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업보
옛날 강원도 발연사(鉢淵寺)에 여러 스님이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젊은 비구승 계인(戒人)과 지상(知相)은 도반으로서 정다운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때에 지상은 남쪽에서 온 어떤 스님으로부터 목에 거는 모감주 백팔(百八) 염주 한 벌을 선물로 받아 가졌다.
이 모감주는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중간치로서 새까맣게 생긴 것인데 윤이 나서 반들반들한 것이라 누구든지 보는 사람은 탐을 내어갖고 싶어 하였다.
지상은 그것을 애지중지 아끼고 자나 깨나 목에 걸고 벗어놓지를 아니하였다.
그런데 계인대사는 몹시 탐내어 가지고 싶어 하였다.
어느 해 봄날 계인은 지상에게 절 뒷산으로 올라가서 소풍이나 하자고 권하여 천길 만길이나 되는 험준한 산봉우리에 앉아서 놀게 되었다.
이때 계인은 지상을 바라보면서
「자네 그 염주 좀 구경하세.」
하고 말을 건다.
지상은 무심하게 생각하며
「밤낮 보던 염주인데 왜 여기 와서 새삼스럽게 보자고 하는가?」
「공연히 보고 싶어서 그러네.」
「그러면 잠깐만 보고 다시 돌려주게나.」
하고 목에 걸었던 염주를 벗어 주었다.
계인은 염주를 받아 만져보며
「참 곱게 생긴 염주야! 이것을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농담 말게, 내가 그것을 생명같이 아끼는 것인데 자네를 주겠나!
다른 것을 줄지언정 염주만은 줄 수가 없네.」
「정말 줄 수가 없어?」
하면서 고함을 치더니 계인은 별안간 지상을 발길로 차서 천길 만길 되는 낭떠러지로 떨어뜨리고는 혼자 염주를 가지고 절로 내려 왔다.
그러나 혹시 죄가 탄로 날까 두려워서 바랑을 짊어지고 절을 떠나고 말았다.
한편 지상은 절벽에 떠밀리는 순간 <악!> 소리를 지르며 떨어졌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중간쯤에서 바위틈에 자라난 큰 측백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생명만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정신을 차려서 살펴보니 위아래가 천야만야 절벽으로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죽으나 사나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지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불렀다.
비몽사몽간에 웬 노장 한분이 나타나더니
「여보, 젊은 대사가 염주 한 벌의 애착 때문에 욕을 보게 되었구려. 탐착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나도 <발연사>에 있던 화주승(化主僧)이었는데 시주 돈을 거두어서 절을 다시 중창(重創)하려다가 내 돈도 아닌 공금임에도 역사(役事)를 벌리면 그 돈이 없어지는게 아까워서 다락 속에 감취 놓고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가 신벌((神罰)을 받아서 큰 구렁이가 되어 이 낭떠러지 밑에 살고 있소.
내가 대사를 구해 줄테니 절에 들어가거든 내가 하지 못한 불사를 이룩해 주시기 바라오.
그리하면 스님도 좋고 나도 좋지 않겠소.
내가 구렁이 몸으로 기어 올라가니 대사는 내 등을 타고 꼭 붙잡고 놓치지 마시오.
그리하면 산봉우리 위로 올라가서 내려놓을 터이니 절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내가 부탁한 것은 꼭 잊지 말고 시행하여 주시기 바라오.』
라고 한다.
지상은 꿈에서 깨어나 이상하게 여기면서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 보니까 시커먼 괴물체가 기어올라 오는 것이다. 그 물체가 가까이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대들보만한 먹구렁이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오더니 타라는 듯이 등을 들여대는 것이었다.
지상은 꿈 가운데서 부탁을 받은 일이 있으므로 징그럽기는 하지만 우선 살 욕심으로 구렁이 등에 올라 탔더니 구렁이가 떨어지지 않게 꼬리로 지상의 몸을 감싸고 슬금슬금 기어 올라간다.
급기야 산봉우리 위로 올라가서 평지에 내렸다.
지상은 구렁이에게 절을 하고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후 구렁이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감사한 마음 그지 없소이다. 스님의 소원을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시행하리다.」
하고 사지에서 살아났던 것이다.
절에 돌아와 공루(公樓)에 올라가서 채독을 열어보니 시주의 방함록과 함께 엽전 수백냥이 노끈에 꿰어져 구렁이처럼 서리고 있었다.
지상은 대중에게 공포하고 이 돈을 꺼내어 발연사를 중건중수(重建重修)하고 낙성회향재(落成廻向齋)를 올리었다.
또 이를 위하여 지장기도(地藏祈禱)까지 올려서 천도하였다.
그랬더니 구렁이는 다시 꿈에 본 노장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지상에게 치하하고
「나는 덕택으로 구렁이 몸을 벗고 천상으로 올라간다.」
고 하였다.
계인대사는 이 소문을 듣고 지상을 찾아와서 염주를 돌려주며 지난 일을 참회하고 사죄하였다.
이 때 지상은
「이 염주 때문에 서로 본의 아닌 죄를 지은 것이오.」
라고 말하며 염주를 불에 태워버리고 나서 그들은
<중은 절대로 고귀한 물건을 가질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애착이나 탐욕 할 것이 아님을 서로 다짐>
하였으니, 이로부터 그들은 신심을 돈발하여 후에 고승이 되었다고 한다.
<權相老文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