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영적 활동을 전개한 손윤택스님
흔히 사기사건이나 사회적 범죄의 밑바닥에는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재인의 삶에 있어서도, 육체만이 인간의 전부라는 생각 때문에 온갖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인간에겐 육체 이상의 큰 부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 부분이 사실상 삶을 이끌어가는 것임을 불교에서는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그것을『마음』또는『생명력』등으로 표현하는데, 이 육체를 초월한 분야를 알지 못하고서는 바른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이 무엇인지 알아야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요리 재료들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스님은 12살 때에 아주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던 그에겐 무척이나 이색적인 내용이었다.
꿈에 어느 산소를 보았는데,「할아버지산소」라는 것 이었다.
그런데 산소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털이 많이 난 두 손이 나오는데, 거기엔 붉은 피가 들은 컵이 하나 들려있었다.
그리곤 어디서 누가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피를 마셔라 ! 그러면 너는 내 제자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 마시고 컵을 돌려 주였다.
그러자 컵이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역시 피가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마저 받아 마시고 주니까, 갑자기 팔척장신의 할아버지가 죽장을 짚고 나타나는 것이있다.
그러더니 죽장을 그에게 건네다 주며,
「넌 이제 나의 제자가 되었다.」
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꿈을 꾼 뒤로는 현실적인 일들이 있기 전에 꿈으로 미리 모든 것을 보게 되있다는 사실이다. 독 속에 든 쌀이 썩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시험 때가되면 미리 꿈에서 시험을 쳤다.
꿈에서 깨어도 그 문제들이 생생히 기억에 남았는데 영락없이 같은 내용이 출제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고도 항상 우수한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로소득(?)의 경험으로『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그는 소년 시절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행운이라 할 수 있겠고, 어쩌면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은 그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생활과 군대생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해나갔다.
그런데 한국 타이어 주식회사에 근무하던 20여년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질 못하고 근무 중에 자꾸 졸도하는 것이었다. 여러 병원을 다녔으나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으며, 그저『신경성 위궤양』인 것 같다는 진단이 몇 군데서 나왔다.
병명을 알 수 없으니 어떤 처방을 해야 할지를 몰랐고, 도대체 병을 치료할 방도와 전망이 막연하였다. 근무할 의욕도 생기지 않아 이리저리 방황을 하였다.
이미 가정까지 둔 입장이었으나, 만사가 괴로워서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그때 친구를 통해 당시 돈암동 신홍사(지금은 흥천사)에 계시던 송병주 법사님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하소연 하였더니,
법사님은,
「허허 ! 별 일 아니야, 너는 큰 놈이 될터이니, 불문(佛門)에 들어오지 그래.」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성직자 집안에서 성장한 그에겐 그 말씀이 얼른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왕에 성직자가 된다면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지, 불교 성직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법사님은 누차 그를 절에 불러들이시어 불교를 알려 주셨으며, 서적도 여러 권 보여 주셨다.
그러자 이제까지 그가 지녔던 불교에 대한 편견은 차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불교란 결국 인생에 대한 가르침이란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천수심경이란 책을 주시며, 일심으로 공부하면 반드시 얻을 것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달리 매달릴 곳도 없었던 처지였으므로, 그는 오직 천수심경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자 소위 말하는『영안(靈眼)』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세파에 시달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년시절의 체험을 되새기게 되었으며, 뭔가 인생의 활로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꼭 직장 생활이 아니어도 내가 살아갈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병주 법사님을 따라 종로 3가의 어느 만물상을 방문하였다.
당시 그 상점을 운영하시던 분은 예전에 큰 스님이었는데, 그를 보더니 대뜸
「옳거니 !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지.」
하며 땅 속에서 발굴되었다는 조그만 동불상을 두 분 건네주시며,
「원래는 세 분을 모셔야 하는데, 또 한분을 모실 수 있을거야.」
하며 등을 두드려 주시는 것이었다.
처음엔 집안의 조그만 사과 궤짝에 부처님을 모셨다.
당시 집이 한양대 옆의 사근동이었는데,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이미 둘 있었으며, 어디론가 출가하여 스승을 모시고 수행할 처지도 되지 못하였다.
또한 주역이라든가 운명 철학을 공부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문제를 저절로 감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을 모시고 난 후로는 어느새 전신을 압박하던 병도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음은 늘 푸른 하늘처럼 밝고 담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세상을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지고, 설령 술좌석에 가서도
「당신은 이런 문제가 있지요?」
하면 상대방은 깜짝 놀라며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고 반문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신내린 사람』이란 생각지도 못했던 소문이 퍼져, 내 집은 자연히 법석거리기 시작하였다.
「아 ! 나는 이 길을 가야되겠구나! 세상엔 많은 길이 있지만 나는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에 인연이 있구나!」
라는 확신이 서게 되자, 직장을 정리하고 아예 불단(佛壇)을 마련하곤「산불사(山佛寺)」란 이름을 집에 걸었다.
그의 본래 인연이 산신령이시고, 또한 부처님이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일반 출가승과는 다르다면서도,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는 교화승(敎化僧)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때부터 불교 수행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꼭 어느 형식을 갖춰야 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머리를 박박 깎아야 한다거나 먹물 옷을 꼭 입어야 된다고 생각되지 않았으며, 반드시 스승을 모서야 한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정신적인 선지식에는 늘 가르침을 받되, 꼭 승적(僧籍)상의 은사(恩師)·계사(戒師)·법사(法師)가 제도적으로 구비되어야 수행이 잘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형식상의 일이고, 종교의 수행은 내면적인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인중무언수행도(人重無言修行道)란 말처럼,
「사람은 말없이 닦고 행하면 된다. 현상적 모양을 따르지 말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데 도리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인연에 충실하면 진리를 증득할 수 있다.」
는 견해를 고수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어려서 출가한 비구승들과는 달리, 오랜 사회생활 끝에 나이 먹은 후에 불문에 귀의한 입장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행과 깨달음은 내면적 실천에 있는 것이며, 삭발한 머리 위나 장삼자락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신념은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스승을 믿었다가 실망하거나, 승려들에게 진리를 의지했다가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어느 타인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내면의 소리인 것이다.
「자기를 의지하고 법(法)에 의지하라. 결코 남을 의지하지 말라.」
는 부처님 말씀이 그에게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내면의 소리』를 그는『영(靈)』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누구나 지니고 있는 대 생명력인 불성(佛性)에 귀 기울이면, 결국 진리에 귀의케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많은 신도들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질병의 원인은『자신의 할 바를 하지 않은 것』에 있다.
또한 전생의 업장으로 인하여 현생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죽으면 그만이 아닌 영생의 존재이며, 자기의 문제를 처리할 능력은 누구나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진리를 알면 불안이 사라지고 병이 낫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근본적인 불안감을 느끼며,『나는 할 능력이 없다』는 열등감 때문에 공포심을 갖는다.
여기에 뒤따르는 것이 온갖 불행인 것이며, 그 대표적인 현상이 질병인 것이다.
또한 전생에 원인을 둔병이란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을 생사를 초월한 진리에 접근시키는 경우가 많으며, 수행을 통하여 그 업을 정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며, 어떠한 난제든 『손오공이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격인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근원이 자신에 있는 바, 내면의 불성에 귀의하면, 현상적으로도 행복·조화·건강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현재 도봉구 공릉동에 거주하시는 김형수(57세) 거사님은『라이프 제화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계시는 아주 활동적인 사업가였는데, 그분 역시 만성 위장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거의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로 질병이 심했던 것이다.
스님은 의사가 아니므로 어떤 치료는 안했지만 단전호흡을 지도하고 자연수를 마시길 권하며 불교적 인생관이 심어지도록 하였다.
전직 목사였다는 그분은 약 6개월의 수양 후에 얼굴에 화색이 돌고 병이 쾌차되어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온갖 처방을 찾아다니며 투병생활을 하였지만 고칠 수 없었던 것인데, 스님이 보기엔 생활의 불안정이 그 원인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독교인이면서 기독교도로서의 생활을 제대로 못했고 또한 자신을 강하게 누르는 무신론적인 생활에도 충실하지 못하여 지극한 혼란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이 고질병으로 표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분이 불교에 귀의하고부터 병이 나은 것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인 것이다.
반야심경을 계속 독송함으로써 마음이 청정해지고, 자신의 해야 할 바를 알게 된 것이다.
왠지 자신을 외부의 절대자에게로 매몰시키려는 데 대해 내부 생명의 의지는 반발하였으며, 장사하면서 이득을 남기는 것에 대한 종교적 갈등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불교를 통하여 어디에도 얽매일 수 없는 자신의 불성을 알게 되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으며, 한국인으로서 생리로부터 품고 나온 종교적 심리를 재인식하게 됨으로써 밝은 삶을 살게 된 것이리라.
즉, 자기를 잃고 살았다가, 자기 근본을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 생활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스트레스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쌓이면 곧 병이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점점『육체의 병』보다는『마음의 병』에 그 중점을 두고 있는데, 실상 모든 병의 원인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매사는 일이 터진 후에 수습하느니보다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는『유비무환』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영감(靈感)이 있는데, 혼자 있는 시간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그것이 떠오른다. 그런 시간을 가진 후엔, 누구한테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판단으로 그날의 시간의 흐름을 잘 활용하도록 하자. 타의에 의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한다. 삶의 단위가 시간이다 보니, 자신의 시간을 잘 씀으로써 어느새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되며 지병 등의 예방도 되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이 스님의 말씀이다.
<月刊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