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사 개칭의 유래
장안사(長安寺)는 673년(신라 문무왕 13)에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함께 창건하여 처음에는 쌍계사(雙溪寺)라 하였는데, 809년(신라 애장왕 10) 장안사라고 고쳤다.
사명을 고친 유래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혜통의 독룡을 조복시키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당나라 황실에서 공주가 병이 나서 고종은 삼장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했더니 삼장은 혜통을 자기 대신으로 천거했다. 혜통은 명령을 받고 따로 거처하며 흰 콩 한말을 은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우니 그것이 변해서 흰 갑옷을 입은 신병(神兵)이 되어 병마를 쫓았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다시 검은 콩 한말을 금그릇에 넣고 주문을 외우니 그것이 변해서 검은 갑옷 입은 신병이 되었다. 두 색의 신병을 합하여 병마를 쫓으니 문득 교룡(較龍)이 달아나고 병이 드디어 나았다.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았음을 원망하여 본국 문잉림으로 가서 인명을 심하게 해쳤다. 정공이 사신으로 가서 혜통을 청하니 665년(당나라 인덕 2, 신라 문무왕 5)에 본국으로 돌아와서 용을 쫓아버렸다.
용은 또 정공을 원망하여 이에 버드나무로 태어나 정공의 문밖에 나 있었다. 정공은 이 나무를 무척 사랑하여 효소왕 때 신문왕의 장례길을 닦는데 이 버드나무가 가로막고 있어 베려하니 베지 못하게 막았다. 이에 왕이 그를 베어 죽이고 그 집을 묻었다.
조정에서 의논하여 정공과 가까운 혜통도 잡으려 했으나 왕망사에 있던 혜통은 병사들이 오는 것을 보고 지붕에 올라가서 사기병과 붉은 먹을 묻힌 붓을 가지고 그들에게 외쳤다.
“내가 하는 것을 보라.”
곧 사기병 목에 한 획을 칠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너희 목을 보라.”
그들이 목을 보니 모두 붉은 획이 그어져 있었으므로 서로 쳐다 보고 놀랐다.
혜통은 또 외쳤다.
“만약 병목을 자르면 너희 목도 잘라질 것인데 어쩌려느냐?”
그 병사들은 달아나 붉은 획이 그어진 목을 왕에게 보이니 왕은 말했다.
“화상의 신통력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도모하겠느냐?”
이에 내버려 두었다.
왕녀가 병이 나서 혜통을 불러 치료케 하니 병이 나았으므로 왕은 크게 기뻐했다.
혜통은 말했다.
“정공은 독룡의 해를 입어 애매하게 나라의 형을 받았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뉘우쳐서 이에 정공의 처자에게 죄를 면해 주고 혜통을 국사로 삼았다. 용은 이미 정공에게 원수를 갚자 기장산(달음산)에 가서 웅신(熊神)이 되어 해독을 끼침이 더욱 심하니 백성들이 많이 괴로워 했다.
혜통국사는 친히 기장산의 독룡을 퇴치하려고 기장현에 왔는데, 독룡은 동해용왕에게 빌고서 이곳 청룡등에 숨어 있었다.
혜통국사는 독룡이 청룡등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밀단법으로서 독룡을 설유하였다.
그러면서 독룡이 다치지 않고 도망칠 수 있도록 청룡등의 기슭을 헐어 주었다. 독룡은 황금송아지로 변하여 또 도망을 하여 다시 기장산 바위굴에 곰으로 화신하여 숨어있는 것을 찾아 곰에게 불살게의 자비설법으로 단속하였다.
그때 혜통국사가 청룡등의 기슭을 헐어 놓게 되자 두갈래 쌍계는 한갈래 계곡수로 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쌍계사를 장안사로 고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