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동자경(善思童子經) 02. 하권
그때 세존께서는 이차(離車) 선사 동자에게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사 동자야, 이와 같은 보살행에는 허망한 행은 없다. 선사 동자야, 이와 같은 보살행은 곧 가엾게 여기는 행이다. 선사 동자야, 이러한 보살행은 허물과 근심[過患]이 없는 행이니, 능히 모든 근심을 끊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지극히 깊고 미묘하며 모양이 없는 행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진실하여 능히 모든 욕상(欲相)을 여읠 수 있다. 선사 동자야, 이것은 욕심이 없는 행이니, 사랑과 미움이 없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마음의 행이니, 그 마음의 궁극에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크게 자비로운 행이니, 모든 법에 대하여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큰 보시의 행이니, 보시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허망하고 거짓되지 않은 행이니, 모든 후신(後身)의 과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뇌인(惱忍)이 없는 행이니, 다툼이 없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서원(誓願)을 일으키는 행이니, 게으름을 버리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곧 삼매(三昧)의 행이니, 적정(寂靜)하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곧 지혜의 행이니 모든 법에 대하여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곧 두려움이 없는 수행이니, 마음에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곧 걸림이 없는 수행이니, 여래의 모든 지혜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곧 이익을 늘리는 수행이니, 지혜의 문으로 들어가되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사 동자야, 이 보살행은 시방세계를 관(觀)하는 수행이니, 염착(染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선사 동자를 위해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의혹과 행(行)이 없다는 것은
모든 보살을 위하여 설한 것으로
의혹과 모든 행
이 두 가지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보살을 위하여
행이 있으나 행하는 곳이 없음을 설하리니
만일 이 행하는 곳을 안다면
저들에게 다툼이 없으리라.
모든 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보살을 위해서 설한 것으로
어떤 얻음이 없는 그곳의
행이 가장 높구나.
나는 이렇게 행해야 할 것을 행하는데
저들은 뒤바뀐 행을 한다네.
뒤바뀐 행에 이미 머물렀으니
저들이 두려워할 곳이 없어라.
이를 비록 다투는 행이라 하지만
저 다툼이란 얻을 수가 없어라.
만일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저 행이 최상승(最上乘)이어라.
이 승(乘)에 놀랄 것 없어라.
불승(佛乘)이 가장 높으니
놀람과 놀라지 않는
모든 법이 거짓 이름[假名]이라네.
모든 행처(行處)는 얻을 수가 없다고
비록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그 행이 가장 높다네.
이 행은 깊고 깊은 행이니
모든 법을 가엾게 여긴다네.
가엾게 여김과 깊고 깊은 행
이것은 모두 분별에서 나와라.
깊고 깊은 행과 모든 행들이
이곳에는 두 가지가 모두 없다네.
이런 경계를 만일 안다면
그는 법에서 없어지지 않으리.
모든 법은 물들 수 없으니
법이 아닌 것도 마찬가지라네.
이것이 모든 법의 본성이니
물들 곳이 없다고 말해야 하리.
갇힘도 없고 단단함도 없고
이것은 그저 드러날[現] 뿐이어라.
이름조차 없어진
이런 말이 가장 높다네.
사랑[愛]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기엔 아무런 공포도 없어라.
아무런 사물[物]도 없기 때문에
거기엔 경쟁도 생기지 않는다네.
이것이 모든 중생의 행이니
이곳엔 참다움[眞]조차 없어라.
만일 이것을 아는 자가 있다면
그는 훌륭히 설하고 행하리라.
이곳에 아무런 중생이 없기에
그래서 내가 중생이라 말한다네.
중생과 법은 같은 것이니
이 길이 그 중에 가장 높아라.
마음과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끝끝내 얻지 못하리라.
이것을 가장 자비롭다 하니
내가 앞에서 말한 큰 자비라네.
이 세상의 큰 시주(施主)를
또한 큰 중생이라고 말한다네.
항상 기꺼이 보시를 행하기에
그래서 이름을 큰 시주라 한다네.
법도 증득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 끝이 있다고 하겠는가.
지혜가 큰 보살들이기에
그래서 시주라고 부른다네.
부처도 증득할 수 없으니
법 또한 생각할 수 없어라.
이 계(戒)를 깨뜨리거나 범하지 않으면
모든 법에도 치우치는 곳이 없으리.
저들은 부사의(不思議)하니
부처님의 계도 부사의하다네.
계의 실천을 분별하지 않으니
보살들을 위해서 설한다네.
중생의 무리에 대해 참고 견디면
중생이란 결국에 없게 될지니
이것이 곧 가장 좋은 참음이라고
법의 수행에서 내가 말했다네.
마음이란 증득할 수 없기에
거기에는 다툼이 일 곳이 없어라.
이것이 곧 최상의 참음이니
모든 법이란 증득할 수 없어라.
보살은 게으름이 없기에
남에게서 훼방이나 모욕을 당하지 않네.
이것을 최상의 정진(精進)이라 하니
이름이란 버림도 취함도 아니어라.
몸과 마음은 선하고 질박[質直]하기에
이런 수행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네.
이것이 가장 높은 정진인 것이니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설한다네.
보살이 능히 게을러서
모든 행(行)들을 일으키지 않고
버리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다면
최상의 정진에 머물게 되리라.
마음의 경계는 증득할 수 없으니
바깥에 있는 듯 안에 있는 듯
그래서 최상의 정심(定心)이라 하지만
그 마음이란 있는 곳이 없어라.
반연(攀緣)과 심행(心行)이
진여 속에는 있지 않다네.
저 삼매를 생각하지 않고
이러한 선정[定]을 나타내 보이네.
내가 설하는 이 삼매가
자재한 수가타(修伽陀)라네.
능히 이 행을 수행하는 자를
정(定)을 얻었다고 내가 말하리라.
지혜로써 능히 알 수 없는 것이
진여의 법에 그것이 있다네.
진여와 지혜
이 두 가지 경계는 있는 것이 아니어라.
이 법은 얻을 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식(識)의 경계라네.
법은 식으로는 알 수 없으며
진실의 본체는 적정(寂靜)이어라.
이런 것들을 능히 안다면
그 이름을 진념(眞念)이라 한다네.
보살이 행하는 진여의 행은
세간에서는 얻어서 행할 수 없다네.
모든 중생들보다 뛰어나기에
중생들을 위해서 설법을 한다네.
저들에게 중생의 상(相)이 없는데
하물며 무리[徒衆]가 있겠는가.
중생은 허깨비[幻化]와 같은 것이니
허깨비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네.
능히 이처럼 설하는 자는
그에게 두려움이란 없어라.
나의 몸이나 남의 몸,
이런 것들은 있는 것이 아니라네.
이런 지혜를 능히 가진 자는
놀라움이나 두려움이 없어라.
자신의 안이든 바깥이든
모양이 있는 것은 결국에는 없다네.
마음에 겁나고 약한 것이 없으면
곧 모든 세상을 이기리라.
모든 법은 걸림이 없으니
마치 허공을 가는 것과 같아라.
저 허공을 가는 것과 같음은
법과 진여도 역시 마찬가지네.
만일 능히 이것을 안다면
두려움이 없는 보살이어라.
모든 법을 잘 이해하니
그는 중생의 길을 알도다.
중생이 없다는 걸 이미 안다면
모든 법도 그와 같아라.
경계의 지혜를 교묘히 알아도
그러한 경계는 얻을 수 없다네.
만약 이러한 법문(法門)에 든다면
이 길이 가장 뛰어난 길이라네.
이 길을 능히 따르기만 한다면
중생의 길을 곧 알리라.
경계와 중생
이 두 가지는 없다네.
모든 법문을 알고 싶다면
이러한 뛰어난 지혜[勝智]를 알아야 하리.
안이거나 밖이거나 간에
지혜는 모이는 곳이 없어라.
모든 법 속에 걸림이 없으니
그래서 진실이라 한다네.
모든 법은 부사의하니
그래서 불법(佛法)이라 한다네.
그것은 있는 곳이 없으니
그러한 곳 또한 없어라.
만일 능히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 세상에 걸릴 것이 없어라.
지혜가 이미 걸림이 없으니
그래서 불지(佛智)라 한다네.
모든 법은 부사의하니
그러한 것들에게는 참되고 바름[眞正]이 없어라.
모든 법에 이미 체(體)가 없다면
이것은 불법을 깨달은 것이라네.
불법과 모든 부처님
이 두 가지는 세상에 없어라.
보리란 본래 없는 것이기에
그 이름을 불도(佛道)라 한다네.
이 대승(大乘)을 올라탄 자는
법의 안락한 곳에 이르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니
인간의 세상에선 얻을 수 없어라.
이 세상의 모든 곳에 있는
중생들 중에서
뛰어난 지혜로 행하는
저 보살이 가장 훌륭하여라.
이러한 법들을 구할 수가 있고
불법은 부사의하니
이러한 법들을 구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곧 보리에 가까우리라.
모든 법과 보리
이 두 가지는 결국에는 없는 것이니
이러한 행을 능히 짓는다면
그것이 불법에 가까우리라.
이러한 행을 행하는 자는
세간에 물들지 않으리.
마음에 이미 물듦이 없으니
그것을 없애면 보리에 가까우리라.
세존께서 이와 같이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마친 다음, 다시 이차 선사 동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시 또 선사야, 내가 지금 아주 무장이 잘된 보살마하살에 대해서 말하였다. 능히 이처럼 깊고 깊은 경전을 잘 설하는 자가 가장 미묘하고 은밀하게 훌륭한 설법을 할 때에 이것을 들으면, 이를 듣는 자는 능히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후회하지 않고, 가라앉지[沒] 않는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 등은 곧 보리도량에 머물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서 곧장 무애(無礙)를 증득하고 무위해탈법문(無爲解脫法門)에 머문다. 그리고 또 능히 무득(無得)의 행에 잘 머물러서 능히 모든 시방세계를 관찰하며, 능히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증득하며, 모든 부처님의 18불공법(不共法)을 얻으며, 위가 없는 최대의 관정(灌頂)을 얻는다. 이와 같이 깊고 깊어서 미묘한 법을 설할 때에, 이러한 법을 능히 믿어 행하고 사유할 수 있는 자는 모든 부처님들이 그들 보살을 살펴보고 모든 부처님들이 그들을 보호하고 지킨다. 그리고 만일 보살이 이러한 수행을 능히 믿고 행하거나 또는 이러한 수행을 믿지
않을 경우에도 모든 부처님들은 이를 잘 안다. 만일 능히 이러한 법문에 들어오는 자가 있다면 모든 부처님들은 이미 이것을 아실 것이고, 만일 능히 이러한 법문을 믿고 행한다면 나는 반드시 그들을 위하여 스승이 되어줄 것이니, 그들은 곧장 나를 따라서 출가(出家)하게 될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선사를 위하여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저들이 도량(道場)을 증득하니
도량이란 곧 공(空)이라네.
만일 보리를 취하지 않는다면
저들이 곧 지혜에 머물리라.
모든 법은 걸림이 없으니
결국엔 얻을 수가 없어라.
법을 이미 얻을 수가 없으니
해탈 또한 마찬가지라네.
모든 부처님의 지혜로 행하는 자는
모든 법이 있는 곳에서
모든 법에 대하여 행하라고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네.
걸림이 있거나 걸림이 없다고
이렇게 어리석게 생각하지만
부처님과 큰 보살은
이러한 분별을 하지 않는다네.
비록 세간의 법을 본다고 해도
세간은 결국 공(空)이라네.
지혜는 세간을 볼 수 있지만
저 지혜 또한 있는 것이 아니어라.
모든 부처님과 중생들은
같은 것이어서 분별이 없다네.
이미 분별이 없는 그 자리가
가장 뛰어난 자비라네.
법계는 그 본성이 광대하니
중생계도 역시 그러하다네.
큰 지혜와 여러 보살들은
이와 같이 사유하지 않는다네.
비록 자비심을 일으키려 하지만
본래 자비에는 체가 없다네.
자비의 체와 본성이 없으니
중생들의 경계가 아니네.
다섯 손가락으로 허공을 재는 것처럼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라.
모든 세간도 역시 그러하니
이런 자비가 가장 뛰어나다네.
모든 법에 가장 높은 것을
일러 불법(佛法)이라 한다네.
그런 것들은 얻을 데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진실의 체(體)라네.
세존은 크게 자비하시니
형상이나 빛깔이 있지 않아라.
이처럼 색(色)과 법이 없으니
이러한 행을 세간이라 부른다네.
허공은 그 끝이 없으니
그 경계는 잡을 수가 없어라.
모든 부처님은 이와 같은 법이시니
지혜로운 자는 이를 따라 행하리.
이것은 곧 위없는 지혜이니
그런 지혜란 얻을 수 없어라.
지혜를 이미 얻을 수가 없으니
거기에는 실로 있는 것이 없어라.
차안(此岸)이나 또는 피안(彼岸)이
사유하든 보든
저들에게는 깊고 깊은 행이 없으니
이를 일러 상(相)이라고 한다네.
만약 이러한 법을 안다면
모든 것이 평등하리라.
나[我]와 법과 행(行) 중에서
거짓 앎을 구하지 않으리.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가져서
두 가지로 이를 나누어 본다면
이것을 일러 있다 하는 것이니
그들은 선지식(善知識)이 아니어라.
이 법은 생긴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이 법은 멸한다고 하기도 하네.
선사여, 이런 비구는
나의 제자가 아니어라.
고(苦)의 단멸을 증득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법을 설하는 자는
나의 법을 설한 것이 아니어라.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닌데
법이 모인다고 어떻게 말하리.
생기지도 않은 곳을 멸한다고 하니
나의 법과는 거리가 멀도다.
이와 같이 적정(寂靜)의 법에는
분별할 곳조차 없으며
모든 법은 본래 없는 것이니
멸(滅)하는 곳 또한 없어라.
만약 다투는 마음이 있다면
적멸이라고 어찌 부르리.
선사여, 그대는 이것을 알아야 하리.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도(道)니 법이니 설하는 것은
나타내 보임으로써 있다고 하는 것.
본래 나타내 보임으로 있는 것이니
그것은 거짓으로 나타난 길이라네.
내가 말하는 보살들이
미래 세상의 대지(大智)라네.
능히 이와 같은 행을 지으면
그는 이 경계에 의지한다네.
이런 행을 행하는 자에게
부처님들이 깊고 깊은 법을 설하네.
저들이 이미 나를 공양하니
모든 함식(含識:有情)을 이롭게 하리.
이 경전을 능히 지니면
큰 지혜의 보살이라네.
미래의 세상에서
모든 법을 주지(住持)하기 때문이라네.
내가 설한 모든 법들에
항상 분별이 없이 머물면
이것이 곧 보리이니
이것을 떠나고는 다른 길이 없어라.
그때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여 마치시자, 이차 선사 동자는 모든 법 중에서 곧 생함이 없는 순인[無生順忍]을 증득하였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생함이 없는 순인을 증득하자, 세상의 모든 걱정과 기쁨을 멀리 여의고 커다란 환락을 얻어서 곧장 허공으로 날아오르니, 땅으로부터의 높이가 일곱 다라수(多羅樹)나 되었다.
이를 보고 세존께서는 이내 미소를 지으셨다. 그런데 세존께서 이러한 법에 대해 미소를 짓자, 얼굴에서는 온갖 종류의 갖가지 빛이 발산되었으니,이른바 파랑ㆍ노랑ㆍ빨강ㆍ하양ㆍ분홍ㆍ옥색ㆍ초록ㆍ감색의 파리(頗梨) 빛깔들이었다. 이런 빛깔이 무량무변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고 유정천(有頂天)과 대범천궁(大梵天宮)을 비추었다. 이처럼 비춘 다음 다시 돌아와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을 둘러싸고 세 번을 돈 뒤에 마지막에 부처님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그때 이 대지가 3종(種)과 18상(相)을 구족하며 진동하였으니, 두루 움직이되 모두 고르게 움직였으며, 두루 뛰어오르되 모두 고르게 뛰어올랐으며, 두루 침몰하되 모두 고르게 침몰하였으며, 두루 진동하되 모두 고르게 진동하였으며, 두루 포효하되 모두 고르게 포효하였으며, 두루 깨닫게 하되 모두 고르게 깨닫게 하였다.
그때 상계(上界)에서는 공중에다 비를 내렸는데, 갖가지 고운 전단(旃檀) 가루와 침수향(沈水香) 가루 및 하늘 꽃을 비처럼 내렸으며, 갖가지 하늘의 미묘한 소리들이 저절로 일어났다. 이런 것들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청정하게 장엄하였으며, 마치 북방의 울단월국(鬱單越國)처럼 그와 같이 다름이 없이 화려하게 장엄하였으니, 이 삼천대천세계가 역시 서로 다름이 없었다.
그때 장로 아난(阿難)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고친 다음,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께 합장한 뒤 말씀드렸다.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어떤 인연으로 미소를 지으시어 빛을 내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인연 없이 광명을 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게송으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니
미소에 광명 내심은 그 이유가 꼭 있을 것이네.
세존이시여, 이익이 되면 설해 주시기를 원하오니,
이와 같은 상서로운 모습에 어떤 인연 있습니까?
공중에서 하늘이 꽃비를 내리는 것은
세존께 공양을 함이니
기뻐서 다들 노래하면서
이 경(經) 설함을 찬탄한다네.
삼천대천의 세계 중에
갖가지 깨끗함으로 장엄되었고
마치 저 울단월국처럼
광명이 시방세계를 비추었네.
마치 과거에 세존께서
그 안에서 수기(授記)하시면
부처님께서 내신 광명이 두루 비추고는
돌아와 부처님의 정수리로 들어가던 것처럼.
세존께서 발하신 광명은
그 광채가 갖가지로다.
부처님 면문(面門)에서 이것이 나왔으니
저희를 위해 그 인연을 설하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장로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선사 동자는
숙생에 두터운 선근(善根)을 심었구나.
장차 미래의 세상이 올 때에
성불하여 양족존(兩足尊)이 되리라.
이처럼 세존께서 게송을 마친 다음,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이 이차 선사 동자는 지금까지의 과거에 억 나유타(那由他)의 아승기겁을 통해 모든 부처님과 여래를 공양하고 공경하였으며, 저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고 받들었다. 또 저들 모든 세존을 공양하되, 의복ㆍ탕약(湯藥)ㆍ방사(房舍)ㆍ이부자리[臥具]의 네 가지가 모두 풍족하게 하였으며, 저들 모든 여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는 그 사리를 공양하였는데, 갖가지 보물을 가지고 탑을 만들었으며, 그 하나하나의 탑들이 모두 각각 높이가 백천 유순(由旬)이었다. 이와 같은 보탑(寶塔)들에 사리를 안치하고 온갖 이름난 향들로 그 탑에 공양하였다. 그리고 다시 모든 종류의 화만(華鬘:꽃장식)ㆍ교식(校飾:각종 꾸미개)ㆍ모든 종류의 보물ㆍ모든 종류의 깃발ㆍ갖가지 미묘한 꽃과 전단 가루ㆍ침수향 가루 등을 그 위에 뿌렸다. 그리고 다시 온갖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소리들로 이에 공양하였다. 이처럼 저들 모든 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多陀阿伽度阿羅訶三藐三佛陀)에 대한 공양을 마치고 나서, 그 최후의 몸을 버리고 부처가 되어 그 이름을 정월(淨月) 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라 할 것이니, 이 세상에 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으로 출현할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아난과 모든 대중들을 위해 그 뜻을 거듭 펴시고자 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시방세계를 가득 채울 만한
온갖 미묘하고 진기한 보물들을
부처님 세존께 보시하고,
모든 보살들에게도 했다네.
이러한 법상(法相)을 들으니
마치 대성인의 베푸심 같아라.
보시한 재물과 공덕에 비기면
이 복이 저쪽보다 많아라.
그때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이처럼 부처님 세존께서 공덕을 잘 가르쳐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 곧장 부처님께 게송으로 거듭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이 경을 설하시니
깊고 깊어 가장 미묘하구나.
그러나 그 이름[名字]을 말하지 않으면
저희들이 어떻게 지니리까?
이 경전이 밝힌 것은
모든 법의 평등함이네.
얻고 못 얻음이 있지 않으니
희유해라, 부처님의 좋으신 말씀이여.
유루(有漏) 및 유위(有爲)와
무루(無漏)와 무위법(無爲法)을
이 경은 분별하지 않으니
세존께서 방편으로 설하시네.
세간이나 출세간(出世間)
세제(世諦)나 제일의(第一義)나
이 두 가지는 다름이 없다고
이 경에서 이와 같이 설하시네.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행은
중생을 위한 방편이라네.
참된 이치란 본래 모두 없으니
세존께서 금구(金口)로써 이를 설하시네.
모든 부처님이나 모든 법
이런 것들은 모두 없는 것이라네.
능승(能乘)과 소승(所乘)이 모두 공(空)이라니
드물어라, 부처님의 좋은 말씀이여.
시방세계의 모든 세존께서
설하신 모든 법상(法相)은
아무런 진체(眞體)도 없다네.
이 경에서 이와 같은 행을 하시네.
훌륭하셔라, 대성인이신 세존이시여.
훌륭하셔라, 가장 뛰어난 지혜여.
이 경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우리들을 해탈하게 하는가?
지혜란 것은 말일 뿐이라네.
오늘에야 모든 의문이 풀려라.
8공덕(功德)의 상(相)이 원만하다는
음성으로 저들에게 알리는구나.
이 경을 알려고 하는 자는
이름하여 관정왕(灌頂王)이라 하네.
비록 관정왕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런 것도 본래는 없어라.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는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다네.
그 사람은 천인(天人)과 세간에서
응당 보탑(寶塔)처럼 위하리라.
내가 이 경을 설하는 곳에
듣는 무리가 8천이로구나.
여러 선근을 많이 심어
무상도(無上道)의 뜻을 발하리라.
저들은 앞으로 오는 세상에
결정코 무상존(無上尊)이 되리라.
이 미묘한 경을 들으면
그 복덕을 사의(思議)하기 어려워라.
안온한 곳에 머물러서
깊고 깊은 선근 중에 있어라.
저들이 이같이 할 수 있게 되면
이 경전을 받아 지녀라.
마음을 두어 전념해 독송(讀誦)하면
이것이 바로 관정왕이라네.
저들 사람의 무리들은
모든 법에 의혹이 없으리.
여기선 초인(初忍)을 말하지 않으니
제2의 인 또한 없어라.
모든 법상(法相)이 이미 공인데
어디에 설할 것이 있으랴.
누구든 이것을 받아 지닌다면
이는 관정왕 경전이라네.
저들이 이와 같이 한다면
모든 법이 변재(辯才)에 오르리라.
지혜 있는 어떤 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닌다면
신속히 여자의 더러움을 버리고
죄업(罪業)과 부정함을 버리리라.
하나의 지혜[智]가 모든 앎[知]이며
모든 지혜가 하나의 앎이라.
이것이 모든 법을 지니는 것이니
이 경에서 갖추어 설한다네.
이 경에서 설한 법이
들어가면 허공과 같아라.
나는 말하네, 이 들어가는 길이
모든 법의 광명을 짓는다고.
갖가지 이름을 알게 되리니
곳곳에 많은 종류가 있어라.
다시 비록 법에 대해 말하지만
그러한 법이란 얻을 수가 없어라.
체(體)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그 상(相)은 궁극적으로는 없는 것이니
이러한 법문들을 알게 되면
법을 받아서 지닌다고 말한다네.
법들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거기에는 유(有)도 무(無)도 없어라.
이것이 법의 체상(體相)이니
다라니(陀羅尼)라고 부른다네.
누가 만일 끝이 없도록
모든 광명을 비추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경전을 지녀
관정왕을 잘 설해야 하리.
법계의 끝을 구하고자 한다면
이 속에서 벌써 다 말했다네.
그 경계란 얻을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름이 다라니라네.
모든 법은 깊고 깊어서
법이란 얻을 곳이 없어라.
얻을 법이 없으니
거기엔 상(常)도 무(無)도 없어라.
만일 변재를 성취한다면
지혜가 심원하여 걸림이 없으리니
이러한 뜻을 알 수만 있다면
이 경에 집착함이 없으리라.
만일 아뇩달(阿耨達)용왕이
공중에서 비를 내린다고 할 때
그는 마음의 생각[想]이 없을 것이니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한다네.
갖가지로 변재 있는 말씀을
만일 널리 베풀고자 하여
이 경에 의지해 배운다면
모든 법에 의탁함이 없으리라.
저 법이란 오는 곳이 없으니
이처럼 경에서 잘 말했다네.
모든 법은 생겨남[生]이 없다고
경에서 이처럼 말했어라.
마치 태양이 밝게 비추는 것처럼
그 광명이란 오는 곳이 없다네.
이 경은 이와 같이 밝아서
법의 광채가 늘 충만해라.
오는 세상의 선남자(善男子)가
끝없는 변재를 원한다면
마땅히 관정왕을 배워
이 법의 근본을 잘 말하리라.
걸림 없는 변재를 속히 얻으니
깊고 깊어서 사의(思議)할 수 없다네.
그런데 만약 관정왕을 배운다면
세세생생 많은 이익을 지으리라.
이 법을 만일 닦지 않으면
이 위가 없는 저 관정왕을
저들이 받아 지닐 수 없음은
비유할 수조차 없어라.
저들 4부 대중은
나의 법의 행과는 거리가 멀어라.
이런 이치를 풀지 못하는 자는
이치라고 할 이치가 없어라.
4부 대중들이 만약
이런 행을 능히 행할 때엔
위없는 모든 법에서
곧장 세간의 눈[眼]이 되리라.
마치 도리천의 궁전처럼
높고 크게 드러나네.
이 경전 또한 그러하여
세상에서 최고 중의 최고라네.
수미산 꼭대기에 올라서
세간의 인간을 보아라.
이처럼 이 경에 머물러서
모든 법을 관하고 있네.
사람이 마치 한밤중에
커다란 횃불을 든 듯
그런 사람이 가는 곳은
끝내 어떤 암흑도 없어라.
이 경에 광명이 비치니
모든 법을 분명히 볼 수 있네.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는
거기에 어떤 암흑도 없으리라.
저 태양이 내뿜는 빛살같이
모든 곳이 빠짐없이 밝다네.
이 경전 또한 그러하니
많은 법들을 능히 낼 수 있네.
또 저기 허공의 달이
빛을 발하며 흘러가듯
이 경전도 마찬가지로
시방세계를 두루 비춰라.
이것이 모든 법인(法印)을 도장 찍으니
모든 인(印) 중의 인이로구나.
그래서 이 인을 보내어 머물러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리라.
허공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근본[本]이 없고 머묾[住]도 없어라.
허공이니 인이니 말하는 것
이런 것들이 분별이라네.
이와 같은 부처님과 법을
이 경에서 설하였다네.
모든 부처란 설할 수가 없는 것
모든 법도 역시 이와 같다네.
마치 임금이 죽음이 닥쳐서
진지하게 뒷일을 부탁할 때
여러 대신들에게 명을 내려
재물과 자신의 아들들을 맡기듯이.
이와 같이 성스러운 법신(法身)을
내가 전에 닦아서 얻었도다.
아난이여, 앞으로 오는 세상의
모든 보살에게 부촉(付囑)하노라.
내가 이 경을 설한 것은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이니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그 사람은 복이 매우 많으리.
능히 이 경을 받아서 믿어
관정왕의 설에 의지해야 하리.
저들이 만약 의심을 품는다면
나는 부처로 만들지 않으리라.
누구든 자재한 변재로
모든 법에 걸림이 없으려면
마땅히 이 경을 배워야 하리.
내가 관정(灌頂)을 잘 설했다네.
세간이 모든 법을 설하니
그것이 곧 보리의 도라네.
이것을 알면 게을리 말고
이 경을 읽고 외우라.
저들 바르게 믿는 자들은
세간에 대한 의혹이 없도다.
이 경을 이미 읽어 외웠다면
다시 남을 위해 설해야 하리.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법이니
보살들을 위해 이를 설하라.
이 경을 이미 들었다면
깊고 깊어 사의하기 어려워라.
마땅히 이 경을 설할 때에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미소를 지어 광명을 발하며
잘 설한다고 말하리라.
큰 승당(勝幢)을 높이 세워도
법당(法幢)은 부사의하네.
이 경의 4구게를
대중을 위해 펼쳐 설하라.
많은 방편을 교묘히 행하고
부사의한 법 가운데서
능히 이 경을 지녔으면
다시 남을 위해 이를 설해라.
그 사람이 부처님과 함께 말하니
무상존(無上尊)의 법을 증득하네.
능히 이 경을 지닌 자는
부사의한 관정(灌頂)이라네.
세존께서 이처럼 사리불에게 게송을 설하신 뒤, 다시 장로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만일 어떤 비구와 비구니 또는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내세(來世)에서 믿는 마음을 갖고 이 경전을 듣고 나서 이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그는 마땅히 최대의 복덕을 얻을 것이며, 그 복덕의 모임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그 끝이 없을 것이다. 비유컨대 저 허공의 끝은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는 것과 같다.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장로 아난이여, 이 법본(法本) 중에는 능히 받아서 지닐 수 있는 4구(句)의 게송이 있으니, 스스로 읽고 외우거나 남들을 위해 이를 설한다면 그가 얻게 될 공덕의 선근(善根)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며, 또한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그 끝이 없을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아난과 모든 대중들을 위해 그 뜻을 거듭 펴시고자 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이것을 읽고 외운다면
끝없는 방편의 몸[身]을 얻어
많은 중생에게 이익을 줄 것이니
관정왕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라.
설사 지금 나의 말이
저 허공을 헤아릴 수 있다 해도
이 경에다 비한다면
그 끝을 얻을 수가 없어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이 세간의 무상존(無上尊)이
만일 이 경을 받아 지닌다면
모두들 그를 공양하리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생사를 단멸한 법왕(法王)이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는
이름으로 그를 공양하리라.
시방의 모든 세계가
열 가지 악근(惡根)을 끊어 없애니
이 경전을 들은 사람은
능히 저 성인들을 공양하리라.
나는 미래의 부처이며
과거의 여래라네.
지금 이 시방에서는
위없는 양족존(兩足尊)이라.
능히 사자후를 한다면
저들이 모두 공양하리라.
부처님들이 베풀어 설하신
이 경을 능히 받아 지니네.
재물로만 공양한다면
그는 올바른 지혜의 사람이 아니어라.
이 경을 능히 지닌다면
최고의 공양이 되리.
모든 시방세계에
가득한 7보(寶)를 보시하여
모든 세존께 공양해도
이 경을 지닌 복만 못하리.
만일 이 경전 배우기를
한결같이 관정왕처럼 하면
이것이 모든 여래를 공경함이니
진실이 그 속에서 드러나리.
내가 설한 모든 법은
모든 부처님들도 얻을 수 없어라.
저들이 듣고 놀라지 않으면
이는 곧 세존을 공양함이라.
이 공양이 깊고 깊으니
세간에 아는 자가 없어라.
취함도 아니고 버림도 아니니
이 공양이 가장 뛰어나네.
모든 부처님과 모든 법
모든 것에는 취사(取捨)가 없네.
이 공양이 가장 뛰어나며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찬탄하시네.
옛날 옛적 정광불(定光佛)께
내가 이 법을 공양했었네.
이 공양이 가장 뛰어나니
모든 보살에게 이를 설하네.
그때 저 부처님께
내가 이것을 공양했다네.
부처님께서는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내리셨네.
만일 부처가 되고 싶다면
중생을 위함이 최상이어라.
마땅히 이 길을 성취한다면
그것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네.
내가 이와 같이 공양을 해서
부처의 도리를 지금 이루었도다.
모든 법을 환히 꿰뚫었으니
천인(天人)의 공양을 받을 만하네.
가지고 있는 모든 불법(佛法)이
이 세간에서 더 없이 높다네.
가장 뛰어난 공양에 올랐으니
모든 공양 중에 으뜸이어라.
깨달음의 경계를 증득했으니
지혜는 부사의(不思議)하네.
사자후를 능히 짓는다면
지금 나처럼 두려움 없으리.
사자후를 짓고 나면
모든 법이 자재하게 되리라.
중생의 무리를 해탈시키고
저 무루(無漏)의 열반에 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