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조사는 일찍이 술을 좋아하였다.

진묵조사는 일찍이 술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술을 곡차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절대 마시지 않았다. 어느 절에서 일꾼들에게 주려고 술을 거르고 있었다. 술의 향기가 방에서 좌선하든 진묵조사의 코를 자극하였다. 진묵조사는 석장을 짚고 술을 거르는 승려에게 다정히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거르시는가?”

승려는 진묵조사의 속마음을 환히 알았다. 곡차를 거른다고 하면 한 잔 보시하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승려는 진묵조사에게 술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큰소리로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술을 거릅니다!”

“술이야? 곡차라면 한 잔 얻어 마시려고 하였더니….”

진묵조사는 아쉬워하는 얼굴이 되어 석장을 끌면서 되돌아갔다. 그러나 진묵조사는 다시 찾아와 또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거르시는가?”

“술이라니까요!”

진묵조사는 세 번째 다시 찾아왔다.

“그대는 무엇을 거르시는가?”

“술을 거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진묵대사는 희망을 잃고 슬픈 표정으로 석장을 끌면서 돌아갔다.

그 직 후, 진묵조사를 옹호하는 신장인 금강역사가 분노하여 철추(鐵鎚)로써 술거르는 중의 머리를 내려쳤다. 철추가 승려의 머리와 부딪는 그 순간, 승려는 술을 거르다가 실족하여 뒤로 자빠지면서 땅 표면에 솟은 뾰족한 바위에 뒤통수를 부딪쳐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죽고 말았다.

진묵조사가 변산 월명암에서 수행정진할 때이다. 사원경제가 어려워 승려들은 모두 탁발에 나가고, 진묵조사와 시자 단 둘이서 절을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시자가 기고(忌故)가 있어 속가에 나가야만 하였다. 시자는 떠나기 전에 진묵조사에게 말하였다.

“탁자위에 공양물을 올리었으니 때가 되거든 친히 불공을 지내시고 난 후, 공양을 드세요.”

그 때, 진묵조사는 자신의 방안에서 방문을 열고 한 손을 문지방에 대고서 능엄경을 보고 있었다. 시자가 이튿날, 암자에 돌아와 보니 진묵조사는 어제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데, 바람에 문짝이 다치는 바람에 손가락이 문짝에 상하여 피가 흐르는데도 손의 상처도 망각한채 태연히 능엄경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묵조사는 만년에 항상 자신의 출가지인 봉서사에 머물렀다. 그는 봉서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곡(鳳谷)선생이라는 거유(巨儒)를 찾아가 담론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봉곡선생이 찾아온 진묵조사를 사랑채에서 정중히 대접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사께서는 불경만 보지 말고, 공맹(孔孟)의 학문도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한데 어찌 생각하시오?”

“깊은 이치가 있습니까?”

“있지요.”

“서책을 빌려주시지요. 그런데 곧바로 돌려드릴 터이니 일꾼 한 사람을 제 뒤에 따르게 하시지요.”

봉곡선생은 진묵조사의 뜻을 곧바로 깨닫지 못하였으나 서책을 빌려주고 일꾼에게 뒤를 따르게 하였다. 진묵조사는 걸망에 가득 유교의 서책을 담아 봉서사로 향해 길을 걸으면서 서책을 읽어나갔다. 어찌나 빠른 속독인지, 걸망가득한 유교의 책을 봉서사에 이르기전에 모두 독파하고, 뒤를 따르는 일꾼에게 버리듯이 던졌다. 일꾼에게 그 소식을 들은 봉곡선생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봉곡선생은 진묵조사를 찾아와 서책을 버린 사유를 따졌다.

“대사는 왜 귀한 서책을 빌려가지고 가면서 읽지도 않고 길에 버린 것이오?”

“책을 다 읽고 뜻을 깨우쳐서 일꾼에게 책을 돌려준 것 뿐입니다.”

“뭐요?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서책을 독파하였다는 말이오?”

“시험해보십시오. 제가 대답해드리지요.”

봉곡선생이 서책에 대해 온갖 질문을 다 해보았다. 진묵조사는 서책에 대해서 아예 줄줄 외우고 있었다. 오히려 서책의 명확한 뜻을 봉곡선생에게 깨우쳐 주었다. 봉곡선생은 감탄하였다. 그는 진묵조사를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었다.

봉곡선생이 하루는 여종을 시켜 진묵조사에게 음식을 보내드리도록 하였다. 음식을 싸들고 길을 걷는 여종의 눈앞에 멀리서 진묵조사가 허공을 응시하면서 서 있었다. 여종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가 주인의 뜻을 전하였다. 그 때, 진묵조사는 음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종의 눈을 응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장차 나라의 큰 인재가 될 아들을 갖고 싶으냐?”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너에게 그 아들을 만들어 주고 싶구나.”

여종은 그 뜻을 짐작하고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완강히 거부하여 대꾸하였다.

“노스님께서 어린 저에게 농담을 너무 심하게 하시네요.”

진묵조사는 탄식하여 말하였다.

“네가 박복하여 내 말을 듣지를 않는구나. 어쩔 수 없지. 너는 곧바로 주인에게 달려가 내가 곧 당도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거라.”

여종은 화가 나서 집으로 달려가 주인에게 진묵조사가 한 말에 대해서 일러 바쳤다. 봉곡선생은 단 한번도 여색을 말하지 않는 진묵조사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잠시 후, 사랑채에서 두 사람이 찻상을 놓고 대좌하였을 때, 진묵조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만나기 어려운 영기(靈氣)가 서쪽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그 영기를 여인의 몸에 주입을 시키면 나라의 큰 인물이 되는데, 마땅한 여자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 영기가 상서롭지 못한 곳으로 흘러들까 두려워서 멀리 허공 밖으로 물리치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내 집의 여종에게 그러한 말을 하신게요? 그렇다면, 박복한 여종의 거부로 나라의 큰 인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요?”

“그렇습니다. 분명히….”

“박복한 여종에 대해 내가 사과하리다. 어떻소, 내가 사과주, 아니 곡차를 내놓는 것이?”

두 사람은 방안이 떠나가라 대소 하면서 곡차를 주고받았다.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선생은 어떤분인가?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봉곡선생의 비문을 찬(撰)하였는데, 찬문을 보면 봉곡은 거유 사계(沙溪)선생의 문하생으로서 인조 때, 의금부도사, 사헌부감찰, 한성판관,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벼슬을 고사하고 낙향하여 향리에서 올곧은 유생으로서 명망을 떨치고 있었다.

진묵조사가 시냇가에 이르니 소년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아서 큰 솥에다 물고기를 끓이고 있었다. 그는 솥안에서 지글지글 끓는 물고기를 보면서 탄식하여 말하였다.

“발랄한 물고기가 아무 죄도 없이 잡혀 가마솥에서 삶는 괴로움을 받는구나.”

소년들이 진묵조사의 곁으로 몰려왔다. 우두머리 같은 소년이 희롱조로 진묵조사에게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고기국을 드시겠어요?”

“나야 잘 먹지.”

“저 물고기들을 모두 드릴 터이니 잡수어 보세요.”

“그래도 이의가 없겠느냐?”

“저희들은 이의가 없습니다.”

진묵조사는 흐뭇한 웃음을 짓고서는 두 손으로 솥을 번쩍 들어서 순식간에 뜨거운 물고깃국을 마시어 삼켜버렸다.

“뜨겁지 않아요?”

소년들은 놀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맹랑하게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은 살생을 못하게 하시었는데, 스님이 물고기국을 마셨으니 어찌 스님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스님한테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서는 뒤통수치는 교활한 폐습은 똑같았다.

진묵조사는 껄껄 웃고는 소년들에게 말하였다.

“물고기를 죽인 것은 네 녀석들이지만, 죽어 삶긴 물고기를 살리는 것은 바로 나이다. 알겠느냐?”

소년들은 놀라운 눈을 하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스님은 거짓말을 잘하시네요. 어떻게 그 물고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내가 정말 그 물고기를 살려낼 터이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똑똑히 보아라. 너희들은 모두 가까이 와서 나의 항문을 유심히 지켜보아라. 알겠느냐?”

진묵조사는 시냇물에 들어가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까서 높이 처들어 소년들에게 보여 주었다. 소년들은 모두 진묵대사의 항문에 바싹 다가와 항문을 응시하였다. 진묵조사가 웅얼웅얼 주문을 외우더니 얏! 힘을 썼다. 그 때, 그의 항문에서는 설사가 쏴- 쏟아졌다. 소년들의 얼굴에 몸에 설사물이 범벅이ㅏ 되고 말았다. 그 때, 설사 속에 물고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항문에서 나온 물고기들은 물속으로 떨어져 비늘을 번쩍이면서 생기발랄하게 놀았다. 진묵조사는 시냇물로 항문을 닦은 후, 바지를 올리고 나서 물고기들을 향해 천연스럽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멀리 강해(江海)로 나가 노닐되, 미끼를 탐하다가 다시는 인간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지 말거라.”

소년들은 진묵조사의 신기한 신통력을 보고서 모두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참회하였다. 진묵조사는 소년들에게 살생의 업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예화를 들어가며 깨우치었다. 소년들은 진묵조사에게 다시는 물고기를 잡아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물을 거두어 떠났다.

하루는 진묵조사가 선정에 들어 있다가 깨어나 황급히 시자를 불러 말하였다.

“합천 해인사가 불이 났구나. 팔만대장경각이 불타버리면 큰일이다. 내가 그 불을 끄고져 하니 어서 바가지에 물을 떠오너라.”

때마침 시자는 미지근한 쌀뜨물을 갖다 드리려고 가져오고 있었다. 진묵조사는 물그릇을 집어 주문을 외우고는 물을 입에 가득 머금고, 동쪽 하늘을 향해 힘껏 내뿜었다. 훗날 확인하니 그 때 해인사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그 불을 껐다고 한다.

천계(天啓=명나라 熹宗의 년호) 임술(1622)년에 완부(完府= 지금의 전주)의 송광사와 홍산의 무량사에서는 불상조성을 하여 같은 날 같은 시에 봉안식을 하게 되었다. 봉안식에는 불상의 점안식이 있게 되어 있는데 두 절에서 똑같이 진묵조사를 증명법사로 초청장을 보내왔다. 진묵조사는 어느 쪽에도 가지 않았다. 다만, 두 절에 진묵조사가 항시 사용하든 신물(信物)을 보내었다.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보내고, 무량사에서는 호두알만한 단주를 보내었다. 그 신물을 각 봉안식이 있게 되는 사찰의 증명법사단(證明法師壇)에 올려 놓으라고 분부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신물은 곧 나이니라. 내가 곧 두 절의 증명법사단에 신물을 보내었으니, 곧 내가 그곳에 직접 임석하여 증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경계의 말을 주건대, 두 절의 화주승은 불상 점안식이 끝날 때 까지는 절대 산문 밖을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만약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신장의 벌이 있을 것이니라.”

송광사에는 증명단에 주장자를 세워 두었는데, 밤낮으로 꼿꼿하게 서서 넘어지지 않았고, 무량사에서는 단주를 증명단에 올려놓았는데, 단주가 마치 손으로 헤아리듯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량사에서는 홍산의 어느 사람이 삼천금을 내어 혼자 그 삼존불 조성의 비용을 부담한 것인데, 봉안식 전 날 밤에 사찰을 방문하겠다는 전언이 왔다. 화주승은 그 돈많은 시주님을 나가서 영접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깜박 진묵조사의 경계의 말씀을 망각하고 산문을 나섰다. 그 때, 하늘에서 뇌성이 울리고 신장이 나타나 철퇴로 화주승을 내리쳤다. 진묵조사의 경계의 말씀의 요지는 불상조성과 봉안에 있어서 점안식이 끝날때 까지는 불사의 중심이 되는 승려, 즉 화주승은 오직 기도만 할 뿐, 절대 산문 밖을 외출해서는 안된다는 경계였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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