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태수를 교화한 문수동자

거만한 태수를 교화한 문수동자

경상남도 지리산 쌍계사(雙溪寺)는 신라 제46대 문성왕 2년(841)에 진감(眞鑑)국사가 지은 절이다.

그 절에서 3리쯤 올라가면 7불암(佛庵)이 있고 그 암자 가운데 아자방(亞字房)이 있다.

이 암자는 신라 제5대 바사왕 23년 김수로왕(金首路王)의 일곱 아들들이 이곳에 출가하여 불도를 이루었으므로 7불암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암자 가운데 있는 아자방이 유명한 것은 방 자체도 크지만 방의 형상이 버금아자(亞) 형식으로 되어 그 높이가 12척이나 되는데 높은 데도 사람이 앉고 낮은데 사람이 앉아도 불을 때면 똑같이 덥기 때문이다.

설계는 담공(曇空) 선사가 한 것인데 어떻든 동양 유일의 대선방(大禪房)이었으므로 이름이 더욱 드날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방은 오직 참선방으로만 사용되어 왔으므로 큰 절 쌍계사에서는 물론 한국 각 사찰에서 지극히 수호하는 바 되었다.

그래서 이 방만은 참선하는 사람 이외에는 그 누구도 관람을 허락하지 아니했다.

그런데 이조 중엽 하동(河車) 군수로 온 사람이 쌍계사에 초도순시차 왔다가 칠불암 아자방을 보고 가겠다 요청했다.

그래서 스님네가

「그 곳은 보시나 마나 볼 것이 없는 곳이오니 그냥 가도록 하십시오.」

하니 이 군수 굳이 고집하여

「내 여기까지 왔다가 그 유명하다는 칠불암을 보지 않고 간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잠깐 구경하고 가겠노라.」

하여 하는 수 없이 그 일행은 칠불암으로 안내되었다.

그런데 군수는 또 아자방을 가리키며,

「이 방을 보고 싶으니 좀 열어라.」명령했다.

「지금은 공부시간이 되어 열어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보여준단 말인가.」

「이제 막 시작하였으니 서너 시간 기다리셔야 합니다.」

「내가 이 고을 성주인데 주민을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화가 벌컥 난 군수는 곧 나졸들에게 명령하여 방문을 열라 하였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조정의 영상도 그러하였고 본도의 관찰사도 그러하였습니다.

옛날부터 규정이 그러 하오니 이 방만은 안됩니다.」

하고 한 중이 가로 막았다.

그러나 그 스님은 나졸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방문은 활짝 열려 구경거리가 나타났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점심공양을 마치고 선방에 들어간 스님들은 오수(午睡)에 한참 몰려 앉은 자세가 엉망진창이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푹 숙이고 땅을 들여다보며 조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방구를 퉁퉁 뀌며 졸고 있었다. 군수 속으로

「기껏 공부한다는 사람들의 자제가 이것인가?」

안볼 것을 보았다는 듯 입맛을 쪽쪽 다시며 가만히 문을 닫고 나서며,

「요놈들 한번 혼쭐을 내놓아야겠군!」

하고 단단히 별렀다.

이렇게 벼르고 고을로 돌아온 군수는 3일 만에 편지 한 장을 쌍계사 주지 앞으로 보냈다.

내용은 이러했다.

「네 절에 도인이 많은 듯하니 나무말(木馬)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동헌(東軒) 마당에서 한번 타고 돌아보라. 만일 목마를 잘타면 큰 상을 내리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리리라.」

스님들은 당황했다.

산 말을 타라 해도 시원치 못할 터인데 나무 말을 타고 동헌 마당을 돌라 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일, 쌍계사 큰 방에서는 각 암자 스님들과 함께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누가 이 일을 맡아 군수 영감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해결을 볼 사람이 없습니까?」

주지스님이 이렇게 말하였으나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라 공사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이 때 탁자 밑에서 12, 3세가량 된 사미동자 한 사람이 일어서며,

「그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스님들은 아무 걱정 마시고 싸리채나 엮어서 목마나 한 마리 만들어 주십시오.」

「네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하겠느냐?」

「그건 염려 마십시오. 제가 기필코 성당(聖堂)의 환난을 모면케 하오리라.」

설사 그가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스님들은 각오한 듯 싸리채를 베어 목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미(沙彌)는 부목(負木=나무하는 일꾼)에게 목마를 지키게 하고 하동 군청 동헌 마당으로 나갔다.

군수는 어이가 없었다.

「네가 목마를 타려고 가지고 왔느냐?」

「그렇습니다. 소승이 군수님의 소망을 풀어 주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막힌 데가 없는지라.

「그렇다면 네가 목마를 타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다.」

「무엇 입니까?」

「내가 전날 칠불암에 갔을 때 아자방에는 도인들만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도인들이 앉아 있는 폼이 전혀 도인답지 않았다.」

「영감님도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도인이라고 별 모습을 하고 있는가요.」

「그렇다면 하늘을 쳐다보고 졸고만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지?」

「그것은 앙천성숙관(仰天星宿觀) 입니다.」

「앙천성숙관이라니?」

「하늘을 보고 무량한 별들을 관하는 공부입니다.」

「별은 왜?」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해야만 천하만사를 다 알게 되고, 천상에 태어난 중생을 다 제도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럼 머리를 푹 숙이고 땅을 들여다보고 졸고 앉아 있는 사람은?」

「예, 그것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지하에 지옥으로 들어가 죄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을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일심으로 관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좌우전후로 흔들며 이리 쓰러지려 하고 저리 쓰러지려하는 것은 무슨 공부인가?」

「예, 그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입니다. 공부하는 도승은 유(有)에 집착해도 못쓰고 무(無)에 집착해도 못 쓰고, 고락 성쇠 그 어느 것에 집착해도 못 쓰기 때문에 버드나무가 바람에 휘날려도 전후좌우 그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듯 공유(空有), 선악, 죄복 보응에 걸리지 않는 관을 하는 공부인 것 입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방구를 풍풍 뀌고 앉아 있는 중은?」

「그건 타파칠통관(打破漆筒觀)입니다. 사람이 무식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만 하려는 사또와 같은 칠통배(漆街輦)를 깨닫게 하는 공부입니다.」

「어허, 이놈.」

사또는 옆에 암아 있는 여러 조리들을 힐큼 바라보며 무안한 듯,

「아직 입에서 젖 냄새도 가시지 않은 너의 식견이 이러할진댄 그 곳에 있는 도승들이야 더 말할 것 있겠느냐? 이제 더 물어볼 것 없으니 어서 목마나 한번 타보라.」

사미승은 불끈 일어나서 싸리채로 만든 목마 위에 얼른 올라앉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말 궁둥이를 내려치며,

「어서 가자, 목마야. 미련한 터줏대감의 칠통 같은 마음을 확 쓸어버리고 태양 같은 밝은 빛이 그 안에도 비치게 하자.」

하고 발을 한번 내 구르니 목마가 터벅터벅 동헌 마당을 5, 6회나 돌더니 둥실둥실 공중으로 떠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군수와 육방관속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리고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로부터 군수는 발심하여 불교를 독신하고 또 장계사와 아자방을 산부처님 모시듯 살피니 하동 군민이 다 그리하여 일시에 하동은 불바다(佛海)를 이루고 화장세계(華藏愷界)를 재현하였다 한다.

<韓國寺訓史料集 亞字房의 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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