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없는 중생은 어쩔 수 없구나>
경허 큰스님이 가야산 해인사의 조실로 계실 때의 일이다.
경허 큰스님은 이미 곡차와 육식을 거리낌없이 들고 계시는 터라
젊은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시비가 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북풍한설이 몹시도 몰아치던 날
수건으로 얼굴을 뒤집어쓴 어느 젊은 아낙이 경허 큰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날부터 경허 큰스님은 그 아낙과 한방을 쓰고, 공양도 그 아낙과 겸상으로 드셨다.
수행자들 사이에 다시 말이 많아졌다.
아무리 도통한 큰스님이시기를 곡차에, 육식에 이제는 여색까지 탐하시다니,
이건 너무 하신게 아닌가!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자 제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승께 읍소했다.
“스님, 제발 그 여자를 그만 내치시옵소서.”
제자들이 하두 이렇게 읍소를 하자,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문제의 그 아낙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아낙은 나병에 걸려 코도 없고 얼굴도 문드러진 중환자였다.
그 아낙은 울면서 말했다.
“큰스님께서 따뜻한 방에 재워주시고, 따뜻한 밥 먹여주시고 고름까지 닦아 주셨으니
이제 곧 죽어도 애한이 없사옵니다.”
그러면서 그 아낙은 정처 없이 떠났다. 그리고 그 후 경허 큰스님도 걸망하나 메고 해인사를 떠나면서 말했다.
“인연 없는 중생은 별 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