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계체성경(入法界體性經)

입법계체성경(入法界體性經)

수(隋) 천축(天竺) 사나굴다(闍那崛多) 한역 변각성 번역

그 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사자굴산(耆闍崛山)에서 대비구(大比丘) 대중 5백 사람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童子)는 초저녁에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부처님의 별문(別門)에 서 있었다.

이 때에 여래께서 삼매에 머무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문수사리동자가 별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들어오라. 그대는 들어오라. 안으로 들어오고 밖에 서 있지 말라.”

그 때에 문수사리동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즉시 부처님 처소에 들어갔다. 그곳에 이르고서는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자리에 앉아라.”

이 때에 문수사리동자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지시를 받겠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한쪽에 앉았다.

이 때에 문수사리동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께서는 어떤 삼매에 계시다가 일어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삼매가 있나니, 그 이름은 보적(寶積)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 때에 이 삼매를 행하였었고 그로부터 일어났느니라.”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또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서 이 삼매를 보적이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큰 마니(摩尼) 보배 구슬을 잘 갈아 빛이 나게 하고서 깨끗한 곳에 두면 그 있는 곳을 따라 다함이 없는 진보(珍寶)가 나오느니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내가 이 삼매에 머물러서 동방(東方)을 관찰하되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祇) 세계에 현재 여러 부처님ㆍ여래ㆍ아라하(阿羅呵)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를 보며, 이와 같이 남ㆍ서ㆍ북방과 네 간방[四維]과, 위 아래인 이와 같은 10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를 내가 모두 다 보나니, 모든 여래도 이 삼매에 머물러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내가 이 삼매에 머물러서 한 법도 법계(法界) 아닌 것을 보지 못했노라. 문수사리여, 또 이 삼매를 실제인(實際印)이라 이름하나니, 만일 순일하고 정직한 선남자(善男子)ㆍ선여인(善女人)으로서 이 삼매를 행하는 자는 변재(辯才)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변재(辯才)가 있고 가타(伽陀)를 닦았으며 변재를 압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떻게 변재를 아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저 마니 보배가 다른 곳에 의지하지 않고 실제(實際)에 의지하여 머무름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일체 모든 법도 또한 머무른 바 없고 오직 실제에 의지하여 머무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실제를 아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실제를 압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실제라 이르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의 제[我所際]가 있는 것이 곧 실제며, 범부제(凡夫際)가 있는 것이 곧 실제며, 업(業)과 과보(果報)인 일체 모든 법이 모두 실제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믿는다면 바로 진실한 믿음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뒤바뀌게 믿는다면 곧 바른 믿음이요, 만일 그릇된 행(行)을 행한다면 그것도 곧 바른 행입니다. 왜냐하면 바름과 바르지 않음이란 말만 있는 것이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행(行)이란 어떤 이치[義]이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행이란 실제를 보는 이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닦는 것이란 어떤 이치이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도를 닦는 것이란 사유하여 증득하는 이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처음으로 수행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을 위하여 어떻게 설법하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이 있는 곳에서 아견(我見)을 발하도록 가르치니 그것이 바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탐욕의 모든 허물을 없애라’고 설법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이 모든 법의 본성은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실제를 없앤다면 곧 아견(我見)의 생긴 자리[際]를 없애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처음으로 행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을 위하여 이와 같이 설법하며 불법(佛法)을 받지 않고 범부 법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법에 들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처음으로 뜻을 발한 선남자ㆍ선여인을 위하여 꼭 이와같이 설법합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또 중생을 교화할 때에는 어떻게 설법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색(色)이 생김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또 색이 생기지 않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설법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역시 생기지 않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설법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나는 탐욕[欲]ㆍ성냄[瞋]ㆍ어리석음[癡] 등을 무너뜨리지 않고 설법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나는 교화 받을 이들에게 불가사의한 법을 알게 하기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이와 같으므로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루었노라.

문수사리여, 나는 모든 법을 무너뜨리는 바 없이 위없는 보리를 이미 성취하였으며, 또 생김이 없이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였느니라.

문수사리여, 말한 바 부처란 곧 법계(法界)며 저 모든 두려움이 없는 힘도 또한 법계니라.

문수사리여, 나는 법계에 분수(分數) 있음을 보지 않느니라. 나는 법계에서 이것은 범부의 법이며 이것은 아라한의 법이며 벽지불의 법이며 부처님의 법이라고 보지 않느니라. 그 법계는 수승하거나 기이함도 없고 또 무너지거나 어지러움도 없느니라.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항하(恒河), 염마나(閻摩那), 가라발제하(可羅跋提河) 이러한 큰 강들이 바다에 들어가나 그 물은 달라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이와 같은 갖가지 명자(名字)와 모든 법이 법계 에 들어가나 명자와 차별이 없느니라.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갖가지 모든 곡식 무더기에는 차별을 말할 수 없듯이 이 법계에서도 또한 차별된 명자가 없느니라. ‘이것이 있다, 저것이 있다, 이것은 더러운 것이다, 이것은 깨끗한 법이다, 범부다, 성인이다, 모든 부처님 법이다’ 하는 이와 같은 명자를 보여 나타낼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법계는 내가 지금 말함과 같나니 이와 같은 법계를 어기거나 거스르지 않고 이렇게 믿고 좋아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그 거스름과 순종하는 한계의 법계는 두 모양이 없기 때문이니라.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어서 볼 수 없으므로 그 일어나는 곳도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러한 법문을 말씀하시고 나자,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법계에서 나쁜 갈래[惡道]로 향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또 인간 천상의 길로 향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또 열반에도 향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와서 묻되, ‘어찌하여 현재에 여섯 갈래[六道]가 있느냐’라고 이와 같이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해설해 주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잠자며 꿈꾸다가 혹 지옥도(地獄道)도 보고, 혹 축생도(畜生道)도 보고, 혹 염마라(閻滅)의 사람도 보고, 혹 아수라(阿修羅)의 몸도 보고, 혹 하늘[天處]도 보고, 혹 사람 등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사람이 꿈에서 본 모든 갈래[道]에서의 일이 제각기 다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뜻을 따라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저 여러 중생들이 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제가 비록 모든 갈래가 각기 다르다고 설명하나 그 법계는 실로 차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묻는 자에게는 저는 마땅히 그를 위하여 여실하게 해설하리니 피차(彼此)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성문승(聲聞乘)을 행하여 열반을 취하는 자에게는 진실한 이치를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에게 지금 현재에 또 분별하여 명자(名字)만을 설명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법계의 변제(邊際)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큰 바다에 일곱 가지 보배가 있는데, 흰 마노, 옥, 산호, 금, 은의 나는 빛깔이 서로 다르나 이는 보배인 것과 같습니다. 법계에서는 다른 모양이라고 알아서는 안되나니,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법계는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법계는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법계는 탁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법계에서 멸할 것도 없고 또 생기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시면서 일부러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으셨다.

“네가 법계를 아느냐?”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법계를 아나니, 바로 아계(我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또 물으셨다.

“네가 세간(世間)을 아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환술로 된 사람의 하는 짓과 같은 것이 세간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간이란 다만 명자(名字)만 있을 뿐 볼 수 있는 실물이 없으므로 세간행(世間行)이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법계를 여의지 않고 세간을 보나니, 왜냐하면 세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물으신 것과 같이 세간이 어느 곳에 행하느냐는 것은 이른바 색의 성질[色性]은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저 행(行)도 또한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이와 같이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그러하며, 이 식의 성질[識性]도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이와 같이 행(行)도 또한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하나의 모양[相]은 이른바 모양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물으셨다.

“문수사리여, 너는 어찌하여 현재의 여래(如來)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가 미래에 멸도(滅度)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 법계를 이미 닦았으며 미래에 닦을 것이 있겠습니까? 법계는 이미 닦아진 것이 없으니 어찌 멸하여 나타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뜻에 어떠하냐? 과거의 항하 모래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들이 이미 멸도하셨다는 것을 너는 어찌 믿지 않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러 여래께서 모두 이미 열반하신 것을 믿으니, 그 태어나신 곳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뜻에 어떠하냐? 모든 범부로 하여금 죽은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자 함이니라.”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히려 범부가 있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찌 다시 살아나게 함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물으셨다.

“너는 부처님 앞에서 법문 듣기를 좋아하는구나.”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좋아함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을 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법계를 좋아하지 않느냐?”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법도 법계 아닌 것을 보지 않으니 다시 무엇을 좋아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아만이 있는 자가 너의 말을 듣는다면 큰 공포를 내리라.”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만이 있는 자가 공포를 낸다면 실제(實際:진리)도 또한 공포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제는 공포를 내지를 않으니, 즉 일체 모든 법이 다 공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닦아 짓는 것이 없으므로 이것이 금강 구절[金剛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으로 이것을 금강 구절이라고 하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성(法性)은 무너지지 않나니 그러므로 금강 구절[金剛句]이라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부사의(不思議)한 구절이 곧 모든 법의 부사의이며, 금강 구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으로 다시 이것을 금강 구절[金剛句]이라 이름하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생각함이 없기 때문에 곧 금강 구절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곧 보리(菩提)이며, 금강 구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으로 다시 이것을 금강 구절이라 이름하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일체 법은 있는 바가 없고 다만 명자와 말만 있습니다. 모든 법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니 모두 있는 바가 없습니다. 이것과 저것이 있는 바가 없는 것이란 바로 진여(眞如)입니다. 만일 진여라면 곧 진실이요, 만일 진실이라면 곧 보리이니, 그러므로 금강 구절이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일체 모든 법이 여래의 경계며, 금강 구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으로 이것을 금강 구절이라 이름하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자성(自性)은 본래 고요한 것이므로 금강 구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난타(阿難陀) 비구를 불러와서 이 법본(法本)의 구절을 받아 지니게 할지어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가운데에서 말하거나 들을 만한 어느 한 법도 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실로 한 글자도 말할 것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많은 구절이 있어 지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너는 이것을 잘 말했구나. 문수사리여,
나는 동방의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紙) 세계에서 여러 여래ㆍ아라하ㆍ삼먁삼불께서도 또한 이 법본(法本)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노라.”

그 때에 장로(長老) 사리불(舍利弗)이 자기가 머무르던 곳으로부터 나와서 문수사리동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도착하자 문수사리를 보지 못하고 곧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도착하고 나서 부처님의 별문(別門) 밖에 서 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사리불 비구가 지금 문 밖에서 법을 듣고자 하니 네가 들어오게 하여라.”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 사리불 쪽[際]이 만일 법계 쪽이라면 세존이시여, 이는 두 쪽이니, 어찌 안에 있고 밖에 있는 것과 중간인 둘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실제(實際)라 말한 것도 또한 실제가 아니며 이와 같이 쪽[際]도 쪽이 아니어서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로 사리불 쪽[際]이 곧 실제이며 사리불의 경계[界]가 곧 법계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이 법계는 나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나니, 장로 사리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마땅히 어느 곳에 들어가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일 내가 안에서 여러 성문(聲聞)들과 함께 말하고 너는 밖에 있는데도 들어오도록 하지 않는다면, 너의 뜻에 어찌 괴로워하는 생각이 없겠느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세존께서 무릇 말씀하신 법은 법계를 떠나지 않나니, 여래의 말씀하신 법이 바로 법계며, 법계가 바로 여래가 말씀하신 법계입니다. 법계와 같이 언설계(言說界)도 다름이 없고 있는 것이 없기에 이름하는 것과 말하는 것들이 모두 법계를 떠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뜻으로 저는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겁(劫) 동안 세존의 설법하신 곳에 가지 못한다 하여도 저는 좋아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둘이 있다면 곧 괴로워 할 것이나 법계에는 둘이 없기 때문에 괴로워함이 없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너는 들어와서 문수사리의 변재(辯才)를 들어라.”

사리불은 말하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매우 듣고 싶습니다. 지금 방 밖에 있으면서 세존과 문수사리동자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 때에 문수사리동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장로 사리불로 하여금 들어와서 법을 듣게 하겠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너는 앞으로 와서 들어오너라.”

사리불은 말하였다.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는 즉시 앞으로 방에 들어와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가 한 쪽에 앉아 있었다.

그 때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장로 사리불이여, 그대는 무슨 뜻을 보았기에 이곳에 왔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는 법을 듣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니 이곳에는 마땅히 가장 수승한 법의 이치[法義]가 있을 것입니다. 문수사리와 세존께서 같은 곳에서 각기 논설하시기에 반드시 미묘하고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요, 매우 깊고 가장 훌륭한 법의 이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이와 같고 이와 같나니, 사리불이여, 나는 매우 깊고 가장 수승한 법을 말 합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이 설법은 무슨 뜻으로써 매우 깊고 가장 수승하다고 합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이 법은 알기 어렵나니 그릇[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릇 말할 것도 발기(發起)할 것도 없거니와, 이 설법은 발기(發起)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범부도 발기하지 못하고 아라한의 법도 또한 발기하지 못합니다. 여래의 법이라야 이 설법을 발기하나니, 의지하는 객체[所依]도 없고 의지하는 주체[能依]도 없기 때문에 이 설법을 발기합니다. 그러므로 설법이 평등하고 평등하기에 머무르는 곳이 없습니다. 필경 고요하여 모든 법을 말하나니, 이는 머무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가장 수승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써 이와 같이 말하되, ‘아라한의 번뇌[漏]가 다한 이들이라도 이 법을 받을 그릇이 아니다’라고 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장로 사리불이여, 아라한이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거친 미혹만을 없애나니 그가 어찌 그릇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리불이여, 이러한 뜻으로써 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아라한의 번뇌가 다한 이들은 이 법의 그릇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뜻 때문에 저는 그대를 찾아서 한 노니는 곳으로부터 한 노니는 곳에 이르며, 방[室]으로부터 방에 이르며, 굴(窟)로부터 굴에 이른 것이니, 내가 일부러 그대를 찾아온 것은 법락(法樂)의 변재를 위한 것이며 법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세존과 그대의 설법을 싫증냄이 없이 듣습니다.”

이 때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大德) 사리불이여, 당신은 법을 들을 줄 모르는군요.”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는 법 듣기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어찌 법계에서 설법을 취한다 하겠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이미 법 듣기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법계는 대덕과 함께 둘이 없고 다름이 없나니 법계는 설법함을 취하지 아니합니다. 만일 취한다면 만족을 알 것이나 이미 취하지 않았으므로 만족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여래를 제외하고는 어찌 이와 같은 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가 말하는 열반법(涅槃法)은 사리불인 것입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모든 법의 본성이 성취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열반이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죽음이 없는 법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법계란 죽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는 지혜가 없이 구족하게 번뇌가 다한 아라한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지혜가 없어 지혜가 평등하기 때문에 구족하게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니, 왜냐하면 다만 지혜가 지혜 없음[無智]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지혜 없음도 또한 지혜가 없음을 떠났나니, 법이 다하여 다시 지혜도 없고 분별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떠난 것이 곧 번뇌가 다한 아라한입니다.”

문수사리는 대덕 사리불에게 물었다.

“그대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해탈과 설법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는 실로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저 모든 법은 모든 법을 떠났습니다. 모든 법을 취하지 않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대덕 사리불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 세상의 모든 여래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서 멸도(滅度)하시면서도 열반 얻지 못한 것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저 불가사의한 경계는 생김도 없고 없어짐도 없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대덕 사리불에게 물었다.

“그대는 여러 부처님이 한 부처님인 것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법계는 분별할 수 없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대덕 사리불에게 물었다.

“그대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佛刹]가 한 부처님의 세계인 것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이 여러 부처님의 세계는 진여(眞如)에 의지하고 다함없는 세계도 또한 다함없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그대는 모든 법을 증득할 것이 없고 멸할 것이 없고 생각할 것이 없고 닦을 것이 없는 것임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자체가 스스로 자체를 알지 못하고 본성이 본성을 버리지 않으며, 자체가 역시 증득하지 않아 또 생각함이 없으며, 서로 어기거나 등지지 않고,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그 곳[際]에 잘 머무르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유위계(有爲界)가 법계 안에서 법의 생김이 없고 또 멸함이 없고 또 쌓음[積聚]이 없는 것임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저 모든 법의 성품은 생기거나 멸하거나 쌓아 머무르는 것을 알 수가 없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는 반야 법계가 있고 그 중에 또 아라한의 명자(名字)가 있음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반야 법계 행하기를 싫어함이 곧 아라한의 경계입니다. 그러나 법계의 자체는 떠난 것이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자체가 아니니 그 아라한인들 어찌 법계를 떠났겠습니까.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는 모든 법이 모두 부처님의 경계의 인(忍)임을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실로 믿습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믿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세존의 본성 깨달음은 자성(自性)이 떠났나니 나는 이와 같이 믿습니다.”

그 때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의 있는 경계대로 나를 위해 해석하였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물었으며 그대는 이와 같이 대답했나니,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행(行)이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법의 근본 구절을 받아 지니거나 만일 남을 위하여 해석해 주거나 읽거나 외우면 그 사람들은 변재를 속히 얻으리라.”

사리불은 말하였다.

“이와 같은 바가바(婆伽婆)시여, 이와 같은 수가타(修伽陀)시여, 대덕(大德)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 중생은 과거세 때에 이미 여러 부처님 세존께 일찍이 공양 올린 것이옵니다. 저 선남자ㆍ선여인을 위하여 이 법인(法印)에 안립(安立)케 하면 저 중생들은 마땅히 큰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그 때에 장로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법본(法本)은 어떠한 명자(名字)가 있습니까? 저희들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나의 법본은 ‘문수사리동자의 묻는 것을 부처님이 해설함이다’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라. 또한 입법계(入法界)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라. 또한 실제(實際)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라.

사리불이여, 저 선남자ㆍ선여인들이 공경하기를 마땅히 수승한 보배와 같이 하여 만일 이 법본을 받아 지니어 읽거나 외우거나 사유하거나 행하면 마땅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을 것이다. 만일 남에게 선근(善根)을 생기게 하기 위하여 만일 조금 읽거나 외우며, 남을 위하여 법의(法義)를 많이 말해주면 마땅히 끊어지지 않는 변재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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