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나시의 꽃
석존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어느 곳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을 지닌 바라문의 백만장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당년 이십세의 한 아들을 두었는데, 새로 장가를 들어 꽃같이 아름다운 아내를 맞은지 일주일째의 일이었다. 그들 한 쌍의 신혼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여 문자 그대로 원앙부부였다. 날씨가 화창하고 꽃이 만발한 춘삼월 좋은 계절이었다.
어느 날, 그들 신혼부부는 손에 손을 잡고 공원으로 놀러 나갔다. 그들은 천상의 선인들처럼 근심 걱정 없는 유쾌한 하루를 사랑과 환희 속에 보내고 있었다.
이 공원에는 높고 큰 우람한 나무가 가지 끝에 낙낙히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며 마치 봄의 상징처럼 드높게 서 있는 사과나무와 비슷한 가라나시란 나무가 있었다.
새 아내는 그 꽃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아 저 꽃좀 봐, 정말 아름답구나. 저 꽃을 꺾었으면 좋겠다. 누가 좀 꺾어주지 않으려나.)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니 남편도 그렇게 느낀 것인가. 새 신랑은 어느새 아내의 마음속을 살핀 것인지 큰 나무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겨우 꽃 한 송이를 꺾었다. 그러나 꺾고 보니까 조금 더 가느다란 가지 끝에는 더 예쁜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그는 다시 그것을 꺾고자 위로 기어올라가 그 가느다란 가지가 손에 닿는 데까지 올랐다. 그가 가까스로 이 꽃가지를 하나 꺾었을 때 갑자기 자신의 중량으로 올라가 있던 나무가지가 우지끈 부러지면서 그는 그만 땅위로 추락해 즉사해 버렸다.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놀라서 울부짖는 소리에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들 달려왔다. 서로 당황하고 놀라 어쩔바를 모르고 떠들고 울부짖고 하여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부모의 비탄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친척지기들이 모여들어 슬피 통곡하는 곡성이 넓은 저택 내에 진동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부모나 친척들의 상심을 생각해 모두 흐느껴 울었다. 그 장례도 눈물 속에 그럭저럭 치루기는 했으나 아직도 통곡소리는 멎지 않았다.
이 백만장자 바라문의 집은 기원정사에 가까이 있었다. 세존께서는 바라문 일가의 슬퍼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몸소 거동하셨다. 친히 그 부모와 유족들에게 대자대비하신 위문의 말씀을 내리셨다. 바라문 장자 일가는 석존께서 친히 조문 오신 것을 보고 비탄 속에서도 경의와 예의를 다해 감사히 맞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슬픈 심정을 소상히 석존께 아뢰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석존께서는 이윽고 백만장자인 바라문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렇게 슬퍼만 하지 말고 조용히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이 세상 만물은 모두 무상한 것입니다. 일물이라도 영구히 오래 보존되는 것은 없습니다. 생이 있으면 사가 있게 마련이오. 만나니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영겁의 진실입니다. 오직 여기에 서로 쫓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죄복(罪福) 의인과가 있을 뿐입니다.
목숨이란 꽃피고 과일이 익음과 같아,
언제나 그 영낙(零落)을 두려워하네.
이 세상에 태어나면 괴로움이 따르니,
어느 때인가 죽지 않을 수 있으리.
처음엔 한 조각 사랑하는 마음에서,
태내에 의탁하여 포영(泡影)을 멈추었네.
그 목숨 짧기 번개와 같으니,
주야로 유전(流轉)해 그치지 않는구나.
이 몸은 반드시 어느 때고 죽는 물건,
마음은 형태 없는 법(法)이어라,
한 번 죽어도 다시 태어나며,
죄복은 서로 쫓아 그치지 않는도다.
인과(因果)는 한 세상에 끝나지 않고,
본시 치애(痴愛)로 생겨나 영원한 것.
끊임없이 그 고락을 받아 멎지 않으니,
몸은 죽어도 신(神)은 계속되네.』
바라문은 석존의 설법하심과 그 설명하시는 게(偈)를 듣고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그렇게도 비탄하던 시름과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장자는 석존의 좌전에 꿇어 엎드려 말씀드렸다.
『제 자식놈은 과거에 어떠한 죄업을 지었길래 저와 같이 참혹한 요절을 했을까요? 아무쪼록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것을 설법해 주소서.』
석존은 장자의 청을 들으시어 그 과거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옛날에 한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신(神)의 숲 속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다. 그곳에 세 아이들이 있다가 그 아이와 함께 놀게 되었는데, 그때 그 아이는 문득 나무가지 위에 참새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쥐고 있던 활로 그 참새를 쏘아 맞히려 했다.
세 어린이도 이 아이를 보고,
「얘, 저 참새를 쏘아 떨어뜨리면 정말 네 솜씨를 알아줄게. 그렇기만 하면 정말 대단한 솜씨지 뭐니?」
하고 추켜 올렸다. 어린이는 의기양양이 솜씨를 보라는 듯이 참새를 노려 화살을 당겼다. 화살은 훌륭히 참새를 적중시켜 지상에 떨어뜨렸다. 참새는 무참하게 죽고 그 아이는 세 친구 이이들과 즐겁게 더 뛰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몇 번인가의 생과 사를 거쳐 무수겁(無數劫)동안 이합집산하여 그와 함께 또한 죄를 얻게 되었다. 그 세 아이 중에 한 사람은 지금 복덕이 있어서 천상에 태어났으며, 또 한 사람은 지금 해중에 용왕으로 되어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장자인 바로 당신이다.
또 참새를 쏘아 떨어뜨린 아이는 전생 에는 천상에 태어나서 천자의 아들이었는데, 금생에는 그대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의 인연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져 절명한 것이다. 그는 지금은 또 해중에 태어나서 용왕의 아들이 되었다. 그러나 태어나던 날 금시조왕(金翅鳥王) 때문에 잡혀 먹혀 버렸다.』
장자는 석존의 설법을 듣고 천상이나 해중의 일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석존께서 하신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수다원의 오달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法句譬喩經第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