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있는 멸치와 물렁이 오징어
멸치는 뼈대가 많다. 등골뼈가 44개나 되고, 등, 볼기 지느러미는 42개나 되는 비늘을 가지고 있어서 위세가 당당하다.
그뿐이랴. 황해의 넓은 바다를 집 삼아 종횡무애 하는 까닭에 비록 태평양의 넓은 세계는 구경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상당히 무대가 넓다.
그의 맛은 천하에 제일이라 고래의 등심 하고는 비교가 되지 많아 일본, 중국, 홍콩, 동남아시아는 물론 세계 각국에 널리 수출되어 많은 사람들의 구미를 돋구고 있는데 특히 춘제(春制)의 멸치젓은 가을 김장에 중요한 양념이 되므로 그 시세 또한 대단하다.
그들은 세상의 어떤 생물보다도 호귀한 기상을 가지고 양턱의 덧니를 드러내 보인다.
가늘고 긴 몸, 암청색에 은빛 찬란한 빛깔을 방광(放光)하며 유유히 떼를 지어 산책하게 되면 이들의 위세 당당한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도 적지 않다.
어느 때 넙죽이 오징어가 길을 가다가 멸치 새끼를 보고 탐욕이 나서 데이트를 청했다.
한참 놀다 보니 날쌔고 재치 있는 멸치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간청하니 그의 어머니가 매파를 놓아서 청혼키로 하였다.
그러나 멸치들은 매파의 말을 듣고 펄쩍뛰었다.
「얼굴만 번지르르하고 몸뚱이만 크면 장땡인가. 뼈대가 있어야지-」
그래서 결국 오징어는 청혼을 거절당하고 쓴 잔을 마셨다.
그러나 이처럼 뼈대가 단단하고 위세가 당당한 멸치도 뼈대 자랑만 하고 지혜를 닦지 않다가 마침내 사람에게 잡혀 밥상 위에 오르고 뭇 친구들을 골탕 먹이는 일을 서슴없이 하였으니 웃지못할 일이었다.
옛날 옛적 천년을 산 멸치 할아버지가 꿈을 꾸었다.
자기의 몸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려오고 흰 구름이 뭉개뭉개 일더니 눈이 펄펄 내리기도 했다.
게다가 더웠다 시원했다 하는 날씨로 멸치의 몸이 뜨거워졌다 추워졌다 하는 꿈이었다.
너무도 이상하여 새벽잠을 설친 멸치 할아버지는 아무리 꿈 해석을 해보려 해도 해석이 잘 되지 않았다. 고민 고민 하다가 날이 밝기가 바쁘게 밖에 나가 가자미에게 물었으나 그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서해바다에 살고 있는 망둥이를 천거하였다.
멸치는 가자미를 시켜서 곧 그를 데려 오도록 하였다.
멸치할아버지는 망둥이를 만나자마자 식사대접을 하면서 꿈 이야기를 하였다.
망둥이는 큰 눈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네께서 오래 사시어 이제 용이 되실 꿈입니다. 꿈에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신 것은 용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용이 조화를 일으키면 눈비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멸치할아버지는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자꾸 술잔을 망둥이에게 권하며 더 신나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가자미가 화가 나서 말했다.
「이 쓸개 빠진 영감님아, 그 말이 진짜라고 곧이듣고 있느냐. 애써 심부름 갔다 온 나에게는 술 한잔 안주면서.」
하고 그의 해석을 그럴듯하게 하였다.
「내 보니 서울 구경하고 돌아온 시골 영감님이 오면서 사가지고 온 돗바늘이 말려 못쓰게 되자 그것으로 낚시를 만들어 물에 담근 것을 노망한 당신이 그것을 물었다가 채이면 당장 하늘로 올라갔다 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그리고 저녁 밥반찬에 쓰려고 석쇠에 올려놓고 숯불에 구우면 김이 서려연기가 뭉게뭉게 날 것이요,
또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뿌리면 그것이 곧 펑펑 내리는 흰눈이 되고 불이 잘 피지 않아 부채질을 하면 더웠다 추웠다 할 것이니 당신의 꿈은 용꿈이 아니라 죽음을 재촉하는 꿈이니 정신 차리십시오.」
하고 가자미가 거품을 내뿜으면서 한 바탕 지껄였다.
멸치는 이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얼굴이 푸르락 불그락 하다가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치니, 깜짝 놀란 망둥이는 훌떡훌떡 뛰면서 도망치고 가자미의 눈은 한쪽으로 돌아가 붙었다.
이 바람에 가자미가 뒤로 물러나가다 메기머리를 잘못 밟아 메기 머리가 그때부터 넓적하게 되었고, 문어는 이 광경을 보고 저도 눈 병신이 될까 겁이 나서 눈알을 뽑아 엉덩이에 달았다.
병어는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지만 소리 내어웃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몰라 입을 움켜쥐고 웃다가 입이 뾰쪽해졌으며 새우는 웃다가 그만 허리가 꼬부라지고 말았다.
황해의 물고기들이 이 한 마리의 멸치 때문에 얼마나 큰 병신들이 되었는지 여기서다 말할 수 없다.
세상이 어찌 이 멸치뿐인가, 뼈대 자랑만하다가 조상망신 시킨 자손은 없는지, 꿈 해몽을 위해서 일평생을 설치다가 뭇 생명을 죽이고 마지막엔 낚시 밥에 걸려든 자는 없는지 알 수 없다.
멸치 할아버지는 그 날로 화가 나서 더운 방에 광고 설치듯 하다가 바늘 낚시에 목이 걸려 죽고 말았다.
진에(瞋恙) 우치(愚痴)가 한 통속이라. 어리석은 자 화 잘내고, 화 잘 내는자 또한 어리석어 어리석음 속에 인생은 죽고 마는 것이다.
<속편 영험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