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기도하고 관음진신을 친견한 회정대사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에서 멀리 떨어지지 아니한 지결에 옛날에 송라암(松羅庵)이란 암자가 있었다. 금강산은 어느 곳이나 나쁜 곳이 없고 모두 선경과 같은 곳이지만 이 송라암도 기암괴석이 둘러 싸였고 은가루나 옥돌 가루를 튀기는 듯한 세류폭포(細流瀑布)가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려 물방울을 분수(噴水)처럼 공중을 향하여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곳은 여름이라도 더운 것을 모르고 지내는 곳이다.
법당에는 새벽과 오전 오후와 밤 저녁 이 길을 때까지 네 번으로 나누어 한번에 두 시간씩 매일 8시간에 걸쳐서 기도 정진을 하는 스님이 있었으니 그는 회정대사(櫰正大師)라는 스님이었다.
이 스님은 나이 30고개를 넘을까 말까 하는 스님이었는데 그의 불타오르는 신념은 무엇으로도 비할 수가 없었다. 그는 3년을 기한하고 기도를 하며 천수경 대비주(大悲呪)를 30 만독이나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기도하는 소원은 꼭 관세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케 하여 달라는 소원이었다. 이것은 불자(佛子)로 견성설불(見性成佛)을 하려면 관음진신을 친견하여야만 된다는 말을 어떤 스님으로부터 들은 까닭이었다. 회정대사는 이와 같이 3년에 걸쳐서 천일기도를 마치는 날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는데 점잖은 부인이 꿈 가운데 나타나서 말하였다.
「네가 관세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려거든 양구현 방산면 해명곡(楊口縣 方山面 海明谷)을 찾아가서 몰골옹(沒骨翁)과 해명방(海明方)을 만나보라. 그러하면 관음진신을 친견하게 되리라.」
회정대사는 깨고 나니 꿈이라. 정확하게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3년간의 천일이나 기도의 정성을 드리고 얻은 꿈이라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날부터 바랑을 싸서 걸머지고 홀가분한 단신으로 친신만고를 겪으며 양구현을 찾아가서 촌민들에게, 물었다.
「여보, 해명곡을 가자면 어디로 갑니까.」
「해명곡은 무주 구천동과 같아서 사람도 살고 있지 아니하고 신선들만 살고 있는 깊은 골짜기라고 하는데 대사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곳을 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야 사람에 따라서 볼 일이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중의 몸이니까 그렇게 깊숙한 골짜기에 들어가서 풀막이라도 치고 공부를 하여서 대도를 깨쳐볼까 하고 들어가려하는 겁니다. 」
「먹기는 무엇을 먹고 입기는 무엇을 입으며 그 쓸쓸한 무인지경에서 살려고 하십니까? 」
「중이란 것은 본래 채근목과(菜根木果)로 양식을 삼는 것이요, 송락(松落)과 초의(草亮)로써 의복을 대신하고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지저귀는 산새로 벗을 삼는 생활인데 거치적거릴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 」
「과연 도승의 말씀이오. 그렇게만 작정하고 산으로 들어간다면 두려울 것도 없고 괴로울 것도 없습니다. 나는 가보지는 아니하였소이다마는, 이 골짜기로만 한없이 들어가면 해명곡이 나온다고 하니 그리 알고 자꾸 걸어만 가보시오. 」
하고 손을 들어서 가리켜 준다.
회정대사는 혈기가 방장한 젊은 몸이라고 촌민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가리켜주는 대로 좌우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서 들어갔다.
좌우로 낙락장송이 들어서 있고 시냇물이 콸콸 소리를 내고 맑게 흘러내리는 계곡이 구비구비 감돌고 있어서 들어갈수록 경치가 여간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 기운을 내서 한참 동안 올라갔더니 조그만 오막살이집에서 남자노인 한 분이 관솔불을 피워놓고 부엌에서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할아버지, 소승 문안드립니다. 할아버지가 혹시 몰골옹 할아버지가 아니십니까? 」
「어디서 오는 중이기에 이렇게 저물게 왔으며 나의 이름을 어디서 듣고 왔소? 」
「소승은 금강산 송라암에 있는 중이 온대, 그 곳에서 어떤 부인이 할아버지를 찾아가 뵈이라고 꿈에 일러 주어서 이렇게 오는 길입니다. 」
「그것은 그렇다 하고, 나를 만나보러 온 목적은 무엇인가? 」
「소승이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여 보려고 3년간을 계속하여 천일기도를 하였는데 마치던 날 꿈에 어떤 노부인이 나타나서 관음진신을 친견하려거든 양구현 해명곡으로 찾아 들어가서 몰골옹과 해명방을 만나 뵈어야 한다고 해서 이 곳을 찾아왔는데 할아버지가 꼭 몰골옹 노인인 것만 같아서 이렇게 묻자온 것입니다. 」
「관음보살을 친견하려면 나와 해명방을 찾아야 된다고 하더란 말이지 . 그 여인이 알기는 바로 알고 가르쳐 주었다 」
「해명방 어른은 어디 계십니까? 」
「저기 보이는 산 너머야 내일 아침에 가도 넉넉하니 오늘은 여기서 자도록 하여라.」
하고 바랑을 들어 방안에 던지고 들어가라고 한다.
회정대사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앉아 있자니까 노인이 도토리 범벅 같은 것을 한 그릇 가지고 오더니,
「여기는 이런 것밖에 없으니 이것이라도 먹고 자거라.」한다. 회정대사가 그 노인을 자세히 바라보니 연세가 80세는 넘어 보이는데 근력은 건강하게 보이나 더럽기가 짝이 없다.
눈물과 콧물이 흐르고 의복도 언제 빨아 입었는지 꾀죄죄하게 땟국이 흘러 보이고 손발도 언제 씻었는지 매우 불결하여 보인다. 실상은 도토리 범벅도 먹고 싶지 아니 하였으나 너무도 배가 고파서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회정은 한잠을 단잠에 자고 깨어 보니까 벌써 해가 돋아서 아침이 되고 노인은 밖에서 도토리범벅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젊은 사람이 웬 잠이 이렇게 늦도록 자느냐. 어서 일어나서 세수하고 조반 먹을 차비를 하여라. 」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회정이 급히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벌써 나무바가지에 세숫물을 떠놓고 세수를 하라고 권한다.
「네가 해명방을 찾아가겠다고 하였지 ? 」
「예, 그랬습니다. 」
「해명방을 참아가려거든 저기 보이는 앞산을 넘어 가거라. 갈림 길도 없으니 저 산봉우리만 향하고 넘어가면 될 것이다. 」
「할아버지, 안녕히 계십시오. 하룻밤 동안이라도 신세를 많이 지고 갑니다. 」
「신세가 무슨 신세냐, 어디를 가던 도토리범벅이야 없겠느냐. 아무 잔소리 말고 네 볼 일이나 잘 보고 가거라.」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회정은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를 넘어서 으슥한 골짜기로 내려갔다. 과연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池非人間)이로구나 하고, 감탄하며 내려가다가 한 곳을 바라다 본 즉 새로운 풀로 지붕을 이은삼간 초막이 하나 보였다.
「저것이 해명방의 집이로구나.」
생각하고 들어가서 사리문 밖에 서서 소리쳤다.
「주인어른 계십니까, 주인어른 계십니까.」
「누구세요. 」
하고 여자 목소리가 나고 나이가 20세가량 되어 보이는 처녀 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의 인물이 어찌도 예쁘게 생겼는지 천하의 일색이었다. 회정으로서는 처음 보는 미인 이었다.
「저, 남녀가 유별한데 말씀드리기는 미안 합니다만, 해명방 어른을 좀 뵈오려고 찾아왔는데 계십니까? 」
「해명방은 우리 아버지신데 아침에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시고 지금은계십니다 .」
「언제쯤 돌아 오실까요.」
「점심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니 마당으로 들어오시어 저 봉당의 툇마루에 앉아서 기다려 보시지요. 」
「그럼 실례 하겠습니다. 」
「들어오셔서 기다리십시오. 」
이러하여 회정은 싸릿문 안으로 들어가서 봉당마루에 바람을 벗어놓고 앉아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니까 몰골옹의 집과는 정반대로 깨끗하기가 선경과 같았다.
「보아한즉 스님이신 모양인데 어찌하여서 우리 아버지를 찾아오시었습니까. 」
「그것은 아버지를 뵈워야 말을 하지 아직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
「아버지가 나요, 내가 아버지나 마찬가진데 그렇게 숨겨 둘 것이 있습니까. 대관절 스님의 이름은 무 엇입니까 ? 」
「나의 이름은 회정이라고 합니다. 규수의 이름도 알고 싶군요. 규수는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
「여자가 무슨 이름이 있나요.」
「여자라고 어찌 이름이 없겠습니까.」
「아버지가 보덕(普德)이라고 지어주시어서 남들이 보덕각시라고 불러 왔습니다. 」
「보덕각시, 참 좋은 이름이군요.」
「스님은 어느 절에서 오시었습니까.」
「나는 본터 금강산 장안사 중인데 근년에는 송라암에 있다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뵈옵고 싶어서 여 기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
「신심이 장하시군요. 」
「무어 신심이랄 것이 있나요. 공연한 망상이겠지요. 」
「망상이라도 지극하면 진심(眞心)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꼭 망상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 보덕각시가 조금도 스스러움 없이 말대답을 잘하여 주는데 그의 입에서는 향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해명방 어른을 뵈이면 관음진신을 친견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가 오셔 봐야지요. 제가 어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어야 할텐데요.」
「내가 스님에게 미리 부탁말씀을 하나 드리겠어요. 우리 아버지가 아주 무서운 어른이시라 아무 까닭 없이 남과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런즉 우리 아버지가 들아 오시어서 스님에게 무슨 횡포를 하시거든 간에 잘 참고 말대꾸를 하지 말아야지, 불연이면 스님이 생각하는 관음보살의 진신은커녕 가신(假身)도 보지 못하고 목숨까지 빼앗기고 말것이니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참고 복종을 해야 될 것입니다. 」
보덕각시에게 이 말을 들은 회정은 정신이 얼떨떨하여져서 공포심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때 해명방이 나무를 태산같이 짊어지고 사립문 안으로 들어온다. 키가 9척이나 되고 얼굴이 사나워 보인다. 보덕각시와 회정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더니 해명방은 회정을 흘겨보고
「너는 어떤 놈인데 규수만 혼자 있는 남의 정에 들어와서 있는거냐. 」
하고 고함을 지르더니 작대기로 보기좋게 정갱이를 후려 갈긴다.
회정은 보덕각시에게 들은 바가 있으므로 꾹 참고
「소승이 잘못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이놈, 용서고 무어고 썩 나가거라. 보아하니 중놈 같은데 중놈이 남의 안집을 함부로 들어오는 법이 어디 있더냐? 」
하고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보덕각시가 보다 못하여 말했다.
「아버지, 그 스님은 잘못이 없어요. 제가 들어오라고 했어요.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라는데 어떻게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수가 있어요. 」
그래도 해명방은 회정을 흘겨보더니
「너는 어느 절에 있는 중놈인데 나를 왜보려고 찾아왔단 말이냐?」
「이 스님은 금강산 장안사에 있는 스님인데 송라암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하려고 이곳을 찾아왔답니다. 」
이 말을 들은 해명방은,
「이놈아, 다른 사람은 만일기도를 하여도 관음의 진신을 볼까 말까 하는데 겨우 친일기도를 해가지고 관음진신을 보겠다고. 그까짓 꿈은 개꿈이야. 어서 돌아가서 만일기도라도 해가지고 와야 한다. 보기 싫으니 어서 나가거라. 」
해명방은 회정의 팔을 잡고 발길로 엉덩이를 찬다. 회정은 어떠한 핍박이라도 받을 결심을 하고 일으키면 주저앉고 문밖으로 내치면 기어 들어가곤 하였다. 회정스님은 다시 해명방에게 애걸하였다.
「소승이 업장이 두껍고 죄가 많사오니 업장을 벗겨 주시고 죄를 녹여 주시옵소서.」
「그놈 끈기가 꽤 질긴 놈이로구나. 네가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려면 저 보덕각시와 오늘 혼인을 해야 될 것이니 그렇게 하겠느냐.」
「소승이 출가한 비구의 몸인데 어찌 파계를 하고 장가를 들라고 하십니까?」
「이놈아, 그렇다면 관음진신이고 무어고 다 틀렸다. 어서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한다.
그런데 보덕각시를 바라본즉 눈짓을 하며 거역 말고 순종하라는 표정이다. 회정은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잘못 듣고 여기를 찾아온 것이나 아닌가 하고 귀를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몸이 있어야 관음진신이라도 친견하지 이 몸이 죽어지면 누가 관음진신을 친견할 것이냐 생각하고
「해명방 어른께 잘못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다 복종하겠습니다.」
하고 굴복 사죄를 하였더니 해명방은 보덕각시에게 마당을 잘 쓸고 거적을 펴고 물 한 동이만 갔다가 거적 가운데 놓으라고 한다.
보덕각시가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해명방은 회정과 색시를 물동이의 좌우에 마주보고 서서 두 사람이 절을 아홉 번씩 하라고한다.
그리고 오늘밤부터는 저 삼간집 맨 윗방에 들어가서 신방 화촉의 절차를 치르라고 한다. 회정은 해명방의 압력에 눌려서 복종을 하기는 하나 너무도 뜻밖이라 청천의 벼락이었다. 그러므로 성인을 찾아온다는 것이 악마인 마귀의 굴을 찾아온 것만 같았다.
회정은 보덕각시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웃방에 들어가서 보덕각시를 보고
「이것이 어이한 일이오. 꿈만 같구려.」
「나도 모르지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복종할 뿐이니까요. 」
보덕각시도 이렇게 말대답을 한다. 회정은 자포자기에 떨어져서 만사가 될 대로 되어가라는 듯이 모든 것을 다 포기했다.
그리고 이것도 운명의 작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신방에 들어가서 보덕각시와 한 이불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녀의 아래를 만져본 즉 생식기가 제대로 생기지 못한 불구자였다. 겨우 소변만 볼 수 있는 그녀였다. 회정은 이때에 알았다는 듯이 이 여자가 병신이니까 나를 윽박질러서 장가를 들였구나 하고 안심하고 불행 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보덕각시를 측은하게 생각하였다.
하룻밤을 자고 날이 새니까 조반을 먹은 뒤에 산으로 같이 나무를 가자고 해명방이 명령을 내린다. 할 수 없이 따라가기로 하고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왔다. 하루는 이 나무를 지고 장으로 가서 팔아가지고 좁쌀을 사오라고 한다. 이곳에서 인가 장터가 있는 데까지는 50리나 되는데 해명방과같이 장작짐을 지고 가서 촌민에게 팔고 좁쌀을 사왔다. 이곳에 있는 동안 회정은 매일같이 산에 가서 장작 나무를 해 가지고 와서 그것을 도끼로 패서 이틀이나 사흘만큼 장에 가서 쌀을 사오는 것이 일과였다.
회정은 이와 같이 날마다 해명방을 따라 다니며 나무를 하면서도
「빙장어른, 관음진신은 언제나 친견하게 되겠습니까. 」
하고 물으면
「그러한 성현을 친견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여기서 한 10년은 살아야 뵈올지 말지 하다. 잔소리 말고 꾹 참고 나와 같이 나무장사나 하고 살아가자.」
이 말을 들은 회정은 이곳을 떠날 생각으로
「빙장님, 저는 오늘 친정을 갔다 와야 하겠기로, 오늘 떠나야 되겠습니다. 」
하였더니 해명방은
「왜 백년이나 살 것 같더니 별안간 떠난다고 하느냐. 」
「도 그렇게 떠날 생각은 아니하였는데 오늘이야 말로 울적하게 고향생각이 나서가보려고 합니다. 」 「그렇다면 가보아라. 몰골옹인가 문수인가 하는 늙은이가 공연히 너에게 이 곳을 가르쳐 주어서 네가 어수선하게 왔다 갔다 하며 소란만 펴게 하였구나.」
하고 몰골옹을 나무란다.
「여보 보덕각시, 나는 오늘 떠나겠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잘 있어주오.」
하였더니
「잘 가십시오, 먼 길에 몸 조심하셔서 잘 다녀 오세요. 」
하고 아무 애처로운 표정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한즉 그의 아리따운 인물과 해박한 지식과 성품, 그리고 고상한 태도가 인상적이어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나 한평생을 산골에서자식 하나 없이 나무장사만 해먹다가 죽을 것이 안타까워서 떠나려고 결심한 것이다.
「보덕각시, 또 생각이 나면 돌아오겠소. 그동안 아버님 모시고 잘 있어 주시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잘 가세요.다시 찾아오지 아니하여도 좋으니까 세상으로 돌아가서 참한 여자가 있거든 장가 들어서 유자생녀하고 잘 사세요.」
보덕은 이와 같이 담담하게 말하고 눈물 흘리는 법이 없다. 회정은 이상한 여자도 다 있다 생각하고 내가 귀신한테 흘렸다가 가는 것인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아니하였다.
회정은 이왕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길이니 몰골옹 영감을 찾아보고 인사나 하고 가리라 생각하고 재를 넘어서 몰골옹 노인의 집으론 찾아갔더니
「그래 해명방도 찾아보고 관음보살의 진신도 친견하였느냐. 」
「해명방은 뵈었지마는 관음진신은 이내친견하지 못하고 갑니다. 」
「이 박복한 중아, 네가 가면 어디로 간다는 것이냐. 이 못난 것아, 그 해명방이라는 이는 보현보살이요, 그의 딸이라고 하는 보덕각시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인데 그녀와 부부가 되어서 47일이나 같이 한방에서 지내고 가면서도 관음진신을 못 보고 간다고 하느냐.」
회정은 깜짝 놀라면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할아버지는 누구십니까.」
「나는 너에게 길을 인도한 문수보살이지 .」
회정은 환희심을 내서 무수 백배로 몰골옹에게 예배를 하고 다시 앞산을 넘어서 보덕각시의 집을 찾아갔더니 해명방도 보덕각시도 온데 간데 없고 초가 삼간집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빨래 빨던 개천과 나무패는 마당만 있을 뿐이다. 회정은
「보덕 각시, 보덕 각시 .」
하고 소리쳐 불러 봤으나 물 흘러가는 소리와 바람 소리 뿐이요, 보덕각시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회정은 주먹으로 자기가슴을 치며
「죄의 업장이 두터워서 보현관음의 두 성인을 한달 이상이나 모시고 지나고도 그 정체를 몰랐구나.」하고 통곡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는 발걸음을 옮겨서 산을 넘어서 몰골옹 노인이나 다시 한 번 만나서 넉두리와 푸념이나 하고 갈까 하고 찾아갔더니 이번엔 몰골옹도 오두막집도 어디로 떠나갔는지 사라지고 낯익은 검은 바위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희한한 일이다 금방 보고 갔다가 왔는데 없어지고 말았다.
회정은 성현의 조화가 이런가하고 빈터를 향하여 절만 하였다.
그래서 허탈감을 느끼면서
「성현의 신통은 귀신도 곡할 노릇이구나.」
생각하고 송라암에서 다시 백일동안의 관음기도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세 성현을 친견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한 참회와 속죄의 기도요, 그 가운데 보덕가시를 또 한번 만나 보겠다는 것이었다.
회정이 정성을 다 바쳐서 백일기도를 마치는 날 방이었다.
고단하여 법당에서 나와서 뒷방으로 들어가서 몸을 장판에 붙이고 잠이 들었는데 꿈 가운데 전과 같이 귀부인이 나타나더니
「이 천치야. 내가 틀림없이 가르쳐 주어서 관세음보살과 47일이나 같이 동거하게 하였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뛰어 나와서 또 만나게 해달라는 거냐. 내일 아침 한나절에 만폭동(萬瀑洞)으로 올라가면 관음보살의 진신인 보덕각시를 만날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한다. 회정이 깨고 보니 꿈이었다. 회정은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만폭동으로 올라갔다.
멀리서 보니 소복을 한 젊은 여자가 폭포가 흘러가는 바위 위에서 머리를 감아 빗고 앉아 있는 것이 아딘가 걸음을 빨리 걸어서 바싹 다가갔더니 틀림없이 양구 해명방에서 47일이나 한방에서 살던 보덕각시가 분명하다.
회정이 너무도 반가워서
「보덕각시!」
하고 소리를 치며 손목을 잡으려 하니까 사람은 온데 간데가 없고 이상한 오색 빛의 날개를 가진 새 한마리가 팔팔 날아가고 만다.
그래서 새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쫓아갔더니 이번엔 새도 온데 간데가 없고 폭포수가 흐르다가 고여 있는 돌반석의 숲이 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니까 보덕각시가 높은 언덕위에 서 있는 모습이 물속에 비추어 있는 것이 아닌가.
회정이 고개를 들어서 언덕위를 쳐다보니까 그 언덕에 굴이 하나 있는데 보덕각시가 그 굴앞에 서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회정이 기어올라 가니까 과연 보덕각시가 방긋이 웃으며
「이 험한 곳을 올라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지난번 해명곡에서 47일 동안이나 나와 같이 한 이불속에서 서로 끌어 안고 잠을 자고 지냈으니 그 인연은 백겁천겁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인연입니다.
그런즉 스님은 이 곳에서 수도나 잘 하고 계십시오.
그 때에 해명곡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해명방은 보현보살의 화신이시고 몰골옹노인은 문수보살의 화신이시고 스님은 신라 때에 이 굴속에서 공부하시던 보덕대사의 후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석굴 속에는 스님이 공부하실 때의 사용하던 경책과 불기와 촛대와 향로 같은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들어가서 찾아보십시오.
스님이 이곳에만 오래계시면 내가 종종 현신을 할 터이니 그리 아십시오. 」
하고 인홀불견으로 없어지고 만다. 회정이 그 굴속으로 들어가서 찾아보니 경책과다기, 향로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회정대사는 바위 위에 「상주진신 관자재보덕(常住眞身 觀自在普德)」이라 새겨놓고 그 앞에 초암을 짓고 300일 동안이나 관음기도를 하고천수주문을 외웠다. 회정대사는 그 뒤 경기도 강화군 상산면에 있는 보문사까지 창건한 스님인데 신라시대의 보덕대사의 후신이라고 일컬으며 보덕각시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금강산 만폭 등에 구리쇠 기둥으로 괴이고 있는 보덕굴은 보덕대사의 굴도 되고 관음화신인 보덕각시의 굴도 되는 것이다. 보덕굴은 해방전까지도 기도 성지로 이름이 높은 곳인데, 그 주변에는 관음조라는 아름다운 새가 날아다니며 기도 온 손님의 신앙심을 돕기도 한다.
회정대사는 실재 인물로서 향나무 속에 묻혀 있는 보덕굴을 다시 발견하기도 한분인데 만폭동에서 보덕각시가 머리를 감던 세두분(洗頭盆)이라는 곳이 지금까지도 패여 있으며 보덕각시의 그림자가 물에 비추었다는 영아지(映娥池)라는 것이 얼마 전까지도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3.8선 이북이 되어서 보덕굴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그 존재여부도 알 수가 없는 것이 답답한 일이다.
<韓國寺刹史料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