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04권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04권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보살이 만약 보리심을 듣고서 
일체의 법을 꿰뚫는다면 
그의 꿰뚫은 지혜는 
어떠한 법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또 깊고 깊은 법을 요달함으로써 
보살은 그 법에 공포심을 내지 않고 
아예 공포심을 일으키지도 않아 
가장 수승한 도를 얻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든 법이 인(因)이건 연(緣)이건 
그 인연 생기의 법을 여실히 깨닫고 
모든 법의 인연 생기에 수순하는 지혜가 있어야 
진실로 치우친 소견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 모든 법이 단(斷)이건 상(常)이건 
그 지혜 단·상에 거리낌없어야 하며 
중제(中際)를 깨달아 요달함도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실제(實際)는 부사의 하며 

모든 법의 자성(自性)은 본래 무아이며 
그 가운데 나 또한 자성이 없으므로 
모든 법의 성품 없음도 그와 같이 
본래 나는[生]것 없어 다 공적(空寂)하여 

모든 법은 일어남도 사라짐도 없으며 
공하여 잡을 것 없어 항상 청정하고 
멀리 희론(戱論)을 떠난 무상(無相)의 문이어서 
일체가 다 허공처럼 평등하므로 
마음 없고 구함도 원함도 없어 
일체의 탐욕을 모두 초월하느니라.



모든 물질의 제 성품은 마치 물거품처럼 실제가 없고 
느낌은 마치 물방울처럼 잠시 일어났다가 도로 사라지고 
생각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헛되이 생기고 
지어감은 마치 파초처럼 언제나 견실하지 못하고 
의식은 마치 환영처럼 그 법이 오래되거나 굳지 못하고 
모든 네 경계의 성품도 변동이 없어 
저 허공과 함께 다 평등하므로 
그 모든 자성(自性)을 현전에 관찰하며 

안팎의 모든 감관도 그와 같이 
경계에 따라 서로 생겨 어두우니 
응당 그 마음의 법이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지도 않음을 알아야 하며 

의식에 대한 법도 그러하므로 
그 모든 의식에 집착하지 않고 
저 일체의 법에 의식을 일으킴 없이 
또 아상(我相)을 멀리 떠나 
그 일체의 법이 평등한 가운데 
바른 성품을 여실히 깨달아야 하며 

법의 근본 또한 다른 성품 없이 
다 동등한 맛·동등한 도·동등한 승(乘)이므로 
도에 대한 지혜 여실하게 깨닫는다면 
이 이치가 수승한 이치로 드러나리.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 그 이치를 깨닫되 
올바른 음성과 그릇된 음성을 관찰하여 
세간의 일체 음성을 다 깨달아야만 
과거·미래를 함께 초월하며 

문자와 이치를 잘 해득하되 
그 둘이 아닌 법을 요달하여 
말할 수 없는 이치의 문을 깨달아야만 
곧 진실한 성품을 깨달아 나타낼 수 있네.



또 모든 법의 나지 않는 이치를 관찰함은 
바로 괴로움에 대한 지혜〔苦智〕이고 
모든 법의 평등한 이치를 관찰함은 
바로 고의 원인에 대한 지혜〔集智〕이고 
모든 법의 이치를 다함을 관찰함은 
바로 사라짐(滅)에 대한 지혜이고 
모든 법의 무위(無爲)한 이치를 관찰함은 
바로 도(道에) 대한 지혜이며 
저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을 
낱낱 그 진리에 따라 관찰하되 
어떤 생각도 의식도 지어감이 없음을 
이것을 설하여 4념처(念處)라 하며 

법계와 법계 아닌 성품이 
모두 평등한 것임을 관찰하되 
치우침 없이 바른 법문에 들어감은 
이른바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斷〕이고 

마음에 큰 자유를 얻음은 
이른바 4신족(神足)이라 하며 
모든 집착된 마음을 초월함을 
이른바 신근(信根)이라 하며 

일체의 법에 적정(寂靜)함은 
이른바 정진근(精進根)이며 
무념으로 바른 법문을 염함은 
이른바 염근(念根)이며 

모든 법을 깨달아 의식을 일으키지 않음은 
이른바 정근(定根)이며 
모든 희론(戱論)의 문을 초월함은 
이른바 혜근(慧根)이며 

법에 따라 다른 믿음을 갖지 않고 
스스로가 진실한 지혜를 얻되 
그 마음에 깨달은 체하지 않음은 
이른바 신력(信力)·정진력(精進力)이며 
생멸 없는 지혜를 깨달음은 
이른바 염력(念力)이고 
마음을 적정(寂定)케 하여 지어감이 없음은 
이른바 정력(定力)이고 
분별이 있는 것도 여읜 것도 아닌 것은 
이른바 혜력(慧力)이며 

모든 법의 이치 가운데 진실한 각지(覺知)는 
이른바 7각분(覺分)이며 
어떠한 법도 차별 없이 평등함은 
이른바 정견(正見)이고 

둘이 아닌 법 가운데 여실히 생멸이 없음을 관찰함은 
이른바 정도(正道)이며 
생멸이 없음은 무상(無常)의 이치이고 
기복이 없음은 괴로움의 이치이고 

지어감이 없음은 무아(無我)의 이치이고 
모든 것을 지식(止息)함은 적정(寂靜)의 이치이며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 바로 보시이고 
마음을 적정(寂靜)케 하는 것이 바로 지계이고 

법에 수순하여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욕이고 
바른 지혜로 관찰하는 것이 정진이고 
필경 고요히 지식하는 것이 선정이고 
진실한 이치를 요달하여 아는 것이 지혜이며 
중생은 본래가 다 청정하다고 아는 것이 
이른바 인자한 마음이고 
중생을 허공처럼 평등하게 관찰함은 
이른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고 

중생에 따라 그들과 함께 즐거워함은 
이른바 기뻐하는 마음이고 
일체 인연하는 바에 집착된 마음이 없음은 
이른바 버리는 마음의 수행이며 

다시 3륜(輪)이 다 청정함으로써 
곧 일체의 법을 요달하되 
그 모든 법문을 관천(貫穿)함은 
집착된 온갖 견(見)을 아주 끊음이며 

그 중에도 이 선정·지혜의 
두 가지 법을 잘 관천하여 
한량없는 경계의 문에 두루 들어감은 
이른바 바른 법의 지혜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해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해의여, 만약에 보살이 이러한 모든 청정을 얻음으로써 일체 중생들에게 헛되지 않는 뜻을 베푸는 한편, 그 중생들로부터 어떠한 꺾임과 눌림을 당하더라도 괴롭게 여기거나 장애를 일으키지 않고 잘 깨달아 요달하는 지혜와 견고하여 흔들림 없는 지혜를 얻는다면, 그 보살은 곧 스스로가 정인(淨印) 삼매의 근본을 말할 수 있으며, 집착 없는 경지에 머물리라.

무엇 때문에 그 삼매의 근본에 편히 머무름이라 하는가? 일체 중생에게 장애가 없고 대비심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또 일체의 중생으로부터 항상 공경을 받는다 해서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공경을 받지 못한다 해서 마음이 비하되거나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에 따라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는가 하면, 나아가서는 모든 법에 수순하여어리석은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법의 지혜를 널리 얻음으로써 지혜로 선도(先導)하여 신업(身業)을 구족하기도 하고 그 지혜로 선도하여 구업(口業)을 구족하기도 하고, 그 지혜로 선도하여 의업(意業)을 구족하기도 하나니, 이와 같이 신구의(身口意)의 업을 모두 지혜로 선도한다면 그 보살은 곧 지혜에 따라 모든 것을 움직이게 되리라.

이른바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신업을 구족함이란, 만약 어떤 중생에게 형상 몸[色身]을 보게 함으로써 그 중생을 화도(化度)하고 조복할 수 있다면 보살이 곧 위의(威儀)의 모습을 나타내어 그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을 조복하게 하되 보살이 그러한 모습을 나타냄에 있어서 어떤 감각을 일으키지 않고 분별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설혹 보살이 그 몸에 어떤 과실로 말미암아 몸에 애착을 일으키고 몸에 이상한 모습을 나타내거나 몸의 자세가 굽어지고 흔들리는 그러한 경우가 있더라도 보살로서는 그 모든 과실을 다 현전에 나타내어 마치 다라수(多羅樹)의 줄기를 끊어버리는 것처럼 다시는 그러한 과실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보살이 청정한 몸을 얻음에 있어서 일체의 수승한 모습으로 그 몸을 장엄하되 손발이 보드랍고 미묘하고도 사랑스럽고 모든 감관이 결함 없어 그 원만하고 복된 몸을 이룩하더라도 보살로서는 그러한 장엄의 몸을 갖추었다 해서 그것을 믿고 교만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몸매가 아무리 장엄 수승하여도 그 몸이 언제나 화합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선 일체 중생의 갖가지 색상(色相)에 어떤 결함 있는 것을 보더라도 보살은 그 때마다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법을 구하기 위해 더욱 겸손하고도 공경해야 한다. 왜냐 하면 자기 몸의 법성과 중생들 몸의 법성이 모두 평등하여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또 보살은 그 몸과 몸의 법성을 다 요달하고는 곧 법의 몸[法身]을 얻음으로써 업인에 의하여 받은 몸[分段身]을 받지 않나니, 이른바 법의 몸이란 선정의 즐거움으로 먹이를 삼고 형상 있는 먹이[分段食]를 음식으로 삼지 않으며, 보살이 세간에 순응하기 위해 또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므로 저 세간의 먹이를 받아 나타내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보살이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나 병을 치료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법의 몸에 대한 법의 생명을 자양(資養)할 뿐 세간의 형상 있는 먹이를 빌려 자양하려는 것이 아니노라.

이른바 법의 생명을 자양함이란 어떤 인연을 따라 조작하지 않기 때문에 성행(聖行)을 벗어나지 않음이요, 성행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고 모든 번뇌를 떠나서 그 시절에 따라 계율을 은밀히 보호함이 그것이라.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신업을 구족하기 때문에 모든 신통의 지혜를 얻고 위신(威神)의 힘을 성취하되, 그에 대한 어떤 감각을 일으킴도 없이 다만 일체의 불찰에 걸쳐 그 몸을 널리 나타내면서 그 모든 불찰의 낱낱 중생들 중에 보살의 장엄한 몸 모습의 광명을 보는 자가 있을 때엔 보살이 곧 감각 없고 분별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그의 광명과 장엄을 구족한 몸매로부터 큰 광명을 내나니, 이 광명이 한량없고 셈할 수 없는 모든 불찰에 널리 비춤으로써 일체 지옥 따위의 나쁜 갈래 중생들도 그 비추는 광명의 감촉을 힘입어 모두 쾌락으로 말미암아 현전에 즐거운 감촉을 얻는다. 다시 이 즐거운 감촉을 얻기 때문에 일체 중생의 번뇌를 다 그치게 하고 함께 청량(淸凉)함을 얻어 몸과 마음이 조화로우며, 저 중생들의 몸과 마음이 조화롭기 때문에 불사를 잘 일으키기 마련이라. 해의여, 이러한 법이 이른바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신업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다시 해의여, 이른바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구업을 구족함이란 무엇인가? 무릇 보살의 발언하는 모든 말은 일체 추악하거나 과실 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보살이 항상 과실 되는 말을 여의는 그 예순 네 가지의 종류를 든다면, 첫째 보살은 거친 말이 없음이요, 둘째 탁하거나 혼란스러운 말이 없음이요, 셋째 어떤 그릇을 깨뜨리는 듯한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넷째 쇠약한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다섯째 너무 높은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여섯째 너무 낮은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일곱째 사납거나 거센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여덟째 너무 굳어서 통하지 않는 말이 없음이요, 아홉째 더듬거나 되씹는 말이 없음이요, 열째 괴로움에 시달리는 말이 없음이요, 열한 째 격리되거나 산만한 말이 없음이요, 열 둘째 초조해 하는 말이 없음이요, 열 셋째 미혹된 말이 없음이요, 열 넷째 원한스러운 말이 없음이요, 열 다섯째 비밀스러워 단절된 듯한 말이 없음이요, 열 여섯째 집착하는 말이 없음이요, 열 일곱째 신음(呻吟)하는 말이 없음이요, 열 여덟째 유치한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열 아홉째 떨면서 울부짖는 듯한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스무째 불길처럼 센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스물 한째 몸에 접촉되는 듯한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스물 둘째 그 시기를 알지 못하는 말이 없음이요, 스물 셋째 탐욕에 따른 비겁한 말이 없음이요, 스물 넷째 성내거나 거리끼는 말이 없음이요, 스물 다섯째 어리석거나 광란하는 말이 없음이요, 스물 여섯째 놀래거나 겁내는 말이 없음이요, 스물 일곱째 거만하거나 고집하는 말이 없음이요, 스물 여덟째 파괴를 일으키는 말이 없음이요, 스물 아홉째 아첨하거나 왜곡된 말이 없음이요, 서른 째 너무 아만을 부리는 말이 없음이요, 서른 한째 지나치게 공손하여 비겁함을 나타내는 말이 없음이요, 서른둘째 애착에 빠져 덮어 감추는 말이 없음이요, 서른 셋째 애호하지 않는 것을 거짓으로 나타내는 말이 없음이요, 서른 넷째 성실하지 않은 말이 없음이요, 서른 다섯째 결실(缺失)된 말이 없음이요, 서른 여섯째 허망한 말이 없음이요, 서른 일곱째 싸우는 듯한 시끄러운 말이 없음이요, 서른 여덟째 두 가지 말이 없음이요, 서른 아홉째 포악한 말이 없음이요, 마흔째 교묘하게 꾸미는 말이 없음이요, 마흔 한째 벗을 파괴시키는 말이 없음이요, 마흔 둘째 지나치게 날카로운 말이 없음이요, 마흔 셋째 너무 부드러운 말이 없음이요, 마흔 넷째 범속(凡俗)한 말이 없음이요, 마흔 다섯 째 감추어 보호하지 않는 말이 없음이요, 마흔 여섯째 번잡한 말이 없음이요, 마흔 일곱째 성내거나 해치는 말이 없음이요, 마흔 여덟째 투쟁하는 듯한 말이 없음이요, 마흔 아홉째 천하고 열등한 말이 없음이요, 쉰째 난동부리는 듯한 말이 없음이요, 쉰 한째 들떠있는 듯한 경솔한 말이 없음이요, 쉰 둘째 면박하여 속이는 말이 없음이요, 쉰 셋째 희극(戱劇)적인 말이 없음이요, 쉰 넷 째 노래 부르는 듯한 음성의 말이 없음이요, 쉰 다섯째 법 아닌 말이 없음이요, 쉰 여섯째 이간시키는 말이 없음이요, 쉰 일곱째 자신을 칭찬하는 말이 없음이요, 쉰 여덟째 다른 이를 헐뜯는 말이 없음이요, 쉰 아홉째 남을 모욕하는 말이 없음이요, 예순째 격동적인 말이 없음이요, 예순 한째 불법승 3보에 위반되는 말이 없음이요, 예순 둘째 성현을 비방하는 말이 없음이요, 예순 셋째 이치 아닌 것을 증명하는 말이 없음이요, 예순 넷째 그 밖의 일체 추악하거나 과실을 범하는 말이 없음이라. 해의여, 이러한 예순 네 종류의 말씨가운데 보살의 발언이 그 모든 과실을 멀리 여의고서 구업의 청정함을 얻는다면 그의 모든 발언은 간단(間斷)없는 발언이요, 여실함을 설하는 발언이요, 바르고 참됨을 설하는 발언이요, 정성스럽게 진리의 분위(分位)를 설하는 발언이요, 진리에 따라 옮겨 설하는 발언이요, 일체 중생에 수순하여 들어가는 발언이요, 일체 중생의 뜻을 아는 발언이라 하겠으며, 또 그의 발언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 환희심을 내게 하고 일체 중생의 근성(根性)을 밝게 비추어 번뇌를 쉬게 하고 부처님의 위신에 머물러 바른 법을 맡아 지니므로 그의 발언은 모든 사물을 분명히 나타내어 아름답고 미묘하고 사랑스러움은 물론, 나가서는 모든 과실을 여의니 이는 복된 행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공덕을 섭수(攝受)하기 위해 발언하되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끝없이 깊은 이치를 발언하되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고, 시방을 시설하기 위해 발언하되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 모든 처소를 다니면서 모두 올바르고 이익 되는 발언을 하되 조금도 그 상(相)을 짓지 않나니, 해의여,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구업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다시 해의여, 이른바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의업을 구족함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그 찰나찰나 전일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의 심행(心行)에 두루 들어가 그 심행을 분명히 요달하고 선정에 머물러 모든 위의를 나타내노라. 그러나 보살 자신은 그 삼매에 들어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므로 일체의 마군들은 보살의 마음이 중생들의 심행에 들어 있거나 성문·연각의 심행에 들어 있는 그 마음의 업을 알지 못하며, 보살 자신도 누구에게 해칠 생각을 갖지 않음은 물론, 해칠 마음으로 표현하는 바가 없으며, 조그마한 법에도 장애를 일으키지 않아 일체의 법을 지혜로써 요달하고 그 마음의 뜻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깨달아 안다거나 느낌을 갖지 않으며, 비록 불법을 갖추지 못하거나 멸진정(滅盡定)에 들지 않고도 증득을 취하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지혜로 선도하여 의업을 구족함이니라.

해의여, 이러한 등의 법이 바로 보살이 스스로 말하는 정인(淨印)삼매의 근본에 편히 머무름이니, 이 근본이라는 것은 곧 보살의 신구의의 업을 다 지혜로써 선도함이요, 또 그 세 가지 업을 지혜로써 선도하기 때문에 보살이 스스로 말하는 정인삼매의 법을 얻을 수 있느니라.

해의는 알아 두라. 보살이 그 삼매를 얻는 데에 스스로 말하기 위한 열 가지 법이 있노라. 그 열 가지 법이란, 첫째 처음 행을 발기함이니 이는 그 깊은 마음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둘째 보살의 행이니 이는 그 여섯 바라밀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셋째 결백한 행을 나타내 보임이니 이는 그 모든 선법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넷째 상호(相好)를 원만하게 하는 행이니 이는 그 장애 없는 복된 행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다섯째 변재(辯才)를 얻는 행이니 이는 그 법을 듣고자 함을 행함에 따라 다른 이로 하여금 청정하게 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여섯째 선정에 들어 산란하지 않게 지혜를 염(念)함이니 이는 그 일체의 거칠고 무거운 업장과 현전에 일어나는 번뇌를 멀리 여의고 마음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일곱째 보리의 법다운 지혜를 얻음이니 이는 그 방일하지 않는 법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여덟째 삼매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의 지혜를 표시함이니 이는 그 심의식(心意識)의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아홉째 10지(地)의 차례에 따른 지혜를 얻음이니 이는 그 모든 대치(對治)하는 법과 건립(建立)하는 법에 있어서 온갖 장애를 초월한 그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요, 열째 큰 보리장(菩提場)의 장엄한 지혜를 얻음이니 이는 그 일체의 불선한 법을 끊고 일체의 선한 법을 모은 청정함을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라. 해의여,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구족하기 때문에 이 삼매를 ‘스스로 말한다’고 하느니라.

해의는 알아 두라. 이 정인삼매를 얻는 데에 또 스무 가지의 법이 있노라. 이른바 그 스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안[內]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나가 청정하기 때문이요, 둘째 바깥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내 것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셋째 몸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일체의 견(見)이 다 청정하기 때문이요, 넷째 일체의 법이 무아인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본래가 청정하기 때문이요, 다섯째 일체의 법이 평등함을 깨달은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한 맛[味]으로 청정하기 때문이요, 여섯째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일체의 해탈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일곱째 허공처럼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필경(畢竟)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여덟째 중생계와 법계가 다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모든 조작을 여의기 때문이요, 아홉째 그 나타내는 소견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스스로 지혜를 통달한 청정함 때문이요, 열째 일륜(日輪) 광명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항상 빛을 비춤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한 번째 3세에 걸림 없는 그 지견(知見)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모든 장애를 벗어나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두 번째 표현하는 지혜 문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그 지혜가 집착 없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세 번째 무위법(無爲)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그 법의 자성(自性)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네 번째 인연 생기의 법을 깨달아 아는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그 인연의 법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요, 열다섯 번째 두려움 없는 힘으로 증득한 그 불법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그 진실한 지혜가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여섯 번째 불법을 깨달은 그 상(相)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과거의 업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일곱 번째 대자대비의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중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여덟 번째 모든 마군과 외도를 굴복시키는 그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일체의 소행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열아홉 번째 일체 번뇌의 습기를 파괴하는 그 청정함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모든 법의 자성(自性)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스무 번째 한 찰나 사이에 일체 불법의 문을 널리 다 수순하여 아는 그 청정한 마음을 정인이라 하니 이는 모든 청정을 쌓아 원만하기 때문이라. 해의여, 이러한 스무 가지 법을 구족하기 때문에 이 삼매를 정인이라 하느니라.

다시 해의는 알아 두라. 보살이 보리의 도량에 앉을 때에 이 삼매를 얻어야 함은 물론, 이 삼매를 얻고 나서는 또 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큰 신통의 모습을 얻어야 한다. 이른바 그 여덟 가지 모습이란, 첫째 이 삼천대천세계를 홀연히 금강(金剛)의 땅으로 변화시킴이요, 둘째 일체 나무숲의 꽃·열매와 가지·잎으로 하여금 다 보리수(菩提樹)을 향하여 함께 숙이고 굽혀 공경하는 모습을 나타내게 함이요, 셋째 일체 중생을 한 찰나 사이에 어떠한 번뇌에도 고뇌를 느끼지 않게 함이요, 넷째 일체 지옥 따위의 나쁜 갈래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이 보리 도량에 앉아 있음을 봄으로써 다 쾌락을 얻어 구족하게 함이요, 다섯째 일체 세계의 공중에 모두 금 빛깔의 광명을 나타내되 그 광명을 광대히 비추게 함이요, 여섯째 온 땅을 모두 진동시키되 조금도 중생들이 해를 입지 않게 함이요, 일곱째 현재 시방에 머물면서 설법으로 교화하시는 세존들에게 두려움 없는 법으로써 위안의 인사를 올리되 ‘거룩한 당신네들은 가장 수승하고도 수승한 큰 도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음이요, 여덟째 한 찰나 사이에 일체의 불법을 다 마음속에 모아 현전에 나타낼 수 있음이 그것이라.

해의여, 보살이 저 정인 삼매를 얻고 나서 이러한 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큰 신통의 모습을 갖춘다면 그는 한량없는 공덕의 일을 낼 것이며, 그 밖의 일체 일도 모두 이 삼매의 신통 위력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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