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不貞)한 계집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바라나시성 밖에 한 사람의 부자 상인이 있었다. 아내를 맞이하였더니 얼마 아니하여 그 아내는 임신을 하였다. 이 때, 그 부자 상인은 큰 바다를 건너가서 진귀한 보물을 많이 가져다가 큰 돈을 한번 벌어 볼 계획을 세웠다.
『나는 지금부터 먼 나라로 가서 진귀한 보물을 구해 가지고 오려고 하니, 당신은 집을 잘 지키고 모든 일에 주의해 주기 바라오.』
하고 그 아내에게 일렀다.
『당신이 가시려거든 나도 데리고 가 주셔요. 혼자서 집을 지키는 것을 쓸쓸하고 무서워서 어떻게 해요.』
하고 아내는 같이 데리고 가기를 남편에게 청하였다.
『그렇게 걱정이 될 것 같으면, 튼튼한 사나이를 한 사람 와 있도록 할 터이니……』
하고 아내를 안심시키고 떠나려 했으나,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고 갑자기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
『당신이라는 사람은 몹시 무정한 사람입니다. 내가 함께 데려가 달라고 하는데, 혼자 내버려 두고 가려고 하니 말이요.』
하면서 다시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이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동행의 한 사나이는 가엾이 생각하여,
『주인님, 부인이 저렇게 따라가기를 원하니 함께 데리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주인에게 권하였다.
『사나이들 틈에 연약한, 게다가 홀몸도 아닌 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은 곤란해. 만일, 동행 중에서 누군가가 아내의 시중을 들어 준다면 또 몰라도……』
『그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오. 제가 부족하나마 시중을 들겠습니다.』
이렇게 동행하는 사나이가 말하는 데는 안 데리고 갈 수도 없어, 상인은 별 수 없이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기로 작정하였다.
그 뒤 어느 날, 풍향(風向)이 좋아, 이 일행은 배를 띄웠다. 이 배가 바다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산더미 같은 미갈어(摩竭魚)라는 물고기가 나타나 한번 꿈틀 하더니 단번에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이 배를 쳐서 산산조각을 내어 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동안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져 고기밥이 되고 말았다. 이 일행이 익사(溺死)의 화를 당하고 있을 때, 임신 중인 상인의 아내는 우연히도 흘러온 배의 파편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다행히도 바람과 물결에 밀려서 어느 해변에 닿게 되어 기적적으로 혼자만이 살아 남았다.
표착(漂着)한 해안에는 금시조왕(金翅鳥王)이 살고 있었는데, 표류에 온 상인의 아내를 구조하여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그러는 동안에 상인의 아들인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뒤, 이 부인은 다시 금시조왕의 아들을 낳았다. 금시조왕은 자기 아들이 태어나자 얼마 아니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때, 많은 새들이 모여서 금시조왕의 아들을 세워 동족의 왕으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그 때, 어머니인 이 부인은 새의 아들을 보고,
『너는 지금 새의 왕이 되어 아버지의 계통을 잇게 되었지만, 여기에 있는 네 형은 왕위에도 오르지 못해서 가엾지 않느냐. 제발, 너는 이 형을 바라나시국으로 데리고 가서 사람의 왕이 되게 해다오.』
하고 부탁하였다.
『어머님, 안심하셔요. 반드시 형님을 왕위에 오르게 할터이니……』
하고 새의 왕은 어머니의 부탁을 쾌히 받아들였다. 당시 바라나시구에는 범수왕(梵授王)이라는 영특한 왕이 있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왕은 조회(朝會)에 참석하기 위하여 옥좌로 나아가는데, 어디로서인지 날아 온 금시조왕은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왕의 두 팔을 나꾸어 가지고 다시 날아 올라가 범수왕을 바다로 가지고 가서 물에 던져 죽여 버렸다. 그리고 왕의 몸에 가지고 있던 목걸이를 벗겨 자기 형의 몸을 장식하고 형을 두 날개에 태워 가지고 다시 왕궁에 와서 형을 우좌에 앉히고, 모여 있는 신하들을 향하여,
『여기에 계시는 분은 여러분의 대왕이시다.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에 거역하는 자는 모두 바다에 갖다 던져 버릴 것이다.』
하고 선언하였다.
이 엄청난 사태에 당한 신하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금시조왕의 명령을 위반하면 당장에 죽음의 선고를 받을 것이 뻔하므로 할 수 없이 상인의 아들을 국왕으로 받들고 이름을 범수왕(梵授王)으로 하여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로 하였다.
아우 금시조왕의 힘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 형은 매우 기뻐하여 아우인 새의 왕에게,
『네가 힘을 써 주어, 나도 훌륭한 신분이 되었다. 가끔 놀러 오너라.』
하니, 새의 왕도,
『나도 형님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안심이 됩니다. 이것으로 어머님의 부탁한 길을 성취하였습니다. 가끔 문안드리러 찾아 뵙겠습니다.』
하고, 하여튼 이 기쁨을 어머니에게 빨리 알리려고 새의 왕은 곧 바닷가로 돌아갔다.
새 범수왕은 한 마리의 암코끼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암코끼리가 새끼를 낳으려는데 머리만 겨우 나오고 암만해도 다 나오지는 않으므로 어미 코끼리도 나오려는 새끼 코끼리도 모두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소리를 신하로부터 들었으므로,
『그래, 그러면 그 코끼리는 후궁(後宮)으로 데리고 오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새 범수왕은 궁녀들에게,
『저는 왕 이외의 다른 남자를 모릅니다. 만일 이 말이 진실이라면 새끼 코끼리들은 안산될 것입니다. 하고 맹세를 외쳐라.』
하고 명령하였다. 어미 코끼리는 후궁에 끌려 들어왔다. 궁녀들은 왕명대로 큰 소리로 맹세의 말을 열심히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어미 코끼리를 더욱 더 괴로워하게 할 뿐, 새끼는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침 그 때에 왕궁 앞을 한 사람의 소를 기르는 여자가 지나가다가 왕궁 안으로부터 무엇인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므로 무슨 일인가 하고,
『몹시 떠들썩한데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문지기에게 물었다.
문지기는 그 까닭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러셔요. 그렇다면 내가 한번 맹세를 외치면 그 코끼리는 새끼를 안산할 터인데……』
하고 그 여인은 말하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이 솔깃한 말을 들었으므로 문지기는 얼른 그 소리를 관계자에게 전하였다.
궁안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기뻐하면서 왕에게 아뢰었다.
『그러면, 그 여인을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하고, 왕도 기뻐하여 곧 그 여인을 불러 들이게 하였다.
여인은 궁안에 들어와 곧 코끼리 앞에 서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한 사람의 남편 밖에는 남자를 가진 적이 없다. 이 일이 진실이라면, 이 코끼리가 새끼를 안산하도록……』
하고 진실어리게 맹세하고 빌었다. 이 맹세하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어미코끼리는 새끼를 낳았으나, 그러나 아직 꼬리만은 남아 있고 채 나오지를 않았다.
그것을 본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요만큼의 작은 허물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듣고 있던 궁녀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잘 모르므로,
『대체, 네 허물이란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실은 이러합니다. 언젠가 내가 남의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쉬」를 하여 내 음부(陰部)에 흘러 들어갔을 때, 그것이 정을 통한 것과 같이 흡사했어요. 이 나의 생각이 허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새끼 코끼리의 꼬리가 안나오는 것입니다.』
하고 그녀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이 허물의 참회가 끝나자 새끼코끼리의 꼬리는 무난히 빠져나왔다. 대신들은 새끼 코끼리가 나왔으므로 이 일을 왕에게 아뢰었다.
그 사연을 들은 왕은
『우리 궁중의 궁녀들은 부정(不貞)한 여자들 뿐이로다. 오직 이 소 기르는 여자만이 순결한 여자로다.』
하고 깊이 감동하여,
『그 여인을 불러 오너라.』
하고 명하였다. 소 기르는 여인은 불안에 떨면서 왕 앞에 나왔다.
『네 거짓없는 고백으로 새끼 코끼리가 나왔느냐.』
『예, 그러하옵니다.』
왕은 이 여인의 순결에 감동하여, 만일 이 여자에게 딸이 있으면 또한 순결한 것이라 생각하고,
『네게 딸이 있느냐.』
『예, 있사옵니다.』
『이름이 무엇이냐.』
『묘요(妙姚)라고 합니다.』
『딸은 아직 시집을 안 갔겠지.』
『예, 아직 홀몸입니다.』
『어떠냐, 묘요를 내게 주지 않겠느냐.』
『황공합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소기르는 여인은 드디어 딸 묘요를 왕비로 올리게 되었다. 묘요는 대단한 혼례 채비를 갖추어 궁중으로 들어가 왕비가 되었다.
이 때, 왕은 이 새 왕비를 순결치 못한 궁녀들 속에 같이 있게 하면 자연히 나쁜 풍습에 물들 염려가 있다고 걱정하여 그들로부터 떼어놓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 뒤, 의붓아우인 금시조왕이 오래간만에 찾아왔다. 왕은 눈앞의 걱정거리인 묘요의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런 사정인데, 어떻게 낮에는 매일 네가 사는 바닷가에 묘요를 데려갔다가 밤에 궁중으로 데리고 돌아와 줄 수는 없겠느냐.』
하고 부탁하였다.
『그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고, 아우 금시조왕은 쾌히 승낙하고 곧 묘요부인을 날개에 태우고 자기가 살고 있는 바닷가로 안내하였다. 그로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금시조왕은 매일 묘요를 데리고 갔다가는 또 데리고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 하였다.
이 바닷가에는 코이라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묘요는 매일같이 이 코이꽃을 뜯어 그것으로 꽃모자를 만들어 돌아갈 때의 선물로 해서 왕을 즐겁게 해 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그 때, 이 바라나시국에 한 바라문(婆羅門)의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산에 나무를 베러 갔더니 야차녀(野叉女)가 그 청년의 곁에 와서 잠자고 청년의 손을 잡고 점점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 암굴(岩窟)속에서 억지로 관계를 맺어 버렸다.
청년은 야차와 동서(同棲) 하기가 싫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을 치려고 하였으나 계집은 청년이 도망칠 염려가 있으므로 자기가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큰 바윗돌로 그 암굴을 굳게 막고 가곤 했다.
그래서 청년은 아무리 해도 도망할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하는 동안에 청년과 야차 사이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는 바람처럼 빨리 뛰므로 이름을 속질(速疾)이라고 붙이기로 하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집을 비웠을 때 속질은 아버지에게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 태생입니까.』
『나는 바라나시라는 훌륭한 도시 태생이다.』
『그러면, 왜 고향에 안 돌아가십니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네 어머니가 감시를 엄중히 해서 암만해도 나갈 수가 없단다.』
『그러면 제가 이 문을 막는 윗돌을 치워 드리리다.』
『응, 그렇게만 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속질은 아버지의 오랜동안의 소망과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하여 힘껏 바윗돌을 몇번이고 흔들었더니 그 큰 바윗돌도 아들의 정성어린 일념에 돌문은 드디어 열렸다.
『자, 아버지. 돌을 치웠습니다. 나와 함께 도망합시다.』
『그런데, 이제 거의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 다 됐으니 도망할 겨를이 없다. 도중에서라도 만나게 되면 우리들은 다 죽는다.』
『그러면 제가 꾀를 써서 어머니가 늦게 돌아오게 하겠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도망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 야차녀가 음식과 나무 열매를 따 가지고 돌아왔다.
『속질아, 이 열매는 맛있으니 어서 먹어라.』
하고 우선 귀여운 아들에게 나무 열매를 주었다.
속질은 그 열매를 먹더니 곧 얼굴을 찡그리고 그 열매를 뱉어 버렸다.
『왜 그러느냐. 맛이 없느냐.』
『어머니는 가까운 근처에서 따오니까 이렇게 맛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먼 산에 가서 맛있는 것을 따오마.』
『그렇게 해 주셔요. 이것은 못 먹겠어요.』
아들이 귀여워서 야차녀는 이튿날이 되자 아침 일찍 먼 산으로 나무 열매를 따라 떠났다.
『아버지, 도망할 때는 지금입니다.』
하고 속질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굴을 뛰어나와 고생 고생하면서 아버지가 태어난 나라 바라나시로 갔다. 그런 사건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아들의 희망을 만족시켜 주려고 먼 산으로 나무 열매를 따러갔던 어머니는 지쳐가지고 암굴로 돌아왔다. 와서보니 바윗돌은 제쳐지고 돌문은 열린채로 있다.
『이놈이 도망을 쳤구나. 아들녀석에게 속은 것이 분하다.』
하고 이를 갈면서 분해했으나 행차 뒤의 나팔이었다. 한꺼번에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렸으므로 야차녀는 목을 놓아 통곡을 하였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이웃 암굴에 사는 동족이 찾아 와서.
『어찌된 일이요.』
하고 물었다.
야차녀는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 하였다.
『그들은 사람이니까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지요. 무어 슬퍼할 것도 없소.』
『남편과 이별한 것은 슬프지 않았다. 다만, 외아들에게 아직 야차의 생명인 기악(伎樂)을 미처 못다 가르쳤으니 내게서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가 없을 터인데 그것이 서러워서요.』
『그일이라면 내가 자주 그 나라에 가니까 아들아이에게 잘 일러두리다.』
『고마워요. 그러면 이 구다라 거문고를 아들에게 주어 주시오. 이것을 타서 자활(自活)하라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구다라 거문고의 첫째줄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줄을 탔다가는 반드시 자신에게 손해가 올 것이라고 다짐해 주셔요.』
하고, 역시 어머니라 도망간 아들의 장래까지 걱정하여 세심한 주의를 이웃 야차에게 부탁하였다. 부탁을 받은 야차는 그 구다라 거문고를 가지고 사라졌다. 한편 아버지의 고향에 돌아온 속질은 선생에게서 글을 배웠다.
어느날, 학업의 틈을 타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우연히 이웃 야차를 만났다.
『너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느냐.』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해 고생하고 있어요.』
『네 어머니는 네가 집을 다간 다음부터 매일 울며 지낸단다. 돌아갈 생각은 없느냐.』
『아무리 굶주림에 시달려도 다시 야차 어머니와 함께 살 생각은 없어요.』
『그렇게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 네가 살아갈 수 있는 연모를 주마. 이 구다라 거문고는 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니 소중히 하여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첫째줄을 타서는 안된다. 그것을 타면 틀림없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니 말이다.』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분부는 꼭 지키겠습니다.』
속질은 어머니의 선물인 구다라 거문고를 야차에게서 받아 가지고 급히 학당으로 돌아갔다.
그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걱정하고 있던 학우들은,
『너, 너무 늦었구나. 선생님이 화 나셨어.』
하고 놀라게 하였다.
『산에 갔더니 어머니의 부탁을 받았다는 사람으로부터 이 구다라 거문고를 받았는데, 그래서 늦어졌어.』
하고 변명을 하면서 그 거문고를 학우들에게 보였다.
『그런 훌륭한 악기를 네가 탈 줄 아니.』
『그야, 타고 말고.』
『그럼, 한번 타 보렴, 우리들은 듣고 있을 터이니.』
속질은 첫째줄을 건드리지 않고 용케 거문고를 탔다. 그 타고 있는 손을 바라보고 있던 학우는,
『너는 왜 첫째줄에는 손을 대지 않니.』
하고 이상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 줄에 손을 대면 나쁜 일이 생기기 때문이야.』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하면서, 속질이 말리는 것도 아랑곳 없이 학우들은 억지로 장난삼아 첫째줄을 건드렸다.
첫째줄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학우들은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아무리 제지하여도 멈추지를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여러 학우들은 춤을 추었다.
선생은 학생들이 공부는 조금도 하지 않고 춤추고 날뛰고 있으므로 크게 화를 내어,
『무엇을 하느냐.』
하고 꾸짖었다.
『속질이 가지고 있는 구다라 거문고를 탔기 때문입니다.』
『속질아, 이리 와. 너는 그 거문고를 탈 줄 아느냐.』
『예.』
『그러면 한 곡조 타 보아라.』
속질은 선생님의 분부로 곧 한 곡을 탔으나 역시 첫째줄은 건드리지 아니하였다. 이것을 본 선생님도 또한 왜 첫줄은 안 타느냐고 물었으므로 그는 그 까닭을 말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말을 안 믿고 제 손으로 그것을 건드렸더니, 선생도 그 부인도 모두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집이 흔들리고 세간은 떨어져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부숴져 버렸다. 선생은 몹시 화가 나서 마침내 속질을 마을 밖으로 내어 쫓았다. 학당을 쫓겨난 그는, 그 뒤 혼자서 구다라 거문고를 뜯으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정처 없는 여행을 몇 해 계속하게 되었다.
속질이 구다라 거문고를 타면서 여행을 계속하고 있을 때, 五백 명의 상인의 한 떼가 바다로 나가 돈과 보물을 구할 계획을 세우고, 배 떠날 준비는 다 되었지만 다만 바다 가운데서 심심을 풀어 줄 음악가가 없어 그것을 찾고 있었다.
그 때에 마침 속질이 우연히도 발견되어 그 일행에게 고용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보물을 구하려는 큰 배는 드디어 돛을 달고 큰 바다로 떠나갔다. 한 배에 탄 상인들은 이제 심심해진 만한 때이므로,
『속질아, 구다라 거문고를 한번 타 보아라.』
하고 부탁하였다. 속질은 전과 같이 그 첫째줄은 건드리지 않고 멋지게 뜯었다.
그 때, 사람들은 그가 첫째 줄에는 손가락을 대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어째서, 첫째줄은 안 타느냐.』
하고 물었다.
『이것을 건드리면 큰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어서 내게 빌려라.』
면서 싫다는 그의 손에서 구다라 거문고를 빼앗은 한 사나이가 난폭하게도 첫째줄을 탔더니, 지금까지 그렇게도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거칠어지기 시작하여 배는 물결에 휩쓸려 가라앉아 버리고 五백 명의 상인들은 모두 바닷속에 빠져 죽었다.
오직 한 사람 속질만이 우연히도 흘러온 나무 조각을 붙들고 겨우 금시조왕(金翅鳥王)이 살고 있는 바닷가에 표착하여 목숨은 구할 수가 있었다.
이 바닷가에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았다. 다만 범수왕(梵授王)의 왕비인 묘요만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그와 그녀는 서로 말을 건네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어느 때 그는 그녀가 밤이 되면 어디론가 가 버렸다가 낮이 되면 바닷가로 되돌아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당신은 매일 밤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었다.
그녀는 거짓없이 범수왕이 부정(不貞)한 여자가 될까 봐서, 금시조왕에게 날마다 밤마다 자기를 이곳에 데려오고 또 데려가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나를 바라나시에 함께 데려다 줄 수는 없습니까.』
『동행하기로 합시다. 당신의 이름은 뭐지요.』
『나는 속질이라 합니다마는, 당신은.』
『묘요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왕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으므로 그녀는 조약돌을 사람 무게만큼 가지고 가만히 그를 불러 함께 금시조에 타고 조약돌을 가감하여 무게를 조절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해가지고 바라나시로 향하였다.
『속질씨, 눈을 떠서는 안됩니다. 만일 눈을 떴다가는 눈이 멀어집니다.』
하고 그녀는 주의 시켰다.
그는 그 주의를 굳게 지키고 금시조에 타고 있었는데 궁성이 가까워진듯 사람들 소리, 개짖는 소리 들이 들려 왔으므로 그는 이제는 눈을 떠도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눈을 뜨자마자 두 눈은 질풍(疾風) 때문에 멀고 말았다. 그는 뉘우쳤으나 보람없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 애인이 갑자기 장님이 되었으므로 새에서 내리자 그를 꽃동산에 숨겨 두고 자기 혼자 시치미를 떼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 뒤, 꽃은 만발하고 새는 꽃에 흥겨워 지저귀는 계절이 되었다. 어느 날씨 좋은 날 범수왕은 궁중 사람들을 거느리고 꽃동산에 놀러 나왔다. 물론 왕비 묘요도 따르고 있었다.
동산 속에 버리어진 장님 속질은 동산속에 피어 있는 명화의 냄새를 맡으면서,
『솔솔바람 불어오네 꽃향기 그윽도 하여라. 지난날 바닷가에서 묘요와 함께 사랑 속삭이던 그날 그리워.』
하고 노래 부르면서 꽃동산을 거니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국왕이 온 줄은 꿈에도 모르는 그는 전과같이 이 노래를 목청 높이 불렀다.
왕은 그 노래소리를 듣고,
『이 동산에 누가 살고 있느냐.』
하고 신하에게 찾아 보라고 했더니, 눈먼 청년이 있다고 알려 왔으므로,
『그 청년을 데려 오너라.』
하고 명하였다. 속질은 왕에게 끌려 왔다.
『지금 노래를 부른 것은 너냐.』
『그러하옵니다.』
『다시 한번 여기서 불러 보아라.』
속질은,(이것은 내 노래가 아름다워서 왕께서 들어보려는 것이다. 잘 부르면 은상이 내리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한층 더 목청을 가다듬어 소리높이 불렀다.
『지금 네가 부른 노래 속에 바닷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바닷가는 여기서 먼 곳이냐.』
하고 왕은 물었다. 그는 다시 노래 불렀다.
『묘요 있는 바닷가는 여기서 먼 백리길. 바다를 넘고 또 넘어 즐거운 그 바닷가 아름다운 곳.』
왕은 되우쳐 물었다.
『네가 본 그 아름다운 여인은 내 묘요의 모습이 그 아니냐.』
거기서 그는 가슴 속에 새긴 그녀의 모습을,
『허리에 자를 쓰고, 가슴에 동그라미 하나, 매일 꽃을 따서 꽃모자 만들어 왕께 드렸죠.』
하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을 들은 왕은 지금까지 순결하다고만 믿고 있던 그녀가 부정(不貞)한 계집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런 부정한 계집은 소용이 없다고 질투와 분노에 찬 범수왕은,
『구슬 목걸이를 걸고 나귀 등에 태워 소경과 함께 성 밖으로 내보내라.』
하고, 마침내 속질과 산통한 그녀를 내쫓아 버렸다.
범수왕의 노여움을 산 묘요와 눈먼 속질은 그 자리에서 성문 밖으로 내쫓기어, 그가 타는 구다라 거문고를 밥줄로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면서 두 사람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유랑(流浪)의 길을 헤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때 어느 마을 어귀에 이르러, 잘 데를 찾아 어떤 당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 밤 五백 명의 도적이 어둠을 타고 이 마을을 습격 하였다.
사람들은, 「도둑이야」하고 종을 치고,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 되어 도둑을 추격하였다. 쫓긴 도둑들은 혼이 나서 도망을 쳤다. 그 때 도둑의 두목은 묘요들이 머물러 있는 당집으로 뛰어들어와 문을 잠갔다. 마을 사람이 뒤쫓아 와서,
『게 있는게 누구냐?』
하고 외쳤다.
그 때, 눈먼 속질은 아무 것도 모르므로,
『여기 있는 것은 지나가던 나그네입니다. 도둑이 아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만일, 도둑이 오거든 알려 주게.』
이렇게 뱉듯이 말하고 마을 사람들은 지나쳐 버렸다.
위기일발에서 난을 면한 도둑은 가만히 묘요를 보고,
『당신은 그렇게 예쁜데, 어째서 장님과 함께 사는가. 차라리 나하고 부부가 되면 어떻겠는가.』
하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꾀었다. 그때, 그녀는 장님과 함께 사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한 때라 잘되었다고 하고 도둑의 말대로 잔인하게도 장님인 속질을 도둑의 한패라고 속여 마을 사람에게 넘겼다.
극도로 화가 났던 마을 사람들은 진짜 도둑으로 알고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방해꾼이던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 당하였으므로 이튿날 아침 그녀는 도둑과 함께 당집을 나와 다른 마을로 도망하려는데 거기에 강이 하나 있어 배도 뗏목도 없어 건너가지를 못하고 멍하니 저쪽 기슭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묘요, 이 강은 물이 넘쳐서 도저히 둘이 함께 건너갈 수는 없다. 너는 잠깐 여기서 미역이라도 감으면서 기다려라. 나는 네옷과 목걸이를 가지고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그녀는 저 사나이가 자기 목걸이를 가지고 도망을 가지나 않을까 갑자기 불안해졌으므로,
『강은 물이 넘실 건널 수 없고, 목걸이는 그대 손에 들어 있는데, 가지고 사라질 것이냐, 근심 걱정되었다.』
하고 멀리 강 가운데 있는 사나이에게 말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도둑은,
『죄 없는 남편을 죽이는 여자의 마음을 뉘라서 좋아하리. 죄도 없는 남편을 죽이는 그 여자의 마음 무서워라. 무서운 마음 그럴 듯 하지. 목걸이를 나는 가지고 가니.』
하고 대답하면서 도둑은 목걸이를 가지고 그녀를 버리고 강기슭으로 올라오자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옷을 빼앗긴 그녀는 알몸으로 강을 나와 풀숲으로 들어가 숨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 풀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늙은 여우가 한 마리 살고 있었는데, 입에 한 토막의 고기덩이를 물고 강을 따라 가노라니 물고기가 한 마리 물에서 뛰어올라 강가에 몸을 눕히었다. 그것을 본 여우는 물고 있던 고기덩이를 버리고 그 산 물고기를 잡으려 하였다.
그랬더니, 물고기는 눈깜짝할 사이에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내버린 고기덩이는 소리개가 공중에서 날아 내려와 채어갔다. 고기덩이와 물고기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여우는 낙심하여 귀를 축 늘어뜨리고 시름에 잠겼다.
풀숲 속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고기는 소리개에 빼앗기고, 생선은 물 속에 뛰어들어 둘을 다 잃어버렸도다. 이제 뉘우친들 어이하리.』
하고 말하였다.
여우는 이 노래를 듣고,
『네게는 재미도 없다. 노래가 다 뭐야, 지금 누구냐, 풀숲에서 나를 비웃는 것은.』
하고 화를 내었다.
풀숲 속의 그녀는 그 때,
『나는 묘요라는 여인이요.』
하고 대답하였다.
『무어, 묘요라고, 제가 저지른 큰 죄도 생각지 않고 뻔뻔스럽게도 누구를 비웃는거냐.』
하고 여우는 성을 내어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
『옛 지아비를 죽이고, 새 남편의 버림을 받고, 세상에 의지할 곳 없는 너, 풀숲에서 잘도 울어라.』
하고 그녀를 나무랬다.
그 소리를 들은 묘요는,
『미몽(迷夢)을 아직 못 깨어 왕궁에 돌아가 정절(貞節)을 다 하고파라. 미친짓 다시는 않으리.』
하고 맹세하였다. 여우는,
『갠지스 강물이 거꾸로 흘러도,
까마귀 날개 희어진들,
염부주(閻浮洲)에 다라수(多羅樹)가 나도
너 한 남편을 섬겨라.
까마귀와 쿠르새가
한 나무에 의좋게 서로 삶도
사랑하기 때문
너 한 남편을 섬겨라.
뱀과 쥐와 늑대가
한 굴에서 노니는 것도
서로 사랑하기 때문,
너 한 남편을 섬겨라.
정절(貞節)이야말로,
여인의 거울이니라.』
하고 노래하면서 다시 그녀를 향하여,
『여우의 몸으로 이런 말을 하면 농담으로 여길지 모르나 만약에 내가 너를 왕에게 다시 돌아가게하면 너는 사례로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하고 물었다.
『나를 전과 같은 왕비로 돌려만 준다면 나는 매일 너에게 맛있는 고기를 주겠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너는 강물에 들어가 목까지 물 속에 잠겨 합장(合掌)하고 해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으라.』
하고 여우는 말하였다.
그녀는 그 말대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여우는 급행 왕궁 옥좌 곁에 가서,
『묘요가 지금 강 물속에서 몸과 마음을 씻고 있으니 빨리 불러다가 왕비로 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범수왕은 전에 여우의 말을 배운 일이 있으므로 여우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신을 불러,
『갠지스강에 가 보아라. 묘요가 강물 속에 몸을 담그고 몸과 마음을 씻고 도를 닦아 마음을 고치고 절개를 가다듬고 있다고 하니, 얼른 데려 오너라.』
하고 명하였다.
대신이 가 보니 과연 그러하였으므로 사자가 가지고 간 옷과 목걸이를 그녀에게 입혀 왕궁으로 인도하였다. 왕은 그녀의 개심(改心)을 칭찬하고 다시 왕비로 삼았다.
여우의 훈계와 그의 주선으로 그녀는 다시 대왕의 부인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약속대로 매일 맛있는 고기를 주고 있었으나 어느 사이인가 그것을 잊어버렸다.
약속을 배반 당한 여우는,
『묘요, 너는 나에게 고기를 주지 않으니, 지난날처럼 다시 고생을 시킬 터이다.』
하고, 왕궁 곁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깜짝 놀라 그 뒤 매일 좋은 고기를 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묘요는 지금의 온발라 비구니(瑥癖比丘尼)이며, 그 때의 속질은 지금의 우다이(優陀夷)이다. 지난 날, 꽃향기를 맡고 묘요를 생각한 것처럼 지금 우다이는 꽃향기를 맡고 니승(尼僧)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도 모두 인연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