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화위왕상불수결호묘화경(採花違王上佛授決號妙花經)
동진(東晉) 천축(天竺) 축담무란(竺曇無蘭) 한역 권영대 번역
옛적에 세존께서 라열기(羅閱祇)에서 유행하시면서 경을 설하시어 지혜를 전파하셨는데, 처음 말씀도 좋으셨고 중간 말씀도 좋으셨으며 나중 말씀도 좋으셨으며, 깨끗이 범행을 닦으셨으며, 강설하시는 바는 넓고 크셨다.
이때 왕은 항상 수십 사람을 시켜 좋은 꽃을 따서 왕가(王家)와 후궁과 귀인과 채녀(婇女) 등에게 공급하도록 하였는데, 어느 날 그들은 모두 성 밖에 나와서 꽃을 꺾어서 성안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멀리 세존을 보니 상호(相好)와 위엄 있는 광명이 높고 높기 한량없으며, 마치 별 가운데 달인 듯 해가 처음 돋아서 천하를 비추는 듯하였으며, 여러 성인들과 제자들과 보살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계셨다.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절하고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보전하기 어렵고, 부처님 세상은 만나기 어려우며, 경법 또한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크신 성인을 만났으니 병든 자가 훌륭한 의원을 얻은 듯하구나. 신분이 가난하고 천한데다가 관직에 매여 그 얽매임에 항상 자유롭지 못하였다. 국왕은 성질이 엄하고 급하여서 꽃을 꺾어 서둘러 바치다가 때를 맞추지 못하기라도 하면 곧 죽음을 당하였다. 흘러간 시간은 두 번 오지 않으며, 성인들을 만나기 어렵기는 수억 세상 만에 있을까 말까 하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더라도 꽃을 부처님께 올리고 성인들께 뿌려서, 경과계를 받고 깊은 법을 들어 무궁한 지혜를 살피리라.
무수한 겁 동안 남에게 해침을 받은 적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아직껏 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는 아니했다. 이제 세존과 삼보(三寶)의 업에 공양하다가 설령 해침을 당하더라도 고통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안락한 곳에 태어나리라.’
그리고는 곧 꽃을 가지고 부처님과 성인들의 위에 흩어 뿌리고 곧 귀명하여 한마음으로 거듭 예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그들이 속으로 큰 도의 뜻을 일으킨 줄을 아시고 매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대승(大乘)의 법인 6바라밀(波羅蜜)과 4등심(等心)․4은(恩)․3해탈 보살법을 낱낱이 강설하셨다. 이에 모든 꽃을 꺾어 바치던 이들은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내어 부처님의 지혜를 이해하였으며, 어디로부터 온 곳 없는 불퇴전위(不退轉位)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곧 수결(授決)을 주셨다.
“나중에 부처가 되리니, 이름은 묘화(妙華) 여래․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명행성(明行成)․위선서(爲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으로서, 그 이름을 듣는 이는 누구나 기뻐하며 큰 법을 여쭙고 받아서 삼보에 공양하리라.”
이때 꽃을 꺾어 공양하여 수결을 받은 사람들이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에 절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집의 부모와 처자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나는 이제 명이 다하여 왕에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에 부모는 놀라서 무슨 죄를 지었냐고 물으니, 그들은 대답했다.
“왕의 심부름으로 여러 가지 꽃을 꺾었는데 도중에 부처님을 뵙고 꽃을 바쳤습니다. 왕은 매우 엄하고 성급한데, 이미 시간을 어겼고 꽃도 없으니,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때문에 이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 말을 듣자 더욱 걱정하고 서러워하면서, ‘어쩌면 될까?’ 하다가 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데, 수만(須曼)의 향기가 자욱하여 사방으로 멀리 퍼졌다.
부모는 말했다.
“이제 꽃을 왕에게 바칠 수 있게 되었구나.”
아들은 대답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보았으니 이 사건이 반드시 왕에게 전달되었을 것이요, 또 때를 어겼으니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때 왕은 크게 성이 났다. 제때에 오지 않고 또한 많은 꽃들을 흩어 뿌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왕은 곧 대신과 여러 장수와 군사들을 보내어 데려오게 하였다. 그들은 곧 왕의 명을 받고서 꽃을 공양한 사람들을 결박하여 왕궁으로 데려왔다. 그들의 죄는 목을 베어 시장에 효시(梟示)하는 형벌에 해당하였는데도 그들은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얼굴빛이 변하지도 않았다.
왕은 이상해서 물었다.
“너희들의 죄는,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며 묶여서 온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두려워하지도 않고 얼굴빛도 변하지 않느냐?”
그들은 곧 왕에게 아뢰었다.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고, 생겨난 물건은 반드시 망가져 없어집니다. 저희들은 한량없는 겁에서부터 매번 그른 법[非法]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이 꽃을 꺾어 오다가 세존을 만나 뵙고 그 꽃을 공양하고 머리 숙여 귀명하여 절하였는데, 그때 이미 명령을 어긴 죄로 인해 죽게 될 줄을 알았습니다. 차라리 덕(德)이 있어서 죽을지언정 덕 없이 살지 않겠습니다. 그때 꽃 상자에 여전히 꽃이 가득함을 보았는데, 이것은 다 여래께서 은혜와 어짊으로 내려 주신 것입니다.”
왕은 그들의 말이 매우 기이하고 마음에 믿음이 가지 않았으므로, 그 길로 부처님께 가서 발밑에 절하고 한쪽에 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합니다, 왕이시여. 그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시방을 건너고자 하였으며,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일부러 여러 꽃을 내 위에 흩었으며 마음엔 과보를 생각지 아니하였으므로 수결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장래에 부처님이 되리니, 이름은 묘화(妙華)․지진․등정각일 것입니다. 그들은 큰 뜻을 일으켜 수결을 받았기 때문에 자비한 마음의 향과 꽃이 상자에 가득하였으니, 그러한 줄을 모두가 듣고 압니다.”
왕은 크게 환희하여 빨리 무리의 결박을 풀고는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꾸짖었다.
“어리석은 뜻이 미치지 못하여 보살을 묶었사오니 그 죄를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스스로 능히 고쳤다는 것은 허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왕과 신하 및 백성들은 모두 즐거워하며 부처님께 절을 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