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제2권-2
08. 분별상품(分別相品)
어떤 사람이 보배 구슬을
큰 바다에 떨어뜨리려 잃어버리고는
바로 보물 건지는 기구를 가지고
바닷물을 말려 보배 구슬을 찾기 위해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마음을 집중해 꼼짝하지 않자
바다 신이 이러함을 보고
즉시 구슬을 찾아 돌려주었네.
그가 마침 이런 방편을 쓰자
천왕은 생각을 끊고
초월하여 대보산(大寶山)에 이르러
나태하거나 게을리 함이 없었네.
본래의 무(無)함을 마침내 깨달아
집착 없으신 분께 머리 조아리고
서원(誓願)한 것을 바꾸지 않으신
가장 수승한 분께 귀의하여 예배드렸네.
용왕이 몸을 서린 것처럼
또한 이와 같이 단정히 앉아
도를 구하기 위해 정진하여
큰 힘[大力] 일으켜 불도를 얻으셨고
혼자 행한 지 7일째 되는 날에
능히 인욕하여 여인을 교화시키셨나니
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진실하게 보아 바꾸지 않았네.
도를 행하는 이는 혹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고 죽고 하기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고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익혀온 지도 너무나 오래 되었다. 사람의 수명은 짧고 게다가 게으름까지 피웠으니, 어떻게 한 생(生) 만에 온갖 번뇌를 다 제거해 없앨 수 있겠는가?’라고 하기도 할 것이다.
만일 이런 생각이 있을 적에는 마땅히 이런 관법(觀法)을 행해야 한다.
‘비유하면 오래된 낡은 집에 애당초 사는 사람이 없어 여러 해 동안 등불을 켜지 않아 어두울지라도 불을 잡고 들어가기만 하면 어둠은 곧 사라지듯이, 아무리 오랫동안 더러운 때와 온갖 독을 익혀 왔다 하더라도 지혜만 있으면 모든 번뇌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지혜의 힘은 강하고 어리석음은 하열(下劣)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도의 뜻을 구하려면 게으르지 말지니
법의 이로움[法利]을 얻어 쇠모(衰耗)함을 여의고
부처님의 밝고 빛나는 지혜를 받들어
영원히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없앨지어다.
누가 능히 이것을 받들고 도를 따르기를 이와 같이 할 것인가?
오직 믿음이 있는 자라야 정진하여 지혜로워질 수 있으며, 아첨하는 것이 없는 마음이 있어야 그가 곧 이러한 행을 따를 수 있다.
어떤 것을 믿음[信]이라고 하는가?
온갖 물건은 모두 덧없는[無常] 데로 돌아간다는 이치와, 받은 몸은 죄다 근심과 고통일 뿐이라는 사실과, 삼계(三界)는 모두가 공(空)한 것이라는 것과, 일체의 모든 법들을 따져 보면 모두 나 없음[無我]을 보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는 것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도를 수행하는 이는
세간은 불안한 것임을 알아야 하나니
온갖 물질은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받은 몸은 다 괴롭다는 것과
삼계는 모두 공(空)하다는 것과
일체 법에는 나[我]라는 것이 없음을 알아서
있는 곳에서 잘 받아 수행하는 이를
곧 믿음이 있는 이라고 말한다.
가령 나[我]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곧 뒤바뀐 사람이라고 하고
능히 모두 다 공한 것임을 잘 알게 되면
곧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는 부처가 되어 감로(甘露)의 도를 얻은 이라네.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아 아는 이는
능히 동요할 리가 없을 것이니
이를 곧 믿음이라고 말하네.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는가?
가령 수행하는 이가 공한 것이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임을 오로지 정밀하게 하여 마음에서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정진이라고 한다. 가령 들에서 난 불[野火]이 점점 번져 자리 가까이까지 이르고, 또 의복을 태우며 위로는 머리와 눈에까지 미친다면, 마음속으로 마땅히 생각하기를 ‘불이 내 머리를 태우고, 설령 뼈와 살과 피부까지 다 태워서 내 몸이 죽는다 할지라도 끝내 수행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왜냐 하면 아무리 내 몸을 태운다 할지라도 족히 내 몸이라고 말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몸 속에 있는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불은 나고 죽음이 있는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 가운데를 계속하여 돌면서 나의 몸을 태우며, 수없는 세상을 지내는 동안 미처 구경(究竟)의 경지를 얻어 도덕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
아무리 온몸을 태운다 할지라도 족히 구제될 수가 없고, 다만 마땅히 힘으로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불을 꺼야 할 것이니, 이미 멸도를 얻고 나면 다시는 도로 물러남이 없을 것이고, 이미 몸이 없고 나면 안팎 모든 불의 환난(患難)도 없을 것이다.
이 음욕·성냄·어리석음은 쉽게 소멸할 수 없을 것이니, 비유하면 왕겨[糠]를 태우는 불로 구리쇠를 녹이려고 하면 끝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일체 방편을 써야 곧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병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도덕에 대하여 전일하고 순수함을 가지고
마땅히 그렇게 할 때에 몸을 아까워하지 말라.
비유하면 코끼리가 그 몸을 씻을 적에
깨끗이 목욕하고는 다시 땅 위에 눕듯이 하라.
가령 위급한 액난(厄難)이 자신에게 미치고
우레와 번개가 몰려오더라도 놀라지 말라.
비유하면 시든 꽃을 사람이 아까워하지 않듯
번뇌 버리는 것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가?
조용히 선정[寂定]을 행할 때를 분명하게 알고 마땅히 관(觀)할 때를 알며, 지혜로 살필 때를 알고 법을 받아들일 때를 알며, 마음을 안정하게 가지고 선정에 들 때를 알고 선정을 좇아 일어나는 더디고 빠른 때를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에 소유하고 있는 선과 악을 분별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훌륭한 의원이 뱃속의 병을 알아내는 것처럼 해야 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제어하여 방자하게 굴지 않기를, 비유하면 마치 건장한 코끼리가 구덩이나 우물에 빠지려고 할 적에 그 코끼리를 기르는 이가 잘 다루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도를 수행하는 이도 바깥에 집착하는 것을 끊어 없애는 것 또한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마음이, 모든 생각[想]이 받드는 인연을 아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지혜 있는 이가 음식물의 맛있는 것을 알 듯이 하고, 또한 요리사[宰人]가 임금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을 알 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또 일체를 해탈하는 방편으로써 나아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를 분명히 알되, 비유하면 마치 금을 다루는 연금술사가 금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듯이 해야 한다.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밝은 지혜를 여의어 도의 갈래를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마음에 두려움을 품거나,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한다면 지혜를 이루지 못한다.
가령 도를 행하는 이가 첫 번째 선정[禪]을 얻고, 두 번째 선정에 이르면 스스로 두려워하여 선정을 잃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더욱 적정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괴이한 일이구나. 미혹함이여’라고 한다면, 설령 본래 선(善)과 호응한 기억이 있었다 하더라도 도리어 마음에 편함을 잃어 곧 달아나고 만다.
기쁨과 희열에 머물러 정의(定意)를 여읜다면, 스스로 마음에 한계가 생겨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의심을 품는 것이 이와 같아서 곧 선정을 잃게 되어, 이룬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선정의 뜻을 분명하게 알겠는가?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잡고서,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마음은 멸진정(滅盡定)에 두는 것이니, 적절하게 이 행을 닦으면,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미(迷)해지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세속 일을 익혀왔기 때문에 바른 진리와 모든 번뇌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므로 마음에 번뇌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정을 구하면서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으면 선정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잘못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수행하는 이가 지혜로워서 이와 같은 미혹한 일을 짓지 않으면, 선정을 잃지 않으리니 이것을 지혜 있는 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몸의 모든 법을 분명히 깨달아 안다면
곧 그 마음이 돌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될 것이니
방편을 내어 마음이 나아가는 바를 제지하되
마치 쇠갈고리로 하얀 코끼리를 길들이듯 하라.
그 선정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아 알고
또한 이렇게 고요히 관하는 법을 분별하여
항상 지혜로써 망설이지 않고
도덕에 머물기를 법교(法敎)대로 하라.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되지 않은 것인가?
아첨하지 않고 그 마음이 솔직하며, 정진에 전념하여 도를 행하고, 믿음을 돈독하게 하고 정성을 다해 지키는 것이다.
설사 수행을 하는데 행해서는 안 될 것과 모든 번뇌로서 좋지 못한 것이 있을 적에는, 모두 법사(法師)를 향하여 그 번민하는 것을 말하되, 비유하면 병이 든 사람이 그 질병의 증세를 의원에게 성심껏 다 말해주는 것처럼 한다면, 법사가 수행하는 이의 의지를 살펴보고 마땅히 결함이 있는 부분에 대하여 거기에 알맞은 법을 말해 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이는 정직한 마음을 품고
그 마음에 아첨하는 일이 없이
법사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모든 번뇌를 끊어야 한다.
편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오로지 정근하여 도를 닦으며
경 받들기를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하고
법 따르기를 전쟁에 임하는 것처럼 하라.
가령 수행하는 이가 정욕이 너무 왕성하면 그들을 위하여 사람의 몸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법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법은 세 가지 품계의 가르침이 있다.
그 첫째는 몸의 뼈가 쇠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지탱하고 있음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적절하게 법의 가르침을 받아 문득 머리뼈를 관찰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이미 이렇게 관찰하는 법을 말해 마치고는 다시 이마 위를 관찰하게 하되 마음을 머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진노(瞋怒)가 너무 왕성하게 많은 사람은 그에게는 자비한 마음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자비한 마음에는 네 가지 품계가 있다. 첫째는 부모와 종친을 말하고, 둘째는 몹시 친하거나 소원함이 없는 중간 계층의 사람을 말하며, 셋째는 여러 보통 사람들을 말하고, 넷째는 이러한 수행 방법을 얻어서 자비한 마음을 평등하게 베풀고 원수를 보호해서 어진 마음[仁心]을 원만하게 갖추면, 아홉 가지 번뇌[九惱]와 횡진(橫瞋)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나니, 이러한 이치를 분별한다면 아무리 두터운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멀리 여읠 것이다.
무엇을 아홉 가지 번뇌이고, 또 횡진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혼자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과거에 나를 침해하여 해를 끼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 사람이 뒷날 혹 나를 침해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금생(今生)에 나를 또 속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과거에 나의 친구를 억울하게 하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후세에 혹 내 친구를 침해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현세에 또 내 친구를 속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그 사람은 전에 나의 원수를 존경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후세에 혹 또 그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금생에 또 그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이런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마땅히 모조리 버려야 한다.
어떻게 해야 능히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침해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오직 마땅히 자신을 잘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나도 전생에 착하지 못한 죄가 있었던 까닭에 이런 나쁜 과보(果報)를 초래한 것이고, 나의 친구도 본래 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환난을 받는 것이며, 나의 원수도 본래 저 사람과는 숙세(宿世)에 친한 사이였고, 또 복덕(福德)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공경을 받는 것이니, 세 가지 품계[品]의 아홉 가지 고뇌에 아무런 원한도 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어떤 것을 횡진이라고 하는가?
일찍이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도 보게 되면 곧 그에게 성이 나는 것이니, 그러면 곧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일찍이 내 몸을 침해하여 억울하게 한 적이 없고, 현세에도 잘못이 없으며, 후생에도 실수가 없을 터인데, 무슨 까닭에 악한 마음을 품고 남을 대할 것인가’라고 해야 한다.
그 악한 마음을 내어 남에게 해를 가한다면 도리어 제 자신이 죄를 받으리니, 비유하면 바람을 향하여 먼지를 뿌리면 도리어 제 자신이 먼지를 뒤집어쓰는 경우와 같다.
도를 수행하는 이가 능히 성냄을 소멸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도품(道品)에 들지 못할 것이니, 비유하면 술잔에 물을 담은 것과 같아서 먼 데까지 미치게 하지는 못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능히 성냄을 제어하는 이는 마치 물이 불을 끄는 것과 같아서 해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이렇게 수행하는 이는 도율(道律)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록 칼과 톱으로 몸이 끊기는 괴로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성냄을 일으키지 말되, 마치 마른 나무가 불에 타는 것처럼 원한의 마음이 없어야 할 터인데, 어찌 성내는 마음을 가지고서 정신(精神)으로 향해 가겠는가?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기 자신이나 보통 사람과 원수에 대해
평등하게 보고 조금도 다르게 하지 않으며
아홉 가지 번뇌 모두를 버리고
뜻을 세워 횡진이 없어야 한다.
마음을 제어하여 원한을 품지 않기를
마른 나무처럼 성냄이 없어야 하나니
도지(道地)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해야 번뇌가 없을 것이다.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리석음이 너무 많을 경우, 마땅히 12인연을 관하게 하라. 분별하여 12인연을 분명히 알게 되면 생겨나는 인연을 좇아 늙고 죽음이 있는 것이니, 가령 생겨나지 않는다면 곧 시작과 끝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지 않으면 생겨남도 없고
늙고 죽는 걱정도 없으리니
본래 시작이 없음을 본다면
무엇을 좇아 쇠망함을 이루겠는가.
본래 6정(情)으로 인하여 일어나
매우 어지럽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이루고
어리석음을 좇아 번뇌의 그물[結網]이 생겨
이것이 변해서 어리석은 번뇌를 이룬다.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생각함[想念]이 너무 많을 경우, 곧 그 사람을 위하여 나고 드는 숨 세는 법[數息]을 설해주어야 한다. 숨이 안정되고 나면 뜻이 고요해져서 구하는 것이 없어진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숨을 세어 멈추고[止] 서로 따르기를 구하여
올바른 진리를 보아 생각하고 마음을 멈출지니
본성(本性)이 청정한 이는 이와 같이 받들어 행할 것이요
혼자 앉아 생각이 많으면 행을 이루지 못하리.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교만이 너무 많을 경우, 그를 위하여 이 이치를 말해주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교만이 있나니, 첫째는 ‘내가 아무개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요, 둘째는 ‘아무개는 나와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아무개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스스로 대단하다는 마음을 품으리니,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성 밖에 무덤 사이에는 버려진 뼈 가루와 몸과 머리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있는데, 혈맥은 없어지고 가죽과 살이 녹아 문드러져 있다.’
마땅히 가서 이런 것을 본다면, 빈부·귀천·남녀·크고 작음·단정함·추함·더러운 것들도 모두 이 마른 뼈와 다를 게 없는데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나서 죽을 때까지 이 몸은 살[肉]이 옷이 되고 가죽으로 그것을 싸고 있으며, 피가 윤택하게 하고 힘줄로 묶어진 것이며, 의복·향(香)·꽃·영락을 두른 그 몸도 비유하면 환화(幻化)와 교풍(巧風)이 합쳐진 것과 같아서 다만 마음[心]·뜻[意]·의식[識]을 인하여 두루 돌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성곽·나라·고을·마을이며, 나고·들고·나아가고·멈추는 데에 이르기까지도 이러한 법으로 관찰하고 나면, 교만이 없어질 것이므로 본래 무(無)한 것이라는 것을 관찰한 이는 무덤이나 일체 사람들을 보는 것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호걸스러우며 부귀를 누리는 이나
가마를 타고 성 밖에 나가 노는 이나
묘지 사이에 흩어져 있는 이도
헤아려 보면 똑같을 뿐 다를 게 없다.
한가롭게 나무 밑에 앉아
이와 같은 법(法)을 관하고
마음 잡아 도를 행한다면
교만의 불[慢火]도 능히 태우지 못하리.
법사가 경(經)을 설할 적에 사람의 마음[情]을 관찰하는 법이 모두 열아홉 가지가 있다.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번뇌를 분별함으로써 그것을 곧 알 수 있다.
어떤 것을 열 아홉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음행을 탐하는 것[貪婬]이요, 둘째는 성내는 것[瞋恚]이며, 셋째는 어리석은 것[愚癡]이요, 넷째는 음란하면서 성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음란하면서 어리석은 것이요, 여섯째는 어리석으면서 성내는 것이며, 일곱째는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요, 여덟째는 입은 청정하나 생각이 음란한 것이며, 아홉째는 말은 부드러우나 마음이 억센 것이요, 열째는 입은 지혜로우나 마음이 어리석은 것이다.
열한째는 말은 아름다우나 마음에 3독(毒)을 품고 있는 것이요, 열두째는 말은 거칠게 하지만 마음은 온화한 것이며, 열셋째는 입으로 악한 말을 하고 마음이 굳센 것이요, 열넷째는 말이 거칠고 마음이 어리석은 것이며, 열다섯째는 입이 거칠고 마음에 3독을 품고 있는 것이요, 열여섯째는 입이 어리석 고 마음이 음란한 것이며, 열일곱째는 입이 어리석고 마음에 노여움을 품고 있는 것이요, 열여덟째는 마음과 입이 다 어리석은 것이며, 열아홉째는 입이 어리석고 마음에 3독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음란함[婬]·성냄[怒]·어리석음[癡]
이것들을 합하여 3독이라 한다.
둘씩 서로 뒤섞이는데
이를 계산하면 네 가지가 있다.
또 입이 부드러운 것에 넷이 있고
입이 어리석은 것에 또 넷이 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마음 열아홉 가지가 이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이 음란을 탐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을 아는가?
겉치레하기를 스스로 좋아하고 농담을 잘 하며, 성질이 급하고 의지가 조급하고 서둘러서 마치 원숭이와 같아 실수가 많으며, 지혜와 꾀가 얕아 멀리 생각할 줄 모르고 행동과 하는 일이 앞뒤를 돌아볼 줄 모르며,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행하고 일에 대해 두려워함이 많으며, 말이 많고 울기를 좋아하며, 쉽게 속고 쉽게 굴복한다.
안일하게 여기고 쉽게 알며, 매우 참고 애쓰는 체하며, 조그마한 이익을 얻으면 너무 즐거워하고 보잘것없는 것을 잃고도 몹시 걱정하며, 남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면서 그를 믿고 숨기는 일을 죄다 폭로하며, 신체가 뜨거워 땀이 많으며, 피부가 얇고 몸에서 냄새가 난다.
털과 머리칼이 듬성듬성 나고 안색이 창백하고 자주 찡그리며, 수염이 긴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이[齒가 희고 종종걸음을 치며, 깨끗한 옷만 좋아하고 채색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하며, 그 몸을 꾸미기 좋아하고 얇고 가벼운 옷을 좋아하며, 기술을 많이 배워 통하지 못한 것이 없는 체하고 자주 다니면서 유람하고 항상 기쁘게 웃음을 머금는다.
거짓으로 꾸며 계율을 받드는 체하고 성질이 온화한 체하며, 어른을 공경하는 체한다. 사람을 보면 먼저 안부를 묻고, 재주와 지혜가 있고 고상한 체하며, 성질이 사납고 뒤틀리지 않은 체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자비한 마음[慈心]이 많은 체 하며,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고 주고받고 하며, 부드럽고 온화하여 매우 가엾이 여기는 체하고 은혜를 많이 베푸는 체한다.
모든 친구들에게 넉넉하게 베풀어주고, 가진 것이 많건 적건 사람들과 다투지 않아 그 은혜가 광대한 체하며, 몸매를 살피면서 행동을 느리고 더디게 하여 점잖은 체하며, 능히 세간의 법을 확실하게 알아서 죄다 결단할 능력이 있는 체하며, 만일 훌륭한 사람을 보면 공경하고 삼가는 체하며, 일이 발각되면 말을 잘하여 재빨리 뒤집으며, 말에 재치가 있고 지혜로워 말이 화평한 체하며, 벗은 많아도 능히 오래도록 친하지 못한다.
성냄이 적고 어른을 존경하는 체하며, 눕고 일어나고 행보(行步)하는 데 안정되지 못하며, 아무리 법을 배워도 재물을 사랑하고 탐하며, 친족과 친구를 저버려 견고하지 못하고 친구 사이를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하며, 색욕(色欲)의 일들을 들으면 곧 탐하고 집착하며, 악로(惡露)를 말하면 곧 만족히 여기고 나아가는 것도 쉽게 하고 물러가는 것도 쉽게 한다.
그러므로 음란을 탐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조급하고 경솔함이 원숭이 같고
항상 기뻐서 웃고 또 울기를 좋아하네.
이익 얻으면 매우 좋아하고 잃으면 매우 걱정하며
말이 많아 수다스럽고 쉽게 굴복한다.
의지가 또 조급하고 놀라고 두려워하며
스스로 쉽게 속아넘어가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
생각과 성품이 잘 잊어버려 멀리 생각할 줄 모르며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고 지혜 있는 체한다.
색(色)을 탐하여 살피고 훌륭한 보시 생각하는 체하며
몸매 살피고 벗을 공경하는 체하네.
점잖은 체 하는 몸은 뜨거워 땀이 많고
기쁘게 믿고 부끄럽고 용맹 있는 체하네.
법과 재물과 색(色)과 친구에 대해
옳지 않다고 곧 멀리 대했다가 곧 후회하네.
모든 배운 것에서 무엇이든 얻은 체하고
비록 쉽게 알았더라도 재빨리 잊어버린다.
입는 의복은 꽃과 장식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하는 일 요긴하지 못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체하네.
지혜 있는 이 공경하고 배움에 뜻이 있는 체하고
분명하게 통달하여 무엇이든 다 아는 체하네.
늘 성 밖에 나가 놀러 다니기만 좋아하고
또한 말을 잘 꾸며 듣기 좋게 한다.
영리한 말로 곧잘 분별하는 체하고
앉고 눕는 것에 대해 오래 참지 못한다
성품이 부드럽고 정성을 다하는 체하며
하는 일이 경솔하여 앞뒤를 돌아보지 않네.
뜻이 조급하여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며
벗들에게는 보시를 잘 하는 체한다.
수염이 긴 것은 싫어하고 짧은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즐거운 체하고 냄새만 풍기네.
재주와 지혜가 있는 체하고 자주 찡그리고 창백하며
계율 받들고 지혜 있어 걸림이 없는 체한다.
사람을 보면 먼저 안부 물으며
옷은 얇게 입고 얼굴과 이는 깨끗이 하네.
자비한 마음 있고 쉽게 일을 따르는 체하고
행을 일으켜 재물을 아끼지 않는 체한다.
사람을 분별할 줄 알고 자비심 행하는 체하며
가르침을 경솔하게 여기고 뒤틀려 어긋나지 않은 체하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성품이 이와 같으면
마땅히 음란을 탐하는 모습이라고 하셨다.
마땅히 어떤 방법으로 성내는 모습[瞋恚之相]이 있는 줄을 관찰하는가?
깊은 이치를 알아서 사람을 대하여 갑자기 성을 내지 않다가도 만일 성을 냈다하면 풀기 어렵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하는 말은 지극히 성실한 것 같으나 입은 추악하며, 널리 의심을 품어 쉽사리 믿지 않는다. 남의 잘잘못을 따지기 좋아하며, 깨어있는 시간은 많고 자는 시간은 적으며, 원망하고 미워함이 많아 벗들과 끝을 내며, 원수와 화해하기 어려워 당했던 것을 잊지 않으며,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아 남들은 두려워하는데도 자기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이 세고 변덕스럽고 잘 굽히려 하지 않으며 걱정이 많고 가르치기가 어려우며, 신체가 장대하고 목덜미는 살지며, 머리가 크고 어깨는 넓으며, 이마는 모나고 머리카락이 곱다. 용맹스럽고 성질이 강하여 항복 받기 힘들며, 듣고 배우는 데 느리고 둔하여 얻기는 어렵지만 이미 배워 얻은 것은 다시 잊어버리기도 어려우며, 혹은 법재(法財)와 친구를 잃어버리고도 영원히 시름하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아 나아가기도 어렵고 물러가기도 어렵다. 이로써 그를 파악할 수 있나니 이것을 성내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의지와 성질 굳세고 강하며 이치를 깊이 아는 것 같으나
널리 남을 의심하여 잘잘못을 따지네.
잠[睡眠]이 적고 굴복시키기 어려우며
성품이 어리석어 배우기도 어렵지만 잘 잊지도 않네.
고달픔을 잘 견디고 접근하기 어려우며
두려워함이 없고 갑자기 성내지도 않네.
몸과 입이 서로 맞아 깨쳐주기 어려우며
용맹스럽고 힘이 세어 성질만 사납다.
두려움이 적고 친구도 적은데 미움과 원망만 많고
편안함은 적은데도 몸은 도리어 큰 체 하네.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뉘우치지 않으며
법재를 버리고도 도리어 돌아볼 생각을 않네.
한번 버린 친구는 다시 생각하지도 않으며
일찍이 변하지도 않고 항복하지도 않네.
힘써 정진하여 큰 업을 닦으려고도 하나니
부처님께서 이것들을 성내는 모습이라 하셨다.
어떻게 어리석은 모습이 있는 줄을 관찰하여 아는가?
성질이 부드럽고 연약하여 제 자신을 칭찬하기를 좋아하며, 자애(慈愛)가 없고 법교(法橋)를 파괴하며, 늘 눈을 감고 있고 얼굴빛이 초췌(憔悴)하며, 지혜가 없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며, 가끔 혼자서 탄식하고 게으르고 믿음이 없으며, 착한 이를 미워하고 늘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며, 견해는 보잘 것 없으면서 스스로 큰 체하고 하는 일에 대하여 망설이고 주저하며, 좋고 나쁜 줄을 가리지 못하고 착하고 악함을 분별하지 못한다.
만약 급한 일이 있어도 능히 스스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또한 남이 간하는 말을 듣지도 않으며, 좋은 벗과 원수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는 일이 도리어 어긋나고 뒤틀려서 마치 호랑이와 같으며, 해진 옷을 입고 몸에는 때가 많으며, 성품이 스스로 기뻐하지 않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더부룩해도 스스로 정 돈할 줄도 모른다.
걱정이 많아 눕기를 즐기고 너무 많이 먹어 절제하지 못하며, 남이 심부름을 시키면 달갑게 하지 않고 도리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하며,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일은 두려워하지 않고 마땅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을 도리어 두려워하며, 마땅히 걱정해야 할 일은 도리어 기뻐하고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은 도리어 걱정하며, 꼭 울어야 할 곳에서는 웃고 꼭 웃어야 할 곳에서는 운다.
설사 급한 일이 있어도 남을 시키고 스스로 하지 않고 꼭 가야 할 자리에는 상대를 부르고 그가 와도 달갑게 돌아보지도 않으며, 늘 괴로움을 당하면 억지로 그 괴로움을 견디고 음식을 먹을 적에도 5미(味)를 분별하지 못하며, 말하면서 웃기를 좋아하고 잘 잊어서 한 말을 또 하며, 혀를 깨물고 입술을 빨고는 다음에 잇몸을 나불거리며, 걸어다니고 눕고 일어남에 있어서 언제나 편안한 적이 없으며, 거동하고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렵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없고 나아가고 물러갈 줄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약한 몰골에다 어리석고 자비심이 없으며
고집이 센 성격에 제 자신을 칭찬하네.
눈은 항상 꿈쩍도 않고
바짝 여윈 채 가끔 탄식만 한다.
혼자서 다니고 남을 믿지 않으며
어진 이를 미워하고 또 게으르다.
늘 걱정하고 의심이 많으며
모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몸과 얼굴에 때[垢]가 많고
좋고 나쁜 말을 알지 못하며
하는 일마다 시끄러운 것이 많아서
스스로 일을 완전히 해내지 못한다.
시키는 일은 달갑게 행하지 않고
시키지 않는 일을 도리어 행하며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은 도리어 두려워한다.
기뻐해야 할 일은 도리어 걱정하고
걱정해야 할 일은 도리어 기뻐하며
꼭 울어야 할 곳에서는 도리어 웃고
꼭 웃어야 할 곳에서는 운다.
음식을 탐내어 배부른 줄 모르고
좋은 벗과 원수를 분별하지 못하며
의지와 성품은 뒤틀려 어긋난 짓을 좋아하고
지혜가 없어 늘 괴로움을 당한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늘 더부룩하고
믿음이 없이 어두운 곳에 있기를 좋아하며
다섯 가지 맛을 분별하여 알지 못하고
늘 누워 있어 마치 호랑(虎狼)이와 같다.
견해는 적으면서 잘난 체하고
혀를 깨물고 입술을 빨며
입을 놀리면서 잇몸을 움직거리고
말하면서 웃기를 좋아한다.
눕는 곳이 편안하지 못하고
급한 일도 진행할 줄 모르며
돌아오라고 부르면 도리어 앞으로 돌진하니
그런 성격을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하는가?
전에 말한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바로 그것이다.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모습은 또한 이와 같아서 저 일체가 번뇌와 합해진 것이다. 이것을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번뇌 속에 있으면서
음란과 성냄이 함께 합쳐서
마땅히 음란하고 성내는 모습을 보건대
이것이 곧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것이다.
앞에 설한 모든 것들
탐욕과 온갖 더러움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동이
곧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한 것임을 알라.
어떤 것을 입의 욕망과 마음의 욕망이라고 하는가?
말이 부드럽고 순종하여 어기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으며, 말과 생각이 매우 착하고 편안하여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좋은 나무가 꽃빛깔도 선명하고 열매도 탐스럽듯이, 입의 욕망과 마음의 욕망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말이 항상 부드럽고 온화하고
순종하는 말만 하여 남이 듣기 좋게 하며
말과 행동이 서로 부합하고
마음과 몸으로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 듯함이네.
비유하면 좋은 꽃나무에
달고 맛있는 열매가 달려 익듯이
불세존께서는 이것을 해설하시기를
마음과 입의 음란한 모습이라고 하셨다.
어떤 것을 입은 탐욕스럽고 마음은 성내는 것이라고 하는가?
입이 하는 말은 부드러워도 마음은 독을 품는 것을 말한다. 마치 독이 있는 나무가 그 꽃빛깔은 선명하지만 열매는 매우 쓴 것처럼 말은 부드러워도 마음에 독을 품은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이 하는 말은 부드러워도
마음은 독해(毒害)를 품고 있나니
사람을 보면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따르므로 친할 만하고
입이 하는 말은 유순하여도
그 마음속에는 독을 품고 있어
저 독한 나무가 꽃빛깔 선명하지만
그 열매는 쓰고 독한 것과 같다.
어떻게 입이 탐욕스럽고 마음은 어리석은 것을 아는가?
말은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 마음은 아주 어리석어 어두우며, 남을 유익하게 할 수는 없어도 또한 속여 손해를 입히지도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 속에 있는 병(甁)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아름다워도 속은 어둡고텅 비어 있는 것처럼 입이 탐욕스럽고 마음이 어리석은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으로 하는 말은 부드럽고 온화해도
마음은 어리석음을 품고 있나니
마땅히 이런 사람들은
입이 음란하고 마음이 어리석은 줄 알아야 한다.
입을 보면 지혜가 있는 것 같아도
마음속은 어둡기가 칠흑과 같고
바깥은 마치 그림 속의 병처럼 좋지만
그 속은 어둡고 텅 빈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입은 탐욕스럽고 마음은 성내며 어리석은 이라고 하는가?
말은 부드러워도 착한 것을 생각하는 일이 적고 성격이 순종적이지 못해서 혹은 악한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하지 않기도 하며,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으므로 그 성격을 알기가 어렵다.
비유하면 마치 달콤한 약에 짜고 쓴 약을 섞으면 맛을 분별할 수 없는 것처럼 입은 탐욕스럽고 마음이 성내고 어리석은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이 하는 말은 탐욕이 들어있고
마음은 온갖 성냄과 어리석음을 품어서
마치 제호(醍醐)와 벌꿀에
맵고 쓰고 짠맛을 섞은 것 같다.
어떤 것을 입은 거칠고 마음은 음란한 이라고 하는가?
말이 강(剛)하고 조급하여 남을 중상하므로 대중에게 미움을 받아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공경하는 이도 없다.
비유하면 마치 부모가 자손을 꾸짖고 가르칠 적에는 아무리 입은 강하고 급하다 해도 마음으론 오히려 사랑하며, 또한 비유하면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이 사람의 종기를 따고 씻을 때는 몹시 아프긴 해도 오래 가면 갈수록 병은 점점 낫고 마음은 기쁜 것처럼 입이 강하고 마음이 음란한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이 하는 말은 조급하고
마음에는 음욕을 품고 있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햇빛이 냉수(冷水)를 비추는 것 같다.
어떤 것을 입은 강하고 마음은 성내는 이라고 하는가?
입으로 하는 말이 추악하고 품고 있는 생각에는 자비하고 착한 것[慈善]이 없어 남에게 이익을 주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쓴 약에 다시 독을 섞었다면 가령 환자가 마신다 하더라도 곧 토해버리고 먹지 못할 것이요, 설령 마신다 할지라도 그 약이 녹을 적에는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처럼, 입이 강하고 조급하며 마음에 성을 내는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이 급하여 가까이 하거나 공경하지 않고
마음이 악하여 온갖 독한 생각 품으며
남을 침해하여 억울하게 하는 것 좋아하나니
이런 무리를 보니 온갖 나쁜 짓을 행하네.
어떤 것을 입이 거칠고 마음이 어리석은 이라고 하는가?
말이 항상 강하고 조급하여 남에게 악을 가하고, 거동과 하는 일을 제 자신이 깨닫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선행은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악함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칼을 뽑은 도둑이 사람에게 위협만 가하고 해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행하는 이는 말이 조급하고 마음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은 강하고 조급하되 마음은 악하지 않고
위협은 곧잘 하지만 사람은 해치지 않나니
마치 칼을 뽑았으나 사용하지는 않는 것처럼
입이 거칠고 마음이 어리석은 이도 그와 같다.
어떤 것을 입이 거칠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이라고 하는가?
입으로 내뱉는 말이 강하고 조급하여 혹 남에게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또한 악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잠깐 착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한 악한 짓을 하지는 않는 것을 말한다.
비유하면 마치 포도대장[捕將]이 도둑을 체포했을 적에 그 부하 포졸들 중에는 말로 위협하여 꾸짖는 포졸도 있고 잘 달래가면서 묻는 포졸도 있으며, 곤장을 치면서 고문하는 포졸도 있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거나 또는 고문과 꾸짖음을 가하지 않는 포졸도 있는 이런 경우와 같다.
이것을 입이 추하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말이 강하고 조급하며
마음에 3독을 품었으니
생각과 성격이 이와 같은 이는
착하지도 않지만 악하지도 않다.
행적이 이와 같은 이는
중간 정도의 사람이라고 하나니
수고스럽게 노력하는 것과 편안함
이 두 가지를 뒤섞어 갖추고 있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탐욕스런 이라고 하는가?
분별하는 지혜가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해도 도무지 아는 것이 없어 착한지 악한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며, 이치가 쏠리는 바에 대해서는 늘 혼자 속으로 생각하기를 ‘마땅히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까?’라고 하면서 일의 갈래에 이르러서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대로 하여 그 근본 요체를 잃지 않는다.
비유하면 마치 깜깜한 밤에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탐욕스런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이 어리석고 마음은 음란하며
입으로 하는 말이 똑똑하지 못하니
저 용이 구름은 일으킬 수 있어도 우레소리는 내지 못하듯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음란한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은 강한 이라고 하는가?
착함을 베풀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또 악함을 가하지도 못하면서 늘 혼자 마음속으로 ‘어떤 방편을 써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령 기회가 오면 문득 사람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한다.
비유하면 마치 재[灰]로 숯불을 덮어놓아 지나가는 사람이 그 위를 밟으면 곧 발을 데이는 경우처럼, 말이 어리석고 마음엔 성냄이 있는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강하여
부드럽지도 않지만 악한 말도 하지 않는다.
늘 남에게 악을 가할 생각만 하고
착함과 이익을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이 똑똑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악을 감춰 둠이
마치 재로 숯불을 덮어놓아
사람이 밟으면 발을 데이는 경우와 같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어둠을 품은 이라고 하는가?
능히 남에게 착함을 베풀지도 못하고 또한 악함을 가하지도 못하며, 남의 착함과 악함을 생각지도 못하고 또한 더하고 덜한 것도 없다. 왜냐 하면,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꺼진 불은 아무리 재로 덮고 마른 풀 마른 소똥[牛屎]을 가져다가 쌓아놓고 손으로 다지고 발로 밟아도 태울 수도 없고 익힐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니,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어두운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하는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어둠을 품으며
도저히 악한 것을 생각할 수도 없고
또한 착한 것을 생각하지도 못한다.
일을 성취시킬 능력도 없으나
또한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도 없으니
마치 뜨거운 햇빛에 밥을 짓는 것 같아
도저히 익힐 수가 없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이라고 하는가?
입으로 범한 일은 없으나 남을 이익되게 하지도 못하며, 남으로부터 조금만 상처를 입으면 밤낮으로 ‘무슨 방편을 써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까?’ 하고 생각하며, 또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며, 또 마음속으로 ‘남을 손해보게 하거나 이익을 보게 하지 않으리라’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오래 묵어서 때가 잔뜩 낀 병(甁)에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갈라 담아 놓았는데, 그 입구에 뚜껑을 덮으면 속이 보이지 않고 뚜껑을 열면 속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성격은 어긋나고 뒤틀리는 것을 좋아하고
입으로 하는 말은 똑똑하지 못하며
음란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품었고
나쁘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겨 있다.
비유하면 아주 오래된 큰 병에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담은 것 같아
남에게 이익을 주지도 못하고
또한 조금도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사는 이 열아홉 가지 일로 사람의 마음을 관찰한 다음,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저 음란한 모습에 대하여 어떻게 해설하는가?
법(法)을 강론하는 말을 듣고서도 음욕을 많이 익힌 사람은 지옥과 아귀의 세계에 떨어진다. 그런 연후에 그곳을 빠져 나오면 다시 음란한 새[婬鳥]인 앵무새·청작(靑雀)·집비둘기·원앙새·거위·집오리·공작이 되며, 또 야인(野人)이나 원숭이가 될 것이다.
설령 돌아와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크게 음란하고 방탕하며 경솔하고 사나울 것이다.
어진 사람들은 마땅히 이것을 관찰하여 아름다운 사람의 몸은 다 죄와 번뇌와 악로(惡露)의 부정함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관하여 알고서 음욕을 익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색(色)에 대한 음란과 교만을 많이 익히는 것은
저절로 불에 타기를 촉구하는 짓이다.
인간에 있거나 또는 축생에 있거나
지옥과 아귀 가운데 있게 되리라.
그런 곳에 태어나도 도리어 자신을 해롭게 해
번뇌의 불에 저절로 타고 말리라.
이곳에서 해탈하게 하기 위하여
행적을 따라 일부러 이것을 말하노라.
가령 너무 성냄이 많은 이는 그 행적을 따라 그런 사람을 위하여 설법해준다.
많이 성냄을 범하면 지옥과 아귀의 길에 떨어지고, 그러한 악한 곳으로부터 나오더라도 마땅히 독한 짐승이 되든지, 또는 귀신·도깨비·나찰·반족(反足)·여귀(女鬼)·변소 귀신의 무리가 될 것이다.
또한 사자·호랑이·이리·뱀·독사나 독한 벌레·모기·등애·거미·벌과 100개의 발이 달린 벌레의 무리가 될 것이다.
설령 그런 곳으로부터 세간으로 환생한다 할지라도, 얼굴이 추하고 더러워서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지 못하며, 항상 수명이 짧거나 병이 많고 신체가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재앙과 죄가 분명한 것이니, 늘 자비로운 마음을 받들어 행하여 그 성냄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이 너무 성냄을 품으면
대중들한테 온통 미움을 받는다.
거기에 걸려 나쁜 세계에 떨어지며
병이 많아 편안하지 못하다.
귀신 세계나 독한 짐승 세계에 떨어지고
인간으로 태어나도 천한 이가 되나니
능히 자비한 마음을 행하여
곧 성냄의 어둠을 제거하라.
가령 어리석음이 너무 많은 이는 그를 위하여 이러한 법을 설해주어야 한다.
몽매한 어리석음이 왕성하고 많으면 죽어서 지옥과 아귀의 길에 떨어지고, 만일 축생으로 태어나게 되더라도 어리석은 짐승이 되나니, 즉 소·양·여우·개·노새·나귀·돼지 등의 종류이다.
가령 사람의 세계에 환생하더라도 성격이 결단력이 있거나 분명하지 못하고 안목이 적으며, 모든 감관[根]이 미약하고, 늘 질병이 많으며 6정(情)이 완전치 못하고, 오랑캐나 야인(野人)들 가운데 태어나서 어둠으로부터 어둠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12인연을 관(觀)하는 법을 말하여 어리석음의 뿌리를 뽑게 해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음에 너무 많이 훈습된 이는
모든 감관이 온전하지 못하고
소나 양 따위로 태어났다가
다음 지옥에 떨어진다.
가령 닦고 배우는 사람이
이 악도에서 제도되길 원하고
이 어둠에서 해탈하길 바란다면
마땅히 12인연에 대한 법을 관하라.
가령 음란함과 성냄이 너무 많은 이는 그 사람을 위하여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행하게 해야 하나니, 그 부정함을 관하게 하고, 또 자비한 마음을 받들어 행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음란함과 어리석음이 너무 왕성한 이는 그를 위하여 두 가지 일을 강설해 주어야 하나니, 일체는 공(空)한 것이고 무(無)라는 진리와 자비한 마음에 대해서이다.
가령 성냄과 어리석음이 너무 많으면 그를 위하여 두 가지 일을 말해주어야 하나니, 자비한 마음으로 인도하는 것과, 어리석음의 근본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비심을 행하고 부정을 관하게 하여
음란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색욕에 흐려 어리석어진 이들과
12인연에 밝지 못한 이를 가르친다.
만일 사람이 성냄이 너무 왕성하거나
너무 어리석은 이 번뇌 없애려면
마땅히 그를 위해 자비심과
12인연의 근본에 대해 강설해 준다네.
만일 입이 음란하고 마음에 탐욕이 있는 이가 있으면 그를 위하여 일체는 다 무상(無常)이라는 이치와 공적(空寂)의 이치를 말하여 주고, 마음에 성냄이 있고 말로 성내는 이가 있으면 그들을 위하여 자인(慈仁)에 대하여 말해 주고,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어두운 이가 있으면 그를 위하여 12인연에 대한 이치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 밖에도 네 종류의 온갖 병폐가 갖추어져 있나니, 첫째는 말은 음란하고 마음에는 3독을 품는 것이요, 둘째는 말로 성내고 마음에는 음란함·성냄·어리석음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며, 셋째는 말이 어리석고 마음속에는 3독을 품고 있는 것이요, 넷째는 사람이 온통 세 가지 번뇌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계신 법사께서 마땅히 이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교화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고요히 인연의 근본을 관찰하게 하셨다.
왜냐 하면 이런 무리들은 번뇌가 많아 모든 죄와 재앙이 두둑하게 쌓여 두터워지고 스스로 거기에 얽매이기 때문이니, 비록 현재에는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한다 해도 마땅히 그에게 경을 독송하라고 가르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권유해야 한다.
이를 반연하여 그 때문에 오로지 외우는 데 힘써서 번뇌가 점점 얇아진다면 비록 도는 얻지 못할지라도 하늘에는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행동에 있어 음란을 범하고
마음엔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면
마땅히 경을 독송하라고 가르치고
또한 복을 지으라고 권유해야 한다.
아무리 번뇌가 왕성하게 일어날지라도
이것을 반연하여 죄와 번뇌를 제거하면
이 방편을 원인으로 하여
그런 연후에 하늘에 나게 되리.
비유하면 사람이 공원에 나무를 가꾸려면, 땅이 높은 곳은 낮추고 언덕은 편편하게 만든 다음, 때를 맞추어 물을 주고 가시덤불과 잡초와 갈대 같은 것들을 다 뽑아버리며, 잘못 나오고 굽은 나무들과 쓰지 못할 곁가지를 모두베어 울 밖에 버리고 곧고 좋은 나무들로 하여금 걸림 없이 뿌리가 깊이 내리고 잎이 무성하게 해야 하며, 낱낱이 보호하여 꺾어지거나 상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무가 점점 자라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해질 것이다.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음란함·성냄·어리석음과 탐욕의 생각[欲想] 따위의 모든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는 성숙해져서 도를 얻게 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무가 굽고 비뚤어진
잘못 나오고 곧게 자라지 않은 것과
가시덤불과 모든 장애가 되는 것들을
죄다 없애어 곧게 자랄 수 있게 하듯이
갖가지 방편을 써서
닦고 다스려야 곧 이루나니
수행하여 법 나무를 가꾸듯
경을 받드는 것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모든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없애고
스승의 갖가지 가르침을 받아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없애되
저 정원사가 나무를 가꾸듯 하라.
법사께서 경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네 가지 일로 관찰하셨나니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널리 배워서 도에 이르는 것이요, 둘째는 도를 생각하지만 그 학문에 대해서는 논의가 능하지 못한 것이며, 셋째는 널리 배웠어도 도덕(道德)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요, 넷째는 아는 것도 없고 도(道)도 없는 것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나니, 첫째는 처음부터 그 법사의 가르침을 따라 이치를 깨닫고 법을 이해하는 것이요, 둘째는 비록 그 이치는 이해했어도 미묘한 경지에 미치지는 못한 것이며, 셋째는 쉬운 법은 분별하지만 능히 깊은 이치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요, 넷째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또한 분명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을 배우는 것은 익힌 것이 황당하고 괴로운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헤엄을 칠 줄 모르는 두 사람이 깊은 물에 빠졌는데, 서로 건지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다 빠져죽고 마는 것과 같고, 또 장님이 장님을 이끌고 길을 가려고 하나 가는 도중에 미혹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또한 밝은 지혜도 없는 법인데, 그런 사람이 법을 설하려고 하거나 중생을 구원하려고 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널리 배운 사람이
수없이 많은 선(善)으로
이미 6도무극(度無極 : 波羅蜜)을 얻은 것과 같이
만일 사람이 큰 바다를 뛰어 넘는다면
만일 사람이 청정한 진리에 대해
아무런 지혜가 없으면
다만 그 요점만을 취할 뿐
능히 깊은 이치는 얻지 못한다.
만일 도에 들기를 익히는 이가
따르고 믿어 율(律)을 어기지 않고
가르침을 잘 공경하여 받든다면
이렇듯 깨우치는 바 있으리.
비유컨대 존자(尊者)를 가까이하면
틀림없이 큰 이익을 얻는 것처럼
수행도(修行道)를 배우는 사람은
구하는 이치에 반드시 전진함이 있으리.
그러나 단지 그 이치만 이해할 뿐
미묘함을 터득하지 못하면
사람이 밥 먹을 적에 국만 있고
밥은 없는 경우와 같다.
스승으로부터 이치만 듣고
이같이 미묘함을 깨닫지 못하면
능히 큰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르고 참된 지혜에 이르지 못하리라.
가령 도에 들지 못하고
분별하여 해설하지 못한다 해도
곧 지혜에 대하여 이해하면
이치에 어두워 분명히 깨닫지도 못하리.
마치 장님이 장님을 안내하여
목적지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이치에 어둡고 지혜가 없는 것도
비유하면 또한 그러하다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세 가지 계품을 헤아려야 할 것이니, 첫째는 혹 몸은 도를 행하려고 하여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혹 마음은 도를 행하려고 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도를 닦아 몸과 마음이 함께 행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몸은 도를 행하려 하여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가령 수행하는 이가 가부[跏趺]를 틀고 앉아 몸이 바르고 마음이 단정하기가 마치 기둥이나 나무와 같아 아예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하려고 애써도 이런 모양[相]이 나타나면, 속마음이 움직여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닿임[細滑 : 觸]에 대한 생각을 걷잡지 못하여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못하고 두루 갈구하다가 그 마음이 방일하여 자재(自在)를 얻지 못함이, 비유하면 마치 죽은 시체를 묘지에 버려 두면 호랑이·이리·새·짐승·개·담비 떼들이 다투어 먹어치우듯이, 몸은 안정되었지만 마음이 어수선한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도덕의 자리를 수행하는 이가 몸은 안정되었어도 마음은 어수선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부를 틀고 단정히 앉아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으나
그 마음속이 어수선하고 혼미함이
못에 빠진 코끼리 심정 같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이는
몸은 안정되었어도 마음은 산란하여
비유하면 나무에 헛꽃이
열매를 못 맺고 떨어지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을 도지(道地)를 수행하는 이가 마음은 도에 있어도 몸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가?
몸은 단정히 앉아 있지 못하면서 4의지(意止)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니, 이 때에는 곧 마음은 안정되었으나 몸은 불안하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심성(心性)이 저절로 조화되어
4의지에 머물러 다른 생각 없으면
이 때를 곧 4의지라고 말하나니
몸은 비록 안정되지 못했어도 마음은 산란하지 않다.
어떤 것을 도지를 수행하는 이가 몸과 마음이 다 안정되었다고 하는가?
앉은 몸의 자세가 단정하고 마음이 방탕하지 않으며, 몸 안의 감관[內根]이 모두 고요해져서, 밖으로 치달려 모든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 때에 몸과 마음이 단정하여 전혀 움직이지 않고,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똑같이 안정된 줄을 알게 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몸과 마음이 다 안정되어
안과 밖으로 방일하지 않고
고요히 가부를 틀고 앉되
쓰러뜨리기 어려운 기둥처럼 하라.
생사의 진리 보기를
물이 언덕의 나무를 떠내려 보내듯 하여
몸과 마음이 서로 호응해야
빨리 도를 이루어 과위를 얻으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저절로 조복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