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눈알을 보시한 왕

자기 눈알을 보시한 왕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시고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때, 석가모니께서는 여러 사람에게 이런 옛 이야기를 하시었다.

후가라바두미국은 八만 四천개의 작은 나라들을 가지고, 六만의 산과 강, 八십억의 촌락, 二만의 시녀, 一만의 대신, 五백의 왕자를 데리고 있는 세계 최대의 부강한 대국이었다.

이 나라의 왕은 유리처럼 맑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은 담장이든 벽이든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뿐 아니라, 四십리 밖에 있는 무슨 물건이든지 똑똑히 보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왕을 쾌목왕(快目王)이라고 사람들은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五백명 왕자의 첫째 태자를 가이겐이라 하였다.

쾌목왕은 아름다운, 그리고 불가사의한 시력의 소유자이었을 뿐 아니라, 천성이 매우 자비심이 많을 뿐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백성을 사랑하기는 마치 인자한 아버지같이 백성을 인도하는데 선(善)으로 행했기 때문에 백성은 한결같이 그를 따랐다.

또한 하늘도 이 나라 왕의 덕을 알아서인지 비바람을 때맞추어 내리고 五곡은 무르익어 나라는 번영하여 참으로 평화로운 나라이었다.

어느 때 쾌목왕은,(나는 전생의 복업(福業)으로 말미암아 지금 사람의 왕이 되어 재보와 명예와 五욕을 마음껏 누리고, 그 부강함은 사해에 퍼지어, 한번 말을 하면 바람이 풀을 나부끼게 하는 듯한 권세를 가지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복 받을 처지에 있으나, 만일 이 세상에서 그 복업을 계속해 나가지 못한다면 내세에서 고생을 할 것이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림으로써 가을에 많은 곡식을 거두어 다시 봄을 맞이하는데 만일, 그 농부가 게으름뱅이라면 가을의 수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지금 여러 복전(福田)에 많은 좋은 씨를 널리 심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자기의 현재의 과보(果報)와 미래의 생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대왕은 생각이 이에 미치자 대신들을 불러,

『창고 안에 있는 금·은·보배·옷·음식 그 밖의 모든 물건을 모조리 꺼내어, 그것을 성문 또는 시중 도처에 쌓아 놓고 나라 안의 가난한 백성들이 모두 와서 자유로이 가져가라는 포고를 내어라. 또 딸린 나라 八만 八천 나라들에도 그 창고를 모두 개방하여 세상의 가난한자 병든 자들에게 보시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은 여러 신하들은 곧 금으로 만든 깃발을 세우고 금북을 울려 나라에서 나라로 대왕의 자비로움을 알리면서,

『중이든 바라문이든 또는 외롭고 가난한자, 늙고 병든 자, 누구든지 고생하고 있는 자는 모두 오너라. 그 사람들이 뜻대로 무엇이든지 대왕께서 베풀어 주실 것이다.』

하며 거리 거리를 알리며 돌아다녔다. 그랬더니 여러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은 구름같이 모여들어 각각 가지고 싶은 물건을 받아 가지고 대왕의 은덕을 기뻐하고 그 덕을 찬양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때, 이 나라의 속국에 하라다바두미라는 국왕이 있었다. 그는 성질이 오만불손하여 쾌목왕의 명령을 위반하여 국경을 소란케하고 색욕에 빠진 미련한 왕이었다.

그러므로, 선량하고 충성된 신하는 모두 물러가고 말았다. 나라에 간하는 신하가 있어야 국정이 올바로 시행되는데 그 충성된 신하가 없어진 것을 이 왕은 도리어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다만 자신의 쾌락을 만족시키고 부질없이 국민을 혹사할 뿐이었다.

국민을 괴롭힐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상인이 오면 그에게 무거운 세금을 바쳐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국민은 모두 왕을 원망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총명하고지략(智略)이 풍부하여 만사를 잘 처리하는 민완가(敏腕家)인 로닷다라는 대신이 남아 있었다.

국왕이 지나치게 폭정을 하는 것을 보고,

『대왕이여, 당신에게는 다섯 가지 결점이 있기 때문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잠깐 신의 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무어, 내게 다섯 가지 결점이 있다고. 그것은 도대체 무엇 무엇이냐.』

『첫째로 대왕께서는 만사를 경솔하게 다루어, 너무도 생각이 얕으므로 만사에 신중성이 부족하여 그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대왕께서는 색욕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처리합니다. 그 때문에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처리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신용은 잃어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셋째로, 나라에 충성하는 신하가 있어도 아무 일도 그들과 의논해서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궂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합니다.

넷째로, 백성을 부리기는 너무 심하게 하기 때문에 이 나라를 저버리고 다른 나라로 이주하려는 백성이 많습니다.

다섯째로는 다른 나라 상인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결과 물가가 올라서 국민의 생활이 곤란 해졌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나라를 멸망시키는 전조(前兆)이며 나쁜 정치입니다. 지금 이것을 고치지 아니하면 큰일 납니다.

대왕이여, 원컨대 만 백성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십시오. 쾌목왕은 자비로운 왕이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높은 덕을 따르고 있습니다.

쾌목왕의 다른 속국의 왕들도 모두 이것을 본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우리 왕 혼자만은 이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쾌목왕의 눔에 벗어 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이제까지의 나쁜 일을 고치고 쾌목왕처럼만 백성에게 덕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만 하면 이 나라는 태평하게 됩니다.』

로닷다는 눈물을 흘리면서 왕에게 이렇게 간하였다.

그러나 왕은 이 간하는 말은 들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화를 내어 얼굴을 붉히고,

『그런 잠꼬대는 듣기도 싫다.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물러가라.』

하며, 거칠은 목소리로 내뱉고는 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노여움을 산 로닷다는,

(자기는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히 왕에게 진언한 것인데, 이것을 도리어 고깝게 생각하고 왕은 무슨 조치를 취할 것이다. 야단났다. 어떻게 할까. 저런 형편이라면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여 꾀한 일이 실현되기도 전에 죽음을 당해서는 나는 개죽음이 되고 만다. 한시바삐 이 난으로부터 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고 다음에 닥쳐 올 재난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은 군사를 내어 충신인 그를 토벌하려고 하였다.

이때 이미 그는 한 필의 준마에 채찍질을 하여 국외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이 군사는 추격하였다. 그러나 활쏘기에 능한 그에게 그 자리에서 열여덟 명이 사살되었다.

전우가 사살당한 것을 본 군사는 다시 추격하여 그에게 접근하기는 했으나, 아무도 그의 무용에 겁을 먹고 달려들지는 못하고, 먼데서 그저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로닷다는 군사가 달려들지 않음을 다행히 더욱 준마에 채찍을 가하여 쾌목왕이 있는 후가라바두미국에 망명하였다.

자기의 건의한 정책이 채용되지 않고 도리어 추격의 재난을 당한 그는 평소 존경하고 있는 쾌목왕의 나라에 망명하는 그를 배알하였다. 왕은 그와 말을 주고 받아 보고 그가 통이 큰 사람임을 알고 그들 대신으로 등용하였다.

쾌목왕에게 등용된 그는 왕을 가까이 할 기회가 많았으므로 어느 날, 고국의 문란한 국정을 자세히 아뢰었다. 그럼 어지러운 나라가 있음을 들은 왕은 중신을 불러 그 나라가 우리의 속국인가 아닌가를 물었다.

『그 나라는 속국이지만 멀어서 속국으로서의 예를 받은 일은 없습니다.』

하고 신하는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로닷다는,

『그 나라의 왕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예의 따위는 조금도 모릅니다.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기화로 대왕의 명령을 실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은 왕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저에게 군사를 주신다면 가서 그 나라를 토벌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쾌목왕은 국민이 도탄에 빠졌음을 알고 로닷다의 희망을 허락하고, 군사를 정선해서 그에게 주어 하라다바두미왕을 토벌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 말 전해들은 하라다바두미의 이웃나라 왕은, 신하를 보내어,

『지금 쾌목왕이 천하의 정병을 모아 로닷다로 하여금 귀국을 토벌하기 위하여 출발시켰으므로 잠깐 알려드립니다.』

하고 알렸다.

이 뜻밖의 통지를 받은 하라다바두미왕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매우 걱정을 하여, 마침내 머리가 혼란해져서 때가 묻은 검은 옷을 입고 어두운 방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이 왕의 꼴을 본 대신의 바라문은 그 방에 와서,

『대왕께서는 무엇이 괴로워서 이런 캄캄한 방에 앉아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너는 아직 못 들었느냐. 저 로닷다가 쾌목왕한테 도망쳐 가서 지금 정병 八만 四천을 거느리고 우리 나라를 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존망의 중대사입니다. 마음 아파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중신을 모아 방비책을 강구하기로 합시다.』

하고 대신의 바라문은 왕에게 건의하였다. 왕도 그 진언을 받아들여 중신들을 불러 선후책을 의논하였다.

갑론 을박,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묘안이 좀처럼 나오지 낳는다. 그 때 대신의 바라문은 조용히 일어나서,

『듣건대, 저 쾌목왕은 자기의 부모를 제외한 그밖의 것은 무엇이든 사람들의 소망대로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쾌목왕의 이 자비심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에는 장님의 바라문이 있으니, 그 장님을 권하여 그 나라로 보내어, 쾌목왕에게,

『나는 소경이 오니 대왕의 유리 같은 아름다운 눈을 주십시오.』

하고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보시하기를 맹세한 체면상 소중한 눈이라고해서 안 되겠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쾌히 희사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소경이 대왕의 눈알을 받아 가지고 오면, 출정한 군사는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퇴각하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의견을 말하였다. 그 자리의 여러 신하들은 「참으로 묘안이다」, 하고 이에 찬성하고, 왕도「이 교묘한 방법이다.」하고 그 의견을 채용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곧 소경 바라문을 부르기로 하였다. 사자는 소경 바라문의 집에가서, 왕의 부르심이니 곧 오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하여 노역(勞役)에 복무하고 있으니 갈 수가 없소.』

하고 응하지 아니하였다.

사자는 이 일을 돌아와 대신에게 보고하였다. 대신은 이번에는 자신이 그 소경의 집에 가서 꼭 왕궁에 오기를 권하였다.

『보시는 바와 같이 나는 소경이니 아무데도 소용이 닿지 않습니다.』

「아니다, 소경이기 때문에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다. 사실은 쾌목왕이 대군을 보내어 아 나라를 쳐들어 온다고 하는데, 만일에 대군이 물밀듯이 쳐들어 온다면 이 나라는 전멸이다. 눈뜬 우리들도 그 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소경들은 모두 잡히어 죽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네게 부탁이 있는 것이다. 저 쾌목왕은 사람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는 자비심이 강한 사람이니, 네가 적국에 가서 쾌목왕에게 눈알을 달라고 원하면 반드시 쾌목왕이 자기의 눈알을 소경 바라문에게 희사하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쳐들어 온 군사는 곧 돌아가 버린다.

그러니, 네가 이 사명을 띠고 적국에 가는 것은 네 자신의 행복 뿐 아니라, 국가 존망에 관계되는 큰일이다. 그러니까, 좀 가주게. 이 계획이 성공하면 너를 높은 자리에 올려 줄 터이니.』

『그런 중대한 임무는 소경인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권하여도 소경은 응하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대신은 싫다는 소경은 응하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대신은 싫다는 소경을 억지로 왕에게 끌고 왔다. 왕은,

『대신에게서 둘은 바와 같이 지금은 국가 흥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대 시기다. 곡 네가 가다오. 도중은 누군가가 부축해 줄터이니.』

하고 잘 알아듣도록 이해타산을 설명하여 부탁하였다. 소경 바라문도 왕의 간곡한 부탁이므로 마침내 승낙하였다.

쾌목왕의 나라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이 태평하였는데, 요즈음에 와서 공중에서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번갯불에 동반한 별이 떨어지기도 하고, 땅이 갈라지고, 나는 새가 슬픈 소리로 울고, 호랑이와 늑대와 사자 등이 사람에게 덤벼들고 하는 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너무도 괴상한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므로, 쾌목왕도 백성들도 왜 이런 괴상한 현상이 자꾸 일어나는가, 불길한 조짐이 아닌가 하고 온 나라가 걱정하였다.

한편, 왕명을 띤 소경 바라문이 가까스로 후가라바두미국에 이르러, 왕궁 앞에 서서 소리 높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알고자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왔으니 내가 바라는 물건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외치는 소리를 궁중에서 들은 쾌목왕은 곧 그 자를 안으로 불러들여,

『보건대, 너는 소경인데 먼길을 용케 왔구나. 다리는 안 아프냐. 국토이든 진귀한 보배이든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같은 보시라도 재물에 따라 희사하시는 것은 공덕이 적습니다 자기 신명(身命)을 보시하면 그 과보는 위대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 저에 눈을 잃어 이 세상에 아무런 즐거움도 없습니다. 대왕의 자비로 실은 대왕의 눈을 받아 내가 사물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무어, 내 눈알이 소원이라고. 그렇다면 기꺼이 이 눈알은 네게 주마.』

『예? 저에게 그 눈알을 정말로 주시는 것입니까?』

『이레 뒤에 꼭 주지.』

쾌목왕은 저 나라의 바라문과 이렇게 굳은 약속을 하였다.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바라문은 매우 기뻐하여 이것으로써 자기의 큰 임무도 다하게 되었다고 안심하였다.

한편, 쾌목왕은 바라문과의 약속이 끝나자 즉석에서 영토안의 八만 四천의 작은 나라들을 향하여,

『나는 이레 뒤에 내 눈알을 파내어 이 소경 바라문에게 회사할 터이니 왕궁에 와서 이것을 보라.』

하는 포고를 내었다. 이 통첩이 여러 나라에 돌려가자, 작은 나라의 국왕을 비롯하여 모든 충신과 백성(臣民)들은 이거 큰일났다 하고 놀라, 왕궁에 달려와서, 일동은 왕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들 백성은 대왕의 자비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눈알을 파내어 바라문에게 주신다면 우리들은 빛을 잃은 것과 같이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어집니다.

대왕이시여, 제발 그런 일은 그만두어 주십시오. 한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하여 만백성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대신들도, 부인들도, 왕자들도 각각 대왕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나 대왕은 잠자코 이들의 하소연들은

『응, 응』

하며 듣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 때, 첫째 태자 가이겐은 송구스러운 듯이 부왕 앞으로 나아가서,

『부왕님, 제 눈을 도려내어 주십시오. 제가 죽더라도 나라의 손실은 되지 아니하옵니다.』

하고, 자기의 눈을 회사하여 아버지를 대신할 것을 청하였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쾌목왕은 그때에 천천히 입을 열어, 모여 있는 여러 나라 왕, 대신, 부인, 왕자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나라를 염려하고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참으로 고맙기 그지 없다마는,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래, 인간은 오랫동안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여 그 죽은 뼈를 쌓으면 수미산(須彌山)보다도 높고, 흘린 피는 사해(四海)의 물보다도 많으며, 빨아 먹는 어머니의 젖은 사대하(四大河)보다도 많으리라. 또 이별 때문에 슬퍼하여 흘린 눈물은 사해의 갑절은 될 것이다. 또한, 지옥에 떨어져 몸을 찢기고, 불사르고, 지지고, 이 눈을 버린 것도 무수하다. 또 아귀계(餓鬼界)에 태어나서는 몸뚱이로부터 불꽃을 튀기어서 이 눈을 덴 것 또한 수없이 많다.

축생계(畜生界)에 태어나서는 약육강식9弱肉强食), 서로 물고 뜯고 상함이 또한 헤아릴 수 없다. 또 사람에 태어나서도 젊어서 죽으면서 색욕을 다투고, 서로 살상하고, 하듯이 나의 오랫동안의 생사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이렇게 굴러 흐르는 동안에 나의 죽음은 결코 한결같지 않았다.

눈을 버린 일도, 또한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三계 중에 지옥·아귀·축생·수라(修羅)·인간의 다섯 길에 굴러 흘러서 탐(貪)·진(嗔)·치(痴)의 삼독(三毒) 때문에 몸을 손상 시키는 것은 많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보시에 의하여 불도를 구해 본 일은 한번도 없다. 이 냄새나고 이 약한 눈도 멀지 않아 찌그러 터지고 만다. 저절로 찌그러 터질 이 구린 눈을 회사하여 더없는 지안(智眼)을 나는 지금 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나의 이 소원이 성취되면 너희들에게도 그 밝고 깨끗한 지혜의 눈을 줄 것이니, 나의 미 무상도(無上道)를 구하는 큰 뜻을 막지 말아라.』하고 쾌목왕은 차근 차근히 자기가 부질없이 눈을 회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대왕의 큰 뜻은 처음 들은 여러 사람들은 말 한마디 없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대왕은 좌우의 신하들에게,

『자, 내 눈을 파내 다오.』

하고 명령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은,

『저희들의 몸을 분쇄한다고 하여도 손을 들어 대왕의 눈을 다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일제히 사퇴하였다.

『너희들이 도려낼 수가 없다면, 빛깔이 새까만 천한 사나이를 찾아오너라.』

하고 명령하였다.

신하들은 대왕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고 불안에 그 사나이를 찾아내어 왕에게 데리고 왔다. 대왕은 그때, 칼을 그 새까만 사나이에게 주면서,

『이것으로 내 눈알을 도려 내어라.』

하였다.

그 사나이는 왕의 명령대로 눈알을 도려내어 자기 손 위에 놓았다. 대왕은 흐르는 피와 아픔을 참으면서,

『나는 이 눈을 희사하여 불도를 구한다. 만일 내가 불도를 성취할 수가 있다면, 이 바라문은 내눈을 받자마자 곧 그 시력을 회복하여 만물을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맹세하였다.

그리고는 도려낸 유리같이 아름다운 눈알을 소경 바라문의 눈 속에 넣어 주니, 그 소경은 있었으며, 오랫동안의 암흑 세계에서 광명의 세계로 왔으므로 그는 매우 기뻐서,

『대왕의 한쪽 눈을 얻어 저는 이제 세상을 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남은 한쪽 눈은 도려내지 마시오. 대왕께서 보시는데 써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 후의는 고마우나 나는 양쪽 눈을 너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이니, 한쪽만을 남겨 둘 수는 없다.』

하고 대왕은 즉시 남아 있는 한쪽 눈을 도려내어 손 위에다 놓고, 거듭,

『이 눈은 회사한 공덕으로 불도를 성취하기를 바란다. 이 나의 정성이 사실이라면, 이 소경 바라문의 눈이 회복하기를.』

하고 원하였다.

그리고 도려낸 눈알을 바라문의 왼쪽 눈에 넣어주니, 그 자리에서 왼쪽 눈도 시력을 회복하여 똑똑히 사물을 볼 수가 있었다.

자기들의 바로 눈앞에서 행하여진 이 불가사의한 사실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그저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이 때, 천지가 갑자기 진동하여 제천(諸天)의 궁전이 모두 흔들리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제천을 놀라, 왜 궁전이 흔들이는가 하고 그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방금 쾌목왕이 자기의 눈알은 도려내어 소경 바라문에게 회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놀랐다.

제천은 모두 날아와서 향기로운 꽃을 뿌려 쾌목왕에게 공양하면서,

『좋을씨고, 대왕의 하는 일은 기특도 하여라.』

하고 찬탄하였다.

때에 천제(天帝)는 왕 앞으로 나아가,

『참으로 기특한 행위다. 행위로서 대체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하고 물었다.

『나는 범천(梵天)·사천왕·제석천왕·전륜성왕(轉輪聖王)의 삼계(三界)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은 아니며, 이 공덕으로 도를 구하여 많은 사람들을 해탈(解脫)시켜 열반(涅槃)의 상락(常樂)을 얻게 하려는 것이요.』

『너는 지금 눈을 도려내어 퍽 아프겠구나. 그런데도 후히도 하지 않고, 성내지도 않느냐?』

『아무런 후회도, 노여움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보니 피는 뚝뚝 흘러 멀어지고, 몸은 덜덜 떨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입으로는 후회도 노여움도 없노라고 훌륭하게 말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아니오. 나는 이 눈을 도려내어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써 불도를 구하여 마지않소. 내가 불도를 성취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 잃어버린 두 눈을 전과 같이 회복 시켜 주십시오.』

하고 대왕은 서원을 하였다. 대왕이 이 서원을 하고 나자 두 눈은 회복되어 맑고 밝은 눈은 전보다도 갑절이나 잘 보였다. 이 사실을 목격한 제천도, 사람들도 모두 이 눈알의 기적을 바라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나는 지금 너에게 눈을 주어 사물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내가 앞으로 불도를 성취하거든 너에게 또 지혜의 눈을 주마.』

하면서, 대왕은 바라문의 손을 잡고 보물창고에 가서 그가 원하는 물건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을 만큼 주어 본국으로 돌려 보내었다.

그의 본국에서는 소경 바라문이 돌아 온다는 소리를 듣고, 폭군 하라다바두미는 친히 그를 맞이하여,

『쾌목왕의 눈을 받았느냐?』

하고 첫째로 물었다.

『이렇게 사물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눈을 받았습니다.』

『쾌목왕은 너에게 눈알을 도려내어 주고도 아직 무사하냐. 그렇지 않으면 죽었느냐?』

『나에게 눈을 주고 나니 하늘도 땅도 한꺼번에 진동하였으므로 제천이 놀라 거기에 왔습니다. 거기에서 대왕은 한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대왕의 두눈은 전과 같이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전보다도 오히려 더 아름답고, 더 잘 보이게 되었습니다.』

『무어, 아직 무사하다고?』

하고 말한 채, 폭군의 왕은,

『응?』

하고 한 마디 신음하면서 심장이 터져서 죽어 버렸다.

이 쾌목왕은 지금의 석가모니, 폭군의 하라다바두미왕은 지금의 데바닷다(提婆達多)이고, 왕에게 눈을 청한 바라문은 지금 석존이 설법하고 있는 모임 가운데 있는 바라문이다.

(賢惠經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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