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퇴전법륜경(不退轉法輪經) 제1권-2

불퇴전법륜경(不退轉法輪經) 제1권-2

2. 신행품(信行品) ①

그 때에 세존께서 이 게송을 읊으시자,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여래께서는 지금 문수사리를 위해 불퇴전법륜을 굴려 이와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이옵니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이제 불퇴전법륜을 굴리시려 하나이까?”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아난이여, 여래는 진실로 불퇴전법륜을 굴리려 하노라.”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께서는 어떠한 방편으로 신행과 법행을 말씀하시나이까? 이렇듯 8배(輩)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성문ㆍ벽지불,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여래께서는 모두 보살법을 드러내십니다. 무슨 까닭으로 다시 말씀하시기를 하열한 중생들은 5탁세에 태어나서 대승을 알지 못한다 하시나이까? 여래께서는 자재하게 방편을 성취하시와 모든 중생으로서 큰마음을 갖는 이는 적고 못난 생각 갖는 이는 많이 보셨나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그들의 근성(根性)을 아시와 불법을 보여 주시고 방편으로 제도하십니다. 한량없는 선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괴로움을 소멸하고 생사를 다하게 하며, 모든 쇠퇴함과 번민을 여의고 바른 깨달음과 무위의 열반에 머물게 하오며,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게 하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부처의 지견(知見) 및 무수한 부처님께서 아시는 법은 색과 수ㆍ상ㆍ행ㆍ식이 없으며, 물듦과 집착이 없는 줄로 믿는 마음을 내게 하면, 이를 신행(信行)이라 하느니라.

다시 아난이여, 보살마하살이 능히 여래의 일체 법공(法空)을 믿고 그러한 이해를 일으키면 또한 보살의 신행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생각을 내었으나 어찌하여 이 지혜는 도무지 특징[法]이 보이지 않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까닭에 신행이라 부르느니라. 또한 아난이여, 보살마하살이 5욕(欲)에 물들지 않고 신심을 버리지 않으면 이를 보살의 신행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다시 생각하되, ‘부사의(不思議)한 법으로써 중생에게 보시하기를 여여(如如)한 모습과 같이 하리라’ 하나니, 능히 이와 같은 부사의한 법시(法施)를 믿는다면 이를 보살의 신행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환희(歡喜)한 까닭에 능히 자기의 몸을 버리면서도 싫어할 줄을 모르며, 일체 처소에서 질투심을 내지 않고 지은바 보시는 모두 회향하며, 이 같은 회향을 하고 나서는 또한 보리의 생각을 취하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 까닭에 이를 보살의 신행이라 하느니라.

다시 아난이여,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바른 생각으로 부처 님께 향하되 마음에 더러움이 없으며, 또한 더러움 없는 모든 법이 평등하여 중생ㆍ수명ㆍ나[我]ㆍ인간이 없으며, 5음(陰)ㆍ18계(界)ㆍ12입(入)도 없으며, 또한 스스로 수명의 처소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를 신행해탈이라 하느니라.

중생을 교화하여 불법을 믿게 하고 조복하는 마음으로써 보리에 회향하되, 마음의 모습을 보지 않아 능히 6계(界)와 음(陰)ㆍ입(入)이 모두 평등하여 법계와 같은 줄 알며, 분별이 없는 까닭에 법계에는 다른 모습이 없는 줄로 알면 이를 신시(信施)라 하느니라. 일체의 행이 무상하고 일체의 행(行)이 괴롭고 일체의 행이 공하고 일체의 행이 무아(無我)이니, 이러한 법 가운데서 지혜의 힘을 얻어 믿어 베풀고, 성스러운 계[聖戒]와 희론 없는 계[不戱論戒]를 믿어 선정의 힘을 얻고, 적멸의 세계를 믿으면 이를 신시라 하느니라.

보살이 비록 중생을 교화하여 항상 적멸을 믿으나 중생의 상(相)을 취하지 않고 중생을 관찰하되 적멸과 같이하며, 일체 중생은 특징이 없으며 모두가 법계와 동등함을 안다. 이는 견해도 아니고 견해 아닌 것도 아니니, 그것은 왜냐하면, 법계는 곧 일체 중생의 마음의 세계인 때문이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신행이라 하느니라.

또한 아난이여,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이 참됨이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멸함도 없어서 성상(性相)이 본래 공한 것임을 관찰하느니라. 그러므로 일체 중생이 의지할 곳이 없고 일체 중생이 열반의 세계와 동등함을 보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일체 중생은 모두가 공계(空界)에 들어가는 때문이니라.

보살이 능히 이렇게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믿음을 내게 한다면 이를 보살마하살의 신행(信行)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고자 하여 게송을 말씀하셨다.

믿음이 많은 중생은 
무수한 부처님을 뵈옵고 
색상(色相)을 집착하지 않나니 
이것을 신행(信行)이라 한다.


일체 법을 믿고 
공의 모습을 드러내니 
해탈을 성취하면 
이를 신행이라 한다.



항상 바른 법을 믿어 
즐기어 부처를 구하되 
부사의(不思議)한 지혜를 
언제나 구하리.



5욕을 관찰하면 
믿을 것이 없건만 
믿음의 힘 얻으면 
이를 신행이라 하네.



이러한 믿음은 
가장 좋은 것이니 
마땅히 법시(法施)를 닦아 
큰 선인[大仙]께 공양하여라.



부사의한 보시를 하였기에 
믿음의 변재를 얻게 되어서 
못생긴 생각 없게 하나니 
이것을 신행이라 이름하여 

온갖 사랑하던 바와 
그리고 몸까지 버리되 
버렸다는 생각조차 없으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능히 일체를 보시하되 
질투하는 마음 내지 않고 
보리의 생각까지 버리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신심이 청정하여 
모든 물듦이 없고 
또한 수명(壽命)도 없으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보시를 수행할지라도 
과보를 구하지 않고 
깊은 믿음의 힘을 얻으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6입(入)을 버리고도 
과보를 생각하지 않고 
6계를 잘 이해하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이미 스스로를 조복하고 
또한 남을 조복하여 
불법을 믿게 하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이러한 믿음을 얻어 
보리에 회향하고도 
마음에 상이 없으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6계(界)가 모두 
법계와 같음을 알아 
비록 법계를 말하나 
계의 특징 없나니 

모든 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나니 
또한 취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능히 성스러운 계율을 믿어 
모든 희론을 없애 버리고 
선정을 성취한다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모든 중생이 모두 다 함께 
적멸의 모습임을 깊이 믿어 
무상(無相)을 알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중생에 집착하지 않고 
함께 법계로 들어가면 
이 중생의 세계가 
곧 부사의라네.



믿음으로써 믿음을 내면 
이를 믿음이라 하고 
보살이 두려움 없으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중생이란 생각 
결정코 없나니 
체성이 허공과 같아서 
처소도 없고 증득도 없네.



중생과 열반 
이 둘은 모두 공하니 
그에 대해 믿음을 내면 
이를 신행이라 이르리.



보살은 두려움이 없이 
모든 중생을 믿나니 
이름과 모양 취하지 않고 
믿음으로부터 우러나네.



능히 이렇게 믿고 
항상 생각하여 잃지 말지니 
아난아, 기억해 지니어 
현시하고 분별하거라.



이러한 모든 법은 
무량하고 무수하건만 
부처의 깨달은 바를 
보살은 드러내느니라.

“또한 아난이여, 여래ㆍ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는 이와 같이 깊은 뜻과 믿음의 힘을 구족해 널리 말하였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신행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모든 중생의 믿음의 힘이 견고함을 보시고 거듭 게송을 말씀하셨다.

일체의 듣는 이가 
마음이 모두 즐거운 것은 
모든 불자들이 
말씀하신 공덕이라네.



불가사의한 것을 
보살들이 드러내니 
부처님들의 보리를 
안 믿던 이도 믿네.



거짓된 이름[假名]에 물들지 않고 
또한 마음의 범주[心數]도 없으며 
시방에 집착하지 않으면 
가장 높은 믿음이라 이르리.



보살은 분명히 말하여 
항상 믿는 법을 닦되 
공(空)을 취하지 않고 
적멸을 현시하네.



구세주께서 말씀하신 바로 
이렇게 해탈하였나니 
색상(色相)도 그러하여 
말씀과 같이 수행하네.



보살의 분명한 말 
슬기로운 이 능히 믿나니 
부처는 부사의하여 
한량없게 생각하네.



보살의 믿는 바는 
허공같이 끝이 없나니 
부처의 슬기 한량이 없어 
이름이 대장부라.



구함에 집착 없고 
탐욕을 짓지 않으니 
불선(不善)을 만들지 않으며 
즐거운 법까지도 버리네.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능히 법시를 행함이라 하니 
보살의 믿음은 
선서(善逝)의 인(印)이 되네.



법시(法施)는 부사의하여 
음식과 마니 보배와 
황금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노비와 처자와 모든 남녀를 
믿어 베풀어 주며 

나라와 손발과 4지(肢)와 
머리와 눈과 뇌수와 
눈ㆍ귀ㆍ코ㆍ입 들을 버림은 
보살의 뛰어난 믿음이라네.



몸을 버려도 애착하지 않고 
보시를 한다는 생각도 없으니 
나도 본래 법시를 닦아 
부처의 지혜를 구하려 할 제 
몸뚱이를 버려도 아깝지 않고 
일체에 베풀어 환희했노라.



항상 선지식을 위하여 
위태롭고 약한 몸 보시했으니 
모든 중생들 가운데에서 
믿는 마음 언제나 청정했네.



법을 듣고 부처님 믿으면 
이를 보살이라 이르나니 
눈과 귀와 그리고 코와 혀와 
몸뚱이가 무상한 줄 알리라.



견고하지 못함이 거품 같은 줄 
깊이 믿고 이 몸을 던져 버리어 
의지할 곳 없는 중생을 위해 
네 가지 거두는 일[攝] 건립하네.



일체를 자심(慈心)으로 대하여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를 믿고 
삿된 짓 하는 중생 보면 
그를 위해 위없는 마음을 내네.



깊이 보리를 믿어도 
모든 심상(心相)을 취하지 않거늘 

중생은 도를 구하지 않고 
6계에 미혹하네.



일체가 진실이라 하여 
계가 없거늘 계의 특징을 말하고 
유전(流轉)하는 중생을 보니 
우치하여 모든 일에 집착하네.



보살은 나[我] 없음을 믿으며 
모든 행이 무상함도 아나니 
모든 파계한 이를 보고는 
신계(信戒)의 부사의함을 믿네.



계행을 맑히어 선정을 세우고 
보살은 섭심(攝心)에 머무나니 

만일 게으른 자를 보면 
부처의 정진력으로 조복시키니 
모든 삼매 거두어 지니고 
바른 법의 지혜 구하네.



우치한 이는 수명에 집착하건만 
음(陰)을 관찰하면 수명이란 없다네.


중생의 성품이 적멸하나니 
모든 법의 모습도 또한 그러해 
음(陰)에는 가고 옴이 없으나 
선악업은 끊이지 않음을 믿으라.



맑거나 맑지 못한 업으로 인하여 
나고 죽는 흐름을 면치 못하나 
중생은 법계와 같은 것이니 
법계가 그대로 생사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부사의라 하니 
보살은 두려움 없는 믿음과 
뛰어난 믿음으로 부사의가 되어 
부지런히 법다운 슬기 닦으라.



작은 지혜를 위하지 않는 것이 
청정한 믿음의 설법이라 하노니 
모든 중생은 상주하되 
있는 바 없는 줄로 함께 믿으라.



공한 데 집착하지 않고 
일체 법에 머무르지 않으며 
중생의 공한 것이 또 공하면 
열반의 세계와 같아진다.



법은 언제나 무상(無相)으로 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믿게 하여라.


일체 법은 성품이 공한 것이니 
평등하게 중생을 관찰한다면 
3유(有) 가운데 뛰어난 지혜라네.



이처럼 믿고 지닐 수 있음을 
또한 최상의 믿음이라 하고 
두려움 없는 법을 즐김을 
불법 가운데 지혜 있는 이라 하네.


스스로가 믿고는 남도 권하니 
이와 같이 차례차례 가르치면 
여러 가지 공덕은 자라는 법 

청정한 마음에 물듦이 없으면 
이로움을 베푸는 복전(福田)이거니 
조복(調伏)하는 보시를 즐거워함과 
청정한 계행과 인욕(忍辱) 

부지런한 정진과 선정을 닦는 데는 
지혜가 길잡이[開導] 되는 것 
방편으로 맑은 지혜 나타내어 
대중으로 하여금 즐거움 얻게 하라.



목숨이 마친 뒤에 나쁜 갈래 여의니 
보살의 지혜는 가장 뛰어나 
신통으로 모든 중생 교화하면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리라.



광명이 널리 비치는 것 
보살의 묘한 지혜이니 
모습 없는 사자후(師子吼)는 
동서남북에 평등하리라.



4유(維)와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 
모두가 법다운 소리를 내되 
부처님께 맹세하여 의심치 않고 
다른 이도 가르쳐서 그렇게 한다네.


이러한 인연이 있는 까닭에 
한량없는 모습이 나타났나니 
이러한 지혜에 머무른 이를 
오로지 부처만이 알아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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