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첨파비구경(佛說瞻婆比丘經)

불설첨파비구경(佛說瞻婆比丘經)

서진(西晉)삼장법사(三藏法師) 법거(法炬)한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께서는 첨파국 항가(恒伽) 강 위의 법뢰(法賴) 연못가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보름날의 설계(說戒)1)를 위하여 비구들 앞에 앉아 비구들의 마음 속 생각을 관찰하셨다. 그런데 관찰하신 뒤에는 초저녁 한동안을 잠자코 앉아 계셨다.

를 위하여 비구들 앞에 앉아 비구들의 마음 속 생각을 관찰하셨다. 그런데 관찰하신 뒤에는 초저녁 한동안을 잠자코 앉아 계셨다.

그러자 어떤 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초저녁 한때가 이미 지났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앉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계를 설명하여 주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한밤중이 되도록 잠자코 계셨다.

그 비구는 다시 합장하고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초저녁이 이미 지나고 한밤중도 지났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앉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설명하여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여전히 잠자코 계셨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밤중이 지나 새벽이 되도록 잠자코 앉아 계셨다.

그 비구는 세 번째 합장하고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초저녁도 지나고 밤중도 지나고 새벽이 되어 샛별이 나오려 합니다. 비구들이 앉은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부디 계율을 설명하여 주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 중에 부정한 자가 있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도 그 대중 가운데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비구를 두고 이 대중 가운데 부정한 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이제 여기상(如其像)삼매에 들어 그 삼매의 힘으로 이 비구들의 마음 속 생각을 관찰해 보리라.’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곧 여기상삼매에 들어 그 삼매의 힘으로 비구들 마음 속 생각을 관찰하였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비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삼매에서 일어나 그 비구에게 가서 그의 팔을 잡아 문 밖으로 끌어내며 말하였다.

“이 미련한 자야, 떠나라. 너는 여기 머물 수 없다. 어떤 비구도 너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비구들의 배척을 받았다.”

그는 이내 그 비구의 팔을 잡아 문 밖으로 끌어내고 문을 도로 닫았다. 그는 문을 닫고는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셨던 바로 그 대중 가운데 있던 부정한 자를 제가 팔을 잡아 문 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 미련한 자야, 떠나라. 너는 여기 머물 수 없다. 어떤 비구도 너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비구들의 배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초저녁이 이미 지났고 밤중이 이미 지났으며 새벽이 되어 샛별이 나오려 하고 있습니다. 샛별은 오래지 않아 나올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앉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계율을 설명하여주소서.” “그대 목건련이여, 그 어리석은 사람은 세존과 비구들을 희롱하였기 때문에 죄를 많이 받을 것이다. 목건련이여, 만일 대중 가운데 그런 부정한 자가 있는데 여래가 계율을 설명하였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머리가 부서져 일곱 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건련이여,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함께 서로 계율을 설명하라. 다시는 여래가 와서 계율을 설명하지 않으리라. 왜냐 하면 목건련이여, 그 한 어리석은 사람이 그런 허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그 허물과 그 행동을 보았는데, 그는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른 범행자들에게 ‘이것이 깨끗한 행이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목건련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을 깨끗한 행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사문의 허깨비요, 사문의 추악이며 사문의 가시며, 사문의 거짓말이다.’

이렇게 알고는 곧 그를 버려 쫓아내어야 한다. 왜냐 하면 다른 깨끗한 비구들을 파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목건련이여, 마치 벼밭이나 보리밭에 농사가 잘 되었는데 그 가운데 나쁜 풀이 났다고 하자. 그 뿌리도 보리 뿌리와 같고 그 가지와 마디와 잎과 열매도 그러하지만 그 종자가 이루어지기 전에 뽑아 버려야 하는 것과 같다.

목건련이여, 만일 그것이 종자가 되면 그 발의 농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보리 종자를 파괴하는 풀이다. 이것은 보리의 가시요, 보리의 추악이다.’

그리하여 그는 곧 그것을 뽑아 밭 밖에 내어버릴 것이다. 왜냐 하면 다른 깨끗한 보리를 파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목건련이여,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허물을 생각하였을 때, 다른 사람이 그 허물을 보고 그 행동을 보았는데도 그는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른 범행자에게 ‘이것은 깨끗한 행이다’라고 말한다면, 목건련이여, 그가 ‘이것은 깨끗한 행이다’라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가시다. 이것은 사문의 추악이다. 이것은 사문의 거짓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알고는 곧 그를 버리고 쫓아 낼 것이다. 왜냐 하면 다른 깨끗한 비구를 파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목건련이여, 저 농부가 겨울에 큰 노적가리를 타작할 때에 그 곡식의 단단한 것은 한결같이 남겨 두고 다른 검불이나 잎사귀는 모두 바람에 부쳐 날려 보낸 뒤에 비를 들고 그것을 깨끗하게 쓸어 낸다. 왜냐 하면 다른 깨끗한 곡식을 못쓰게 만들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목건련이여,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어떤 허물을 저질렀을 때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또 그 행동을 보았는데, 그가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른 범행자에게 ‘이것은 깨끗한 행이다’라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악이다. 이것은 사문의 가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것을 알고는 그를 밖으로 쫓아낼 것이다. 왜냐 하면 다른 비구들을 파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농부가 물을 찾아서 물을 대고자 하여 아주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숲 속에 들어가 나무를 벨 때 단단한 나무는 도끼날이 잘 들어가지 않고, 마른 나무를 치면 도끼날은 쉽게 들어간다. 그러면 농부는 그 뿌리를 끊고 그 속을 태워 나무 홈통을 만들어 물을 통하게 한다.

그와 같이 목건련이여,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그런 허물을 지었을 때에 남이 그 허물을 보고 그 행동을 보았는데, 그가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른 범행자에게 ‘이것은 깨끗한 행이다’라고 말한다면, 목건련이여,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을 부수는 것이요, 사문의 추악이요, 사문의 가시요, 사문의 잘못이다.’

그들은 그렇게 알고는 곧 그를 밖으로 쫓아낼 것이다. 왜냐 하면 다른 깨끗한 비구를 파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곧 게송을 읊으셨다.

악을 구하고 또 성내고 
원한 품고서 탐욕을 안 버리고 
허깨비와 아첨을 버리지 않는 사람 
그와 함께 살면서 알아야 한다.



사람들 속에 살면서 거짓을 말하며 
스스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온갖 나쁜 행 스스로 짓나니 
나쁜 소견은 즐거운 것 아니다.



갖가지로 거짓말 많이 행하면 
그의 그런 줄 사람들 알고 
모두 다 그와 만나지 않고 
그를 배척해 함께 살지 말아야 한다.



그 때를 알고 깨끗한 행 갖추고 
어떤 말인지 잘 분별하고 
스스로 사문이라 일컫지 않고 
모든 나쁜 행 배척해 버리고.



악한 자와 함께 있지 않으며 
날마다 자주자주 
모두 함께 만나고 또 모여서 
반드시 괴로움 버려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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