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귀신

인색한 귀신

석존께서 왕사성(王舍城)의 북쪽에 있는 가라다 새(鳥)가 서식하는 죽원(竹園)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성중에 한 장자가 살고 있었다. 이 장자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거의 석존께 가서 그의 가르치심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석존께서 하시는 선법을 듣고 마음속에 청정심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와 곧 어머니를 만났다.

그는 당장 출가하고 싶은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뜻을 말하고 의논해 보았다.

『어머니, 저는 불법으로 출가하여 득도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요.』

『네가 바라는 출가도 도리에 맞는 소리이고 또 어미도 허락하고 싶다만 너도 생각하면 알테지만 자식 이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지 않니, 그런데 네가 출가해 버리면 우선 내가 너무 쓸쓸해 어떻게 살겠어. 그러니까 내가 죽거든 그때는 네 마음대로 출가를 하든지 어쩌든지 하려무나.』

어머니의 말을 듣자 자식은 차마 뿌리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당분간 출가를 단념했다. 오직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어머니가 사는 동안에는 효도하리라 생각했다.

그는 번 돈은 언제나 모조리 어머니에게 바쳤다.

『어머니, 염려하시지 말고 돈은 마음대로 쓰십시오. 만약 쓰시고 남는게 있으면 달리 복업을 위해서 보시하십시오.』

아들이 늘 이렇게 말했건만 그 어머니는 쓰다가 남은 돈이 있어도 절대로 누구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없었다. 오직 돈만을 소중히 여겨 돈이 쌓인 위에 돈을 더욱더 모으려 애썼다. 돈이 그득히 모이면 그녀는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땅속 깊숙이 묻어두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걸식하러 왔다. 어머니는 그 중을 보고 손을 흔들며 모욕했다.

『아아, 저 귀신이 왔구나. 』

하고 외치자, 아들은 그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못마땅했다.

(어머니는 왜 저렇게 음식을 아껴서 남에게 자비를 베풀지 못할까?)

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어머니에게 언제나처럼 너무 아끼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비로써 베풀기도 좀 하라고 호소했다. 이 번에도 스님에게 그렇게 푸대접하는 게 아니라고도 간곡히 타일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말은 듣는둥 마는둥, 자신의 인색함을 감추려는 듯 오히려 그 중을 나무라면서 겨우 조금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은 그제서야 많은 보시를 하고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갔다. 근구정진(勤求精進)하여, 정법(正法)을 열고, 형식에 맞도록 선정사유(禪定思惟)하며, 생멸(生滅)의 법을 깨달아, 모든 윤회(輪廻)는 끝나고 오악취(五惡趣)를 초월하여 이 세상에 모든 번뇌와 미혹으로부터 떠나며, 그 자신의 몸에는 애착을 지니지 않고 그 마음은 오직 평등하여, 하늘처럼 높고 넓게 개어서 오랜 일체의 번뇌를 단절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는 아라한의 위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대범천(大梵天), 제석천(帝釋天) 등 제천(帝天)은 모두다 이 성자를 존중하고 찬양했다.

이 때, 이 성자는 갠지스강 기슭의 초암(草庵)에서 선정(禪定)을 닦고 있었다.

이 때 홀연히 한 귀신이 성자 앞에 나타났다. 발가벗은 알몸에 검고 흉칙하게 생긴 모습, 마치 가지도 없는 둥치를 그슬린 것과 같았다. 머리카락은 풀어헤쳐 산발하고, 커다란 배와 작은 목, 수족과 관절이 모두 불에 타서 오그라들고 문들어졌는데, 큰 소리로 구슬피 통곡하면서 서 있었다.

성자는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가엾게 생각하며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귀신은 괴로운 듯 흐느끼며 말했다.

『나는 전세에 당신의 어머니였소.』

귀신은 숨을 허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죽은지 오늘이 꼭 이십오년째 됐습니다. 지금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서 기갈(飢渴)의 고통을 받으며, 음식물이나 물은 이름조차 들을 수 없고, 큰 강이 보이길래 이제야말로 실컷 물을 마시겠구나 하고 그 강에 가보면, 그 강물은 곧 바싹 말라 버립니다. 또 멀리 과실 숲이 보이길래 이제야 말로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기뻐서 달려가 보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지나다보니 한 순간도 즐거움이란 없이 괴롭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거룩하신 성자시여, 나의 괴로움을 구해 주십시오. 나에게 약간의 물을 먹도록 해주십시요.』

성자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고 슬펐다. 그는 귀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렇게 된 것도 전생에 복업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악도에 떨어진 것입니다. 참다운 마음을 일으켜 전생의 죄과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타이르자 전생에 자기 모친이었다는 아귀는,

『나는 물건에 너무 인색했던 까닭에 그 마음이 가리워져 모든 복전(福田)에는 아직 한 번도 보시한 일이 없었습니다. 옛날 지냈던 그 많은 가지가지 보물과 재산은 전부 집 밑 땅속에 깊이 묻어 두었으니 부디 빨리 가서 이것을 파내가지고 대시회(大施會)를 열어 승문이나 바라문에게는 음식을 공양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재물을 나누어 주며, 제불과 제성현에게는 각각 정성을 다해 공양을 드리고 내 이름을 붙여 아무개가 참회한다고 성심, 성의를 다한다면 내 몸도 하루속히 이 무지무지한 고통에서 놓여 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곧 잘못을 회개하십시오. 죄는 곧 소멸될 것입니다.』

『나는 전세에 부치심이 없었기에 때문에 이와 같이 발가벗은 알몸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악업을 짓고도 마음이 태평하여 참회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죄업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끝없이 가지만, 만약 도중에 발심하여 참회만 한다면 그 죄의 결과는 그 이상 더하거나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이제 이미 발심하셨으니까 어찌 이 세상에 더 머무를 수가 있겠습니까?』

성자는 이렇게 어머니를 타일렀다. 그리하여 많은 친척들을 모두 초청하여 옛집으로 돌아가 땅속에서 재물을 파내어 모친의 희망대로 대시회(大施會)를 개최하고 최상, 최고의 찬과 음식물 등을 만들어 삼보(三寶) 및 바라문, 거지 등을 공양하고, 모든 가난한 자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줘서 그들을 만족시켰다.

그때 성자의 어머니는 한 쪽 구석에 서서 이 광대한 집회를 보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아아, 바라옵건데 세존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빌었다.

또한 성자는 오체를 땅에 던지며 높은 소리로 어머니를 위해 그 이름을 일컬으며,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이 선업을 용납하시와 빨리 이 사람에게 해탈을 얻게 해 주옵소서.』

하고 빌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방편력으로써 높으신 덕과 위엄이 가이하여 설법을 하셨다. 모인 백천의 중생들은 법을 듣고 모두 깨우침을 얻었으며, 아귀(餓鬼)도 또한 그 고통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어서 평안히 그 수명을 바쳤다.

성자는 그 후 또 선정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행방을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느 재산을 많이 지닌 귀신 가운데 태어나 있었으므로 성자는 거기 가서 옛날의 인연을 말한 후,

『빨리 발심하여 보시행(布施行)을 하십시오. 이제는 조금이라도 복업을 닦고 하루 빨리 진리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고 간절히 타일렀다.

성자의 친절한 교화를 들은 귀신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나는 보시라는 것을 할 수 없어! 』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성자는 이 말을 듣고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하하하.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요. 아직도 물건을 아끼며 인색한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까? 흑업(黑業=四業의 하나. 암흑 부정의 고통을 초래한다는 악업으로써 백업의 반대인 말)을 모르기 때문 입니다.

그런 짓을 하고 있으면 점점 죄업 때문에 다시 헤어날 길 없는 극악의 심연에 잠겨 가라앉게 됩니다. 참으로 두렵고 두려운 일입니다. 도대체 무섭지도 않습니까! 』

하고 별별 방편을 다해서 유도 교화한 끝에 겨우 백포(白布) 상등품 두 필을 보시물로 얻었다.

성자는 이것을 많은 승려들에게 베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돈으로 바꿔놓지 못해서 한 승려에게 조심해서 감독하라고 맡겨두었다. 그런데, 그 귀신은 아무래도 물건을 집착하는 인색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날 몰래 들어와서 다시 훔쳐가 버렸다. 놀란 것은 그 감독을 맡았던 승려였다. 당장 뛰어가 이것을 그 성자에게 알렸다.

성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는 듯,

『흠,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서 만나보지.』

하고 곧 귀신에게 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백포 두 필이 거기에 있었다. 성자는 그것을 다시 가지고 왔으나 또다시 귀신이 아깝게 생각하고 훔쳐가니 또 가서 되찾아오길 무려 세 차례, 이 때문에 그 감독을 맡았던 승려가 매우 귀찮아했다.

『에잇, 그냥 두면 귀찮기만 한걸.』

하고 세 번째 도난에서 찾아왔을 때, 이것을 적당히 찢어서 많은 승려들에게 나눠주어 버렸다. 이것을 받은 승려들은 그 백포로 각각 바꿔 입을 옷 한 벌씩을 만들었다. 그래도 귀신이 그 물건이 아까워 단념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 백포로 지은 승려들의 옷을 훔치러와서 그것들을 모두 가지고 가버렸다.

그리하여 석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물건에 집착하여 아까워하는 마음은 큰 과실이다. 그 번뇌에 의해 길이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방편을 나타내어 모든 일체 중생에게 물건에 인색하는 마음의 때를 제거하도록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福蓋政行所集經第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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