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와 치견
석존께서 사밧티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곳에 비구니(比丘尼-여승<女僧>)가 한 사람 있었다. 언젠가 샤칼라국에 갔을 때의 일인데 그 때 이 나라에 한 사람의 바라문이 있어서 그는 오열<五熱>로 몸을 지져서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이 비오듯 흐르고 가슴과 겨드랑이에서는 폭포수 같은 땀이 흐르고 있었고, 목구멍은 타고 입술과 혀는 말라 붙어서 침도 안 나올 정도로 사방에 불을 지펴놔서 마치 금 덩어리를 녹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때는 마침 복중(伏中)인 지라 그 정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검게 그을려서 떡을 구워 논 것 같았다. 그는 늘 넝마 옷을 입고 몸을 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누갈적(縷褐炙)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비구니는 바라문의 이 같은 모양을 보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질 것을 지지지 않고 공연히 지지지 않을 것을 지지고 있다.』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은 대단히 노하여,
『이 나쁜 까까중아, 그렇다면 무엇을 지져야 한단 말이냐?』
하고 대들었다.
비구니는 교묘하게 그의 마음을 찌르면서,
『불에 지져야 할 것은 당신의 그 노여운 마음입니다. 당신이 만약 당신의 그 마음을 지진아면, 그것이야 말로 참다운 적(炙-고기를 구은다는 뜻) 입니다. 소가 수레를 끄는데 수레가 앞으로 안 구르면 소를 채찍질 해야지 수레를 때려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몸은 수레이고 마음은 소 같은 것이므로 당신은 마땅히 마음을 채찍질하고 마음을 지져야지 몸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마음은 성주와 같다. 성주가 노여움에 차 있으면 성을 구한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를테면 사자가 있는데 사람이 활로 쏘고 기왓장이나 돌로 치면 사자는 곧 그 사람을 쫓아 온다.
그런데 가령 사람이 치견(痴犬-못난 바보 개)을 기왓장이나 돌로 때리면 그 개는 기왓장이나 돌을 쫓고, 사람은 쫓지 않는다. 사자는 지혜로운 사람 같음이니 항상 그 근본을 캐고 치견은 외도(外道)와 같음이니 헛되이 몸을 지지고 마음을 찾지 않는다.』
하고 타일러 가르쳤다.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은 그제야 가르침의 참뜻을 깨닫고 부처님의 도(道)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大莊嚴論經 第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