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국공주의 기도

노국공주의 기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송도를 빼앗긴 고려 공민왕은 피난길에 올랐다. 왕비(노국공주)는 물론 조정의 육조 대신들과 함께 남으로 내려오던 공민왕 일행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을 지날 때였다.

「딩~잉」

「딩~잉」

어디선가 아름다운 범종소리가 울려 왔다. 신심이 돈독한 왕은 행차를 멈추게 하고 말에 서 내렸다.

해질녘 인적 드문 계곡에 메아리치는 범종소리는 마음이 착잡한 공민왕을 더욱 숙연케 했다.

「오! 참으로 성스러운 종소리로구나. 어디서 울리는 소리인지 알아보도록 해라.」

「저 종소리는 아마 인근에 위치한 국청사에서 울려오는 소리인 듯하옵니다. 」

「국청사란 어떤 절인고? 」

「일찍이 신라 진평왕 30년 원광법사가 창건한 의천 대각국사께서 천태교를 개설하고 일승법을 설파한 절입니다. 」

공민왕은 문득 대각국사가 주석했던 국청사에 가서 위기에 처한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도하고 싶었다.

「짐은 이 길로 국청사에 들어가 기도를 올릴 것이니 행선지를 돌리시오.」

「국청사가 있는 마니산 쪽으로 가려면 큰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마를 메고 강을 건너기 는 어렵습니 다. 」

「내 꼭 저 종소리가 울리는 절에서 기도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전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강의 양쪽에 누대를 짓고 밧줄로 임시 다리를 놓도록 하겠습니다. 」

대신들은 신하들을 시켜 곧 칡넝쿨과 가죽을 섞어 튼튼한 밧줄을 꼬게 했다. 양쪽강가를 이은 밧줄 다리가 놓아지자 임금이탄 가마를 밧줄에 매단 다음 가마를 끌어당겨 임금은 무사히 강을 건넜다.

이 일로 인하여 누대를 높이 세우고 다리를 놓았다 하여 지금도 이 강마을을 누교리라고 부르며 또 육조대신이 쉬었다 하여 육조동이라 부른다. 국청사에 도착한 왕은 옥새를 왕비에게 기거케 했다.

그 봉우리는 경사가 심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왕비를 몹시도 사랑했던 공민왕은 하루도 왕비를 안보고는 지낼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왕은 소가죽을 이용하여 망탑봉과 왕비가 있는 봉우리를 왕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게 했다.

공민왕은 왕비가 보고플 때면 언제든지 가서 만날 수 있도록 해놓은 후 육조 대신들과 함께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왕비도 처소에서 기도입재를 하고는 나라의 안녕을 간곡히 기원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크신 가피력으로 북쪽의 오랑캐를 물리치시어 이 나라 백성들이 평안케 하여 주옵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

공민왕도 왕비도 육조 대신 그리고 신하들까지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왕은 왕비가 잘 있는지 궁금할 때면 왕비의 처소를 찾아 간곡히 기도하는 왕비의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마마, 이 곳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오니 너무 심려치 마옵시고 기도에만 충실하옵소서.」

「고맙소. 갈 지낼 줄 알면서도 과인의 마음이 놓이질 않아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가야만 기도가 잘 되는걸 어찌하겠소. 내 오늘부터 기도가 끝날 때까지 곤전의 말대로 해보리라. 」

그렇게 하여 백일기도가 끝나는 밤 왕비의 꿈에 대각국사가 나타났다.

「중전마마의 극진하신 기도에 부처님께서 감동하시어 오랑캐를 물리쳐 주시겠다는 수기를 내리셨습니다. 대왕마마와 중전마마께서는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온 곳을 바라보시면서 염주를 한 알씩 돌려주십시오.」

붉은 가사를 입은 대각국사는 큰 단주를 굴리며 지긋이 눈을 감은 채 정중히 아뢰고는 왕비의 손에 염주를 들려줬다.

왕비는 손에 들려 있는 염주를 돌리면서 북쪽으로 바라보았다. 아,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마치 콩알이 손톱에서 튕겨나가듯 염주를 돌릴 때마다 홍건적이 한 놈씩 한 놈씩 북쪽의 구름 속으로 튕겨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왕비는 너무 기뻐서 꿈속에서 열심히 염주를 돌리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홍건적이 다 물러가고 기쁨을 감추지 못해 왕의 손목을 잡는 순간 왕비는 꿈에서 깨었다.

기도를 마친 왕은 회향식이 끝나자마자 왕비에게 달려갔다.

왕비는 간밤 꿈 이야기를 왕에게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왕은 기뻐하면서 말했다.

「중전, 참으로 고마운 일이구려. 틀림없이 부처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실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 소.」

그 길로 공민왕은 정세운을 총지휘관으로 삼고 홍건적을 토벌하라고 명을 내렸다. 홍건적은 그때 개경을 포위하고는 눈이 많이 와서 더 이상 쳐들어오지 못하고 방비가 해이해져 있었다.

「장군과, 적병들의 방비태세가 아주 허술한 상태 입니다. 」

「음, 수고했다. 」

적의 형세를 염탐한 정세운은 그날 새벽사방에서 일제히 적을 공격하는 작전으로 홍건적을 물리쳤다. 「설마」

하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고려의 군사력을 얕본 홍건적들은 잠자리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도망치다 대부분 얼어 죽었다. 압록강을 제대로 건넌 적병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난이 평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공민왕은 한없이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왕비를 대동하고 다시 환궁을 서두르던 왕은 국청사 부처님 가피로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 편군안민케 되었다 하여 절 이름을 국청사에서 『영국사』로 바꾸도록 하고는 친히 편액을 써서 내렸다.

그 후 왕비가 거처하던 봉우리는 옥새를 무사히 보관한 곳이라 하여 옥새봉이라 불리 우고 있다.

<한국지명연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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