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제제방등학경(佛說濟諸方等學經)

불설제제방등학경(佛說濟諸方等學經)

서진(西晋) 월지(月氏)축법호(竺法護) 한역 최윤옥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영취산(靈鷲山)에서 유행하시며 대비구(大比丘)들과 육만 명의 비구와 팔십억 명의 보살과 마갈국(摩竭國)에 있는 육백 만명의 우바새(優婆塞)와 함께 계셨다. 멸도(滅度)가 임박한 최후 말년에 나열기(羅閱祇)에서 하안거를 마치시고 세존께서는 여기상삼매(如其像三昧)에 드시어 이 삼천대천세계를 장엄하셨는데, 비단 번채(幡綵)가 매달리고 온갖 당개(幢蓋)가 드리워졌으며 꽃이 뿌려지고 향이 피워있고 잎이 백천(百千)이나 되는 온갖 연꽃이 진열되었다.

그러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억억(億億) 명의 범천왕(梵天王)이 각각 무수히 많은 억백천의 권속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발아래 머리 조아린 다음 한 곳으로 물러나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였다. 이 대천(大千)세계의 정거신천(淨居身天)ㆍ신령스럽고 위력 있고 존귀하며 세력 있는 이[威靈尊勢]1)ㆍ대신묘천왕(大神妙天王)ㆍ모든 용왕(龍王)ㆍ귀신왕(鬼神王)ㆍ아수륜왕(阿須倫王)ㆍ가류라왕(迦留羅王)ㆍ진다라왕(眞陀羅王)ㆍ마후륵왕(摩睺勒王)도 각각 무수히 많은 억백천의 관속(官屬)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발아래 머리 조아린 다음 한 곳으로 물러나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였다. 그리고 시방에서 각각 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모든 불세계의 신성(神聖)하고 뛰어나며 우뚝하게 절개가 높은 보살대사(菩薩大士)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발아래 머리 조아린 다음 한 곳으로 물러나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였다.

이렇게 와서 모인 무리가 이 삼천대천세계를 꽉 채워 상계(上界)의 삼십이천(三十二天)3)에 이르기까지 빈틈이 없어 그 사이에 지팡이 하나 꽂을 틈도 없고 바늘 한 개 들어갈 틈도 없이 빽빽하였다. 대신(大神)들도 끝이 없어서 천(天)ㆍ용ㆍ귀신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다라ㆍ마후륵이 각각 부처님의 존안(尊顔)을 우러러보며 서 있었는데, 그 몸은 각기 달랐으나 마음은 한결같아 인연을 버리고 평등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편안하신 모습으로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모임에 온 모든 대중들을 세 번 관찰하셨다. 세 번 관찰하신 뒤에 세 번 스스로 살피시어 사자빈신(師子頻申)하시고, 세 번 사자빈신하신 뒤에 세 번 혀를 내미시었다. 세 번 혀를 내미신 뒤에 세 번 혀로 삼천대천세계를 덮으시니 두루 덮이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휘황한 광명이 시방을 비추었다. 이때 대성(大聖)께서 그 혀를 거두시고, 거듭 모여 있는 대중 모두를 둘러보시자 모인 대중들이 모두 일어나 머리 숙여 예배드리고 부처님께 귀명(歸命)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미륵보살대사(彌勒菩薩大士)에게 말씀하셨다.

“아일(阿逸)이여, 그대는 알아야 하리라. 정각(正覺)께서 얼마 안 있어 멸도(滅度)할 것이니,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이 그때이니 묻도록 하여라. 의심나되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모두 여래 앞에서 물어서 후회가 없도록 하라. 대성(大聖)을 마주 대하고 있으니 무엇을 결단하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미륵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때를 아시고 여섯 가지 신통이 명철(明徹)하시어 끝없이 중생을 제도하시니, 선양하여 모든 의심을 결단하지 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수시로 편의(便宜)에 따라 경전의 도를 널리 펴시어 이 법안(法眼)이 영원히 남도록 하소서.”

이때 대신묘(大神妙) 천왕(天王)이 팔십억 명의 정거천인(淨居天人)들과함께 권속들에게 에워싸여 부처님 계신 곳에 왔다. 발아래 머리 조아리고 합장하고 귀명한 뒤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경전은 제제방등학(濟諸方等學)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모든 불(佛)ㆍ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강설하신 것입니다. 오늘 대성(大聖)께서 애처롭게 생각하시어 거듭 펴서 연설하여 주십시오. 불쌍히 여기시어 안온하게 하시고 여래법의 가르침을 오래 보존케 하여 주십시오.”

이때 부처님께서 잠자코 대신묘천왕의 청을 허락하시니, 천왕이 부처님께서 잠자코 허락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세존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아일이여, 마땅히 알라. 모든 과거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 제제방등경전의 요의를 강설하지 않으신 분이 없고, 시방세계의 미래와 현재의 여래ㆍ지진께서도 모두 이것을 말씀하실 것이다.

만일 이것을 선양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고, 경(經)4)을 거스르는 것이며, 모든 성중(聖衆)을 헐뜯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이 경을 말할 때 무익(無益)하다는 생각을 내어 두루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고 경전(經典)을 거스르는 것이며 성중을 헐뜯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삼보를 헐뜯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만일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가 보살승(菩薩乘)을 배우려 하고 모든 경과 그 밖의 이법(異法)에 통달하고자 한다면 그대가 곧 뭇 경의 이치를 분별하여 연설하여 주어라. 만일 문자(文字)를 빠뜨리지 않고 모두 갖추고자 하면 정전(正典)의 가르침을 따르되 스스로 빼지[損]말라.

또 그대 미륵이여,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이 문(門)을 사유한 뒤 말세에 정법(正法)을 보호하여라.”

미륵이 대답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진실로 성인께서 가르치신 대로 신성한 뜻을 전하겠으며 감히 명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이 아무날 밤에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를 얻고 최정각(最正覺)이 된 이후 무여니원계(無餘泥洹界)에 드는 멸도일(滅度日)의 밤에 이르기까지 여래ㆍ지진이 번뇌로 인하여 잘못 생각[意]한 일이 있느냐? 악한 생각[念]으로 잘못된 행동을 한 적이 있느냐?”

미륵보살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다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아무날 밤 최정각을 이룬 날부터 멸도하는 날까지 강설한 것은 모두 진실이고 지성(至誠)이며, 시기적절하고 마땅한 것이어서 허망함이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여래의 선권방편(善權方便)을 분별하지 못하고 진실한 성제(誠諦)의 말을 깨닫지 못하여 오히려 미친 말을 전한다. 그리고는 뜻을 내어 스스로 ‘이 일은 이치에 맞는다. 이 이치는 합당하지 못하다’고 하여 이처럼 정도(正道)를 비방한다. 경을 비방하는 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 나는 이러한 무리들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올 말세의 오탁(五濁) 세상에서 마지막 오십 년에는 비구ㆍ비구니와 우바새ㆍ우바이의 네 무리 중에 보살을 배우는 데 뜻을 두고 과거에 자신이 발원했던 서원(誓願)을 흠모하면서도 외도의 다른 배움에 뜻을 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래를 받들어 모시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과 계율을 보고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문(沙門)이 되어 종성(種姓)을 겸손히 공경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뜻하는 바는 오직 이양(利養)만을 구하는 것뿐으로 종성을 헐뜯어 무너뜨리고 실가(室家)를 욕심내어 질투하고 거업(居業)을 어지럽힌다. 얼굴에는 좋은 빛[好色]이 없고 마음으로 보잘 것 없는 뜻을 사모하고 성품이 개해(開解)하지 않고 관대하지 못한다. 정욕을 없애지 못하고 다급하게 구하는 것이 많아 모든 법문과 삼매의 바른 선정을 행하는 데서 멀어지며 항상 아첨하는 데 머물러 심념(心念)이 각기 다르고 언행(言行)이 같지 않다.

종성을 탐하여 세력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밝은 지혜로 법장(法藏)을 명료히 아는 사람들을 보면 무지(無知)하다고 하며, 아는 것이 없건만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찬탄하고 총명함이 없건만 스스로 총명한 지혜가 있다고 찬탄한다. 불도(佛道)에 의지하여 그 뜻을 건립하였다면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에게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고, 또 선권방편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여야 하는데도 즐겨 믿어야 한다고 강설한 가르침을 이미 멀리 거스른다. 혹 배우는 가운데 다시 말하기를, ‘만일 어떤 경에서 성문사(聲聞事)를 말씀하셨다면 보살행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배울 필요도 없고 또한 들을 필요도 없다. 우리의 법이 아니고 우리의 도의(道義)가 아니어서 성문이나 행하는 것이니, 보살을 수행하는 자는 그것을 배우지 말라. 벽지불법도 이와 같다. 삼가 듣지 말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는 즐겨 믿는 신심에 따라 모든 천신에게 수시로 설법하여 개화시키고 모든 용ㆍ신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다라ㆍ마후륵ㆍ건답화ㆍ사람ㆍ비인(非人)을 가르치되 그 본행(本行)을 따라 해탈에 뜻을 둘 수 있도록 설법하여 개화시킨다. 이렇게 시방 각각에서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중생들을 각기 본행에 따라 인도하여 이익 되게 하니, 제도될 수 있는 마땅한 방편에 의하여 중생을 이익 되게 한다. 지금 이러한 뜻으로 경전을 반포하니, 모두 도탈시켜 도를 얻게 하려 한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그 시대에는 보살을 배우는 이 가운데 속에 번뇌를 품은 사람이 있다. 모든 보살 가운데 강경하여 교화시키기 어렵고 폐악(弊惡)하고 흉포(凶暴)하며 거짓말하고 이간질하며 들은 것이 적고 지혜가 적은 자가 불도를 선전(宣傳)하되 따로 둘로 나누어 ‘보살이 되고자 하면 저 법을 배워야 하고 이것은 배우면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품는 것은 부처님을 비방하고 경전을 헐뜯으며 성중과 다투는 것이니, 목숨이 다하여 몸이 흩어지면 곧 지옥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불에 구워지며 무수겁(無數劫) 동안 고통을 받아도 그 죄를 다하지 못한다. 지옥에서 나오면 다시 빈천한 가문에 태어나 헤아릴 수없이 긴 세월 동안 많은 어려운 환난을 겪은 후에 마침내 수결(受決)5)을 얻으며, 비록 수결을 얻는다 하여도 오탁악세에서 비로소 부처를 이루게 되니, 또한 내가 본래 무수겁 동안 오래도록 고난을 만난 다음 오탁악세에서 최정각(最正覺)을 이룬 것과 같다. 만일 그의 말을 듣고 믿어 받아들이며 독실이 믿고 사유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도 역시 이와 같이 악취(惡趣)에 돌아가게 된다. 그 까닭은 악한 친구를 믿었기 때문이니 그 때문에 이와 같은 환난을 만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겁수를 헤아릴 수 없이 오랜 과거에 이구험성취공청(離垢㷿成就功稱)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80해(姟) 동안 모든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반포하셨다. 이 때 정명(淨命)이라는 비구가 법도강(法都講)6)이 되어 약간의 가르침을 폈는데 말이 부드럽고 변재가 지극히 진실하였다. 그리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권장하여 교화하고 도와 발심토록 하고 평등한 가르침을 현양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환희하며 기뻐하였다. 이때 이구성취공칭여래가 정명비구에게 촉루(囑累)하시기를, ‘훗날 말세(末世)에 정법을 수호하라’고 하시고, 촉루하시고 난 후에 곧 멸도하셨다. 여래ㆍ지진께서 멸도하신 후에 저 비구가 억 년 동안 법품을 집지[執]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선양하였고, 이로 인하여 제제방등경전의 요의를 두루 통달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법을 널리 전하여 모두 믿음을 일으키도록 하되 중생들이 본심으로 원하는 데 따라 분별하여 해설하였다. 팔만 개의 성읍(城邑)을 오가면서 중생의 본원(本願)으로 발의(發意)한 것을 관찰하여 배부르게 하고 기근[飢虛]과 중정(衆情)의 고난을 없애주었다. 그때에 인현(仁賢)7)이라고 이름하는 큰 나라의 성(城)이 있었다. 팔십억이나 되는 백성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또한 그들의 근원(根源)을 관찰하여 설법하셨다. 그때 성 안에 있던 팔십억 명이 혼연히 가르침을 받아 일억 명이 교화되어 보살의 뜻을 내었고, 칠십구억 명이 성문승의 뜻을 세웠다. 이때 정명비구가 일만 명의 보살들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수도처(修道處)로 나아갔다.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법(法)8)이라는 비구가 돌아다니다가 먼 타향(他鄕)으로부터 인현성(仁賢城)에 왔는데 방등경 천여 권을 받들어 지니고 있었고 현재 4선(禪)을 얻어 스스로 대단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명비구는 방등경 십사억 권을 배우고 또 나머지 육백만 권의 경을 익혔다. 이때 법 비구는 인현성에서 오직 한 가지 법[一品法]의 가르침만을 선포할 뿐 때를 따라 그 본행(本行)을 관찰하여 경법을 강설할 줄을 몰랐다. 또한 모든 법계를 깨달아 요달할 수 없어 오로지 공법(空法)으로만 교화하면서 ‘모든 법은 공하여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의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지 공법뿐이어서 ‘죄(罪)도 복(福)도 없다’고 말하며 모든 행(行)을 경멸하였다. 또 자기의 말을 칭찬하여 ‘지금 내가 말한 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과 같다’고 하면서, ‘정명비구가 연설하는 것은 잡다한 것에 의지한 것이며, 뜻과 성품이 깨끗하지 못하고 사람됨이 더럽고 탁하다. 누가 본래 저 비구에게 정명(淨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그는 실로 청정하지 못하다. 왜냐 하면 그는 많은 꽃을 받아가지고 자기가 쓰고, 또한 명향(名香)과 여러 가지 도향(塗香)도 받아 그것도 자기가 썼다. 그의 배움은 어둡고 어리석으며 아는 것이 없다. 나는 배운 뒤로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닦았고, 그는 겨우 새로 배워 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았으니 그를 믿지 말라. 또 그 비구는 게으르고 제멋대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일심(一心)으로 존경하며 기꺼이 정명비구에게 귀의한다’고 하였다. 법 비구가 이렇게 비방하며 그의 악행(惡行)을 퍼뜨리자 많은 사람들이 불신(不信)하여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 법 비구는 독심(毒心)을 품고 지혜로운 이를 비방하였으므로 목숨이 끊어진 후에 지옥에 떨어져 팔십 겁을 지냈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정법을 헐뜯었으므로 지옥에서 칠십 겁을 지내고 나서 다시 육십 겁 동안 뜻을 잃고 헤맸다. 이 수를 다 지내고 나서 마침내 예전에 본래 도의 뜻을 내었던 향보광명(香寶光明)여래ㆍ불(佛)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다시 법의 뜻을 강설하시면서 도의 뜻을 일으키라고 권하셨지만 구백만 년 동안 축생에 떨어졌다. 그런 다음 육백만 년 동안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항상 가난과 액난을 만나고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혀가 업는 벙어리로 태어났다. 그런 다음 세상에서 육십삼해의 모든 불정각(佛正覺)을 뵙고 부처님 처소에서 항상 법사(法師)가 되어 세세토록 태어나는 곳마다 모두 오통(五通)을 이루었고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교칙(敎勅)을 받고 법을 모두 깨달아 청정한 이치를 해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정명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러한 생각을 하지 말아라. 왜냐 하면 그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기 때문이다. 그 법 비구는 바로 내가 그였느니라. 내가 그 세상에서 겪었던 일이 이와 같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세속 일의 모든 법은 명료히 알기란 어렵고도 어려우니, 미묘한 이치가 이와 같다. 내가 이리하여 오탁의 세상에서 정각을 이루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두 가지 품의 법[兩品法]을 말한다면 이것으로 인한 까닭에 오탁의 세상에서 불도를 이루게 될 것이다. 또 그 불토에는 온갖 악마가 많아 자주 난을 일으킬 것이며, 불도를 이루었을 때 경법을 펴려 하여도 또한 어지럽게 방해할 것이다.”

그때에 와서 모인 대중들이 모두 다 슬피 눈물을 흘리며 각자 말하였다.

“학인(學人)들에게 두 가지 법[二品法]을 펴서 경의 이치를 강설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편파적인 무리들이 어리석고 방자하여 자신들은 옳고 다른 사람들은 악하다고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법 비구가 모든 비구와 재가(在家)의 학인들에게 분별했던 것처럼 법을 옳다 그르다 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때 저 모인 대중들 중에서 백 명의 보살들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땅으로 옮겨 앉아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이때 세존께서 그 보살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초지종[本末]을 아시므로 다시 질문을 하셨다.

“여러 족성자(族姓子)들아, 어찌하여 땅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느냐?”

그러자 이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각자 스스로 관찰하여 이러한 재앙을 받게 될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족성자들아. 너희가 관찰하여 생각한 것과 같다. 정광불(錠光佛)의 시대에 지적(智積)이라고 이름하는 한 보살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 그를 법사(法師)로 세웠는데 모든 현자(賢者)들이 그를 비방하였기에 그때부터 다시는 모든 부처님과 상견(相見)한 적이 없었고 도심(道心)을 알지 못하고 총지(總持)를 얻지 못했으며 삼매(三昧)도 체득하지 못했다. 족성자들이여, 너희는 전생에 나와 함께 도에 대한 뜻을 내었다. 또 족성자들이여, 이 피타겁(披陀劫)9) 최후에 누유(樓由)라고 이름하는 부처님께서 계실 것이다. 그 세상에서 마침내 어디로부터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逮得)할 것이며, 그런 후에 삼 아승기겁(阿僧祇劫)을 지나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道)에 이르러 최정각(最正覺)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족성자들이여, 보살과 보살이 전전(展轉)하며 상견(相見)하는 것이니, 다르다는 마음을 내어 서로의 단점을 찾지 말라. 만일 보살을 보면 스스로 ‘지금 내가 불사(佛寺)를 보고 불정각(佛正覺)을 본다. 부처님께서 내 앞에 서 계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족성자들이여, 가령 어떤 보살이 다른 보살을 보고 다르다는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과 같지 않다고 본다면 스스로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만일 보살의 마음을 처음 일으킨 사람을 보고 부처님과 같지 않다고 본다면 곧 지금 현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세계에 계시는 여러 불세존들을 속이는 것이 된다. 또 족성자여, 지금 부처가 예견하건대, 장래 말세의 마지막 오십 년에 총지를 얻어 삼매를 체득하는 보살이 있으리니, 모두 이 여래의 위신(威神)으로 그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족성자여, 만일 법사를 비방하며 그의 단점을 찾는다면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 된다.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에 만일 어떤 사람이 때에 따라 적당한 방편을 명료히 알아서 중생심(衆生心)이 본래 믿고 행하는 데 따라 법요(法要)를 연설할 때, 만일 모인 대중들 가운데 보살을 배우는 사람이 한 번 발심(發心)하는 사이에 몸의 털이 쭈뼛 서며 한 번 경을 듣고 곧 외운다면 이는 여래의 성지(聖旨)와 맞닿은 줄 알아야 한다. 그때의 세상에서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보살행이 없으면서 스스로 보살이라 하고 많은 보살 가운데서 고집스럽게 자기를 과시하며 경전을 분별하여 거짓으로 과장하고 그들의 공을 숨긴다. 그리고 자신만이 홀로 이미 요달하였다고 하면서 그를 보고 이행(二行)이라고 하며,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이들이 아는 것이 무엇이며, 이들이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현재 펴는 게송의 가르침을 위하여 불도(佛道)를 행할 때 머리와 눈과 팔 다리와 피부와 살과 처자(妻子)와 나라를 보시하였다. 부처는 모두 기억하나니 한 구절의 게송을 얻기 위해서 천하(天下)를 보시하였다. 저같이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은 이양(利養)을 얻기만을 바라고 부처님을 공경하며 불도를 전하는 사람에게 가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므로 도에 대한 절개를 잃는다.”

부처님께서 아일(阿逸)에게 말씀하셨다.

“청정하게 화합함으로써 이 법을 받들 수 있을 것이니, 서로 다투어서는 받들 수 없다. 아일이여, 또 이러한 무리의 중생들을 관찰해 보면 허물을 따라 분노를 일으키도록 습관이 되어 있다. 이는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요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수행하여 최정각을 이루고 부처님의 지혜를 전하려 그들을 위해서 설법하였으나 어리석은 자기 문득 말하기를 ‘이 가르침을 전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저 때의 세상에서 그 법 비구가 비록 방등경 천여 권을 강설하고 4선(禪)을 일으켰으나 공양을 받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마침내 이와 같은 재난에 이른 것이다. 하물며 의리(義理)에 어긋나는 것을 망령되게 말하고, 불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겠느냐? 만일 어떤 비구가 방등교(方等敎)를 받들고 방등장(方等藏)을 전하기 위해 도심(道心)을 일으켰다가 오히려 법사를 비방한다면 그것은 곧 모든 부처님의 경전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우 오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품고 그 결점 을 찾는다면 부처는 그를 보고 구경(究竟)에 이르러 생사(生死)의 근원을 다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부류들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 하면 만일 법사의 단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곧 부처님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경법을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사를 업신여기는 것은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법사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곧 부처님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일 법사를 헐뜯는다면 모든 부처님을 헐뜯는 것이 된다. 만일 초발의(初發意) 보살에게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켜 그 보살의 죄악을 찾는다면 그 해치려는 마음을 낸 때로부터 무수겁(無數劫)의 약간 겁 동안 그 도의(道意)를 잃을 것이다. 또한 악한 눈으로 보살들을 본 숫자에 다시 약간의 햇수를 더한 동안 세세토록 장님으로 태어나고 입으로 법사의 악(惡)을 말한 자수(字數)에 다시 약간 겁을 더한 동안 혀가 없는 벙어리로 태어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부처가 두루 모든 보살을 관찰해 보면 다른 법 때문에 속히 악취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악심(惡心)으로 다른 보살에게 나와 남이라는 생각을 하며 법을 구하는 데 탐욕스럽게 머무르기 때문에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일이여, 여래는 경전을 전한다고 하면서 전도된 가르침을 따라 생사(生死) 속에서 제멋대로 방일(放逸)하게 나와 남이라는 생각[我人想]에 머물러 약간의 법을 행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일이여, 보살이 6바라밀(波羅蜜)을 좇아 익히면 능히 부처님의 지혜인 무상정진(無上正眞)10)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입을 통해 스스로 선언하기를 ‘보살은 오직 반야바라밀만을 배워야 할지니, 그 나머지 경들은 바라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 단점을 말한다. 아일의 생각으로는 어떠하냐? 본시(本時)에 국왕(國王)이 머리를 남에게 보시한 까닭은 무지(無智)하기 때문이었겠느냐?”

미륵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가 본래 닦은 6바라밀은 지성(至誠)스럽고 진실(眞實)한 행(行)이었겠느냐? 이것을 행하지 않고도 불도를 얻을 수 있었겠느냐?”

미륵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인자(仁者)가 본래 전생[宿世]에서 60겁 동안 단바라밀(檀波羅蜜)과 시라(尸羅)바라밀과 찬제(羼提)바라밀을 다 행하고 선정(禪定)과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이 각각 60겁 동안 행하였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각기 말하기를, ‘한 가지 반야바라밀만을 행함으로써 불도에 이룰 수 있다’고 하며, 전도(顚倒)된 것을 받들고 따르며 우러러 즐기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은 부류들은 비록 입으로 말은 하지만 행동은 청정하지 못하니, 허언(虛言)으로 가르침에 반(反)하여 항상 집착하며 행한다. 공(空)을 희망(悕望)하나 행하려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제일이라고 말할 뿐이다. 비록 행한다 하여도 공의 이치와는 거리가 매우 멀어 탐내고 질투하며 종성(種姓)과 친척과 지인[知識]을 공경하고 존중한다. 나는 본래 정녕 머리로 남에게 보시하였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지위로써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의식(衣食)과 이양(利養)에 탐착하여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말하기를, ‘이와 같이 도(道)를 행하라. 이와 같이 행하면 그 이치가 이와 같으므로 다시 이의(異義)가 없다. 많은 법사들이 이 가르침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고 하니, 공양을 구하는 까닭에 해치려는 마음을 내어 법사의 악만을 생각한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는 이렇게 그 명(命)에 탐착하고 애착하는 무도(無道)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가령 이렇게 백 겁을 지나더라도 유순법인(柔順法忍)도 얻지 못할 것이거늘 하물며 불도에 이르는 것이겠느냐?”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아첨하는 자는 인색하고 탐욕스럽고 질투하며 공경하지 않는다. 밝은 지혜가 없이 종성(種姓)에게 질투하는 마음을 품고 두 가지 행[二品行]을 하면서 도를 구한다고 한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가 명철하다’고 하면서 부처님의 지혜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스스로 말하기를, ‘여래께서 설법하신 것은 언사가 이렇지 않다. 이것은 성문이 말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성문의 법은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부처님께서 현자(賢者)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그 근원이 하나여서 두 가지 행이 없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예, 그렇습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또 수보리에게 물으셨다.

“보살이 행하여야 할 것은 온갖 바라는 생각을 버려서 집착이 없는 것이겠느냐?” “예, 세존이시여.”

다시 수보리에게 물으셨다.

“보살이 닦아야 할 것은 모든 치달리는 마음을 버리고 방일(放逸)함이 없는 것이겠느냐?” “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찌 배우는 이가 이미 스스로 수행하지 못하면서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고 공훈(功勳)의 보(報) 받기를 희망하는 것을 볼 수 있겠느냐? 마땅히 가난과 액난이 이르리라. 그러며 세력 있는 집안을 구하여 원조(援助)를 얻기를 바랄 것이니,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부처님께서 다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가령 일체(一切) 모든 법이 다 성문법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여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모든 법은 모두 연각법이라거나 모든 법은 다 불법이라는 말을 들어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희망을 품어 집착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설사 일체법이 다 범부법(凡夫法)이라거나, 모든 법이 다 진로법(塵勞法)이라는 말을 들어도 두려워하면 안 되며, 모든 법이 진에법(瞋恚法)이라거나 모든 법이 무진한법(無瞋恨法)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여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만일 받는 것이 있다거나 받는 것이 없다거나, 짓는다거나 짓지 않는다거나, 덮는다거나 덮지 않는다거나, 맑다거나 맑지 않다거나, 마음이 있다거나 마음이 없다거나, 염(念)이 있다거나 염이 없다거나, 죄가 있다거나 죄가 없다거나, 복이 있다거나 복이 없다거나, 보(報)가 있다거나 보가 없다거나, 편안함이 있다거나 편안함이 없다거나, 해탈이 있다거나 해탈이 없다거나, 정진(精進)이라거나 해태(懈怠)라거나, 행(行)이 있다거나 행이 없다거나, 현성법(賢聖法)을 닦는다거나 현성법이 없다거나, 적연(寂然)하다거나 적연하지 않다거나, 받는다거나 받지 않는다거나, 지성(至誠)이라거나 허사(虛詐)라거나, 순념(順念)이라거나 순념이 아니라거나, 머문다거나 머물지 않는다는 이러한 모든 법에 대해서 영원히 두려워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부처가 예전에 배울 때에 보리수 아래에서 모든 법을 요달하고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어 모든 중생의 경계를 환히 알고 전도됨이 없이 모든 법을 명료히 깨달은 것은 모두 저절로 아무 곳에도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말하기를, ‘여래ㆍ지진(至眞)은 모든 법에 대해 이름 짓지 않으며, 모든 법은 또한 다투지 않는다’고 하였다.그러므로 보살이 성스러운 광명인 끝없는 법의 광채에 다달아 총지를 흥발(興發)하고 법인(法印)을 들어 올리게 되었다. 모든 법을 위한 까닭에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없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부처가 법을 전하기 위하여 사방의 지역에 경전의 도를 선포하면 중생이 각기 ‘여래께서 나를 위하여 이와 같은 비유로써 경의 이치를 말씀하시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이렇게 하기를 이십사 아가이타천(阿加膩吒天)에까지 이른다. 다시 두 번째 방역(方域)을 개화(開化)하여 이십사천(二十四天)에까지 이르며, 삼천대천세계도 이와 같다. 중생이 모두 생각하기를, ‘여래께서 이곳에 태어나시어 법륜을 굴리시어 경법(經法)을 강설하신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무수한 방편으로 비유하여 무수히 많은 끝없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개화시킨다. 내가 내일 아침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일으키는 불사(佛事)가 한량이 없을 것이며, 점심 때와 저녁 때에 일으키는 불사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여래ㆍ지진이 항상 이렇게 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니, 눈에가리거나 막힌 것이 없이 모든 중생의 경계를 두루 본다. 모든 불토(佛土)도 이와 같이 한(限)이 없고 모든 불부계(佛部界)도 또한 이러하다. 보살은 모두 이와 같은 이치를 배워 모든 법의 망상처(妄想處)에 머물러 개화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희망하는 것이 있어 모든 부처에 머문다면 이미 모든 부처를 비방하는 데 머문 것이며, 이미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데 머물렀다면 그는 험로(嶮路)에 떨어지는 데에 머문 것이다. 험로에 떨어지는 것은 곧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이며, 악취에 머물면 모든 법이 다투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아일아, 여래의 선권방편(善權方便)을 보호해야 할 것이니, 부처는 스스로 때에 맞추어 이 법을 설할 뿐이다.”

문수사리가 이러한 말씀을 취취복(趣聚福)보살ㆍ불허견(不虛見)보살ㆍ일변심(一辯心)보살ㆍ선료설심(善了說心)보살ㆍ가변(訶辯)보살ㆍ희왕(喜王)보살ㆍ이원모수무외행(離怨毛竪無畏行)보살ㆍ심원무량불토(心願無量佛土)보살ㆍ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ㆍ중향수(衆香手)보살ㆍ제제음개(除諸陰蓋)보살ㆍ불치원(不置遠)보살ㆍ합백천덕(合百千德)보살ㆍ위신음(威神音)보살ㆍ심불사제혜(心不捨諸慧)보살ㆍ선명칭영당(宣名稱英幢)보살ㆍ염구제의(念求諸義)보살ㆍ행불리불계(行不離佛界)보살ㆍ초월전위작작(超月殿威灼灼)보살ㆍ엄제대계(嚴諸大界)보살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가 이들 이십여 명의 보살에게 말하고 나서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정말 거룩하신 가르치심[聖敎]과 같습니다. 제가 동방으로 육십 강하(江河)의 모래알만큼의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모든 세존께 예배드리고 들은 법도 오늘 들은 것과 같았고, 서쪽과 남쪽과 북쪽의 불국토와 사유(四維)와 상하(上下)도 역시 이와 같았습니다. 칠일 동안 돌아다니면서 전에 갔던 길을 다시 돌아보니 남아계신 부처님들을 뵐 수 없기에 곧 다시 이 국토에 돌아와 머리 숙이고 경을 들었습니다.”

이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 여래의 무량(無量)한 성혜(聖慧)를 보았구나. 이 모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부처님의 경계가 우뚝하기가 이와 같다. 여래가 들어가는 곳은 비할 데 없이 평등하고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혹 어떤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 의리(義理)를 알지 못하고 경솔하게 스스로 ‘반야바라밀은 여래께서 행하신 것이며, 이는 모든 여래께서 끝없이 수행하신 가르침이니, 그 밖의 경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수여, 보살행(菩薩行)이란 짝할 것이 없는 행[無合會行]이니, 이는 개사(開士)의 바르고 참된 행이다. 비할 데 없는 행이 곧 보살행이며, 받는 것이 없는 행이 보살행이 된다. 집착하는 곳이 없는 행이되, 또한 집착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 이것이 보살행이다. 이와 같이 문수야, 보살이 행하여야 할 바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지니, 그러므로 내가 수시로 분별하여 선설하는 것이다. 모든 법은 보기 어렵고 또한 명료히 깨닫기 어렵다. 그러므로 문수야, 모든 현자(賢者)들은 마땅히 고요히 방일함이 없는 행을 닦아야 하며, 정사(正士)11)의 견고한 행을 순종해야 한다. 항상 자비심을 품고 성내어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말고, 그로써 모든 법에 머물러야 한다. 평등한 행[等行]을 수행하는 것이 곧 불교(佛敎)를 따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무수겁 동안 이 도를 좇아 익히고서 선권방편을 써서 그것을 전하나 무지(無智)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뜻을 품고 큰 어려움에 떨어져 비방을 일으킨다. 경전을 비방하고 헐뜯으며 여래께서 펴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 법을 헐뜯는 자는 미미한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앉아서 입을 지키지 못하며, 혹은 스스로 마음 속으로 이 일이 유쾌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불쾌하다고 생각하여 법을 비방한다. 법을 비방하였으므로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되고 이미 부처님을 비방하였으므로 곧 성중(聖衆)을 헐뜯는 것이 된다. 입으로 함부로 말하기를, ‘이 일은 마땅히 하여야 하고, 이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 법은 모든 보살을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고, 이 가르침은 모든 성문을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입으로 말을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모든 보살들은 이 법을 배워야 하고 저 법은 버려야 할지니, 배우고 익히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망령되이 말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아무개는 변재(辯才)가 있고 아무개는 변재가 없다. 아무개는 성품이 명민하고 아무개는 성품이 둔하다’라고 망령되이 헐뜯으며, 경이 이와 같다고 말하면 이것이 법을 비방 하는 것이다. 만일 선언(宣言)하기를, ‘부처님 세상을 만나면 총지를 얻게 되고 부처님 세상을 만나지 못하면 총지를 얻지 못한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또 ‘비록 수행하여 총지를 얻게 된다 하여도 얻는 총지가 반드시 청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법사의 단점을 찾아 그의 행위가 법칙에 위배된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법사의 소행이 다 갖추어 있다고 믿지 않고 가령 법사가 위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법사의 방일한 업(業)이 자신으로부터 치달려 능히 전일(專一)하지 못하다고 선전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예절을 갖추지 않고 경도를 잃고[失經] 절도를 어기고, 받드는 계율을 비난하며 소란스럽고 흉흉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의리(義理)를 선설하는 것이 있되 명확하기가 자세하지 않으면서 망령되이 강설하는 것이 있으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언어(言語)가 분명하지 않고 변재(辯才)에 통달하지 못했으면서 불도를 전달하고자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지 않고 아는 것이 매우 적으며, 멀고 넓게 명달하지 못했으면서 불도를 펴고자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아무개는 한계를 모르고 때에 따르는 것을 명료히 알지 못하니, 마땅히 가르쳐 개화(開化)시켜 지극한 이치에 도달하도록 해야겠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상념을 일으켜 불교를 보호하지 않고 해치려 하는 마음을 품으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각기 경전 한 권의 문자를 얻어 이 배운 것을 가지고 이치에 맞느니 안 맞느니 하고 다투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각기 하나의 게송을 읊고서 그 의리를 다투며 스스로 옳다 그르다 말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아무개는 기꺼이 믿는다 하고, 아무개는 도(道)에 독실하지 않다고 하며, 아무개는 해탈할 것이고 아무개는 해탈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만일 법을 강설할 때 하는 말이 각기 다르면 그가 의리에 반(反)한다 하면서 아무개가 강설한 것은 그릇되다며 좌중을 소란스럽게 하고 이말 저말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 사람을 행하리라 하고 이 사람은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거나 아무개는 수순(隨順)하고 아무개는 수순하지 않는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아무개는 때에 따르고 아무개는 때를 알지 못하여 의리와 어긋나고 도리와 예절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성문들이 가슴 속에 품은 것을 분별하여 말하고, 모든 보살들이 총명한 변재로써 널리 펴서 전하는 것은 모두 여래의 위신(威神)과 성지(聖旨)를 받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 도를 가르칠 때에 그 적합한 때에 따르겠다고 서원하신 것이 이와 같다. 그러나 저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오직 헐뜯기만을 생각하여 그 장단(長短)을 구하며, 불교(佛敎)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여래를 등진다. 또한 법사를 생각하되 그를 비방한다. 이들은 모두 악마에게 휘둘렸고 이양(利養)을 구하는 것에 의존한 까닭이니, 이러한 생각을 내면 악취(惡趣)에 돌아갈 것이다. 의지할 집안을 두텁게 보호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여래의 가르침을 신중히 보호하여 거기에 머물지 않고, 높고 세력 있는 왕자나 장자(長者)나범지(梵志) 같은 사람들에게 의지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치를 따져물어 그가 의리를 송설(誦說)하면 모두 함께 탄복하며 말하기를, ‘이 일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아는 것이 명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널리 펴는 것이 극히 의리가 있다’고 하면서 모두가 권하고 돕는다. 이렇게 권하고 도움으로써 법을 비방하는 데에 떨어지니, 여러 무리들과 함께 출입하고 나아가고 물러서고 하다가 그런 후에 죽고 나서 모두 악취(惡趣)에 떨어진다.”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모든 행(行)에 집착한다면 나는 그를 보살이라고 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아일에게 말씀하셨다.

“명망 있는 지위에 있는 종성(種姓)에 의지한다면 부처는 그를 청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두 가지 품[兩品]에 대한 경의 이치를 전하여 언행(言行)이 각각 다르면 부처는 그가 해탈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드시 지옥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오로지 한 품만을 말하면서 그 의취(義趣)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면 부처는 그가 악취와 온갖 환난(患難)을 건널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말이 많아 시끄러운 논쟁을 좋아하면 부처는 그가 응당 맑고 깨끗하게 행하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부처가 널리 펴는 것은 모든 전도(顚倒)를 다스리니, 진퇴(進退)하는 법문(法門)은 강의 모래알같이 많다. 널리 편 법문 가운데 공(空)에 즐겨 집착하는 사람을 위한 것도 그 수가 강의 모래알같이 많으며 온갖 망상으로 사람이 있다고 계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펴는 법문의 가르침 역시 그 수가 강의 모래알같이 많다. 중생 역시 무상(無想)의 업(業)은 모든 유상(有想)의 근본이 되고, 무원(無願)의 업은 모든 유원(有願)의 근본이 되며, 그들을 위하여 말해주는 법문 역시 모래알같이 많다. 사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명(命)이 있다거나 명이 없다거나, 수명[壽]이 있다거나 수명이 없다거나, 욕심이 있다거나 욕심이 없다거나, 탐심[貪]이 있다거나 탐심이 없다거나 유위(有爲)라거나 무위(無爲)라거나, 아무개가 간절히 상(常)에 계착하는 것을 따르거나, 아무개가 끈기가 없어 단지 단멸(斷滅)만을 생각하거나, 이는 즐겨 세속을 따르는 것이고 이것은 세상을 건너기 위한 것이라거나, 이것은 탐욕문(貪欲門)이고 이것은 진에문(瞋恚門)이고 이것은 낙치문(樂癡門)이라는 것 등에 대해 여래는 이러한 모든 문(門)을 제거하기 위하여 법문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평등의 진리[平等之宜]를 수행하면서 영원히 집착하는 데가 없으면 모두가 다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를 각각 다르게 연설하면서 마음은 듣고 보는 데[見聞] 있어 지혜와 같지 않은 것을 연설하면 곧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다.”

이때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무리들은 나쁜 벗을 따라 잘못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마침내 능히 이와 같은 비방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현세(現世)에 무슨 방편으로 자책(自責)하면 죄법(罪法)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곧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그 사람이 칠 년 동안 밤낮으로 각각 세 번씩 잘못을 뉘우치고 자책한다면 그런 후에 비로소 비방한 죄를 조금씩 녹여 없앨 것이며 다시 십오 겁 동안 계속 행하면 마침내 법인(法忍)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 경전의 요의를 익히되 능히 명료히 깨닫지 못하고 망령되이 선전하면 그 일을 깨닫게 하고 싶어도 제도하기 매우 어려우리니, 문자(文字)로 나타내는 것이 뜻이 흩어져 명확히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먼저 자세히 잘 배운 후에야 능히 펼 수 있다. 이렇게 배우면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 네 가지 법이 있으면 모든 행(行)을 명료히 깨달을 수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법을 평등히 깨달아 편파적인 치우침[偏黨]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도의(道義)에 평등하면 사정(邪正)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평등하다는 말에 망상을 품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네 가지이다. 만일 이 네 가지 평등을 깨닫지 못하고 망령되이 말하면 곧 스스로를 해칠 것이다. 만일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가 네 가지 법에 머물면 스스로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중생에 대하여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법사와 함께 다투며 논쟁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자기가 조금 밝다 하여 다른 사람의 통달하고 지혜로운 것을 헐뜯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스스로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이 모든 이치는 모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공경하여 받들어야 한다’ 하면서 겸손하고 공순한 것이다. 이들이 네 가지 법이니,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강하(江河)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불국토에 가득 찬 칠보를 강의 모래알 같은 겁 동안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모두 공양하되 날마다 각각 그렇게 쉬지 않고 부처님을 받들어 보시한다고 하고, 또 만약에 이 제방등학경전(濟方等學經典)의 요약을 받아 죽백(竹帛)에 써서 한 번 선설한다고 하면, 이 복이 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복보다 더 많다. 그 까닭은 보시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일심(一心)과 지혜가 모두이 사람의 선업(善業)에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방등학경전의 요의를 보살이 배우면 그 복은 비할 데 없이 빼어날 것이니, 짝할 것[侶]이 없다.”

이 경을 말씀하실 때 삼십 강하의 모래알 같은 보살들이 모두 다 어디로부터 생긴 곳이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고, 칠십 강하의 모래알 같은 보살들이 두루 다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서게 되어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삼천대천의 나라에 태어난 육십억해의 백천 사람들이 이 경전을 듣고 모두 함께 권하고 도와 모두 도의(道意)를 내었고 모두 깨달아 팔십 겁 동안의 생사의 난(難)을 뛰어넘었으며 또한 모두 일시에 불퇴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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