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은혜를 갚다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소백산 희방사(喜方寺) 앞에 수철교(水鐵橋)란 무쇠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신라때 서라벌 출신 호장(戶長) 유석(留石)이 놓아준 것인데 그 내력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약 1320여년전, 고승 두운(杜雲) 조사가 태백산 심원암에서 공부하다가 경북 영주군 풍기면 소백산, 지금 희방사 절터에 조그마한 토굴을 짓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겨울눈은 내려 쌓이고 휘영청 달은 밝은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두운조사의 토굴 부엌에 들어와 고개를 쑥 빼고 눈물을 짓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워 가까이 가지 못하다가 저 놈이 필시 배가 고파 새끼를 구원코자, 사람 냄새를 맡고 왔으렸다 하고 웃통을 벗고 그의 앞으로 쪽 달려들며 말했다.
「네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런 모습으로 눈물을 짓고 있겠느냐? 나는 불도를 끓는 도인, 일가도 친척도 없는 고고단신이라 원수를 맺고 원수를 갚을 자도 없으니 나를 먹어 배를 채우라.」
그러나 범은 주춤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앉아 해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조사는 괴이하게 생각하고 그의 앞으로 더욱 바짝 달려들어 그의 모습을 낱낱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앞발을 들고 모가지를 털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로소 목에 무엇이 걸려 죽게 생긴 모양이다 하고 조사는 그 붉은 어깨를 기름에 묻혀 반지럽게 해 가지고 그놈 목구멍으로 쑥 집어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머리 쪽에 꽃은 은비녀가 가로 질러 있었다.
대사는 호통을 쳤다.
「이놈, 사람을 잡아먹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많은 짐승들을 다 놓아두고 하필이면 만물 가운데 영장을 먹어 원수의 인을 짓고 있는가? 내 너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마땅히 매를 때려 참회를 구하겠으나 죽은 목숨보다도 산 생명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그대로 돌려보내니 다시는 그런 짓하지 말라.」
호랑이는 알아듣는 듯 머리를 수그리고 한참 듣고 있다가 으슬렁 으슬렁 걸어갔다.
그런데 며칠 후 또 토굴 부엌에서 무엇이 쿵하는 소리가 났다.
나가 보니 그 호랑이가 큰 산돼지를 업고 와서 부려 놓았다.
나를 살려 주었으니 은혜를 갚는다는 듯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앉아 있었다.
「네 이놈, 호랑이가 영물인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매우 맹추 가운데도 맹추로구나.
중이 고기 먹는 것을 어디서 보았길래 이런 물건을 잡아온단 말이냐?
어서 가지고 가 너나 먹어라.」
하고 스님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호랑이는 다시 그 맷돼지를 등에 업고 나가 버렸다.
그런데 또 며칠 후 부엌에서 쿵 하는 소러가나 나가 본즉 이번에는 17, 18세 되는 꽃 같은 색시를 업고와 내러 놓고 달아나 버린다.
조사로선 매우 난처한 일이었다.
부처님 계율에
「비구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타는 불을 껴안는것 보다 더 무섭다.」
하였는데 그대로 놓아두자니 죽겠고 가까이 살피자니 불계(佛戒)를 어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보고 버리는 것은 보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다 생각하고 두운조사는 곧 그 여인을 불끈 들어다 따뜻한 방에 눕히고 손발을 만져 보았다.
벌써 온몸은 동태처럼 굳어 있었으나 단지 명치끝에 약간 온기가 있고 이따금씩 콧구멍에 숨기가 있는 것 같았다.
스님은 물을 덥혀 입 속에 떠 넣고 두 팔과 다리를 주물렸다.
얼마 후 색시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는 소백산 연화봉 아래 초암입니다.」
「소백산 연하봉 아래 초암- 아 내가 어떻게 여기를 왔지요?」
하고 또 한 번 까무러친다.
얼마 후 다시 깨어난 여인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부처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중이요.」
「중, 중, 아니예요. 당신은 중이 아니라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중으로 잘 변한다들었어요.」
「그런 염려는 놓으십시오. 여기는 분명히 절이고 호랑이 굴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을 업고 왔던 호랑이는 저기 저 밖에 앉아 있습니다.」
하고 문을 활짝 열어 보였다.
그때까지 앉아 이 소리를 엿듣고 있던 호랑이는 저윽히 만족한 듯 뒤지기를 한번 크게 켜고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이제 내가 호랑이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요. 안심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예, 저는 경주 서라벌 계림(鷄林)에 사는 호장 유석의 딸입니다. 오늘 저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랑과 대례를 치르고 밤이 되어 신방을 들어가려는 찰나 무슨 불이 번적하면서 나의 몸을 공중으로 내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부터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거 참 큰일 날 뻔하였습니다. 집에서는 얼마나 부모님과 신랑이 걱정하고 있겠습니까?」
「글쎄 올시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이 풀리지 않습니다.
호랑이란 놈은 사람을 보면 보기가 무섭게 잡아 먹는다하였는데 이 험한 산중에까지 나를 업고 와 잡아 먹지 않고 버리고 가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쎄 올시다. 다 전생의 인연이겠지요. 그러나 우선 잠이나 한숨 푹 주무십시오.」
하고 스님은 누더기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도 그의 얼굴에는 고웁게 단장했던 연지와 분이 그대로 남아 있고 값진 비단이 몸에 감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부유한 집의 새 신부임이 틀림없었다.
반달같이 화사한 얼굴, 백합처럼 고운 살결이 보면 볼수록 더욱 아름다웠다.
나이 30, 아직까지 여자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스님이 있지만 이 아릿따운 선녀를 보고는 무엇인가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그러나,
「도고마성(道高魔成), 도가 높아지면 마가 성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호사다마(好事多魔)로구나.」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나가 밥을 지었다.
눈은 쌓여 은산천지(銀山天地)를 이루고 산은 적적, 달은 더욱 황홀하게 빛났다.
밤이 늦어서야 한 숟갈 떠먹은 여인은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일월 같은 스님의 용자(容姿)를 바라보며, 「스님, 아까 다 전생에 인연이라 하였지요.」
저와 부모, 그리고 그 신랑 될 뻔한 사람은 무슨 인연이 있사옵기에 이런 이별을 하였으며 스님과 저는 무슨 인연이 있사옵기에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을까요!」
「글께 올시다. 당신과 부모, 그리고 그 신랑과는 다 그렇지 않으면 아니 될 인연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와의 인연은 호랑이와의 인연이 깊은 탓인가 합니다.」
「호랑이와의 인연이라뇨?」
「사실 호랑이와는 전날 이러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하고 호랑이 입에서 비녀를 빼준 인연이라든지, 호랑이가 맷돼지를 가지고 온 인연이라든지 그 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소상히 일러주매,
「그러니 그 놈이 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하였다.
그러나 소녀는,
「참으로 이상도 한 인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는데 저는 호랑이를 타고 시집을 왔으니 말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은 여기 시집을 온 것이 아니라 불법과 인연을 맺으려온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스님, 스님이 있으므로 불법과 인연을 맺을 수도 있고 불법을 신앙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스님은 불법보다 더 중한 인연입니다. 스님은 이제 무엇이라 해도 저의 낭군이 아닐 수 없으며 또 그것은 아무리 우리가 변명을 해도 뒤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청백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스님은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스님은 완강히 부인했다.
「남이야 믿건 믿지 않건 우리만 청백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의 말씀에도 나이 많은 사람은 어머니로 생각하고 나이 적은사람은 누이동생으로 생각하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은 형제요, 누나며, 일가친척으로 생각하라 하였은즉, 나는 소저를 누이동생으로 생각하겠소. 그러니 소저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살아가시오.
이곳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한번 눈이 내리면 다음해 봄이나 되어야 사람 구경을 할 수 있고 또 소저도 그때나 되어야 집에 가게 될 것이니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와 함께 그동안 불도나 닦읍시다.」
스님의 마음이 이러한데 소저야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하면 스님은 전날 자기와 대례를 치르었던 신랑과 대조도 안되는 인물이었다.
건강한 키, 위엄한 자태, 밝은 용안이 그를 한없이 유혹했지만 스님은 정녕 현세의 인간은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면 눈을 치우고 또 도량을 정리하고 집안 살림을 살피는 외에 틈만 있으면 단정히 앉아 참선을 하였다.
방이라야 여섯자 한 칸, 둘이 누우면 남을 것도 없지마는 스님은 밤마다 눕는 법이 없었다.
졸아도 앉아서 졸고 자도 앉아서 잤다.
이렇게 날이 가고 달이가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스님은 눈이 녹기를 기다려 바랑을 챙기고 누더기를 빨아 원행(速行)할 채비를 하였다.
소저는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탐욕과 진에(瞋恙) 우치(愚痴)에 얽혀 사는 세상, 백년 살아야 하루의 이 생활을 당적할 수 없었다.
「스님 가고 싶지 않습니다.」
「허어 그 무슨 소리, 갔다 다시 오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님께 소식이나 전하고 다시 와야 하지 않겠소. 지금 집에서는 보통 가슴 아파 하지 않고 있을텐데-」
해서 그들은 앞서고 뒤서고 하며 무려 백여리의 길을 걸어 경주에 도착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집에서는 초혼제(招魂祭)를 베풀고 있었다.
소저가 집으로 들어가자 굿하던 무당과 굿을 보던 동네 사람들은 기절초풍을 하여 달아났다.
죽은 귀신이 찾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두 손을 싹싹 빌며,
「아가 아가 우리 아가, 네가 그렇게 갈 줄 뉘 알았더냐. 청춘에 맺힌 혼이 집을 찾아 예 왔구나.
원하는 대로 소망을 다 풀어줄 터이니 산 사람이나 해코자 말고 돌아가라.」
하고 사정 하였다.
「어머니, 저는 귀신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애통하게 찾던 무남독녀 제가 여기 왔습니다.」
그러나 정녕 곧이듣지 않았다.
그 때에 스님이 들어가 전후 사정을 소상히 털어 놓으니 비로소 사람들은 말을 잊고 서로 우러러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저윽이 난처한 것은 처녀와 총각이 깊은 산속에서 석 달이나 너머 한 방에서 지냈으니 그것이 성할 리 있겠냐는 결론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스님, 스님은 천생 배필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남편이니 아이를 데리고 마음껏 즐기시오.
생에 대한 모든 문제는 내 책임지고 마련하겠습니다.」
「배려는 감사하오나 소승은 이미 각오한바가 있습니다.」
「아무리 스님이 각오하였다 하더라도 한방에서 석 달 동안이나 지냈으니 이제 내 딸은 스님의 아내나 다름이 없지 않겠소?」
「생각은 그러 하실 줄 믿사오나 우리의 마음은 호장님의 따님이 더 잘 알터이니 소승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때 딸이 지난날의 생활을 다 털어 놓았다.
따님의 말을 들은 유석공은 스님의 손을 잡고 백배 사죄를 한 다음
「뜻이 이미 그러 하시다면 단 며칠이라도 이 곳에서 쉬어 가시도록 하십시오.
내 딸의 뜻을 따라 사람을 보내어 절을 중수하고 길을 정리하겠습니다.
그것마저도 뿌리칠 수가 없어 두운조사는 그 곳에 며칠을 머물렀다.
유석은 곧 사람을 보내어 토굴을 헐고 절을 지으니 이름이 희방사(喜方寺)요, 절 앞에 큰 개울이 있어
비가 오면 건너 다닐 수 없으므로 귀한 무쇠를 구해 다리를 놓으니 이름이 수철교(水鐵橋)다.
<韓國寺刹史料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