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중허마하제경(佛說衆許摩訶帝經) 제11권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민미사라왕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빛깔을 자세히 살필지니, 이는 항상한 것입니까, 무상한 것입니까?”
왕은 말하였다.
“무상한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괴로운 것입니까, 괴롭지 않은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이는 괴로운 것이옵니다.”
세존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바로 항상한 것입니까, 무상한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무상한 것이옵니다.”
또 말씀하셨다.
“이것은 괴로운 것입니까, 괴롭지 않은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바로 괴로운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빛깔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다 이는 무상이고 이는 괴로운 것이 며, 이 뒤바뀐 법의 온갖 것은 내[我]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응당 바른 지혜와 바른 슬기로써 그 진실을 자세히 살펴야 하리니, 저 빛깔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있습니까, 안팎과 거칠고 가늘음과 귀하고 천함과 멀고 가까움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빛깔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는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아니며, 또한 안팎과 거칠고 가늘음과 귀하고 천함과 멀고 가까운 것 따위도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합니다. 대왕이여, 만약 이 5온을 사실대로 환히 알면, 이는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공이요, 내가 없는 법입니다.
다시 바른 지혜로써 그 진실을 자세히 살피면, 과거ㆍ현재ㆍ미래 내지 안팎과 거칠고 가늘음과 귀하고 천함과 멀고 가까운 것 따위가 아닌 줄 알리다.
또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아니할 수 있으면 이것이 참된 해탈이니, 대왕이여, 이 해탈을 얻으면 바로 지혜로운 해탈이며 맑은 행이 이룩되고 할 일을 다 마치며 나와 삶이 이미 다하여 영원히 다시는 윤회의 길에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할 때에 민미사라왕과 8만의 하늘 사람들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바라문과 장자며 일반 평민들 백천 인 대중도 티끌과 때를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이에 민미사라왕은 법의 지견을 얻고 나서 법에 굳건하여 그 탐심과 애욕이 끊어지고 의혹이 없어지며 바른 믿음이 물러나지 않으므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마음은 유순하여졌나이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오니, 가까이 섬기는 이[近事]가 지니는 계율을 지니어 영원히 살생(殺生)하지 않겠나이다.
이제 청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언제나 저의 나라에서 머무시옵소서. 형상 과 목숨이 다하기까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을 받들어 올리며 항상 모자라거나 적게 함이 없겠사오며,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삶이 다하도록 공양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시자, 왕은 부처님께서 잠자코 청을 받으심을 보고 기뻐 뛰놀며 어쩔 줄 모르다가 곧 땅에 엎드려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하고 돌고서는 작별하며 물러났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민미사라왕이 부처님ㆍ세존께서 그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미묘한 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며 법 눈이 깨끗해짐을 보고서, 마음에 모두 의심을 내며, ‘이 왕이 어떻게 하여 부처님ㆍ세존을 만나서 문득 법을 얻어 듣고 법 눈이 깨끗해짐을 증득하며 티끌과 때를 없애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자, 부처님께서는 환히 아시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 민미사라왕은 과거에 선한 업을 지어서 할 일이 결정되었고 과보가 어긋나지 않았도다. 이제 인민의 왕이 되어 큰 복과 덕을 갖추었나니, 전생의 원인으로 받는 과보가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땅ㆍ물ㆍ불ㆍ바람 등의 바깥 경계가 성숙될 때에 쌓임의 경계와 여섯 감관의 온갖 좋고 더러움은 지었던 선악의 업을 따라서 모두가 다 얻게 되므로 과보는 허망하지 않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짓는 선과 악은
백겁이 지났다 하더라도
원인된 업은 파괴할 수 없으며
과보도 마침내 저절로 얻느니라.
“비구들아, 과거의 세상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이름은 아라나비(阿囉曩毘)이시며, 열 가지 명호를 완전히 갖추셨고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시었느니라.
이 때에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말씀하시어 교화하며 이롭게 하신 뒤에 열반에 드셨으므로, 그 제자들은 그의 사리를 거두어서 깨끗한 땅을 선택하여 미묘한 탑을 건립하고서, 다시 여러 가지 향과 꽃을 언제나 공양하였느니라.
이로부터 오랜 세월을 지나서 전륜왕이 세간에 나왔으며 이름은 갈리계(羯里計)였다. 이 때에 병사들이 18구지나 있었는데 언제나 이들을 거느리고 공중을 날면서 돌며 살폈고, 또 7보(寶)가 언제나 앞에서 인도하였었느니라.
뒤에 어느 날 탑 위를 지나가는데 어떤 허공의 신이 그 윤보를 붙잡았으므로 공중에서 머무르며 나아가지 못하는지라, 갈리계왕은 이 일을 생각하면서, ‘이제 나는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윤보가 저절로 머물렀으니, 이는 복이 다하여 이런 현상을 당한 것일까?’라고 하자, 그 허공의 신이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당신은 복이 다한 것이 아닙니다. 아래에 아라나비 부처님의 사리탑이 있으므로, 똑바로만 가리키는 윤보인지라 곧게 나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갈리계왕은 18구지의 공중을 날던 병사들과 함께 동시에 내려가 탑 처소에 나아가서 왕과 권속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같이 부처님의 탑을 닦고 깨끗하게 한 뒤에 여러 아름다운 꽃을 흩고 보배 향을 사르며, 또 갖가지 풍악을 울리면서 공양을 하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서원을 세우되, ‘저희는 오늘에 부처님을 스승으로 섬기며 공양을 베푼 여러 가지 공덕의 과보가 헛되지 아니하며 미래에 얻게 하여지이다’ 하였나니, 비구들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갈리계 전륜성왕과 여러 권속들은 바로 지금의 민미사라왕과 그 권속들이니라.
이 비구들아, 저 아라나비 정각의 탑에 공양한 갖가지 공덕으로 수없는 백천 구지 겁 동안 감응하여 천상과 인간에서 맨 위의 쾌락을 받아야 했으며, 이 본래 서원한 힘 때문에 이제 나를 만나서 다시 공양을 하여 얻게 된 공덕은 아라나비 정등정각에게 한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비구들아, 일체 중생들이 검은 업[黑業]을 지었으면 검은 업을 이어받고 흰 업[白業]을 지었으면 흰 업이 끊어지지 않으며 혹은 가지가지의 업을 지은 것 역시 그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얻게 되는 과보는 모두 원인인 업을 따르나니,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서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말해야 하리라.”
그 때 모임 안의 여러 비구들은 민미사라왕이 부처님에게 법을 듣고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읨을 보았으며, 또 말씀하신 저 옛날의 일을 들었었는데, 오로미라는 의심을 일으키되, ‘나는 어찌하여 세존께서 신통을 나타내며 갖가지로 교화를 해서야 마음을 돌릴 수 있었으며, 저 나제 가섭은 말씀만을 따라서 교화를 받으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크게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며 일체지를 갖추셨으니, 반드시 우리들의 의혹을 끊어 없애 주시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여쭈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원인을 닦으면 과보를 받으며 반드시 허망하지 않느니라.
비구들아, 과거의 겁 동안에 사람의 수명 2만 살일 때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명호는 가섭(迦葉)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 세존이시니라.
그 부처님 또한 바라나국 녹야원에 계시면서 크게 부처님 일을 지어서 교화하고 이롭게 하기를 마치시자, 곧 열반에 드셨느니라.
이 때에 세상에는 왕이 있어서 이름은 갈리계(羯里計)였는데, 언제나 그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다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왕은 갖가지의 향나무로써 세존을 화장하고 다시 우유 즙으로써 남은 불을 뿌려 꺼서 곧 사리를 거두어 네 가지의 보배의 병에 담아서는 또 좋은 땅을 골라 큰 보배 탑을 일으켰으며 그 탑의 높이 솟은 양은 1유순이었는데, 왕과 인민들은 언제나 공양을 하였느니라.
이 때에 그 나라 안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집안이 큰 부자이어서 비사문천(毘沙門天)과 같았으며 권속들이 많고 쾌락이 자재로웠느니라. 먼저 다른 성바지의 장자와 벗이 되어서 언제나 부처님의 탑에 널리 공양을 하다가 뒤에는 그 문중에 장가를 들어 인척이 되었느니라.
세월이 오래되어서야 세 아들을 낳았는데, 뒤에 장자는 아이가 늙고 병이 들어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이 점점 쇠약해지다가 죽었느니라.
세 아들은 예로써 시타림[尸林]에 장사지내고 이 때에 세 아들은 옛날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아침저녁으로 슬피 울다가, 또 집이 부자임을 생각하여 함께 죽은 이를 위하여 복 짓기를 의논하였는데, 맏형은 인색해서 먼저도 아직 선한 일을 모르던 터라 갑자기 보시하려 함을 듣고서는 처음에 망설였으나 효도의 마음이 있었으므로 곧 허락하면서 맏형은 말하였느니라.
‘보시 외의 몫은 충분히 나누어 쓰자.’
두 아우는 응낙하고 곧 금과 은의 갖가지 재물을 가지고 탑에 나아가서 가장 으뜸가는 공양을 하였느니라.
이렇게 보시하기를 마치고 같이 서원을 세웠느니라.
‘원하옵나니, 선근으로 생기게 되는 과보로써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지금의 바르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이신 가섭의 명칭으로써 그 성씨가 되게 하옵시며,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면 역시 만나게 되어 법을 들어 믿고 알며 보리를 증득하게 하여지이다.’
서원을 세운 뒤에 예배하고 돌고서 기뻐하며 돌아갔느니라.
그 때문에 가섭은 지금 이 성씨를 얻었으며, 나를 만나서 사문이 되고 다시 바른 법을 들어서 더 배울 것이 없는 과위[無學果]를 증득하였느니라.
비구들아, 오로미라가 처음 교화하기 어려웠던 것은 저 전생에 보시를 하려 할 때 마음에 망설임을 지닌 그 때문이었나니, 나는 갖가지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고서야 비로소 살펴 깨닫게 할 수 있었느니라.
나제 가섭이 쉽게 교화된 것은 역시 옛날 보시할 때에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처음과 끝이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아, 그러므로 오로미라와 나제, 아야는 다시 형제가 되고 가섭의 성씨를 얻었으며, 또 나를 만나서 법을 듣고 도를 증득하였느니라.
이것은 옛날의 일이니, 너희들은 진실되게 믿을지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이 가섭의 옛날 일을 말씀하시고 장림탑을 떠나시어 왕사성에서 멀지 않는 곳의 한 나무 아래로 나아가셔서 천의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머무셨다.
이 때에 민미사라왕은 부처님께서 가까이서 머무시는지라, 정사를 세워서 부처님과 승가를 편안히 하여 오래 머무시게 하려 하였다.
민미사라왕이 태자일 때에 언제나 성 밖에 나와서 재미있게 놀았는데, 성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 하나의 동산이 있어서 숲과 나무가 우거지고 샘과 못이 깨끗하여 비록 또 네 철이 있었다 하더라도 꽃과 나무는 언제나 무성하였다.
태자는 사랑하고 좋아하여 사려고 하였는데, 동산이 주인인 장자는 스스로가 늙었을 뿐만 아니라 또 집이 부자였음만 믿고서 태자가 조르는데도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어그러진 말을 하여 태자가 들었다.
“내가 차라리 이 나라를 떠날지언정 이 동산은 내놓지 않으리라.”
태자는 듣고서 좌우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늙은이의 말이 아주 불손하구나. 내가 만약 왕위를 이으면 잊지 않으리라.”
뒤에 부왕 마하발납마(摩訶鉢納摩)가 죽고 나서 곧 정수리에 물을 부어 보배 이름을 전하였으므로, 민미사라왕은 그 왕위를 이어 받고서야 예전의 일을 기억하여 관아에 칙령을 내리어 사신을 보내서 빼앗게 하였는지라, 이 때에 그 장자는 급히 화병으로 곧 죽어버렸다.
목숨이 끝난 뒤에 그 원한으로 독과 악이 쌓이어 이에 동산 안의 뱀으로 나서는 독한 마음을 품고 틈을 노리며 예전의 원한을 갚으려 하였는데, 뒤에 하루는 봄철인지라 왕이 여러 빈과 처녀들을 거느리고 그 동산에 놀러 와서 아주 기뻐하고 즐기며 그의 뜻대로 하다가 왕은 바야흐로 지쳐서 동산 안에서 잠이 들었다.
이 때에 그 독사는 그 짬을 얻은 것으로 여기어 급히 구멍에서 나와 왕을 쏘려고 하였는데, 여러 궁녀들은 흩어 가서 멋대로 놀았다. 왕에게는 친근한 내시(內侍) 한 사람이 있으면서 칼을 들고 모시어 그의 뜻밖의 재난을 방위하고 있던 차에, 가란나가(迦蘭那迦)라는 날짐승이 먹기 위하여 빙빙 돌고 날면서 언제나 동산 안에 있다가 갑자기 뱀이 나온 것을 보고 서로를 부르며 시끄럽게 지저귀자 칼을 잡고 있던 내시가 뱀이 나왔음을 보고서 즉시 그 목숨을 끊어 버렸다.
새들이 아주 시끄럽게 하는지라 왕 역시 놀라 깨며 칼을 잡고 있는 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떠들썩하느냐?”
칼 잡은 이가 말하였다.
“마침 어떤 독사가 나와서 왕을 쏘려 하였는데, 가란나가가 서로 부르며 놀라 떠들어댔으므로 제가 눈으로 보고서 뱀의 목숨을 끊어 버렸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놀라고 털이 곤두섬으로 태자와 여러 대신들을 불러서 같이 이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옛 찰제리(刹帝利)이신 정수리에 물 부은 대왕들은 혹시 몸과 목숨에 해를 입으려 할 적에 충성스런 힘을 지닌 이가 그 어려움을 구제하면 어떻게 상을 주었던가?”
대신이 대답하였다.
“몸과 목숨에 그 재난을 벗어나게 한 이라면, 나라의 반을 나누어서 그 공에 상을 주었나이다.”
왕은 이에 허락하고, 그 나라의 반을 나누어서 가란나가에게 그 공에 대한 상을 주라 하는데, 대신은 대답하였다.
“저 가란나가인 날짐승의 류에게 국토를 준다 한들 무엇에 쓰오리까?”
왕은 대신에게 말하였다.
“이 일은 어떻게 해야겠소?”
대신은 대답하였다.
“보금자리를 지을 만한 많은 대나무를 심어서 그의 본성대로 할 수 있게 하고 다치지 못하게 하면, 이런 것은 될 수 있거니와 나머지는 할 수가 없사옵니다.”
왕은 듣고, ‘좋다’고 말하면서 드디어 그의 아룀을 따라서 동산 밖에 따로 한 군데를 선택하여 널리 대나무를 심어서 가란나가를 두고 사람들이 지키며 상해할 수 없게 하였다.
왕에게 친 외삼촌이 있어서 본래 신선의 도를 섬기며 언제나 고요한 데를 구하여 거기에 나아가 닦고 익혔으므로, 왕은 가란나가 대나무 숲이 여러 더러움이 없었는지라 임시로 편히 살게 하였는데, 세존께서 비구들을 데리고 성에서 가까운 나무 아래의 한 데서 쉬심을 보고 거기를 드려서 정사를 세우려고 생각하며 왕은 수레를 차려 몸소 부처님께 나아가서 두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왕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며 갖가지 방편으로써 교화하 여 기쁘게 하고, 다시 힘써 나아가 마땅히 맨 위의 고요한 쾌락을 구하도록 권하셨다.
이 때에 왕은 법을 듣고, 기뻐하며 정수리로 받들며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합장하여 엎드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과 여러 성인들께서 나의 궁전에서 내일 아침에 공양 받으시기를 청하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셔서 허락하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곧 잠자코 계시므로, 그 때에 대왕은 부처님의 잠잠함을 보고 이미 청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서 기뻐 뛰놀며 예배하고 돌아갔다.
이에 관아에 하명하여, 즉시 이 밤에 급히 갖가지 음식과 향과 꽃을 마련하며 모두를 평상보다 갑절이나 맛있고 깨끗하게 하고, 다시 칙명하여 궁성의 안팎과 네거리 길과 마을에 이르기까지 모두 엄숙하고 깨끗하게 하고서,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즉시 사람을 시켜서 세존께 아뢰었다.
“음식이 이미 마련되었사오니, 청컨대 부처님께서는 강림하소서.”
이에 세존께서는 천의 아라한들과 함께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앞뒤에서 둘러싸여 왕궁으로 나아가셨다.
왕은 문 끝에서 향로를 가지고 향을 사르며 세존께서 이르시기를 기다리다가 부처님께서 도착하시자 영접하여 들여서 앉게 하시니, 여러 성인들 역시 저마다 자리에 나아갔다.
왕과 그의 권속들은 우러러보며 예배하기를 마치고 음식을 받들어 올리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며 기뻐하면서 공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성인들과 잡수기를 마치고 손을 씻으시자 왕과 권속들은 즐거이 법을 들으려 하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니, 저마다 자세히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받았다.
왕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떨어지며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제 가란나가 대나무 숲에 부처님의 정사를 지으려 하오니,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받아들이옵소서.”
세존께서는 잠자코 계시자, 왕은 부처님께서 허락한 것으로 알고 곧 금의 병을 가져다 부처님의 손에 물 붓고 받들며 베풀기를 마치고서 말하였다.
“원하옵나니, 부처님께서는 뜻대로 하옵소서.”
곧 세존을 위하여 널리 지어서 엄숙하게 주셨으므로, 부처님과 성인들은 뜻을 따라 머무셨는데, 가란나가 대나무 숲 정사[竹林精舍]는 이로 인하여 세워졌다.
그 때 세존께서는 뒤의 한 때에 그들을 위하여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였으므로, 여러 성인들과 함께 가란나가 대나무 숲 정사를 떠나서 한림(寒林) 속으로 나아가 거니시다가 앉아 계셨다.
이 때에 왕사성에 어느 한 장자가 부처님과 대중을 다음 날 아침에 공양을 청하고서 그 밤에 여러 권속들과 종과 수종들과 함께 같이 음식과 향이며 꽃들의 일을 마련하였다. 이 때에 급고독(給孤獨) 장자가 일이 있었으므로 왕사성에 이르러서 그 집을 지나가다가 밤이 되어 묵던 차에, 그 장자의 집 안의 늙은이거나 어린이들이 모두 잠도 자지 않고 음식이며 진기한 반찬들을 만듦을 보고서 괴이히 여겨 물었다.
“장자의 집에서는 나이 많은 이거나 젊은이들이 잠도 자지 않고 음식을 만드시는데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왕을 청하십니까, 대신을 청하십니까? 친척들을 위한 모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장자는 대답하였다.
“저는 왕과 대신을 청한 것도 아니고, 또한 친척이 모이는 일도 없습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셔서 1천의 성인들을 거느리고 이 나라에 노닐며 교화를 하시는데, 왕과 권속들과 대신과 일반 평민들이 모두 다 귀의하여 차례로 공양을 합니다. 저는 그 부처님과 성인들을 위하여 내일 아침에 재를 베풀 것이므로 바로 잠도 자지 않습니다.”
급고독 장자는 이 말을 듣고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감탄하며 또 다시 물었다.
“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저 석씨 성바지 중에서 정반(淨飯)이라는 왕이 있어 하나의 동자가 탄생하였는데, 이름이 실달다이십니다. 전륜왕 형상이 갖추었는데도 버리고 집을 떠나서 고행하고 닦아 익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셨는데, 이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또 다시 물었다.
“어떤 이를 성인들이라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찰제리가 있고 혹은 바라문에서 비사(毘舍)ㆍ수타(輸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성바지의 선남자들이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가사를 입고 올바른 마음으로 수행하며 법을 듣고 깨달아서 모두가 다 아라한의 도를 증득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부처님을 따르는 1천의 성인들인데 제가 공양할 분이 바로 이 분들이십니다.”
급고독 장자는 이 말을 듣고서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고 기뻐하며 뛰놀면서 또 다시 물었다.
“나와 같은 자는 어떻게 하면, 그 부처님과 성인들을 만나뵐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내일 아침에 모두 저의 집에 오셔서 공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급고독 장자는 비록 이런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마음이 미칠 것 같으므로 날이 밝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는지라, 부처님께 가려고 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밤중인데 달은 밝으므로, 곧 문을 나가서 한림으로 나아갔다. 아직 닿기 전에 중도인데 달이 갑자기 구름에 가려지고, 또 하나의 문에 이르렀더니 감히 나아가지 못하겠는지라, 급고독 장자는 하늘이 어둑컴컴하여 곧 두려움이 생기므로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기를, ‘사람 아닌 것 따위가 와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마음에 되돌아가려고 하였으나 발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이 때에 어떤 하늘사람이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장자는 가기만 할 것이요, 물러가려는 마음을 갖지 마시오. 오직 상서로움만이 있으며, 반드시 괴롭게 굴거나 어지럽힘은 없으리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백 개의 수레와 백 마리의 말을 갖가지로 장식하여 중생들이 보게 되면 사랑하고 좋아할 만한 이런 것을 보시한다 하여도, 부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한 걸음에 견준다면 16분(分)에 1만큼의 공덕도 못됩니다.”
또 다시 말하였다.
“장자여, 가기만 할 것이여, 물러가려는 마음을 내지 마시오. 오직 상서로움만이 있으며 괴롭히거나 어지럽히는 일은 없으리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1백의 금 코끼리를 뭇 보배로 장식하여 이를 보시한다 하여도, 부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한 걸음에 견준다면 16분에 1만큼의 공덕도 못됩니다.
장자여, 이에 백의 동녀에 이르기까지 진주와 영락의 뭇 보배로써 몸을 꾸미어 이를 보시한다 하여도, 역시 부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한 걸음에 견준다면 16분에 1만큼의 공덕에도 미치지 못하리다.”
이 때에 그 하늘사람은 곧 몸의 광명을 내어 길을 비추되 그 문에서부터 똑바로 한림까지 닿았는데 마치 달이 한창 밝은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었으므로, 급고독 장자는 하늘 사람에게 물었다.
“바로 어떤 성현이기에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하늘 사람은 말하였다.
“나는 옛날 일찍이 사리자(舍利子)의 어머니 날아라(捺誐囉)입니다. 목숨이 끊어진 뒤에 4천왕의 세계에 났으며, 지금의 이름은 마도사건타마나바가(摩度娑健馱摩拏嚩迦)로서 이 문을 지키고 있으니,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시오. 장자는 가게 되면 반드시 상서로움을 얻으시리다.”
급고독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드물게 있는 일이십니다. 저는 이제 반드시 가서 부처님을 틀림없이 뵙겠습니다.”
급고독 장자는 또 다시 생각하기를, ‘만약 바르게 깨달으신 이가 세간에 나오심이 없으면 맨 위 가는 미묘한 법을 듣게 될 까닭이 없으리라’ 하고, 이에 장자는 그 광명을 받아 걸리는 바가 없이 똑바로 한림에 세존께서 머무시는 곳까지 이르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한림 밖에서 거니시고 계셨는데, 장자는 부처님의 거룩한 덕과 상호가 보통 사람보다도 다름을 보고서 곧 합장하고 물었다.
“바로 세존이시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그렇느니라.”
장자는 몸과 마음의 기쁨이 한량없으므로, 또 다시 물었다.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면
온갖 것에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으며
만약 사람이 애욕에 얽매이면
몹시 시달리며 마음이 그치지 않느니라.
더러운 욕심의 뜨거운 번뇌를 없애면
해탈이 되어 걸리는 바 없으니
마음과 뜻이 조복이 된 뒤면
휴식을 얻어서 편히 잘 수 있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을 말씀하시고서 급고독 장자와 같이 숲 속으로 들어가시어 부처님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니, 장자는 곧 나아가 부처님 두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즐거이 법을 들으려 하므로, 부처님께서는 권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셨다. 세존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시하고 계율을 지님은 천상에 나게 되나니, 비록 다섯 가지 욕심이 자재롭다 하더라도 마지막이 되지 않느니라. 윤회를 면하려 하면, 마땅히 번뇌를 끊어야 하느니라.”
그리고는 선하고 악한 법을 널리 그에게 분별하시자 장자는 이 법을 얻어 듣고 전생의 선한 힘 때문에 깊은 마음으로 생각하며 번뇌가 즉시 없어지므로 마음의 기쁨이 한량없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곧 그를 위하여 널리 괴로움ㆍ쌓임ㆍ사라짐ㆍ도의 4성제를 말씀하시니, 이 때에 장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4제(諦)의 이치를 증득한 것이 마치 깨끗한 흰 옷은 쉽게 그 빛깔이 물들며, 그 물을 들이는 대로 모두 훌륭하게 됨과 같았느니라.
장자는 법의 지견을 얻고 영원히 의혹을 끊으며 부처님ㆍ가르침ㆍ승가에 대한 깊은 믿음이 견고하여졌으므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며 합장하고 엎드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과 가르침이며 승가 등에게 귀의하겠사오며, 가까이 섬기는 이가 지닐 계율을 지녀서 영원히 살생하지 않겠나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장자에게 물으셨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장자는 대답하였다.
“저는 나라 안에서 조금의 재산이 있으므로, 혹은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이 와서 구걸하면 제가 음식과 그 재산들을 보시하였더니, 나라 사람들이 저를 이름하기를 급고독(給孤獨)이라고 하옵니다.” “그대의 나라 이름은 무엇인가?”
대답하였다.
“사위(舍衛)옵니다. 원하옵나니, 부처님과 대중들은 저의 나라에 오시옵소서. 장차 의복ㆍ음식ㆍ침구 ㆍ탕약 등의 온갖 수용을 평생 동안 받들어 베풀겠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와 비구들의 수가 천 사람이 넘는데, 거기에는 정사가 없거니 어디에서 편히 머무르겠느냐?”
장자는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만약 왕림만 하신다면, 급히 세우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크게 사랑하시어 저의 청을 어기지 마옵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께서 잠잠함을 보고 이미 청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서 기뻐 뛰놀며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돌고서 물러났다.
이에 장자는 왕사성에 들어가 경영하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다시 한림으로 나아가 부처님과 대중을 청하였다.
“정사는 염려 마시옵고, 원하옵건대 빨리 강림하옵소서.”
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날부터서 온갖 것을 정지하고, 사위성의 안팎을 두루 돌아다니며 아주 훌륭하고 깨끗한 땅을 구하여 정사를 세워서 부처님과 승가를 계시게 하려 하였는데, 오직 기타 동자(祇陀童子)가 지닌 동산만이 가장 훌륭하였었다.
왜냐하면 이 동자의 동산은 그 땅이 넓고 여러 더러운 것이 없으며 대나무와 나무가 우거지고 샘과 못이 깨끗하며 차가운 바람과 더운 기운이 모두 침입할 수 없고 또 모기ㆍ등에 등의 독을 품은 벌레가 없으며 오직 상서로운 날짐승ㆍ길짐승들이 있고, 또 다시 왕의 성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을뿐더러 법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면 여기에 이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사를 지으면, 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겠구나’ 하며 생각을 하여 마치고, 즉시 동산의 주인 기타 동자에게 가서 말하였다.
“동자여, 괴이히 여기지 마십시오. 나에게는 좋은 일이 있는데 들려 드리려 합니다. 동자여, 감히 진술하는 말씀을 용납하시겠습니까?”
동자는 말하였다.
“일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장자는 일어나 서서 동자에게 말하였다.
“이 동산을 사려고 합니다. 장차 세존과 천의 성인들을 위하여 정사를 세워서 편히 머무시도록 청해야겠습니다. 당신께서 만약 허락하시겠다면, 값은 곧 말씀대로 만들겠습니다.”
기타 동자는 장자에게 말하였다.
“온갖 것은 할 수도 있지만 오직 동산만은 말씀 마십시오.”
장자는 또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건대, 온갖 것은 무상해서 주장할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견고하지 못한 법을 응당 견고한 것으로 바꾸어 하리라.”
동자는 대답하였다.
“내가 알 바가 아닙니다. 다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장자는 또 말하였다.
“부처님이란 만나기 어렵지만 동산은 곧 구하기 쉽습니다. 이제 망설이시면 뒤에 보시하려 해도 미치지 못하리다.”
기타 동자는 비록 이런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마음은 아직 버릴 수가 없었으므로, 이에 언약을 하되 저 장자를 골탕 먹게 하려고 말하였다.
“당신이 금으로써 가득히 그 땅을 깔 수 있다면, 저는 당신에게 주어서 멋대로 하게 하겠습니다.”
장자는 사실인 줄 알고 아직도 참으로 믿지 못하겠다고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동자여, 만약 그렇다면 시관(市官)이 들을 수 있게 하여 양편이 뜻을 지켜서 번복이 없게 해야 하겠습니다.”
동자는 같이 시관에게 들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때에 4천왕은 멀리서 이 일을 알고, ‘부처님께서 지금 세상에 나오시자, 사위성중에 급고독 장자가 기타 동산을 사서 정사를 이룩하려 하는구나. 두 사람이 서로 의논하여 시관을 입회시키려 하니, 나는 이제 몸을 변해서 그 일을 성사시켜 주리다’ 하고, 천왕은 몸을 변해서 시관이 된 뒤에 저자 가게에 와서 엄숙히 바라고 있자 급고독과 동자가 다가왔다.
두 사람이 닿은 뒤에 급고독이 먼저 말하였다.
“나는 저 동산을 사서 정사를 세우려 합니다. 황금을 두루 그 땅에 편다면 즉시 나에게 준다고 하기에 이제 와서 입회를 세우려 합니다. 이 값은 어떠 합니까?”
시관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마음에 이렇다 저렇다 함은 없습니까?”
대답하였다.
“이미 작정한 것입니다.”
시관은 말하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동자는 금을 거두시고 장자께서는 동산을 가지십시오.”
동자는 잠잠하며 다시 어기거나 뉘우침이 없었다.
장자는 그 날부터 급히 수레와 코끼리와 발 등의 종류며 종에 이르기까지 황금을 운반하여 곳곳에 깔기를 마쳤는데, 오직 전면의 조금만 아직 채워지지 못했으므로 장자는 생각하였다.
‘어느 곳간의 금을 가지면 이 땅에 다 펼 수 있을까.’
이러할 즈음에, 동자는 말하였다.
“당신이 벌써 뜻을 돌리셨다면 금을 거두십시오.”
장자는 대답하였다.
“나는 뜻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어느 곳간의 금이면 이 땅에 다 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소. 이 일 때문에 잠시 동안 헤아렸을 뿐이오.”
동자는 생각하기를, ‘기특하도다. 장자여, 이런 큰 재산을 버리면서까지 부처님과 승가를 위하여 정사를 세우시다니’ 하고, 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일찍이 듣건대 만약 바른 깨달음이 세간에 나오시지 않으면 일체 중생들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한다 하였다. 이 보시를 도와야하는 것이 이치에 반드시 맞겠다’ 하고, 곧 장자에게 말하였다.
“다시는 금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이 땅은 드리겠으되 저는 문을 지어 보시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이 함께 이루어지면 공덕 또한 원만하리다.”
장자는 대답하였다.
“나에겐 금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동자께서 그러하신다면 참으로 매우 잘한 일입니다.”
그리고는 금 깔기를 그만두고서 바야흐로 공사를 명하려 하는데 외도가 모두 알고 급히 와서 헷갈리어 어지럽히면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구담 사문은 지금 마갈타국 왕사성에 살고 있지만, 이 사위성의 땅만은 귀하고 이름이 높아서 그의 살 바가 못됩니다. 정사를 세우지도 말며 영접하여 청하지도 마십시오.”
장자는 왈칵 성을 내며 외도에게 대답하였다.
“이 사위성은 그대들의 있을 바가 아니로타. 무엇 때문에 그대들은 일에 상관하느냐?”
외도들은 듣고서 마음에 따르지 않을 것으로 알고 다시 왕에게 나아갔었으나 왕 또한 허락하지 않는지라, 여러 외도들은 부끄럽고 무색해서 마음에 아주 괴로워하며 다시 장자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우리가 먼저 말한 바는 동산 때문이 아니었소. 다만 그들과 우리는 같이 닦지 못합니다. 장자께서 오늘 만약 이를 굳이 고집하신다면, 이야말로 아뢸 것이 있으니 청컨대 서로 어기지 마십시다.
우리가 듣건대, 구담에게는 큰 제자가 있어서 먼저 이미 여기에 도착하였다 하니, 함께 이치를 논란하여 곧 낫고 못함을 가리어야겠습니다. 만약 그가 이기게 되면 정사를 지을 수 있되, 만약 그가 이기지 못하면 무엇 때문에 영접하며 청하겠소? 우리가 이번에 말한 바에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장자는 말하였다.
“그 말씀 매우 좋습니다. 만약 틀림없이 낫고 못함이 결정된다면, 족히 의지할 수 있는 맑고 흐림이 반드시 분명해지고 참과 거짓이 가려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