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랑스님이 호난에서 벗어나다
남북조 송나라 원자(元壽 · 424~453) 예의 석승랑(釋僧郎)은 양주(凉州) 사람이었다.
북위(北魏)에서 양주를 공격해 왔을 때에 성(城) 안에 병력이 모자랐으므로 성안에 있던 승려들까지도 무장을 하고 항전하였다.
결국은 힘이 모자라 그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승리를 차지한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 424~451)가 입성하여 승려들이 무장하고 참전한 사실을 알고는, 좌선하고 도를 닦아야 할 승려들이 싸움에 가담할 수가 있는가 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날 중으로 패장들을 처치할 때 승려들도 함께 참살하라고 하였다.
그때 죽음을 당하게 될 승려들이 삼천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 승려들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붉은 기운이 아주 높이 뻗쳐올라서 해를 관통하였다.
그것을 본 천사도(天師道, 즉 道敎)의 총수 구겸지(寇謙之)가 태무제(太武帝)에게 범상치 않은 일이므로 승려들을 죽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밤을 타서 그 벼랑 쪽으로 숨어들어 나무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군대에서 쓰는 북과 깃발에 달린 끈을 끌러서 그 끝을 이어 나무에 붙들어 매고 벼랑 밑으로 내려갔으나, 발에 닿는 것이라고는 가시나무뿐이었고, 발붙일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줄을 타고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다. 벼랑 위로 올라간다면 경비병에게 곧 붙잡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줄에 매달려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줄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다.
승랑스님은 일행들에게 관세음보살을 전념하자고 권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스님들인지라 벼랑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에게 귀의 하였다.
그 순간, 태양이 떠오르듯 밝은 빛이 환하였다.그들의 발밑이 소상하게 내려다 보였다.
그들은 그 밝은 빛에 의해 가시나무사이를 비집고 탈 없이 안전하게 지대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들이 안전한 곳에 이르자, 그 밝은 빛은 곧 사라지고 전과 다름없이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모두들 관세음보살의 신통묘력이 감응한 것임을 알고 매우 기뻐하였다.
날이 새고 벼랑위의 북위 군사들이 도주자를 찾아 헤매다가 헛탕을 치고 대군이 이 동해 가버린 뒤에 숨은 곳에서 나온 그들은 벼랑 밑 골짜기가 깊어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직 공중의 해 방향을 살피면서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데, 그들의 앞에 큰호랑이가 한 마리 나타났다. 일행은 크게 낭패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절망감에 빠져 주저 않는 일행을 향해 승랑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을 입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났으니, 이 호랑이 또한 우리들에게 길을 안내하고자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호랑이 뒤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그들은 호랑이의 뒤를 따라갔다. 지친 일행의 발걸음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 호랑이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일행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가곤 하였다.
그들이 산길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승랑스님 일행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렛 만에 구지(仇池)에 도착한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