게 손짓했다. 왕은 앞으로 나가 제석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앉았다. 천왕(天王)과 인왕(人王)이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키나 용모나 그 위엄이나 말씨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다만 그 눈을 깜박거리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정생왕은 이렇게 하여 수만년이란 오랜 세월을 三十三천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정생왕이 이렇게 천계(天界)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 아수라(阿修羅)와 천중(天衆)과의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 나수라는 상병(象兵), 마병(馬兵), 차병(車兵), 보병(步兵)의 네병을 갖추고 활, 칼, 창, 검의 네 가지 무기를 휘두르며 천계에 밀어 닥쳐왔다. 물가에 있던 용왕(龍王)이 이것을 보고 적수가 왔구나 하며 똑같이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맞아 싸웠다.
한동안은 막상 막하로 싸웠으나 아수라의 힘이 세어서 용왕은 대패하여 바다로 몸을 떨쳐서 수미산의 제一층급(第一層級) 견수천왕에게로 후퇴했다.
견수천왕이 그 뒤를 맞아 용왕과 함께 힘을 합쳐서 아수라와 싸워 얼마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나 결국은 견수왕의 힘이 모자라 제二층급인 지만천왕이 있는 곳으로 후퇴하였다.
지만천왕이 그 뒤를 이어 견수천왕, 용왕과 힘을 합하여 아수라와 싸웠다. 얼마 동안은 잘 막아 냈지만 마침내 지만천왕도 기운이 떨어져 제三층급 상교천왕이 있는 곳으로 후퇴했다. 왕은 힘이 부쳐 제四층급인 사대천왕에게로 후퇴했다.
사대천왕도 이를 맡아 상교, 지만, 견수, 용왕과 힘을 합하여 아수라를 막았으나 그도 힘이 모자라 결국 제석천왕이 있는 곳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대천왕은 제석천왕에게 말했다.
『천계의 주인어른이시어, 아수라는 四층의 병을 이끌고 전쟁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들 천계의 호위자(護衛者)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맞아 싸웠지만 결국 그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아무쪼록 친히 전쟁터에 나가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제석천왕은 이 말을 듣고 三十三천의 천인들에게 명령했다.
『아수라군은 다섯 군데의 방어선을 뚫고 이곳까지 쳐들어 왔다. 너희들은 용기를 내어 그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제석천왕은 상왕(象王)에 타고 오병(五兵)을 갖추어 사보(四寶)의 갑옷을 입고 사종의 무기를 들고 전장터에 나가려고 하였다. 이것을 본 정생왕은 말리면서 말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싸우겠습니다.』
제석천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부탁했다.
『그러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 때 정생왕은 十八만의 정병을 이끌고 공중으로 올라가 활을 조사하기 위해서 활줄을 튕기게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아수라는,
『누가 활줄을 튕기고 있는가?』
하고 묻자 다른 아수라가 대답했다.
『저것은 정생왕이 튕기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혼자 생각하기를,
(정생왕 이야기는 그전부터 듣고 있다. 용감 무쌍하고 복덕(福德)이 많아 아무도 감히 상대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아수라는 당황하며 바다 속에 있는 궁성으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정생왕은 이 때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이곳의 三十三천보다 훌륭하다. 이미 난센브주, 동(東)쇼신주, 서(西)카로주, 북(北)쿠루주를 통치했고 일곱 가지 보물과 천명의 아들과 十八만의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단 궁중에 비를 七일간이나 내리게 했고, 또 천계에서는 제석천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 만약 제석천왕이 죽는다면 내가 천계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천계도 인계도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이다.)
정생왕이 이런 생각을 갖자 마자 그 신통력(神通力)도 위력도 모두 없어져버리고 지금까지 주미산정의 천계에 있다고 생각한 자기 몸이 난센브주의 옛날 궁성의 방구석에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병이 들어 점점 죽음이 가까워 왔다.
이 때 대신인 리슈코가 왕에게 나아가서,
『임금님, 임금님이 돌아가신 후 왕이 임종하실 때 무슨 말씀을 남기셨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면 좋을까요?』
왕은 그에 대답해서 말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해주게, 정생왕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건강한 육체와 긴 수명과 사람을 마음속으로부터 기꺼이 복종케 하는 매력을 갖추었고 더구나 일곱 가지 보물과 천명의 아들을 가졌고 인간 세계를 정복한 다음 천계까지도 지배했지만 결국은 오욕(五欲)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그 욕심 때문에 몰락하여 죽어갔다. 그러나 임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남겼다.
『괴롭고나 탐애(貪愛)의 세계,
보물을 쌓는 일은 끝이 없네,
하늘 나라의 더 없는 즐거움도
애욕에 흐르면 고생이 생긴다.
욕심내고 아까와 하는 마음이야말로
괴로움의 근원인줄 누가 알겠는가.
다만 부처님과 그 제자만이
욕심을 버리고 괴로움을 끊었도다.』
이렇게 말하고 정생왕은 이 세상을 떠났다.
이때의 정생왕은 석가모니이다.
<頂生王因綠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