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복사 가사일월광연기

대복사 가사일월광연기

조선시대에 남원부의 아전인 대복(大福)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평소 사냥을 즐겨 하던 그는 성질이 거칠어 동네사람에게 빈축을 사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남편과는 정반대로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돈독하여, 남편의 눈을 속여 가며 절에 불공도 다니고 염불도 배워 입으로 진언 외우기를 마지아니하였다.

또한 스님들을 보면 친정식구를 대한 것과 다름없이 반가워하고 대접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부처님과 스님을 비방하는 것이 항상 무거운 죄를 진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교룡사의 화주스님이 집을 방문하여 시주하기를 권하였다.

“우리 절에서 스님들이 입을 가사불사를 하게 되어 동참시주를 권하러 왔습니다. 가사 한 벌을 단독으로 시주하시거나, 혼자 하시기 힘들면 여럿이 동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번 상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님. 가사라는 것은 스님들이 입으시는 의복인데, 그것을 조성하는 데 단독으로 시주하거나 동참을 하면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대복 아내의 물음에 화주스님은 가사불사에 시주하면 어떠한 복을 받게 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그녀는 단독으로 가사 한 벌을 시주하기로 하고 매일 교룡사를 왕래하며 기도를 올리고 바느질을 돕기도 하였다.

그녀가 이처럼 가사를 시주한 것은 남편의 죄업을 소멸하고 불법을 신봉하는 새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때 대복은 신임사또의 부임을 맞이하는 일로 며칠간 관청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도중에 신천교라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이때 어디선가 “대복아! 대복아!”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좌우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지만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은 똑똑하게 들렸다.

그래서 다리 밑을 내려다보았더니 커다란 구렁이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네가 대복이지?”

대복이 소스라쳐 놀라며 기겁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구렁이에게 물었다.

“도대체 너는 누군데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아는 체 하느냐?”

“나는 본시 교룡사 동구에 살던 사람인데, 부처님을 싫어하여 불법을 비방하고 스님들을 욕하며 삼보를 파괴한 죄로 죽어서 구렁이의 몸을 받고 이 다리 밑에서 백년을 지내왔다네.

그런데 네가 또 나처럼 부처님을 싫어하고 삼보를 비방하며 불탑에 침을 뱉고 절 물건을 파괴하는 죄를 짓고 있으니, 너 역시 이 구렁이의 과보를 같이 받게 되었기에 일러주려고 한 것이네.”

대복은 벌벌 떨면서 오금을 펴지 못한 채 외쳤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부처님께 죄를 지었지만 이제라도 구렁이의 업보를 면할 방법은 없겠느냐?”

“네 아내가 교룡사 가사불사에 시주를 하고 날마다 기도를 다니고 있으니 함께 가서 모든 죄를 참회하고 기도하며 나의 명복까지 빌어주게.

그리고 허물어진 교룡사를 다시 중건하면 나도 구렁이의 업보를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고, 너 역시 구렁이의 업보를 받지 아니할 것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나?”

“알겠다. 나도 약속을 단단히 지키고 네 말대로 할 터이니 당장 이 자리에서 물러가거라!”

그 말이 끝나자 구렁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겨우 정신을 차린 채 집으로 돌아온 대복은 아내가 보이지 않자 동네를 돌며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그의 친구가 귀뜸해 주었다.

“자네 부인은 교룡사 중과 놀아나서 가사불사인가 뭔가 한다는 핑계로 매일 밤낮 절에 가서 박혀 있기 때문에 집에는 없으니 그리 알게.”

이 말을 들은 대복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구렁이와 약속한 것도 다 잊어버린 채 벽장에 넣어두었던 활과 화살을 들고 교룡사로 달려갔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다 보니 일주문을 향해 올라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고, 사실을 확인할 것도 없이 뒤통수를 겨냥하여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대복은 백발백중의 명사수라는 말을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활을 맞은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가고 있었다.

대복은 다시 두번째 화살을 겨누어 힘껏 쏘았으나, 이번에도 명중되어 ‘딱’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내는 조용히 걸어만 가는 것이었다. 대복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활과 화살을 땅에 버리고 천연스럽게 가까이 쫓아가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여보! 어디를 가는 거야!”

그제야 아내는 놀란 듯 뒤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이 돌아왔나 싶어 집에 갔지만 아직 안 오셨길래 절에 가는 길인데, 이렇게 당신이 찾아오도록 만들었네요. 오늘 절에서 가사불사 점안식을 하는 날이라 시주한 사람은 꼭 모이라고 해서 가는 길인데 어찌하면 좋죠? 당신을 두고 절로 갈 수도 없고, 중대한 불사회향을 안보고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아니야, 나랑 같이 절로 들어가세나. 같이 가서 불사회향을 보면 좋지 않겠나?”

“아니, 또 부처님께 욕설비방이나 하고 사중의 기물이나 파괴하려고 그러는 것인가요?”

그러자 대복은 이제 그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아내와 함께 절로 올라갔다. 절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점안불공이 끝나고 시주한 이의 이름을 부르며 가사를 입을 스님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잠시 후 강대복 내외의 이름을 부르자 그의 아내가 나가서 봉투를 받아들고 한 스님께 드리기 위해 가사를 꺼내는 찰나, 화살촉 두 개가 ‘뎅그렁’ 하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소리에 놀란 대복이 아내가 얼른 가사를 펼쳐보니 왼쪽 어깨부분의 두 군데에 구멍이 뻥 뚫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회향불사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시주자들은 모두 아연실색을 하며, 이 가사에 무슨 부정이 끼어서 이런 일이 있는가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복의 아내도 놀라 가슴이 울렁거리며 무슨 큰 죄나 지은 것 같았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 중 가장 기겁을 한 사람은 대복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많은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복의 부인이 맞을 화살촉을 가사가 대신 맞은 것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따라서 두 군데 구멍이 난 이 가사를 버릴 것이 아니라 구멍을 막아서 입을 수 있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어느 스님의 지혜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상징하는 일월광(日月光)을 뚫어진 곳에 부착하기로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대복이 내외는 더욱 신심을 내어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재산을 전부 들여서 퇴락해가던 절을 중수하기로 결심하고, 내외가 화주와 시주를 열심히 하여 마침내 완공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전해들은 남원부사는 대복의 이름을 따서 교룡사를 대복사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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