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원력으로 만연암에 이르다

보살의 원력으로 만연암에 이르다

청나라 통리(通理)선사의 자는 달천(達天)이니, 직예성 기주 신하(直隸省 棄州 新河) 땅의 조씨(澾氏)다.

강희(康뚠) 40년(1701)에 낳는데 상호(相好)가 구족하고 일곱 군데가 원만하며(여래 32상의 하나. 두 손과 두 발바닥과 두 어깨와 두상(頭上)의 일곱 군데가 평만(平滿)하고 단정한 것) 손이 무릎을 지나고 이가 40개였다.

비구계를 받고 강당에서 공부하는데 모든 경전이 미리 읽은 것 같아서 한번 보면 깊은 이치를 알았다.

34세에 서울에 가서 서산 유광사(西山有光寺)에서 화엄경을 강설할 적에, 원근각처에서 승속이 모여 와 모두 법열을 느끼었다.

청량(淸凉)대사의 소를 보다가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있는 줄을 알고 찾아서 만연암(萬緣庵)에 있으면서 보은경(報恩緩)을 강하여 오대산에 공양하였다.

하루는 북대에 올라갔더니 날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운데 핀 구름이 일어나서 은빛이 찬란하였다.

날이 저물자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선사는 속으로 보살이 길을 인도하기를 기원하면서 절하고 일어나니, 어느 새에 만연암 앞에 이르러 있었다.

환희한 마음으로 절에 들어가서 문수보살의 인도로 왔노라 말하고, 보살을 예찬하는 게송을 지었다.

보살의 자비

헤아릴 수 없어

60리 넘는 길을

어느덧 왔노매라.

건륭(乾隆) 18년(1753)에 황제의 명을 받아 승록사(憎錄司)를 관리(管理)하면서 염화사(械花寺) 주지가 되니 자색 가사를 하사 받았다.

건륭 45년 가을에 서장(函藏)의 반선라마(班禪羅馬) 얼이더니(於雨德尼)가 북경에 와서 건륭황제의 7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선사를 만나 불법의 대의를 듣고 감탄하여 향과 천을 선사하였으며, 황제는 천교선사(闡敎禪師)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건륭47년(1782) 6월 13일 상좌들에게 말하였다.

「내 나이 80여 세가 되도록 잠깐도 불법을 떠나지 않았는데, 지금 불법이 있는가 없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선사는 웃음을 머금고 세상을 떠나니, 춘추가 82세다.

저술에는 법화경소·능엄경소·원각경소·금강경소·우란분경소·오교의소(五敎義疏)등이 있다.

<문수성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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