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01. 상권

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 일명결료제법여환화삼매경(決了諸法如幻化三昧經) –

상공(翔公) 한역 번역

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01. 상권

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02. 하권


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01. 상권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위성(舍衛城)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거니시면서 대비구 5백 인과 함께 계셨다.

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수보리(須菩提)ㆍ아난건(阿難犍) 등은 모두 스스로가 장로로서 평소 품행을 청정하게 닦아 모든 결점[瑕疵]을 버리고 때를 없애어 청정하였으며, 오래도록 온갖 덕을 심어서 지은 것을 이미 다 판별하여 이해하였다. 몸의 더러움[弊]을 싫어하고 식(識)의 인연을 알며, 저 다섯 갈래의 세계[五道: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를 보니, 고통 받는 존재[有]의 그릇으로 번뇌와 고뇌, 온갖 근심과 가지가지의 더러움이라, 3계(界)는 즐거움이 없어 항상 버리고자 하며 모든 유전(流轉)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곧게 하였다. 악을 두려워하여 끊어 없애버리고 공을 구하고자 하는 뜻은 다 열반[泥洹]에 두며, 가서 돌아오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그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 생사의 얽힌 그물을 다 찾아 끊었다. 모든 번뇌[漏]가 없으니 이미 무거운 짐[擔:번뇌]을 여의고 4신족통[神足通:네 가지 선정]을 얻었으며 6신통을 이루어서 능히 생명의 삶과 죽음을 뜻대로 하는 데 머물러서 피안(彼岸)에 건너가서 근심 없이 편안히 즐거워하였다.

또 보살 천 사람과 함께 계셨으니 다 보살마하살을 받들며, 모두 일생의 보처(補處)로서 대덕의 갑옷[鎧]을 입고 부처님이 계심을 나타내며, 보살로 내려와 말하여 두루 베풀어 도로써 교화하며 모든 부처님의 말씀[佛藏]을 편다. 신비로운 지혜를 특이하게 통달하여 마쳤고 성스러운 지혜에 달통하며 평등하게 대승에 머무르니 뜻이 허공과 같다. 법을 넓게 세워 끝이 없는[無極] 곳으로 건너갔으며 넓은 지혜를 구족하여 밝게 방편의 요점을 밝혔고 보이는 것을 모두 포섭하여 능히 섭지하고 기억하여 잃지 않는다. 온갖 변론의 재주를 쌓은 것이 무한하여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세속을 따라 수순하여 인도하는 큰 교량이 되며 위없는 길과 덕이 걸림이 없다. 깊고 그윽하며 끝없이 미묘한 법을 연설하니 마귀와 원수를 다 항복받고 모든 외도를 복종시켜 홀로 거닐며 시방을 주류(周流)한다. 다섯 갈래의 세계를 왔다갔다 노니시어도 가고 옴이 없으니 해와 달의 궁전 같다. 꿈이나 변화하는 허깨비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와 같이 나아가고 물러남이 없다. 일체를 감동시켜 생사를 제도하였다. 3보의 교화로써 영원히 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며 넓게 덕을 일으켜 나타내어 다 구족하였다.

그 모든 보살은 다 각각 이름이 있으니, 유수동진(濡首童眞)보살ㆍ용수(龍首)보살ㆍ묘수(妙首)보살ㆍ대수(大首)보살ㆍ보수(普首)보살ㆍ혜수(慧首)보살ㆍ명수(明首)보살ㆍ감수(甘首)보살ㆍ영수(英首)보살ㆍ보수(寶首)보살 등 이들 보살 천 사람이 함께 있었다.

이 때 앉은 사람들 가운데 영수보살이 부처님의 신비로운 취지를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법복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공손하고 엄숙히 예를 올리면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꿇어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유수동진이란 고금의 모든 부처님과 무수한 여래와 많은 신선ㆍ성인과 도와 신통이 있는 분들이 함께 칭찬하신 바입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대업을 이룬 모든 보살들이 깊이 깨닫고 멀리 보며 도로써 깊은 연못[淵懿]을 건너서 밝기가 해와 달보다 더하고, 지혜는 강과 바다보다 넓어 허공을 뛰어 넘으며,지혜와 변재가 다함이 없고 덕을 나타내 니 위가 없습니다. 사무량심으로 널리 기르며 자비로 이롭고 편안하게 하고 큰 어짊으로 너그럽게 제도하며, 넓고 바름이 바다 같고 덕은 끝이 없어 밑이 없는 깊은 물과 같이 담박하며, 넓고 평안하여 형상이나 바탕이 없는 듯합니다. 정적 속에 살며 모습[儀容]을 시방 국토에 무량하게 부처님으로 나투시어 널리 교화하고 모든 보살이 본대로 받듭니다. 일체의 제석과 범천 및 사천왕은 무리를 다 거느리고 공경히 예를 올리고 우러러 존중하며, 모든 하늘ㆍ용ㆍ신과 아수라[阿須倫] 무리들과 가류라(迦留羅) 무리와 진타라(眞他羅:긴나라)ㆍ마후륵(摩睺勒:마후라가) 등이 공양하여 섬기지 않음이 없습니다.

세상의 제왕이 보고 함께 좇아 받들었으며 성스러운 모습을 만족히 갖추어 빛나는 상호는 맑고 밝습니다.

제가 유수보살을 보니 온갖 덕을 구비하였으며 모든 선함이 이와 같아 생각하여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원컨대 항상 노래로 읊어서 끝없이 찬양하여 나타내고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시방에 유포하여 백천 겁이 지나더라도 영원히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그 때 유수보살이 영수보살에게 말하였다.

“족성자(族姓子)1)를 무엇이라 하며 법신은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그 법신은 있는 곳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또 법신이란 전혀 번거롭거나 수고로움[煩勞]이 없습니다.” “영수보살이여, 그대는 어떻게 법신을 깨달았습니까?”

대답하였다.

“법신이 어찌 처소와 말 소리의 자취가 있으리오. 또 법신이란 깨달음이나 깨닫지 못함도 없으며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은데 어찌 깨달아 알 수 있겠습니까?” “법신을 안다는 것은 허깨비가 변화[化]함이나 그림자와 같아 깨닫거나 깨닫지 못함도 없고 또한 언설도 없는데 그대는 어떻게 소리를 들어서 말합니까?”

대답하였다.

“앞에 말한 메아리의 소리와 같아 모든 글[文]이나 말에 의지하여 행할 뿐입니다.”

물었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곧 그 법신은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으며 이 처소의 중간에도 또한 있어 그 수가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두 개가 있다면 이는 곧 처소가 많은 것입니다.”

또 말하였다.

“영수보살이여, 법신은 모두 메아리가 없고 또한 그림자[影像]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뜻도 없고 생각도 없고 식(識)도 없고 말도 없고 설함도 없고 다름도 없고 같음도 없고 두 가지의 취(趣)도 없으니 또한 하나로 돌아감도 없으며 하나에서 하나가 없고 또한 처한 곳도 없는 것입니다. 영수보살이여, 본래 법신은 없으나 미묘한 법인[印]을 설함은 세상을 다하여 돌아갈 곳이요 위도 없고 견줄 곳도 없고 도의 핵심이 내장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유수보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유수가 말한 바와 같이 마땅히 청정한 법신을 설하여야 할 것이다.”

이 때 앉은 가운데 5백 비구와 5백 비구니가 유수가 설한 바를 듣고 다 좇아서 생겨남이 없는 법락의 인[法樂忍]에 이르고, 또 사위국(舍衛國)의 청신사(淸信士)와 청신녀(淸信女) 2천 사람이 본래는 대승행(大乘行)을 발심하지 않았었으나 이 중요한 설법을 듣고 곧 스스로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이 견고하여졌으며, 1만 2천의 천자(天子)가 뜻이 견고해져 환희심에 기뻐 뛰면서 보살심을 발하고 각자 허공에 머물러서 유수보살을 칭송하였다.

“덕을 쌓음이 겁을 지나고 공덕을 이룸이 한량없다.”

이 때 유수동진보살이 평소와 같이 아침에 성 안에 들어가서 걸식[分衛]2)하고자 성스럽고 위없이 청정한 법의[道服]를 가지런히 하여 발우[應器]를 들고 석장(錫杖)을 짚으니 크게 평화로움[粗順]이 부처님 같았다. 기골[機]과 품행[檢]은 법다우며[典制] 도량(度量)은 엄연(儼然)하고 상서롭고[庠行] 안정된 걸음걸이로 나아가고 물러남이 단엄(端嚴)하며, 돌아서고 돌아보는 모습은 빛이 한량없었다. 모든 근(根)은 청정하고 고요해서 항상 도(道)와 상응하며 일정한 위의는 차례가 있고 예법은 엄숙하고 바르며 온갖 덕을 다 갖추어 고상하지[雅然] 아니함이 없어 용맹한 사자와도 같고 거대한 용왕과도 같았다. 크고 큰 복[景福]의 불이 나무숲 동산에서 나와서 위엄어린 모습과 한량없고 좋은 덕[德好]이 높고 특이하여서 얼굴은 빛으로 밝게 번쩍였다.

유수동진이 바야흐로 기원정사의 문[祇門]을 나와서 혼자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지금 사위성에 들어가면 반드시 시방 여러 국토로부터 온 보살 대중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감동한 이들이라 곧 마땅히 부처님과 같으니 그 모습을 찾아 자리를 옮기지 아니 할 것이다.’

그 몸의 낱낱의 털구멍에서 변화한 보살이 나오고 다시 그 모든 변화한 이들이 시방에서 보이니 모두 변화하여 나타났음이라, 하나하나의 국토에서 변화하게 한 이와 변화한 이가 각각 일컬어 말하였다.

“유수보살은 세존께 머리 조아려 예를 드리며 기거하시기에 불편함이 없으신지 공손히 여쭈옵니다. 부처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하시며 큰 복이 무량하시옵니까?”

또 모든 여래를 모시고 있던 제자들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각각 그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들은 어느 곳에서 와서 오늘 이 땅에 나타난 것입니까?”

세존께서 각각 시중드는 이에게 말씀하셨다.

“이름이 인(忍)이라 하는 한 국토가 있으니, 그 곳 부처님의 명호는 능인(能仁)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며, 또한 그 곳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을 유수(濡首)라 한다. 도의 지혜[道慧]가 헤아리기 어렵고 방편으로의 변재가 한량없으며, 여러 국토에 널리 불사를 나타내었고 지금 그 땅에서 대도(大道)를 일으켜 나타내었기에 그 까닭으로 몸의 털로써 변화하여 이런 감동을 부르고 여러 가지 의혹을 다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넓은 국토의 보살과 여러 중생들이 변화한 것을 보고 또한 각각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억(億)과 해(姟)의 보살이 모두 따라 생겨남이 없는 법락의 인[法樂忍]을 얻었고, 만억의 대중이 생사의 물결에서 유수의 이름을 들었으며 또 변화에 응함을 보고 다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에의 의지를 발하였으니 시방보살이 즐겁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유수보살의 품성이 남달리 청정하고 상문(上聞)의 설법을 하여 법의 형상[法像]이 미묘하다 함을 듣고, 보기를 원하며 그 부처님과 그 보살을 보았다. 여러 국토에서 찾아 따르던 무수한 보살이 각각 세존께 아뢰었다.

인계(忍界)의 능인(能仁)이신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고 예를 드리고자 하였으며, 또 유수보살을 보고 그 변설(變說)을 듣고자 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묵연하게 허락하심을 보고 곧 가르침을 받으려 각각 성력(聖力)을 받들어 그 땅에서 날아서 홀연히 인계(忍界)에 올라 유수보살의 처소에 도착하였다.

거기에 온 모든 보살이 다 우러러 공경하는 마음을 품고 혹은 하늘 꽃을 가지고, 혹은 밝은 보배를 받들고, 혹은 드리우는 구슬을 잡고, 혹은 차수(叉手:拱手)를 바로하고, 혹은 하늘의 음악을 울리고, 혹은 허공에서 줄지어 꽃가루향을 흩뿌리며, 격명가(噭鳴珂)를 불었다. 혹은 다시 ‘도가 나타나서 위없는 덕을 넓게 돕도다’라고 유수동진보살의 공덕을 노래하고 찬탄하였으며, 혹은 귀빈으로 모시어 유수보살을 보호하고 시중들었으며, 엄숙하고 공손하게 걸으며 쳐다봄에 싫어함이 없었다.

이 때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과 일(日)ㆍ월(月) 천자(天子)와 모든 용신(龍神)들이 각각 함께 도우며 또한 찾아서 홀연히 이르렀다. 제석과 네 왕은 다 같이 생각하였다.

‘지금 유수동진보살이 무수한 보살과 모든 하늘 사람과 더불어 사위성에 들어 가는데 큰 감동을 나타내리라.’

그리고는 마땅히 사위성으로 향하는 길을 모두 다 변화로 평탄하게 하여 높거나 낮거나 협소함이 없어지게 하였다. 양 가장자리에는 7보(寶) 나무가 늘어서게 하였으며 한 나무 사이에는 일곱 명의 옥녀(玉女)가 있어 각각 반신만 나타내어 노래와 재주를 부렸다. 여자의 얼굴은 나약한 듯 모양내어 아양을 떨며 얼굴은 화색이 비치고 눈망울은 밝은 구슬 같으며, 단정하고 특별하게 아름답고 음성은 청아한데 아름다운 말씨로 유수의 대길상(大吉祥), 청순(淸純)한 복(福), 도품(道品)보살로서의 온갖 덕을 노래하며 걸음마다 하늘의 꿀향[天蜜香]을 태우는 향로를 두었으며 곳곳에 여러 가지 꽃이 있어서 공양하여 올렸다. 이 때 길 왼쪽에는 독을 쏘는 벌레ㆍ이무기ㆍ구렁이ㆍ뱀ㆍ살모사ㆍ벌ㆍ전갈 등 여러 종류가 모두 제 독기를 줄이고 있었고 길한 짐승과 상서로운 새가 모여서 즐겁게 날고 있었다.

유수보살은 셀 수 없는 백천 보살대중과 여러 하늘 사람에 둘러싸였어도 특별하고 홀로 당당하며 광색이 한량없었다. 비유하면 태양이 처음 높은 산에서 솟을 때와 같았고 보름달이 별들 가운데 있는 것과 같았으며 여러 산 가운데 수미산과 같았고 용맹스런 사자가 깊은 숲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빛나는 얼굴이 더욱 빛났다.

드디어 성문 곁으로 나아가 문루(門樓)를 지나니 경계가 다 진동하며 오를 때는 경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모든 악기[伎器]는 저절로 쳐지고 울리니 다 함께 말하였다.

“이것은 어떤 길상이며 큰 변화를 일으키는 상서로움에 대응한 특이한 현상인가? 일찍이 없던 일이라 장차 부처님께서 성 안으로 들어오시려는 징조[所感]인가 보다.”

온 나라의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놀라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마음이 미리부터 기쁘고 기뻐서 엄숙하고 공손하기 한량없었다. 혹은 누각에 오르고 혹은 담장에 기대어 보며 혹은 창문으로 엿보고 혹은 대문을 나와서 다투어 즐거워하며 부처님을 향하여 신기하고 경이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 때 파사닉왕은 아름다운 왕비와 궁중의 채녀(婇女) 8천 명과 함께 많은 아들ㆍ신하와 권속 만 명에게 둘러싸여 행차하였다. 그들도 각각 기쁨을 머금고 두렵고도 즐거워하면서 나와 맞이하였다. 이렇게 정신없는 사이에 유수보살이 홀연히 다다르니 모든 보살과 여러 높은 하늘이 호위하고 따랐다.

대인의 모습은 여러 가지 좋은 것을 두루 갖추니, 금빛 얼굴과 성스러운 모습을 보고 다 기뻐하며 앞에서 예를 올리지 아니 하는 이가 없었다. 모여든 모든 대중 가운데는 꽃을 흩뿌리는 이도 있고 혹은 아름다운 향을 태우고 혹은 옷 속의 보배[衣寶:衣珠]를 흩뿌리며 마음을 다시금 살펴 가다듬고 공손하게 한없이 쳐다보았다.

유수보살이 드디어 앞으로 나아가 성으로 들어오자 모든 존귀한 보살과 세력 있는 천신이 다 공손하고 엄숙하게 도는 곳[所旋]을 따라다니니, 신통변화를 보고 또 도의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까닭이었다.

그 때 용수(龍首)보살이 그 유수동진보살이 무수한 대중에 에워싸여서 당당하고 상서로운 모습[祥儀]으로 같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족성자(族姓子)여, 어디로 가십니까?”

유수보살이 용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마침 이 성에서 걸식[分衛]을 행하려고 합니다. 불쌍한 생각이 많이 들어 그 지혜와 이익을 넓히어 세상의 중생[世衆]을 구원하고, 모든 하늘 사람을 제도하려는 뜻인 까닭에 현재 걸식을 행할 뿐이며 널리 모든 중생이 큰 가르침[大導]을 이루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용수보살이 물었다.

“유수여, 당신은 왜 지금까지 걸식을 존중하는 생각을 끊지 못합니까?”

대답하였다.

“족성자여, 나는 이미 끊었습니다. 걸식한다는 생각의 견해가 있는 자가 견해도 없고 끊을 것도 없고 끊지도 아니함에 이르면 이것을 보살의 청정한 걸식[淸淨分衛]이라고 합니다. 까닭이 무엇인가?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법은 끊을 것도 없고 끊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허공을 끊을 수도 없고 끊지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써 말하건대 끊지 못하며 널리 이 세상의 모든 마왕과 범천왕의 경계를 다하여 일체 여러 가지 고요함과 범지(梵志)왕과 서민도 또한 능히 끊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용수여, 그 모든 법은 허공과 같아 본래 있는 것이 없기에 일어나는 것도 없고 움직이는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것과 같이 공은 본래 얻을 수도 없고또한 가질 것도 없고 또한 얻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점을 말한다면 일체의 여러 종류와 세상의 그 밖의 법ㆍ외도의 삿된 잡술은 모두 있는 것이 없으며 가질 수도 없고 획득할 수도 없는 것처럼 또한 능히 얻을 수도 없으며 모든 법은 이와 같이 다 얻지 못하고 또한 가질 수도 없으며 본래 공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가히 끊을 것이 없습니다.” “유수여, 보살마하살은 왜 마땅히 모든 마를 적으로 삼습니까?”

대답하였다.

“용수여, 법은 본래 다투는 것이 없습니다. 보살이 모든 마와 대응해 싸우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보살이 마와 적이 된다면 법을 본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싸움이 있게 되나니, 이 보살이 곧 두려워 겁을 냅니다. 왜냐 하면 그 보살이 스스로 겁내고 연약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용수여, 요술쟁이가 요술을 나타내나 그 요술로 변한 것을 훤히 알아서 두려워 겁내는 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용수여, 보살은 본래 공한 법을 알아서 집착이 없는 행을 하므로 곧 두려워 겁내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보살이 두려워 겁내는 일이 있다면 이 보살은 곧 세상의 지극한 복전(福田)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보살은 공의 법을 깨닫지 못한 까닭에 스스로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때 용수보살이 유수보살에게 물었다.

“보살은 도를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보살은 득도(得道)합니다.”

용수보살이 다시 물었다.

“유수여, 그것은 무엇이며 그 누가 얻어서 도에 이릅니까?” “이름도 없고 성(性:姓)도 없고 또한 호[號字]도 없습니다. 또 있는 곳도 없으며 영원히 되는 바도 없고 또 얻는 자도 없으니 이것을 도에 이르렀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보살은 어떻게 마땅히 도를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용수여, 만약 보살이 도를 얻고자 한다면 이는 마땅히 발심함이 없고 또한 도를 생각함도 없고 도량을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의 경계[人界]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도 또한 있는 곳이 없고 생각도 없고 얻음도 없고 또한 인식함이 없이 무견심(無見心)으로써 일관[著]한다면 이런 행을 보살이 얻어서 도에 이르렀다고 할 것입니다.”

물었다.

“그대는 어떤 마음으로 도의 뜻을 냅니까?”

대답하였다.

“용수여, 나는 헤아리는 마음[數心]이 없고 또한 마땅히 발할 것도 없으며 또 겨우 발함도 없고[無甫發] 발할 것도 없고 발하지도 않습니다. 또 나는 다시 도에 이르지도 않습니다. 도량을 생각하지 않으며 보리수[佛樹]에 앉지도 않고 또 도를 얻지도 않으며 법륜을 굴리지도 않고 태어나고 죽는 종류의 허물을 교화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법은 있는 것이 없는 까닭에 움직임도 없고 흔들림도 없고 나옴도 없고 들어감도 없으며 또한 갖는 것도 없나니 본래 공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법을 얻어서 도에 이릅니다.” “유수여, 이것이야말로 바르고 중요하며 위없고 비할 데 없는 지극한 말씀입니다. 그 모든 것이 여기에서 이와 같은 법을 알면 그는 곧 영원히 일체 번뇌[塵勞]에서 벗어날 것이며, 그 번뇌의 수고로운 이치[數]에서 이미 벗어나면 나아가 응당히 영원히 마왕 파순에게서 벗어날 것입니다.”

유수보살이 말하였다.

“마왕 파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 모든 악마도 또한 도의 이치[數]이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악마와 악마의 하늘[魔天]도 다 본래 없는 것이며 취할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말하면 악마도 또한 도입니다.”

물었다.

“무엇을 도라 합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용수여, 도란 일체 안에 있으며 일체는 또한 도입니다. 도의 형상은 허공이며 도의 체는 넓고 크고 지극히 넓고 크며 한없이 넓고 커서 다 품고 있어 두루 이르지 않음이 없고 또한 한계와 막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용수여, 도는 일체에 이르고 일체는 또한 도입니다. 이것을 위없다고 말한 것이니 참된 근본은 도가 없는 것입니다.”

물었다.

“그대 용수여, 도를 얻고자 합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얻고자 하나 도를 얻지 못합니다.”

또 물었다.

“도를 얻고자 하면 어찌 장난스런 행을 아니합니까?” “왜냐 하면 용수보살의 말씀과 같이 얻고자 해도 도는 얻지 못하는 것이니 도를 어찌 얻으리오? 만약 도를 얻을 수 있다면 도는 있는 곳이 있게 됩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생각을 일으켜 ‘내가 요술쟁이로 하여금 허깨비로 변하여 보리수 아래 앉아서 그런 후에 정각을 이룬다’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면 어찌 메아리 같은 소리가 아니리오? 그 허깨비 사람도 또한 얻지 못하며 또 모든 법과 더불어 합함이 있거나 여읨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집착할 것도 없나니, 본래 공한 까닭입니다.

만약 용수여, 일체 모든 법은 허깨비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은데 생각을 일으켜 도를 얻고자 합니까?
또 여래께서는 모든 법은 본래 없으며 기억할 것도 없고[無念] 생각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으니, 이것을 알면 이것이 곧 도를 얻음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법은 들어가는 것도 없고 또한 능히 허물 수도 없으며 법은 법과 더불어 합함이 있거나 여읨이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법과 법이 마땅히 허물어질 것이 있으리오? 법은 부합하는 것도 없고 또한 떨어져 흩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법은 합함도 없고 본래 없으며 모두 또한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허공과 같다면 있는 것도 없으며 형상도 없고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흔들림도 없고 또한 장난스런 행도 없으며, 모든 법은 본래 없어서 적막하여 공과 같으며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이 이와 같아 도무지 같은 도리[等倫]가 없고 또한 형상도 없습니다.”

모인 모든 대중들이 유수보살의 이 같은 미묘한 설법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각각 게으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우러러 사모하며 두려워하고 공손하며 한마음[專心]으로 생각하여 받았다.

이 변화한 것과 같은 깊은 미묘한 법을 설할 때 8만의 보살이 물러남이 없는 지위를 얻음에 이르렀으며 한량없는 하늘 사람이 위없는 뜻을 발하였다.

이 때 용수보살이 유수에게 대답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동진보살이여, 이 형상의 깊고 오묘하고 미묘한 법을 상쾌하게 설하시니 일찍이 없던 일입니다. 내가 그대를 좇아 이런 요지[要] 들은 것처럼 이제부터는 반드시 도를 얻을 것임이 자명합니다.”

말하였다.

“족성자여, 법에는 말이 없고 또한 보고 듣는 것도 없으며 나는 깊은 것을 설하지 않았고 또 얕은 것도 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대 또한 도를 얻지 않았고 얻지 않음을 얻지도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경(卿)과 같이 용수여, 생각으로 도를 얻고자 하면 생각의 희롱(戱行)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받는 자는 바라는 견해에 떨어져 있어서 그것으로 깊거나 얕은 법이 있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나는 설한 바도 없고 법은 말이 없으며 또한 널리 선전한 것도 없고 또 보인 바도 없고 또한 능히 모든 법의 근본을 설한 것도 없습니다.

또 용수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허깨비[幻化]를 만들어 널리 식(識)의 법을 설하게 하리라’고 함이라, 그 허깨비가 식이 없는데 마땅히 식을 설한다고 말하리오? 그는 곧 이로 인연하여 수고로이 다투는 생각을 일으킬 뿐입니다. 왜냐 하면 허깨비는 식이 없어 설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법은 본래 없고 있는 바도 없고 있는 곳도 없습니다. 이것을 족성자여,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깨달으면 법의 행을 구족하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때 이것에서 묘심(妙心)보살이 신통력을 통하여 보고 듣는데, 유수보살이 달리 별도의 곳에서 위의 중요한 보살의 이야기를 강설함을 꿰뚫어 보고 듣고는 홀연히 그 장소에 이르러서 대회장을 보고 기뻐서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모든 존귀하신 정사(正士:보살)와 대사(大士 :보살)들이 많이 모인 회중에서 이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족성자여, 모든 여래의 깊고 중요한 법 가운데서는 정사와 대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보살은 스스로 ‘나는 바로 보살ㆍ정사ㆍ대사이다’라고 부르지 아니하며, 생각의 희롱[戱行]에 집착한 무리가 스스로 보살이라 칭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대사여, 또한 나는 법의 큰 강설[大講]을 말한 것입니다.

또 묘심(妙心)이여, 메아리가 정녕 말의 소리가 있어서 나온 것입니까, 아닙니까? 메아리는 다시 귀[耳識]가 있어서 알아 듣습니까[所著], 아닙니까? 메아리에 법이 있어서 수지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용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전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법은 메아리와 같아서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습니다. 그 취하여 집착하는 것은 희롱함[戱行]이 있음이요, 희롱을 인연하는 까닭에 곧 유전(流轉)함이 있습니다. 모든 법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며 메아리처럼 본체가 없는 것입니다. 곧 생사에서 생각을 다투고[行諍想] 다툼을[諍行] 일으키고 나면 곧 조급히 움직이고, 조급히 움직이고 나면 곧 생사가 있어서 다섯 가지 도(道)에 유전하나니, 곧 그 없음[無]을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이에 유수보살이 용수보살에게 말하였다.

“또한 족성자여, 세존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시되 ‘비구여, 너희들은 생각의 희롱을 즐겨 집착하지 말라. 너희들을 위하여 적막한 행(行)을 설하는 것이다. 석사자(釋師子)의 설법이 이와 같음을 생각하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법을 따라 받아 듣고 중요한 인욕의 행에 들어가서 마땅히 집착하지 말 것이다’라고 하심과 같이 족성자여, 보살은 이 말을 순조롭게 알아서 근본이 공하고 청정함을 밝혀서 본래 적막함을 이와 같이 밝게 깨달으면 이것이 곧 영원히 다섯 갈래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때 용수보살이 말하였다.

“누가 생사에서 벗어난 자가 있습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족성자여, 무엇을 여래께서 교화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였다고 말하며, 어찌 다시 가고 오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용수여, 성사(聖師)의 열 가지 힘[十力]으로 중요한 점만 말한다면 교화하여 생사에서 제도함입니다.”

용수보살이 말하였다.

“세존께서 항상 모든 법은 신통변화에서 나타난 것[化]과 같다고 하시고 또 그대도 또한 모든 법은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으로 말하면 일체 중생은 마땅히 다 위없는 깨달음의 도를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용수여, 만약 일체를 이와 같이 안다면 이것은 곧 도에 이르는 중요한 행을 말하는 것이므로 나는 설법하지 않으며, 법은 설할 생각도 없고 받을 수도 없고 지닐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고 잃을 것도 없고 말도 없고[無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지닐 수도 없고 또한 있는 바도 없고 생각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있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모든 법이 허깨비와 같고 신통변화한 것과 같고 있는 것이 없다고 알면 곧 중생의 부류는 다 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비유하면 용수여, 요술쟁이[幻師]가 요술을 하는데 요술쟁이 스스로는 요술의 근본과 끝을 알고 요술을 하는 것과 같이, 모든 법도 또한 변화한 것[所化]도 없고 머물러 있는 것도 없습니다. 넓은 이 세계의 모든 하늘ㆍ용ㆍ귀신ㆍ마귀 및 범천ㆍ사문ㆍ범지(梵志:외도)가 이 세계의 끝까지 이르더라도 능히 요술쟁이는 그 변화한 요술이 견고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요술쟁이는 스스로 변화한 요술과 그 요술의 근본이 공하다는 것을 이미 꿰뚫어 알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요술도 없고 변화한 것도 없으며 아무런 있는 것이 없으나, 요술쟁이는 명확하게 일체가 변화한 것에 미혹이 됨을 알면서도 있는 바가 없는 데서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다는 생각ㆍ항상 내가 없다는 생각에 견주어, 나라는 생각에 집착하였으면 무상법(無想法)을 생각하여 구할 것이요 또한 물질이 없음[無色]을 생각하여 무소유에 머물 것이지만 본래 없음[本不]을 알지 못한 이유로 요달하지 못한 까닭에 계속하여 생사에 유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법의 근본을 환히 깨달으면 그들 일체는 곧 부처님 법에서 다시 태어남이 없는 정각(正覺)을 이룰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용수여, 중생은 다 도를 깨치는 법의 지혜[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법에서는 걸림이 없으며, 이런 까닭에 중생은 다 부처님의 법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마음이 또한 어두워 모든 법이 본래 공함을 깨닫지 못하니, 이름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無識] 또한 머무르는 바도 없고 희롱하는 행도 없으며, 의지함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고요하여 허공과 같고 또한 소굴(巢窟)도 없고 위도 없으며, 고요하고 생겨나는 바도 없고 또한 몸이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 깊은 공의 법에 참는[忍] 자는 곧 부처님의 법을 여의지 않은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이냐?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부처님의 법은 끝내 생각[想行]으로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며 말이 있고 설법이 있으며 널리 있고 자세히 있다고 하면, 특히 부처님의 도법(道法)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용수보살이 유수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그대가 이에 상쾌하게 생각하고 의논하는 법이 없음을 설하였으나 누가 마땅히 일체 중생이 부처님 법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겠습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족성자여, 그 세존의 아들이 굳게 머물러 법을 믿을 것이니, 팔등(八等:八定)의 자리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의 물러서지 아니하는 지위에서 움직이지 아니하는 이 등 이 모든 보살은 이미 청정함에 머물러서 공의 법을 행하는 자로서 이들이 마땅히 믿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용수여, 그 모든 보살로서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곧 스스로 서원하기를 ‘반드시 대업을 이으려 가부좌에 앉아 끝내 움직이지 아니하고, 마침내 위없는 평등정각을 이루어 이 세상이 다하기 전에 장차 오는 모든 하늘ㆍ용ㆍ귀신에게 마땅히 사자후로써 큰 인도자가 되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이냐? 이와 같이 용수여, 보살이 공의 생각 없는 수행법을 깨달아 문지방같이 머무르면 견고하기가 수미산과 같아 능히 움직일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용수여, 공에 머물러 생각도 없고 서원의 법도 없는 보살은 일체 중생으로서 능히 움직일 자가 없고 또 이러한 보살은 보리수 아래나 또는 도량에 머물러도 능히 동요함이 없습니다.”

질문하였다.

“유수여, 무엇을 보리수[佛樹] 도량에 머문다고 말합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무슨 말을 합니까? 용수여, 여래께서 교화를 위해 의지하여 앉아 계시던 교화의 처소입니다. 무엇을 여래께서 교화함에 법을 깨닫고 신통변화를 나타내고 설법하여 교화하였다고 말합니까? 누구를 여래라 하고 교화할 자는 누구입니까?”

용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나는 오히려 여래의 교화와 법신의 형상이 있는 곳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찌 하물며 교화한 바와 다시 위신을 나타냄과 또 설한 법과 변화한 것이리오? 일체가 요술[化]과 같으며 본래 없다는 것도 또한 요술이요 그 요술도 또 요술이요 또한 요술과 같을 뿐입니다.”

유수보살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용수보살이여, 나는 비로소 법에 순응하는 법을 발하여 그와 같이 모든 깊고 미묘하고 집착 없는 법인[法忍]을 설하였으니, 이것이 위없고 견줄 데 없는 설법입니다.”

그 때 용수보살이 유수보살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미묘한 형상과 중요한 법의 설법이요, 또한 일어남이 없는 행[無起行]이며 들어갈 것이 없는 인[無入忍]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유수여, 모든 법은 본래 청정하여 그 모양이 본래 공하고 또한 처소도 없으며 소굴(巢窟)도 없고 색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모든 법은 다 같이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유수여, 그 법이 있으면 마땅히 법인(法忍)을 일으키는데, 곧 여래의 교화[化]도 또한 법인에 이르며 그림자ㆍ메아리ㆍ꿈ㆍ허깨비[幻]ㆍ아지랑이ㆍ물거품ㆍ파초에 속하고 다 마땅히 다시 법인을 이룹니다. 왜냐 하면 그 인처(忍處)는 다 공하고 공과 같아 전혀 일어남이 없는 법인이기 때문입니다. 또 인(忍)이란 또 그 일어남이 없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또 마땅히 일어남도 없고 크게 일어남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인이란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니요 또한 중간도 아니며, 이것은 곧 위도 없고 견줄 수도 없는 긴요한 인[要忍]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보살이 이러한 지혜의 마음에서 무서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곧 응당히 법인(法忍)의 행입니다. 시방에서 온 모든 신통 보살이 유수보살이 설한 바의 깊고 미묘함을 듣고 모두 기뻐 뛰면서 다 이 선정[定]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 유수보살이 용수보살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족성자여, 집착 없는 행으로 법인에 들어갑니까?”

대답하였다.

“유수여, 만약 보살이 생각이 향하는 곳이 있으면 곧 행에 집착함입니다. 나는 깊이 알고 있다고 말하거니와 내가 깊은 인(忍)을 밝게 통달하여 환하게 알아서 이미 도에 이르렀다고 말하면, 그런 말 이런 말이 다 또한 행에 집착한 것입니다.”

유수보살이 또 물었다.

“보살은 어떤 행으로 닦아야 도를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에 전혀 들어가는 바가 없고 모든 법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모든 법이 없음을 알 것이며, 그 모든 법이란 인연에 집착하여 의지하며 본래 공하여 무소유를 얻나니, 이렇게 행하는 보살은 곧 도의 인[道忍]이며 설사 이와 같이 행하여도 행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사람이 잠잘 때 꿈속에서 걷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용수보살이 또 말하였다.

“그 꿈꾸는 자는 모서리[方隅]로 가지도 않고 또한 가는 것도 없으며, 가고 오는 것도 없고 머물러 있는 것도 없으며 앉은 것도 없으나, 그는 꿈에서 깨고 나면 곧 도달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꿈꾼 몸은 빈 몸이라, 가짐도 없고 버림도 없어 도무지 고집하여 지닌 것도 없습니다.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고 처소도 없고 소유함도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유수여, 보살의 행은 마땅히 집착한 바도 없고 또한 들어간 바도 없으며, 공과 같이 본래 없고 또 희롱하는 행[戱行]도 없나니, 이것이 곧 세상을 다한 위없는 복전입니다. 이에 곧 마땅히 일체 공양을 받아서 한량없이 인도할 것이니 이 제일의 복지(福地)는 곧 최상의 법인(法忍)의 행입니다.”

널리 모여온 대중이 다 기쁘고 공경함을 품고 각각 가지고 온 꽃과 보배를 가지고 유수보살에게 흩뿌리며 뛸 듯이 기뻐하며 쳐다보면서 한량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이에 용수보살이 유수보살에게 말하였다.

“마땅히 함께 성에 들어가서 걸식[分衛]합시다.”

말하였다.

“그대만 가시오. 가서 걸식할 때 생각을 없애고 발을 들거나 발을 놓거나 걸음을 멈추거나 생각으로 동요함이 없이 마땅히 장소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거닐음도 없고 굽힘도 없고 폄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출발해서 가는 것도 없으며 걸어도 생각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성(城)이라는 생각도 없고 거닐되 길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또 성곽ㆍ현(縣)ㆍ읍ㆍ언덕ㆍ마을이라는 생각을 없이 하며, 또 마을의 거리도 없고 집에 산다는 생각도 없고 문호라는 생각도 없고 남자ㆍ여자라는 생각도 없으며 약한 어린이라는 생각도 없고 전혀 마음의 생각이 없이 거닐되 마땅히 생각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의 행함이 마땅히 이와 같기 때문이며, 또한 집착하는 바도 없고 색도 없고 형상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고 아무런 생각조차 없으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마땅히 보살의 위없는 걸식[分衛]이요 청정 적막하고 종요로운 도의 행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용수보살마하살이 홀연히 여해정삼매(如海定三昧)에 바로 들어갔다. 그 정(定)의 덕은 비유하면 대해와 같아 깊고 고요하며 움직임이 없고 담박(澹泊)하고 청징(淸澄)하여 다시 다른 맛이 없으며, 그 깊이는 깊고 깊어 헤아릴 수가 없고 기이한 보배 빛나는 보배가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한 바다와 같이 넓고 넓어 광대하게 두루 감싸고 있으며 만물을 받아들여 포함하고, 깊고 크고 넓고 크며 끝도 없고 가없어 큰물이 가득하며, 모든 덕있는 귀신과 용들이 다 거기에 머물러 중생의 온갖 몸이 거기에 의지하여 자라났다.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보살이 여해정(如海定)을 바로 받아들이는 곳에 머무는 중요한 취지는 능히 동요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용수여, 모든 보살은 법신의 바다로써 일체 도의 보배 지혜인 37조도품을 품고 있어서 시방이 그에 의지하여 자라나지 않음이 없고 마땅히 위없는 미묘한 법으로 동요함이 없으며, 언설이 필요 없는 행입니다. 그러므로 응당 이와 같이 하면 물러남이 없는 선정의 행[定行]의 경지[地]를 얻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때 곧 묘심보살이 용수대사가 앉은 여해혜정(如海慧定)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곳을 움직이고자 그 신통력을 다하여도 끝내 능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이 때 이 삼천대천세계가 널리 여섯 번 반복하여 크게 진동하였으나 용수보살과 그 앉은 곳은 동요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 용수보살은 동요함이 없는 데 머물고 처소가 없는 데 머물며, 있음이 없는 곳에 머물고, 상념(想念)이 없는 데 머물며, 희롱의 행[戱行]이 없는 데 머물고, 노정(勞靜)이 없는 데 머물며, 말이 없는 데 머물고 다시 머묾이 없는 데 머무니, 이것을 도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이 때 용수보살마하살이 선정에서 깨어나 여래의 집착함이 없는 평등정각을 향하여 공경하며 우구문(雨拘文) 꽃을 세존께 흩뿌리며 찬탄하여 말하였다.

“저는 하늘 가운데 하늘이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에 일체 시방에서 와서 모인 모든 보살과 대중ㆍ대사(大士)들의 무리와 높고 큰 하늘 및 용ㆍ귀신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법을 다 듣게 하시니, 위없고 중요하며 뜻 깊고 오묘한 지혜의 설법이라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고 깃들 집이 없는 설법이니마땅히 본래가 공하고 적막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묘심보살이 용수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깨달을 때에 땅이 여섯 번을 반복하여 진동하였습니까?”

말하였다.

“족성자여,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마땅히 땅을 깨우치고[覺地] 땅을 움직임이요 또 위아래로 네 번 흔들음이니, 오직 그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방의 모든 불세존과 같이 널리 물러서지 않는 지위에 오른 큰 보살 등이 세상을 다하였어도 모두 다 움직이는데 어찌 능히 이 위의 높은 곳[上尊處]이겠습니까? 모든 성문ㆍ연각 대중을 보건대 그들은 비록 움직임을 여의었다 할지라도 아직 본래 공함을 깨닫지 못하고 움직이는 경지(地)에 있으면서 스스로 일컫기를 ‘움직임이 없고 본래 없는 것을 깨달아서 이 모든 법에서 영원히 동요함이 없고 생각도 없고 집착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묘심이여, 보살은 공으로써 생각이 없고 원함이 없는 행과 청정한 법으로 동요함이 없는 데 이르러서 그들은 곧 영원히 고요하고 편안하여 동요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말하였다.

“용수여, 그대는 걸식[分衛]을 행합니까?”

대답하였다.

“유수여, 나는 이미 위없고 가장 중요한 걸식의 지혜를 이해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여해대정(如海大定)을 이루어 바로 받는[正受] 곳을 인연하여 비로소 스스로 밝아지고 위없이 평등하며, 바르고 참된 깨닫음의 도를 얻기 위하여 생사에서 불사를 일으켜 나타내어 법륜을 굴리며 중생을 제도하고 번뇌를 여의는 근본을 인연하여 건너는 것입니다.

오직 그러하니 유수여, 내가 그대를 만난 것과 같이 곧 위없는 선우(善友)를 만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대덕을 이루었기에 기쁘고 스스로 영예롭게 생각합니다.

유수여, 나에게는 덮어주고 이끌어주는 머리[首]이며 크고 한량없고 제도하여 건네주는 머리이고 번뇌의 때가 없이 넓고 고르고 미묘하며 복된 머리요, 또한 마땅히 최상의 불가사의한 머리요, 보시를 원하고 오체를 조아리게 하는 머리요, 공손히 예하는 위없는 선성(仙聖)과 감로의 머리가 됩니다.”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그대와 같이 용수여, 이미 아지랑이ㆍ꿈ㆍ허깨비ㆍ그림자ㆍ메아리의 행으로 과(果)를 통달하여,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소유한 법도 없습니다. 그대는 이제 위없는 대도와 불가사의한 미래법의 사당[祠]에 응하여 여해정(如海定)을 얻음으로써 바로 받아 행하며 다 함께 이같이 응하니, 마땅히 알 것입니다. 이 무리는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음이요 이것은 곧 보살의 변재의 지혜[辯慧]를 이루고 이런 형상에 도달하면 깊고 미묘한 여해정과 같은 선정의 법[定法] 등 곧 모든 생각을 여의게 됩니다.”

또 말하였다.

“그대는 걸식을 따를 수 있습니까?”

용수보살이 대답하였다.

“그 덕과 함께[齊] 생각하며 마땅히 그대와 갈 것입니다. 두 성룡(聖龍)이 노니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유수보살이 말하였다.

“내게는 가는 것도 없고 또한 가고 오는 것도 없으며, 또 나아가고 멈춤이 없고 또 노닐 벗도 없고 머물지도 않고 앉지도 않으며, 또다시 가지도 않고 가도 이를 곳이 없으며, 와도 연유할 바(所由)가 없고 머물러도 처할 곳이 없고 앉아도 의지할 곳이 없으며 가도 나아갈 곳이 없습니다.

비유하면 용수여, 여래께서 화현하심에 어찌 가고 오고 앉고 일어나고 다니고 노닐고 눕고 잠자고 깸이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화현[化]이란 전혀 가고 오고 앉고 잠자는 곳이 없습니다.

나는 모든 법에 또한 이와 같아 머무름도 없고 머물지도 않고 일어남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또한 이미 일어남도 없고 또 중간에 일어남도 없고 또 앞으로도 일어남이 없으며 겨우 일어남[甫起]도 없습니다.”

용수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은 것은 이 세상을 다하여도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누가 마땅히 그대의 이 지극히 중요한 지혜를 믿겠습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용수여, 그대는 잠시 들으십시오. 어찌 눈 없는 이를 위하여 촛대의 촛불을 들겠습니까? 무릇 횃불은 오직 눈을 밝히기 위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이 형상은 깊고 미묘한 법이기에 바로 멀리 향하며 뚫어서 통달한 보살마하살만이 곧 능히 이 도의 대요[要]를 받아 믿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지혜를 깨달으면 이것은 곧 본래 행할 것이 없음을 밝게 아는 것입니다.

이들 보살은 마땅히 청정하고 위없이 오래 범행(梵行)을 닦은 무리요 이는 일찍 이 정사(正士)로서 깊이 법에 머물러서 법을 믿고 법을 받고 법을 가지고 법을 설하는 무리[輩]입니다. 사슴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미 법륜을 굴리어서 마땅히 현성(賢聖) 또는 대도사가 되어서 눈을 밝혀주는 은혜를 베풀고, 당당히 한량없이 굳세고 용맹한 이가 되셨으니 이는 곧 위없이 가장 미묘한 법입니다.”

유수동진이 이와 같이 설할 때에 널리 대중 가운데서 8만 보살이 다 따라서 생겨남이 없는 법락의 인[法樂忍]을 얻었다.

이에 정사(正士) 묘심보살이 대중의 앞에서 크게[廣然] 뛰면서 손에 가득 가지고 있던 보배를 공손한 마음으로 불세존을 향하여 흩뿌리고 또 유수동진보살에게 뿌렸다. 뿌리고 나서 기뻐서 거듭 찬탄하여 읊었다.

스스로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나니 
지혜를 성스럽게 통달하기 위함이라.


자나 깨나 안개 걷어내고 
어리석음의 근본 부수며 

온갖 전도됨 알고 
의심의 그물을 풀어서 
순리대로 밝은 도에 들어가 
위없는 깨침 이루리.


스스로 법에 귀의하나이다.


법 가운데 최상의 법 
법으로 많이 제도하고 다스려 
안개 속의 용 잡아내어 치료하고 

생사의 눈[雪]속에서 구원하며 
호미로 온갖 잡초를 뽑아 제거하고 
마음의 때를 씻어버리고 
미혹에서 인도하여 통하게 하네.



법은 그 위에 없어 
닦아 영원히 제도됨을 입으리.


그 모든 보살이 
오래도록 범행을 행하여 

위없이 청정하며 
신선[仙聖]의 밝은 부류라.


큰 신통 같아 
널리 덕 나타나심이라.



위없는 무리 
이에 이르러 이 형상 향해 믿으며 
깊고 오묘한 법의 무리에 
지금 널리 스스로 귀의하나이다.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이와 같이 묘심이여, 해탈[脫]함이 없는 자는 이제 마땅히 과(果)로써 무상등각(無上等覺)을 이룰 것입니다.” “어떻게 유수여, 그 누가 벗어남[脫]이 없겠습니까?”

유수보살이 말하였다.

“고집하며 지니는 이는 마땅히 해탈을 구합니다. 이와 같이 묘심이여, 법에는 고집하여 지님도 없고 또한 얽매이고 집착함이 없습니다. 또 족성자여, 법은 전혀 벗어남[脫]도 없고 또 고집하며 가짐도 없는데 누가 마땅히 벗어남이 있겠습니까? 얽매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모든 법은 지님도 없고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모든 허깨비[幻]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깊이 인간세상으로 들어가 고집하여 가진 것을 풀어버리고 벗어나라’고 하니 그 허깨비가 대답하기를 ‘나는 또 남자도 아니요 또한 범인(凡人)도 아니요 가진 것도 없는데 마땅히 벗어버릴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묘심이여, 도는 고집하고 벗어나고자 함이 없으니 마땅히 그 없음을 관찰하면 없다는 근본은 공하고 청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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