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한 생을 살면서 중생을 살피는 정윤모
포교사 한국불교 태고종 포교사에 정윤모스님이 있다.
그는 지금부터 1968년 이른 봄의 일이었는데, 갑자기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증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물만 먹어도 온 몸이 부어오르며, 서 있지도 못하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잠도 잘 수가 없어, 뜬 눈으로 공포에 휩싸여 날 새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병원의 진단은 간경화증·복수·혹달이란 것이었는데, 값비싼 외제약은 물론이고 온갖 치료를 다 받았지만 병세는 악화되기만 하였다.
의사들도 불치의 병이라며 손을 들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한번 불교수행에나 몰두해보자.」
는 생각에 휴직서를 내고는 불교에 매달렸다.
설령 죽는다 해도 내생엔 좀 도움 되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선지식의 지도를 받으며 참선하는 한편, 불경을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우선 느낀 것은 인간은 영원히 사는 생명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불교서적을 뒤적였기 때문에 지식으로는 불교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막바지에 달하면 오히려 근본으로 돌아가기 쉬운 것인지, 부처님 말씀이 예전과는 달리 지극히 절실하게 그의 가슴에 사무처 오는 것이었다.
「그래. 이 허망한 현상계에 매달리지 말자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다.
단지 부처님께만 가까이 가자. 죽는 순간까지도 오직 정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라고 공포심을 버리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이어서 아주 평온한 심정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자 문병 온 사람들이
「몸은 분명히 환자인데. 얼굴은 죽을상이 아니다.」
일말의 희망과 자신감을 얻은 그는 약도 완전히 끊어버리고 오직 참선에 몰두하였다.
「의사가 병 못 고치고, 약이 사람 못 죽인다.」
그는 오직 부처님만 믿겠다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자기에게 잠재되어 있는 불성(佛性)이란 무한능력이 나타나게끔 하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였다.
참으로 하루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으나, 그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지냈다.
단지 병세가 점차 호전되어 가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2개월쯤 되자, 현대의학이 불치의 병이라 선고했던 병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는 다시 직장에도 복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부처님의 은혜로 재생한 그는 일생을 부처님께 바치고자 발원하고, 정년퇴직 후에는 나름대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일을 해나갔다.
부처님 공덕으로 여러 사람이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암 등의 불치의 병까지 고칠 수가 있었다.
얼마 전 명륜동에 사는 80여세 되시는 한경림 보살님을 만났다.
그분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였다.
국민학생때부터 약한 것이 소문나서, 상태가 안 좋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가도록 허락받을 정도였던 것이다. 한 4년 전 정포교사를 만났다.
그때 그는 몸이 부어 있었으며 건강이 엉망이었다.
그동안 내내 건강이 안 좋아 고생한 처지여서, 얼굴에는 병색이 역력하였다.
심장과 자궁이 심히 안 좋았고,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거동도 자유롭지 못했다.
다른 치료는 할 만큼 해보았으므로, 이젠 신앙을 통해 치료해 보는 길밖엔 없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찾아왔던 것이다. 정포교사는 여울과 같이 가르쳤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변화인데, 생명은 살아 있는 것이므로 항상 변화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으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늘상 환경에 대해 새롭게 움직인다.
생명은 실로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란『조화』,즉『균형』을 의미한다. 살아 움직이며 변하는 것들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무아인데, 서로 간에 대립할 현상적 모양이 없고, 상의성(相衣性)이므로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대 생명의 입장에서 서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열반적정(浬槃寂靜)은 안정이다. 우주의 참 모습은 평온한 것이다.
아무리 겉 파도가 요란스러워도 바다 밑은 늘 고요하듯, 내 참 모습은 언제나 여여(如如)한 것이다.
그러한 삼법인(三法印)이 우리의 참모습이나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면서도 남과 조화를 이루며, 또한 늘 평온한 것이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불교를 잘 알고 계신 분이 볼 때는 사실 유치한 내용이겠지만, 그분은 그의 말을 통하여 대승불교가 제시한 우리 생명의 상락아정(常樂我淨)한 당체를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며칠 안되어 격렬한 반응이 오더니 얼마 후엔 감기도 안 걸리는 건강한 삶을 살게끔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잠재의식은 병을 만드는 힘은 물론, 병을 고치는 힘도 있다」
는 학설을 제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힘을 이용하여『그는 살 수 있다』든가 『나는 성공한다.』는 상념을 계속 그리면, 현실로도 그렇게 된다는 실증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신분석학의 잠재의식이란 불교의 제 7식(말라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여하튼『질병에 대한 공포심을 버리고, 나는 질병 따위에 침략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믿고, 오직 부처님 성품만을 생각하고 인정하면, 병은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밝은 것만 보는 자에겐 어둠이 올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우리 생명은 첫 빛보다 밝으므로, 어둠은 원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헛된 망상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감정기계 역할을 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에 끄달리지 말고 현상을 포기하면, 밝은 참 모습이 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月刊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