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은사 해일을 없앤 원력
부처님의 뜻에 근거한 원력은 한없이 큰 것이다.
하늘의 혜택을 골고루 갖춘 가락국 영토의 중심부인 김해에는 금벌의 옥토를 자랑하며, 한편으로는 옛날부터 백제와 신라가 탐을 내어 끊임없이 병합하려 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부지런하였으며 사계절에 따른 자연의 산물은 넉넉하여 쉴새 없이 사람들은 살기 좋은 가락 지역으로 모여 들었던 것이다.
반도 남단이면서 태평양의 거센 파도의 직접적인 피해를 면할 수 있었으며 서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절기에는 모진 찬 기운과 눈보라의 동해로부터 보호된 지역들이었다.
그러나, 연중 두 세 번의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이 땅의 기후조건으로 하여 폭풍이 몰아치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김해 지역은 낙동강의 내륙으로 흘러드는 강물과 넘실대는 바닷물의 합류로 인한 몸부림이 심하면 바닷물이 넘쳐 들끓었던 것이다.
해변을 따라 이룩된 산들은 그 형상이 거북, 용, 호랑이 등의 모양을 하여 김해 지역의 기질은 거북을 닮은 돈후, 인자, 유구와 장생이 있으며, 풍운 조화를 불러 승천하는 변화난측의 용의 진운이 있는가 하면, 모질고 사나우며, 살기 어린 죄와 같은 기질을 대변하는 산중 호랑이의 무서운 바탕도 함께 하고 있었기에 해신, 산신, 걸신 등의 기운을 겨루는 땅이기도 한 가락 지역이었다.
일찍이 장유화상이 임호산에 절을 지어 가락의 악기를 눌렀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지기 조화를 부처님의 뜻에 귀순시키려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잠깐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 절에 관하여 말하여보자. 수로왕과 허왕후의 도래로 인하여 이룩된 이땅의 절들은 현재 우리들의 머리 속에 형상화 되어 있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이후로 내려와 전해지는 체제를 가추고 제도화 된 규격적인 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오이다.
후대로 내려오며 문명과 함께 생활양식이 달라져 이룩된 우람한 절이라고 관념해서 생각할 수 없는 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흥부암, 자암, 모암, 영구암등의 이름들로 불리는 수도승의 거처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자연에 귀의한 불자의 기거지에 해당하였으며, 혹자의 신심을 기도하고 기원하는 근거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절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여 문자의 집착에 의존한 중국의 불교는 경에 내재한 묘법의 의미를 찾는 방편을 취했으나 가락에 일찍이 전해진 불법은 석세존께서 첫 설법을 행한 녹야원으로부터 마지막 발제(리)하에 이르기까지 45년간 일찍이 한 구절의 글자로 표현한 말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하고 무언무설한 것이었다고 행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락의 불법은 바로 진불무형, 진법무상의 오묘한 세계의 것과 같이 이땅에 행해졌다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해마다 한 두 차례 일어나는 해일을 감당해 내기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해일이 일어나고 바닷물이 들끓고 나면 수많은 해물의 밀려든 찌꺼기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보다 더 큰 골칫거리는 주거에 안정하는 생활 터전을 송두리째 휩쓸어 버리는 어려움과 또 목숨을 앗아가는 재난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랐던 것이다.
왕과 신하들은 재난이 지나고 나거나 또 재난이 도래 할 시기만 되면 그 방편을 강구하여 백성들을 안주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하였다. 해신, 산신, 걸신 등의 끊임없는 몸부림에 평안과 혜애와 균형의 미덕을 갖추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불타였던 것이다. 불제자로 일찍이 파사석탑을 싣고 바다(해신)의 노여움을 잠재우며 수억만리 동방의 임나 가락 축복의 땅에 불타의 은혜를 전하러 와서 수로왕의 내조자가 된 허왕후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오빠가 되는 장유화상을 청하여 왕과 자기의 걱정을 말씀 드리고 죽어서라도 이 땅의 백성들이 해마다 한 두 번 겪는 천지의 노여움을 진정시킬 방편을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던 것이다.
화상은 말하였다. “이 땅에 깃든 거북, 용, 호랑이 등의 영험한 지기 중에서 이미 자기는 호랑이의 악기를 붙들어 매었는데 어찌하여 대왕과 왕후께서는 나머지 둘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왕과 왕후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왕후께서 그말의 참뜻을 알아 차렸던 것이다.
장유화상께서 입을 열어 말하였다. 하늘에서 천제의 명을 받아 이땅에 오신 대왕께서 용신과 지신의 장난을 막지 못한다면 누가 그 신손의 위력을 믿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한동안 하늘과 땅 그리고 사방을 둘러 보고서 입을 열어 말하였다.
“불타의 사리에도 한없는 영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력이 지극하면 귀신도 잠재우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후마마와 대왕마마께서 평소에 가지시는 염원을 돌아기신 이후에 이루시기 바랄뿐입니다.
왕후마마께서는 수를 다하시고 대왕마마께서 탄강하신 구지에 거하시어 용신의 상징인 거북과 함께 하시고, 대왕마마께서는 수를 다하시거든 왕후마마께서 수륙 만리를 용신의 도움으로 이땅에 오셨기에 용신이 거처하는 물명당에 거하시어 이 땅에 오셨기에 용신이 거처하는 물명당에 거하시어 이 땅에 오신 뜻을 죽어서까지 지키기 바랄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호위하고 돌봐 주던 영험있는 존재를 바꾸어 다스리는 결과가 되어 이땅에 점차 세가지 영험있는 것들의 몸짓이 줄어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