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05권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05권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이 정인 법문은 청정하고도 밝으며 
본래 저 허공처럼 화합하지 않고 
머묾도 사라짐도 일어남도 없으므로 
이 정인 법문이 바로 부처님의 인(印)이라.



그 법문의 근본인 다라니에 머물러 
오랫동안 자비로운 행을 닦는다면 
세간의 모든 소행을 다 벗어나 
평등한 지혜 속에 기쁨도 성냄도 없으며 

또 평등한 지혜로 법성에 머물 뿐 
어둡거나 어리석은 법에 머물지 않아 
지혜를 얻어도 얻었다는 마음 없어 
그 평등한 지혜 언제나 청정하며 

항상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아 
모든 지혜로써 온 세간을 다 이롭게 하여 
중생들이 그 청정한 몸만 보아도 
다 더러움을 떠나 수승한 부처님의 지혜 얻으며 

위의와 계율이 산란하지 않아 
분별 없는 부처님 지혜에 수순하고 
자신의 허물이 비록 많더라도 
본래 생김이 없으므로 끊을 바도 없으며 

그러므로 보살이 장엄하고 미묘한 모습의 몸을 얻어 
수족이 부드럽고 복덕이 구족하며 
몸이 청정하고 원만하다 하여도 
몸을 믿거나 의지하지 않고 지혜를 일으키며 

빈천에 허덕이는 중생을 볼 때엔 
겸손하고 공경하여 거만하지 않는 한편 
법 알고 계율 지키는 사람을 받들어 
그를 따라 법을 듣고 도를 얻으며 

진실로 자기와 다른 사람 몸의 법성을 알고 
또 모든 중생들 몸의 법성을 알아 
그 청정 수승한 법의 몸을 얻음으로써 
더러움을 떠나 형상 있는 몸을 받지 않으며 

항상 선정 가운데서 선열의 음식을 받으므로 
형상 있는 먹이로써 위광(威光)을 더하지 않으며 
세간에 순응하여 세간의 먹이를 받되 그것으로 몸을 유지하려 하지 않고 
법의 생명을 길러 감로를 이룩하며 

성행(聖行)을 닦아 적정(寂靜)에 들어가므로 
탐심과 진심(瞋心)과 어리석음의 번뇌에서 벗어나고 
은밀히 계율을 보호해 어기지 않으므로 
자신의 몸을 버릴지라도 죄를 짓지 않으며 

신통의 힘으로 억천 불찰에 다니면서 
근기에 따라 그 몸을 나타내어 설법함에 따라 
온 세간이 미묘한 모습 우러러 보고는 
다 그 같이 고귀하고 수승한 몸을 얻으며 

다시 그 몸의 미묘 청정한 광명을 
그지없는 모든 불찰에 비추어 
복된 광명을 중생들에 닿게 함으로써 
중생들이 번뇌의 침해를 다 제거하며 

항상 고통을 받던 저 지옥의 중생도 
광명의 접촉을 말미암아 쾌락을 얻어서 
그 몸·뜻의 쓰라림을 벗어나 균형을 이루고 
이로 말미암아 지옥고를 벗어나리.



그 밖의 모든 몸에 대한 업까지 
그지없는 지혜에 따라 훌륭해지나니 
이것이 이른바 모든 불사를 일으켜 조복시키는 문이며 
보살의 수행하는 몸 업의 청정함이노라.



그리고 보살이 말의 업에 있어서도 
미묘한 말의 음성이 마음을 기쁘게 하므로 
천상·세간 사람들이 다 즐거이 듣고 
모든 설법이 과연 허망하지 않아 
설법 그대로가 곧 감로를 이루며 
설령 그 언어가 과실이 있더라도 
청정한 복된 지혜로써 과실을 끊으므로 
그 언어의 음성을 듣는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다 듣고는 환희심을 내게 하며 

평등하고도 진실한 말을 계속하되 
말에 혼탁함이 없고 모두 여실하며 
다시 말에 따라 성실히 수행하므로 
그 지혜가 진리에 따라 더욱더 청정하며 

말씨가 달고 아름다워 탐욕을 없애는가 하면 
나아가선 공덕을 베풀어 진심(瞋心)을 벗어나고 
깊고 끝없는 어리석음을 제거하므로 
억천 불찰에 걸쳐 훌륭한 이익 일으키며 

분별하여 말하지도 않고 
애써 힘을 빌리지도 않고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즐겁게 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모든 지혜를 일으키는 
보살의 수행하는 말 업의 청정함이노라.



그리고 보살이 뜻의 업에 있어서도 
그 뜻의 업을 장애 없이 잘 닦아서 
한 찰나에 온 세간의 마음을 다 알되 
멸진정(滅盡定)을 일으키지 않고도 위의를 나타내므로 
저 마군들로선 보살의 뜻을 알지 못하고 
깊고 깊은 그 보살의 도심(道心)은 
성문·연각으로서도 측량할 수 없으며 
자기나 다른 사람에게 분별을 내지 않고 
높음도 거리낌도 없는 평등한 지혜로써 
세간을 따라 잘 깨달아 알므로 
느낌 없고 생각 없고 사찰(伺察)도 없으며 

멸진정에 들지 않고도 낙문(樂門)을 증득하고 
그지없는 변재의 다라니를 갖춰 
항상 법에 따라 지혜를 행함으로써 
정념(正念)과 정정(正定)으로 산란하지 않고 정(定)에 머물며 

모든 장애와 번뇌를 깨끗이 없애어 
조그마한 더러움도 전연 보지 않고 
한량없는 보리의 법을 수행하되 
널리 포섭해 방일하지 않나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지관(止觀)에 머물러 
차례로 10지(地)를 성취하는 
그 지혜로운 뜻 업의 청정함이노라.



이같이 보살이 청정한 업을 이룩하기 이해 
보리수 아래에서 지과(智果)를 얻어 
열 가지 청정한 법을 구족하고 
원만한 그 모든 행을 닦는 한편 
일체의 청정하고 수승한 도(道)로서 
지위에 따라 모든 바라밀 구족하고 
일체의 고귀하고 초월한 법으로 
상호에 따라 원만한 복과(福果)를 갖추어 
마침내 보리수 도량에 앉아 
더러운 법과 사나운 원수를 끊고는 
수미산처럼 모든 선한 법을 쌓아 
그 부사의 한 광명을 성취한다면 
이것이 곧 삼매를 닦는 그 복으로 
스무 가지 법을 갖추는 정인(淨印)의 법문이며 

또 일월 같은 광명으로 세간을 비추는 
큰 보리와 부처님의 수승한 지혜를 얻기 위해 
마침내 보리수 도량에 앉아서 
18불공법의 신통을 얻어 
한량없는 그 백천 불국토에 
널리 이익 되고 안락한 일을 일으킴으로써 
여러 부처님께서 두려움 없는 힘을 주되 '네가 가장 수승하고 용맹하여 
모든 마군을 이미 다 항복 받았으므로 
더 없는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고 
이 몸·마음의 훌륭한 공덕을 얻으리라'고 
이같이 칭찬하여 말씀하신다면 
그는 결정코 이 정인 법문을 성취하리니 

그러므로 이 공덕의 법문을 닦으려면 
마땅히 보리심을 굳게 해야 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다시 해의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해의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살이 만약 그 스스로 말하는 정인삼매의 법문과 스스로 말하는 무구(無垢)의 지혜를 얻으려면 마땅히 두 종류의 마음에 머물러야 한다.

첫째, 탁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은 마음, 둘째 찌꺼기나 더러움이 없는 마음이 그것이다. 이른바 탁하거나 혼란스럽지 않는 마음이란 그 마음의 자성(自性)이 청정하고 밝아 번뇌를 용납하지 않을 뿐더러 법성이 항상 근본 자체의 광명에 머물므로 그 뜻을 가짐에 쌓아두는 것이 없고, 또 번뇌가 없기 때문에 탐욕을 여의며, 분별이 없기 때문에 성냄을 여의고, 나가 없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여의고, 모든 것이 청정하기 때문에 필경 더러움이 없으며, 자재로운 광명으로 일체의 법을 해탈함도 그러하고, 진리의 평등에 따라 머물므로 일체의 법을 해탈함도 그러하고, 법계의 평등에 따라 머물므로 일체의 법을 해탈함도 그러하고, 실제(實際)의 평등에 따라 머물므로 일체의 법을 해탈함도 그러하고, 공의 평등에 따라 머물고 상(相) 없음과 원(願) 없음과 조작 없음과 생멸 없는 모든 평등에 따라 머물므로 일체의 유위법을 해탈함도 그러하고, 무위법의 평등에 따라 머물므로, 바로 이 평등의 법에 따라 머묾이란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어 지혜로선 도저히 알 수 없음이니, 이것이 바로 탁함이 없고 혼란함이 없는 마음이라 이름한다. 다시 이러한 법으로 다른 사람과 그 밖의 모든 중생을 위해 자타의 법을 다 드러내 밝히고 열어 보이되 동요되거나 산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그것이 이른바 찌꺼기나 더러움이 없는 마음이라.

해의여, 이 탁함과 혼란함이 없는 마음과 찌꺼기와 더러움 없는 마음을 구족한다면 그는 곧 스스로 말하는 정인 삼매의 법문을 얻게 되리라.”

그 때 해의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깊고도 깊은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그 끝과 밑이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보기 어려운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2법(法)을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깨닫기 어려운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나[我]가 없고 내 것[我所]도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알기 어려운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알음알이와 지혜의 이 두 가지 법을 다 평등하다고 알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탁하거나 혼란함이 없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걸림 없는 해탈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미묘한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어떠한 비유로서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정실(精實)한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금강과 같은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파괴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과거와 미래에 언제나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어떠한 것에도 집착함이 없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모든 존재에 수순하여 그 집착을 다 초월하였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큰 광명을 얻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모든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매우 청정한 것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끝까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의 본성(本性)이 때[垢]가 없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탐욕의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아무런 지을 바가 없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삼매는 삼계(三界)에 다 지을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희론(戱論)이 없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모든 희론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동요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끝까지 고요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세존이시여, 이 삼매가 모든 처소에 따라 들어감은 무슨 까닭이옵니까?”

이 삼매는 허공과 같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그 때 해의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그 수승한 행을 일으켜야 하며, 어떻게 해야 스스로 말하는 그 정인삼매의 법문을 얻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해의여, 마치 어떤 사람이 허공과 함께 같이 싸우려고 할 때에 저 허공이 곧 갑옷과 투구를 입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스스로 말하는 정인삼매를 얻으려면 응당 모든 법이 평등하다는 갑옷과 투구를 입고서 장엄해야 하리니, 왜냐 하면 해의야, 사라짐이 있음에 따라 곧 일어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다시 해의여, 알음알이의 종자는 유위법이고, 나타냄이 없는 종자는 유위법이라. 이 삼매는 눈의 알음알이로써 아는 것이 아니고, 귀·코·혀·몸·뜻의 알음알이로써 아는 것도 아니며, 이 삼매는 표현할 수 없으므로 아는 것이 없는가 하면 아는 것이 없지도 않음을 알아야 하나니 이 삼매는 모습을 표현할 수 없으며, 일체의 법이 평등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것을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이르느니라.

다시 해의여, 나는 어떤 법도 더러운 모습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하였고, 또 어떤 법도 깨끗한 모습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등정각을 성취하였노라. 만약에 어떤 모습이 더러운 것이라면 그 모습은 바로 깨끗한 것이니 이른바 자성(自性)이 청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자성이 청정한 모습이라면 바로 아무런 모습도 없는 것이요, 아무런 모습도 없다면 바로 지을 바가 없는 모습이요, 지을 바가 없는 모습이라면 바로 조그마한 법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일체의 법을 분명히 알 수 없으며, 그 법을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할 것도 없기 때문에 그 중에는 문자를 모아서 나타낼 수 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문자로써 모아 나타낼 수 없는 것이라면 바로 진리 그대로를 말한 것이다. 진리 그대로의 말이란, 이른바 뒤도 앞과 같고 앞도 뒤와 같고 중간도 그러함이니 이것이 바로 일체의 법은 3세가 다 공(空)하다고 함이니라.

그리고 또 공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조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조작할 것이 없음이란 조작할 것이 없는 반면에 조작할 것이 없는 것도 아니나니 이 때문에 공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조작할 것이 없는 그 이치란, 이른바 현전에 모든 지어갈 바의 조작이 없고 조그마한 법도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조작할 것이 없는 이치라 이름한다. 현전에 지어갈 바가 없음이란 몸과 입과 마음이 다 현전에 지어갈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를 현전에 지어갈 바가 없다고 이름한다. 만약 현전에 지어갈 바가 없다면 그는 곧 함이 없고 함이 없다면 곧 생멸이 없고 생멸이 없다면 어떤 처소가 없다.

곧 생멸이 없고 처소가 없는 법은 이른바 현전에 모든 지어갈 바의 처소가 없는 것이므로 이를 처소가 없다고 이름한다. 왜냐 하면 이른바 알음알이가 물질 속에 머물지 않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의 속에 머물지 않고, 의식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바른 지혜이다. 그 바른 지혜는 영납(領納)함이 없고 영납함이 없음은 바로 증상(增上)하는 뜻의 즐거움이 없고, 증상하는 뜻의 즐거움이 없음은 바로 쟁론(諍論)이 없고 쟁론이 없음은 바로 동란(動亂)이 없고 동란이 없음은 바로 고뇌가 없고 고뇌가 없음은 바로 초조함이 없고 초조함이 없음은 바로 지식(止息)하게 되고 지식하게 됨은 바로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니, 고요한 경지에 들어감은 바로 적멸에 머무는 것이니, 만약 적멸에 머문다면 바로 큰 열반을 얻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앞서 말한 ‘그 지혜는 영납함이 없음’이란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해의여, 이 법이 너무나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므로 만약 이 법을 듣고 신심을 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일체의 전도와 뒤바뀜과 번뇌와 집착과 속박을 다 해탈함과 동시에 곧 과거·미래·현재 모든 부처님들의 법장(法藏)을 받아 지님으로써 큰 도사가 되어 일체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바른 길을 열어 보이고, 큰 의왕(醫王)이 되어 일체 중생들의 그 상(相)이 없는 번뇌의 병을 치료해 주며, 나아가서는 그 광대한 공양으로 여래를 널리 공양함에 따라 곧 스스로 말하는 이 정인삼매의 법문을 얻음은 물론 모든 하는 일이 대승의 법에 따라 결정됨으로써 능히 큰 법배[法船]를 모아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생사의 바다로부터 구출하고 큰 정사(正士)가 되어 뭇 마군을 항복 받아 다시는 그 마군들의 경계 속에 빠지지 않게 되리라.

그 때 해의보살이 또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하여야만 그 일체의 마원(魔怨)을 항복 받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해의여, 만약 보살이 함이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것을 널리 섭수(攝受)한다면 그 보살은 일체의 마원을 항복 받을 것이며, 또 보살이 일체의 그 반연되는 모습에 대해 함이 없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보살은 곧 일체의 마원을 항복 받으리라.

해의는 알아 두라. 마원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그 넷이란, 첫째가 온(蘊)의 마원이고, 둘째가 번뇌의 마원이고 셋째가 죽음의 마원이고 넷째가 자재천(自在天)의 마원이라. 이 마원을 항복 받기 위해서는 환법(幻法)을 관찰한다면 온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공법(空法)에 편히 머문다면 번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생멸없는 법을 관찰한다면 죽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의지하는 그 일체의 의식의 법을 한꺼번에 지식(止息)시켜 열반의 도에 나아간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다. 또 괴로움〔苦〕를 안다면 온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는다면 번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멸제(滅諦)를 증득한다면 죽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도제(道諦)를 닦는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다.

다시 모든 지어감의 괴로움을 관찰한다면 온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제행(諸行)이 덧없음[無常]을 관찰한다면 번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모든 법〔諸法〕이 무아(無我)임을 관찰한다면 죽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을 관찰한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다.

다시 보살이 마음속의 더러운 번뇌를 끊고서 큰 보리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면 온의 마원을 섭복(攝伏)할 수 있고, 그 몸을 아끼거나 집착하지 않고서 보시를 행하여 일체의 지혜에 회향한다면 번뇌의 마원을 섭복할 수 있고, 재부(財富)가 덧없으므로 나와 다른 사람이 공동 사용해야 할 것을 생각하여 진실히 보시하고, 보시하고 나서 일체의 지혜에 회향한다면 죽음의 마원을 섭복할 수 있고, 일체 중생들에게 대비심을 버리지 않는 동시 해탈의 지혜로써 그 중생들을 널리 포섭하되 보시를 행하고서 일체의 지혜에 회향한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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