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의 지혜와 온천의 개발
아득한 옛날 충청도 땅에 아주 가난한 절름발이 노파가 삼대독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려운 살림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노파는 아들 키우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어느덧 아들이 혼기를 맞게 되니 하루빨리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노파는 매파를 놓아 사방팔방으로 혼처를 구했으나 자리마다 고개를 저었다.
가을도 볼 것이 없고, 살림도 넉넉치 못한데다 시어머니마저 절름발이이니 누구도 선뜻 딸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노파는 절름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하면서도 실망치 않았다.
이러한 노파를 측은히 생각한 중매장이는 좀 모자라는 처녀라도 그냥 며느리로 맞자고 다짐을 받고는 아랫마을 김 첨지 집으로 달려갔다.
그 집에는 코찡찡이 딸이 있었기에 말만 꺼내면 성사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 소리 입밖에 두 번 다시 내지도 마슈.」
원 아무리 사위감이 없기로서 홀어미에다 절름발이 시어머니 집에 딸자식을 보내겠소?
「원 영감님두, 그 노인이 다리 하나 저는게 흠이지. 아들이야 인물 좋고 부지런하고 어디나무랄 데가 있습니까?」
「아 듣기 싫다는 데두요.」
「흥! 까마귀 똥도 약에 쓰려니까 칠산 바다에 쩍 한다더니 코찡찡이 꼴에 꼴값하네.」
중매장이는 이렇게 퍼부으면서 이번엔 황영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팔을 제대로 못쓰는 그 집 딸에게는 노파의 아들이 오히려 과분할 것 같아 자신만만하게 달려갔다.
「가만 있자! 내 딸과 정혼을 하자구요?」
한동안 눈을 껌벅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황영감은 이윽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왜 너무 황송해서 그러시유?」
「그게 아니구요. 팔을 못쓰는 내 딸이 그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엔 반편들만 모였다고 남들이 얼마나 놀리겠소?」
「원 그렇게 따지다간 따님 환갑 맞겠소, 환갑.」
이제 더 이상 알아볼 곳이 없다는 중매장이의 말을 들은 노파는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노파는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하고 불편한 다리를 끝고 산사를 찾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나뿐인 우리아들 짝을 정해 주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온 정성을 다해 불공드리기 백일째 되던 날 밤, 깜짝 잠이 들은 노파의 앞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쯧쯧! 정성은 지극하나 순서가 틀렸으니 이 일을 어이할까.」
「순서가 틀렸다 하심은 무슨 말씀이신지 상세히 일러 주옵시면 다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대의 아들이 장가를 못드는 까닭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그야 어미 된 제가 한쪽 발을 못 쓰는 탓이옵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두 발을 온전히 쓰도록 빌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오나 무슨 수로 이 늙은 것의 다리를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니, 지극한 정성으로 못 이룰 일 있겠느냐.」
이 말을 마친 관세음보살은 어느덧 바람처럼 사라졌다.
꿈을 깬 노파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싶어 관세음보살께서 일러준 대로 좌시 불공을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제발 이 몸의 다리를 고쳐 주옵소서.」
다시 백일째 되는 날 밤, 난데없이 허공에서 우렁차고 경건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내 그대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내일 마을 앞 들판에 다리를 절름거리는 학 한마리가 날아와 앉을 터인즉 그 모양을 잘 살펴보면 다리 고치는 비법을 알게 되리라.』
필시 기도의 영험이 나타날 것으로 믿은 노파는 그길로 캄캄한 산길을 더듬어왔다
이튿날 저녁나절이 기울 무렵, 하얀 학 한마리가 훨훨 날아와 논 가운데 앉았는데 정말 한 다리를 절름대고 있었다.
그 학은 이상하게도 앉은 자리 근처를 뱅글뱅글 돌면서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사흘, 학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이 모양을 지켜보던 노파는 하도 신기해서 급히 학이 뛰며 뱅글거리던 논둑으로 달려갔다.
논에서는 물이 펄펄 끊고 있었다.
「아 뜨거! 아이 뜨거워! 옳지 이 물에 발을 담그면 낫는 모양이구나.」
노파는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채 이를 악물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몸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노파는 신이 나서 열심히 발을 담구었다.
그렇게 십일이 되던 날 신통하게도 노파의 절뚝거리던 발은 씻은 듯이 완쾌됐다.
노파는 기뻐 아들을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울었다.
마을에선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집이라 하여 혼인 말이 빗발치듯 했고 그 아들은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잘 살았다.
그리고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뜨거운 물에 병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이곳이 바로 오늘의 온양온천이다.
<한국불교전설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