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력입인법문경(信力入印法門經) 제1권

신력입인법문경(信力入印法門經)

원위 천축 담마류지 한역 홍승균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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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력입인법문경(信力入印法門經) 제1권

모든 부처님께 목숨 바쳐 귀의하나이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바가바(婆伽婆:세존)께서 여래께서 머무시는 경계의 주처에 계셨으니, 이는 적멸(寂滅)도량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은 보광법전(普光法殿) 대복덕 선근(大福德善根)이 이루어진 곳이며, 평등하고 보편하여 혐오할 만한 것이 없는 곳이며, 한량없는 공덕이 구족한 곳이며, 금강(金剛)의 견고함으로 이루어진 곳이며,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하고 편안한 땅으로 이루어진 곳이며, 온갖 마니보주(摩尼寶珠)와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곳이며, 어떤 더러움도 없는 광명이 빛나는 마니보왕(摩尼寶王)으로 장엄된 곳이며, 한량없는 광명이 넓고 광대한 마니보해(摩尼寶海)가 시현(示現)된 곳이며, 마니보우(摩尼寶雨)와 여의보망(如意寶網)이 끊임없이 생기는 곳이며, 온갖 꽃으로 감싼 마니수지(摩尼樹枝)로 장엄된 곳이며, 모든 꽃이 향기를 풍기는 마니보망(摩尼寶網)이 사이사이에 섞인 곳이며, 모든 중생을 시현할 수 있는 부처님들께서 머무시며 세력을 떨치시는[奮迅] 곳이며, 모든 세계 중에서 가장 미묘한 곳이며, 모든 무구(無垢)한 마니력(摩尼力)을 뿜어내어 능히 모든 세계에 두루한 장엄을 시현할 수 있는 곳이며, 적멸도량을 장엄하는 대비유리(大毘瑠璃)의 마니보성(摩尼寶性)을 생기게 하고, 증장(增長)하게 하고, 적취(積聚)하게 하는 곳이며, 가장 좋은 여의주로 울타리를 두른 곳이며, 여의진주의 보배로 된 끈으로 장엄된곳이며, 보당(寶幢)과 번개(幡蓋:깃발과 일산)를 세운 곳이며, 갖가지 보화로 만든 풍령(風鈴)을 사이사이에 섞어 장엄하고, 우다가(憂茶伽)로 다진 전단향(栴檀香)을 땅에 바른 곳이며, 자재한 가장 좋은 여의보주의 그물로 덮인 곳이며, 대해(大海)를 관장하는 청정하고 장엄한 보광(普光)의 마니보왕의 나무 그물로 견고하게 얽어 묶인 곳이며, 사자모(師子髦)를 둔 마니보왕으로 꾸민 오묘한 책상[妙案]이 있는 곳이며, 사자좌(師子座)의 당번(幢幡)과 누각과 창문을 마니보왕으로 장엄한 곳이며, 갖가지 보당과 번개를 세워서 장엄한 곳이다. 만다라화(曼陀羅華)ㆍ마하만다라화ㆍ만수사화(曼殊沙華)ㆍ마하만수사화ㆍ노자화(盧遮華)ㆍ마하노자화ㆍ작가라화(斫迦羅華)ㆍ마하작가라하ㆍ수마나화(須摩那華)ㆍ바사가화(婆師迦華)ㆍ다라니화(多羅尼華)ㆍ바라화(婆羅華)ㆍ구다라니화(衢多羅尼華)ㆍ극묘향화(極妙香華)ㆍ타사가리가화(陁師迦離迦華)ㆍ천수마나화(天須摩那華)ㆍ우발라화(優癖華)ㆍ파두마화(波頭摩華)ㆍ구물두화(拘物頭華)ㆍ분다리화(分陁利華)와 모든 대천인(大天人)의 묘화(妙華)가 아름다운 곳이며,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는 온갖 꽃들이 사자좌를 장엄한 곳이다.

이와 같은 곳에 머무시면서 바가바께서는 선하고 청정한 지혜로써 구경에 둘이 없는[究竟無二] 행을 이루시어 모든 법이 어떠한 상도 없는[諸法無相] 피안에 이르렀다.

모든 부처님들께서 행해오신 대로 행하여 모든 부처님의 평등처(平等處)를 얻었으며, 장애가 없는 경지[處]에 이르렀으며, 퇴전(退轉)이 없는 법륜(法輪)의 경지를 얻었으며, 능히 조복함이 없는 경계[無能伏境界]의 경지를 얻었으며, 차별을 생각하지 않는 경지를 얻었으며, 삼세(三世)가 평등한 경지를 얻었으며, 모든 세간을 오가는 데 있어 아무런 걸림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며, 모든 법에 의혹이 없는 지혜의 경지를 얻었으며, 모든 행이 궁극의 지혜인 경지를 얻었으며, 모든 여래의 지혜가 의혹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며, 분별이 없는 법신의 경지를 얻었으며, 부처님의 경계인 피안의 경지를 얻었으며, 차별이 없고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구경(究竟) 해탈의 의혹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며, 평등하며 끝도 없고 중간도 없는 불지(佛地)에 이르는 경지를 얻었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계(法界)처럼 광대하고 허공처럼 구경의 끝 이 없고 자연스러운 지업(智業)으로서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 지으신 그침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으며, 미래세에서 일체 겁(劫)이 다하도록 퇴전(退轉)함이 없는 법륜을 굴릴 수 있는 경지와 또 능히 장애가 없는 지혜가 장엄된 장(藏)을 시현하여, 모든 종류의 일체지지(一切智智)로서의 차별이 없고 의지할 것 없는 경지를 얻었다.

이때 시방세계의 도솔천에서 물러나서 처음 태어나 출가하여 집을 나와서 고행을 닦으면서 도량(道場)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마원(魔怨)을 항복받고 대보리(大菩提)를 증득하여 법륜을 굴려서 대열반을 보여주었다. 불법을 주지하고 멸하는 법으로써 십불토(十佛土)의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억(億) 나유타(那由他) 백천만 미진수(微塵數)의 모든 보살마하살과 함께 잘 시현하였다. 그 보살마하살들은 모두가 수능엄정(首楞嚴定)의 분신삼매(奮迅三昧)를 얻어서 한량없는 법행(法行)이 일으키는 다라니문(陀羅尼門)의 무불세계(無佛世界)를 성취하여 능히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잘 시현하였고 모든 더럽혀진 세계를 다 깨끗이 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석제환인(釋帝桓因)ㆍ대범천왕(大梵天王)ㆍ호세사왕(護世四王)ㆍ인비인(人非人) 등을 청정하게 하였다.

이때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보살마하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고치고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한 뒤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간절히 바라오니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능히 초지(初地)를 청정하게 할 수 있는 법을 설하시어, 전혀 두려움이 없는 안온한 경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법왕자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처음의 환희지[初歡喜地]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한 경지[大無畏安隱之處]를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일미심(一味心)을 얻었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일미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安慰)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미심이라는 것은 이른바 정심(正心)을 말하고, 이를 정심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서로서로 다르나[異異] 수승한 선근(善根)은 믿음에 있어 아무런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증상심(增上心)을 얻었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증상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증상심이란 이른바 직심(直心)을 말하는데, 이를 직심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부처와 여래가 크게 필경(畢竟)의 행을 하고 나아가야 할 수승한 경지를 취하여 모든 법을 관(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공경심(恭敬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공경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공경심이란 이른바 정신(正信)을 말하는데, 이를 정신이라고 한 것은 반야의 근본업(根本業)에 머물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에게 다음과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환희심(歡喜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환희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환희심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몸과 마음이 궁극적으로 적정(寂靜)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마업(魔業)과 불업(佛業)의 차별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마업과 불업의 차별이 없는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업이란 이른바 모든 전도(顚倒)된 사견(邪見)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마업은 모든 사견을 따라서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마업과 불지업(佛地業)은 서로 차별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업과 불지업 간에 서로 차이가 없는 것은 마업의 체(體)가 곧 불지업의 체로서 어떠한 차별도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 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한 경지를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견(邪見)과 차별이 없는 공의 지혜[空智]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견과 차별이 없는 공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견과 차별이 없는 공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사견의 체가 곧 공의 지혜의 체로서, 사견이 짓는 것이 곧 공의 지혜가 짓는 것임을 말한다. 왜냐하면 공의 지혜가 짓는 것은 사견이 짓는 것과 다르지 않고, 사견이 짓는 것은 공의 지혜가 짓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공의 지혜의 체가 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고, 사견의 체가 공의 지혜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곧 사견의 체는 사견이 짓는 공(空)이기 때문인데, 저 사견의 체가 사견이 짓는 공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공하게 되어 취하거나 버리는 차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차별과 차별이 없는 무차별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차별과 차별이 없는 무차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차별과 차별이 없는 무차별의 지혜란 이른바 차별의 체가 곧 무차별의 체인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차별의 체는 차별의 체와 다르지 않고, 차별의 체는 무차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차별의 체는 차별이 없기 때문인데, 저 차별의 체가 차별이 없는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차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증상(增上)과 차별이 없는 무증상(無增上)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증상과 차별이 없는 무증상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증상과 차별이 없는 무증상의 지혜란 이른바 증상의 체가 곧 무증상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증상의 체가 증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증상의 체가 무증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증상의 체가 무증상이기 때문인데, 저 증상의 체가 무증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증상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이미 전도(顚倒)와 차별이 없는 부전도(不顚倒)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새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전도와 차별이 없는 부전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도와 차별이 없는 부전도의 지혜란 이른바 전도의 체가 곧 부전도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전도의 체는 전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전도의 체는 부전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전도의 체가 부전도이기 때문인데, 저 전도의 체가 부전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부전도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취하고 버림[取捨]과 차별이 없는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지혜[不取不捨智]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취하고 버림과 차별이 없는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취하고 버림과 차별이 없는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지혜란 이른바 취하고 버리는 것의 체가 곧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의 체는 취하고 버리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취하고 버리는 것의 체는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취하고 버리는 것의 체는 취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데, 저 취하고 버리는 것의 체가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취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유위(有爲)와 차별이 없는 무위(無爲)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유위와 차별이 없는 무위의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유위와 차별이 없는 무위의 지 혜란 이른바 유위의 체가 곧 무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위의 체는 유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유위의 체는 무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유위의 체가 바로 무위이기 때문인데, 저 유위의 체가 무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위가 되어 사(事)에 있어서의 차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事)와 차별이 없는 무사(無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와 차별이 없는 무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와 차별이 없는 무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와 차별이 없는 무사의 지혜란 이른바 사의 체가 곧 무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사의 체는 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사의 체는 무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의 체가 곧 무사이기 때문인데, 저 사의 체가 무사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있어서 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의지(依止)와 차별이 없는 무의지(無依止)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의지와 차별이 없는 무의지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지와 차별이 없는 무의지의 지혜란 이른바 의지의 체가 곧 무의지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의지의 체는 의지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의지의 체는 무의지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의지의 체가 무의지이기 때문인데, 저 의지의 체가 무의지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의지함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관(觀)과 차별이 없는 무관(無觀)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관과 차별이 없는 무관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관과 차별이 없는 무관의 지혜란 이른바 관의 체가 곧 무관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관의 체는 관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관의 체는 무관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관의 체가 곧 무관이기 때문인데, 저 관의 체가 무관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대치(對治번뇌의 단절)와 차별이 없는 무대치(無對治)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대치와 차별이 없는 무대치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치와 차별이 없는 무대치의 지혜란 이른바 대치의 체가 곧 무대치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대치의 체는 대치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대치의 체는 무대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치의 체가 곧 무대치이기 때문인데, 저 대치의 체가 무대치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상(相)과 차별이 없는 무상(無相)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상과 차별이 없는 무상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과 차별이 없는 무상의 지혜란 이른바 상의 체가 곧 무상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상의 체가 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상의 체가 무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상의 체가 곧 무상이기 때문인데, 저 상의 체가 무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실(實)과 차별이 없는 부실(不實)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실과 차별이 없는 부실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과 차별이 없는 부실의 지혜란 이른바 실의 체가 곧 부실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실의 체가 실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실의 체는 부실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실의 체가 곧 부실이기 때문인데, 저 실의 체가 부실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실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둘이라는 것과 차별이 없는 둘이 아닌[不二]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둘이라는 것과 차별이 없는 불이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둘이라는 것과 차별이 없는 불이의 지혜란 이른바 둘인 것의 체가 곧 불이의 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이의 체는 곧 둘인 것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둘인 것의 체는 불이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둘인 것의 체가 곧 불이이기 때문인데, 저 둘인 것의 체가 불이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둘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색(色)과 차별이 없는 무색(無色)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색과 차별이 없는 무색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색과 차별이 없는 무색의 지혜란 이른바 색의 체가 곧 무색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색의 체는 색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색의 체는 무색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색의 체가 곧 무색이기 때문인데, 저 색의 체가 무색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색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세간(世間)과 차별이 없는 열반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세간과 차별이 없는 열반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간과 차별이 없는 열반의 지혜란 이른바 세간의 체가 곧 열반의 체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열반의 체는 세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세간의 체는 열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세간의 체가 곧 열반이기 때문인데, 저 세간의 체가 열반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열반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初歡喜地)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장애(障礙)와 차별이 없는 무장애(無障礙)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장애와 차별이 없는 무장애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장애와 차별이 없는 무장애의 지혜란 이른바 장애의 체가 곧 무장애의 체인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장애의 체는 장애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장애의 체는 무장애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의 체가 곧 무장애이기 때문인데, 저 장애의 체가 무장애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장애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집착(執着)과 차별이 없는 무집착(無執着)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집착과 차별이 없는 무집착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집착과 차별이 없는 무집착의 지혜란 이른바 집착의 체가 곧 무집착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집착의 체는 집착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집착의 체는 무집착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집착의 체가 무집착이기 때문인데, 저 집착의 체가 무집착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집착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지혜[智]와 차별이 없는 무지(無智)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지혜와 차별이 없는 무지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혜와 차별이 없는 무지의 지혜란 이른바 지혜의 체가 곧 무지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지의 체는 지혜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지혜의 체는 무지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혜의 체가 곧 무지이기 때문인데, 저 지혜의 체가 무지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지혜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유(有)와 차별이 없는 무(無)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유와 차별이 없는 무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유와 차별이 없는 무의 지혜란 이른바 유의 체가 곧 무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의 체는 유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유의 체는 무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유의 체가 무이기 때문인데, 저 유의 체가 무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식(識)과 차별이 없는 무식(無識)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식과 차별이 없는 무식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식과 차별이 없는 무식의 지혜란 이른바 식의 체가 곧 무식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식의 체는 식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식의 체는 무식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식의 체가 곧 무식이기 때문인데, 저 식의 체가 무식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식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이름[名]과 차별이 없는 무명(無名)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이름과 차별이 없는 무명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름과 차별이 없는 무명의 지혜란 이른바 이름의 체가 곧 무명의 체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명의 체는 이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이름의 체는 무명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름의 체가 곧 무명이기 때문인데, 저 이름의 체가 무명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이름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나[我]와 차별이 없는 무아(無我)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나와 차별이 없는 무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와 차별이 없는 무아의 지혜란 이른바 나의 체가 곧 무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아의 체는 나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나의 체는 무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체가 곧 무아이기 때문인데, 저 나의 체가 무아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에 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인연의 화합으로 짓는 것[因緣和合作]과 차별이 없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과 차별이 없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과 차별이 없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란 이른바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가 곧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의 체는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는 곧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이기 때문인데,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가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별상(別相)과 차별이 없는 무별상(無別相)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별상과 차별이 없는 무별상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별상과 차별이 없는 무별상의 지혜란 이른바 별상의 체가 곧 무별상의 체인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별상의 체는 별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별상의 체는 무별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별상의 체는 곧 무별상이기 때문인데, 저 별상의 체가 무별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별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문자[字]와 차별이 없는 무문자[無字]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문자와 차별이 없는 무문자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자와 차별이 없는 무문자의 지혜란 이른바 문자의 체가 곧 무문자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문자의 체는 문자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문자의 체는 무문자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문자의 체가 곧 무문자이기 때문인데, 저 문자의 체가 무문자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문자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교만(憍慢)과 차별이 없는 무교만(無憍慢)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교만과 차별이 없는 무교만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만과 차별이 없는 무교만의 지혜란 이른바 교만의 체가 곧 무교만의 체인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교만의 체는 교만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교만의 체는 무교만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교만의 체가 곧 무교만이기 때문인데, 저 교만의 체가 무교만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교만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자찬(自讚)과 차별이 없는 무자찬(無自讚)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자찬과 차별이 없는 무자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찬과 차별이 없는 무자찬의 지혜란 이른바 자찬의 체가 곧 무자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자찬의 체는 자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자찬의 체는 무자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찬의 체가 곧 무자찬이기 때문인데, 저 자찬의 체가 무자찬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자찬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불료의(不了義)와 차별이 없는 요의(了義)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불료의와 차별이 없는 요의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료의와 차별이 없는 요의의 지혜란 이른바 불료의의 체가 곧 요의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요의의 체는 불료의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불료의의 체는 요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불료의의 체가 곧 요의이기 때문인데, 저 불료의의 체가 요의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요의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 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인법(人法)1)과 차별이 없는 무인법(無人法)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인법과 차별이 없는 무인법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법과 차별이 없는 무인법의 지혜란 이른바 인법의 체가 곧 무인법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인법의 체는 인법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인법의 체는 무인법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법의 체가 곧 무인법이기 때문인데, 저 인법의 체가 무인법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무인법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견(邪見)과 차별이 없는 정견(正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견과 차별이 없는 정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견과 차별이 없는 정견의 지혜란 이른바 사견의 체가 곧 정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견의 체는 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사견의 체는 정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견의 체가 곧 정견이기 때문인데, 저 사견의 체가 정견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정견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평등(無平等)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며, 남들로 하여금 무평등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평등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지혜란 이른바 무평등의 체가 곧 평등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평등의 체는 무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무평등의 체는 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평등의 체가 곧 평등이기 때문인데, 저 무평등의 체가 평등인 지혜에 의해 모든 법이 평등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변(邊)과 차별이 없는 무변(無邊)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변과 차별이 없는 무변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변과 차별이 없는 무변의 지혜란 이른바 변의 체가 곧 무변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변의 체는 변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변의 체는 무변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변의 체가 곧 무변이기 때문인데, 저 변의 체가 무변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변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알 만한 것을 아는 것[知可知]과 차별이 없는 지혜[智]로서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알 만한 것을 아는 것과 차별이 없는 지혜로서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알 만한 것을 아는 것과 차별이 없는 지혜로서의 지혜란 이른바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가 곧 지혜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혜의 체는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는 지혜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가 곧 지혜의 체이기 때문인데, 저 알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가 지혜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취(取)함과 차별이 없는 무취(無取)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취함과 차별이 없는 무취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취함과 차별이 없는 무취의 지혜란 이른바 취함의 체가 곧 무취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취의 체는 취함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취함의 체는 무취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취함의 체가 곧 무취이기 때문인데, 저 취함의 체가 무취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무취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수행(修行)과 차별이 없는 무수행(無修行)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수행과 차별이 없는 무수행의 지혜에 머물게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수행과 차별이 없는 무수행의 지혜란 이른바 수행의 체가 곧 무수행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수행의 체는 수행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수행의 체는 무수행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수행의 체가 곧 무수행이기 때문인데, 저 수행의 체가 무수행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무수행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를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중도가 아닌 것[非中道]과 차별이 없는 중도(中道)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비중도와 차별이 없는 중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중도와 차별이 없는 중도의 지혜란 이른바 비중도의 체가 곧 중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중도의 체는 비중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비중도의 체는 중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중도의 체가 곧 중도이기 때문인데, 저 비중도의 체가 중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중도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비허공(非虛空)과 차별이 없는 허공(虛空)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비허공과 차별이 없는 허공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허공과 차별이 없는 허공의 지혜란 이른바 비허공의 체가 곧 허공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허공의 체는 비허공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비허공의 체는 허공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허공의 체가 곧 허공이기 때문인데, 저 비허공의 체가 허공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허공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석녀가 아닌 여자[非石女] 자식의 평등과 차별이 없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비석녀 자식의 평등과 차별이 없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석녀 자식의 평등과 차별이 없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지혜란 이른바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가 곧 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는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가 곧 석녀 자식의 평등이기 때문인데, 저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가 석녀 자식의 평등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석녀 자식의 평등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非如陽炎]과 차별이 없는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如陽炎]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과 차별이 없는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과 차별이 없는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지혜란 이른바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가 곧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체는 곧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이며,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는 곧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가 곧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저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가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견(邪見)과 차별이 없는 무사견(無邪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견과 차별이 없는 무사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견과 차별이 없는 무사견의 지혜란 이른바 사견의 체가 곧 무사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사견의 체는 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사견의 체는 무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견의 체가 곧 무사견이기 때문인데, 저 사견의 체가 무사견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사견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명(無明)과 차별이 없는 명(明)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며, 남들로 하여금 무명과 차별이 없는 명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명과 차별이 없는 명의 지혜란 이른바 무명의 체가 곧 명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명의 체는 무명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무명의 체는 명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명의 체가 곧 명이기 때문인데, 저 무명의 체가 명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명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탐욕[食]과 차별이 없는 무탐(無貪)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탐욕과 차별이 없는 무탐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탐욕과 차별이 없는 무탐의 지혜란 이른바 탐욕의 체가 곧 무탐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탐의 체는 탐욕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탐욕의 체는 무탐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탐욕의 체가 곧 무탐이기 때문인데, 저 탐욕의 체가 무탐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탐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성냄[瞋]과 차별이 없는 무진(無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성냄과 차별이 없는 무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냄과 차별이 없는 무진의 지혜란 이른바 성냄의 체가 곧 무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진의 체는 성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성냄의 체는 무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성냄의 체가 곧 무진이기 때문인데, 저 성냄의 체가 무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진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어리석음[癡]과 차별이 없는 무치(無癡)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어리석음과 차별이 없는 무치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리석음과 차별이 없는 무치의 지혜란 이른바 어리석음의 체가 무치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치의 체는 어리석음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어리석음의 체는 무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어리석음의 체가 곧 무치이기 때문인데, 저 어리석음의 체가 무치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치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의탁(依託)과 차별이 없는 무의탁(無依託)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의탁과 차별이 없는 무의탁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탁과 차별이 없는 무의탁의 지혜란 이른바 의탁의 체가 곧 무의탁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의탁의 체는 의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의탁의 체는 무의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의탁의 체가 곧 무의탁이기 때문인데, 저 의탁의 체가 무의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의탁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보시행으로 섭수하는 일[布施行攝受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보시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시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보시와 회향(廻向)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애어행으로 섭수하는 일[愛語行攝受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애어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에어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직심(直心)과 수행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이익행으로 섭수하는 일[利益行攝受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이익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익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행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동사2)의 수행으로 섭수하는 일[同事行攝受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동사의 수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동사의 수행으로 섭수하는 일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방편(方便)과 지혜(智慧)로 행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발심(發心)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발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발심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직심(直心)과 수행(修行)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탐애를 여읜 마음[離貪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탐애를 여읜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탐애를 여읜 마음이라고 한 것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성냄을 여읜 마음[離瞋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성냄을 여읜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한 것은 다른 모든 중생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嬚恨心]이 생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신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身業不作諸惡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신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신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이라고 한 것은 세 가지의 몸으로 짓는 악행을 여의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구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口業不作諸惡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구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구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이라고 한 것은 네 가지 구업의 과실을 여의게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의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意業不作諸惡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의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업으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수행이라고 한 것은 탐(貪)ㆍ진(瞋)ㆍ치(癡)의 모든 악행(惡行)을 여의게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부처님의 정념(正念)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정념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념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부처님의 청정한 생각[念]을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의 정념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의 정념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의 정념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능히 청정한 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승(僧)의 정념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승의 정념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승의 정념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보살의 지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捨:평정한 마음의 상태)의 정념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의 정념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의 정념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저 모든 취(取)함을 버리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계(戒)의 정념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계의 정념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계의 정념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상관(無常觀)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무상관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상관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욕탐(欲貪)ㆍ색탐(色貪)ㆍ무색탐(無色貪)을 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아관(無我觀)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무아관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아관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관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실제법(實諦法:진실한 이치를 가지고 있는 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실제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모든 하늘[天]과 사람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실법(實法:진실한 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실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법이라고 한 것은 모든 하늘과 자신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행(法行:법에 의한 행위)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행이라고 한 것은 일체 모든 법행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견고계(堅固戒)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견고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견고계라고 한 것은 이른바 작은 계율에 이르기까지 범하는 일이 없어서 작은 죄도 짓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불결계(不缺戒:결함이 없는 계율)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불결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결계라고 한 것은 이른바 다른 나머지승[餘乘]에서 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부점계(不點戒:더럽혀지지 않는 계율)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부점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점계라고 한 것은 모든 악행을 여의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불탁계(不濁戒:오탁이 없는 계율)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불탁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탁계라고 한 것은 모든 보살을 섭수(攝受)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선호계(善護戒:계율을 잘 護持하는 것)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선호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호계라고 한 것은 모든 보살에 대하여 일어나는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선밀계(善密戒)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선밀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밀계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근기(根機)를 잘 호지(護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명칭계(名稱戒)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명칭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명칭계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차별 없는 법계의 둘이 아닌 지혜[不二智]에 들어가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지족계(知足戒)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지족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족계라고 한 것은 모든 탐욕을 여의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차별계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차별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차별계라고 한 것은 몸이 적정(寂靜)해지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아란야처계(阿蘭若處戒:고요한 곳에 머무는 계율)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아란야처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란야처계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없음[無] 속에 들어가 가장자리가 없어지기[無邊]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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